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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3시간 전에 삭발했다. 원내대표인 그뿐 아니라 김선동·김미희·이상규·김재연 등 동료 의원 4명 모두 함께 삭발했다. 다음날인 11월7일에는 당 소속 기초단체장·기초의원 117명이 삭발했다. 보는 이를 착잡하게 만드는 머리다. 전신인 민주노동당 창당 이후 13년 만에 가장 추운 겨울을 맞이하게 된 통합진보당의 오병윤 의원을 만났다. 그가 처음 삭발한 것은 전국연합 자주통일위원장이던 1999년, 국가보안법 철폐 범국민행동 집행위에서 활동할 때라고 한다. 지난해 총선 때 광주 서구을에 야권 단일후보로 출마해, 현재 청와대 홍보수석인 이정현 새누리당 후보와 맞붙어 당선됐다.
전 당원이 지령을 받았다? -위헌정당 해산 심판이 청구되리라 예상했나.=상당한 타격을 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실제로 ‘느낌’을 가진 건 2010년 지방선거 야권연대 이후다. 야권연대의 위력을 실감했고, 보수 정권의 제1과제는 야권연대 파기가 될 것이라고 직감했다. 지난해 통합진보당 사태(총선 비례대표 부정경선 사태) 이후 탄압이 몰아치고 있다. 우리 사회의 아킬레스건인 반공 이데올로기와 용공 조작을 활용해 통합진보당을 치면서 민주당이 동조하지 못하게 만드는 거다. 최근에는 그 정도를 넘어, 분단과 지역 갈등, 계급·계층 갈등을 모두 활용하는 ‘포섭과 배제’ 전략으로 가고 있다. 목적은 수구세력의 장기 집권이다.
=통합진보당은 사적 소유와 다원화된 소유 구조를 인정한다. 예컨대 ‘국가기간산업 및 사회서비스 민영화 추진을 중단하고 국공유화 등 사회적 개입을 강화해 생산수단의 소유 구조를 다원화하며 공공성을 강화한다’(강령 본문 11)는 거다. 이게 북한 사회주의와 같은가? ‘휴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대체하는 등 한반도·동북아의 비핵·평화 체제를 조기에 구축한다’(강령 본문 44)고 주장하는 게 북한과 같다는 것인가? 11월5일 국회 예결특위에서 정홍원 국무총리에게 민중의 개념을 물으니 사회주의적이라고 답했다. 민중은 사회주의 용어, 국민은 자본주의 용어, 그러니까 민중이란 용어를 쓰면 북한을 추종하는 용공세력이라는 이분법을 갖고 살아온 사람들이 기득권을 지배하고, 현 정권의 주축을 이루고 있다.
-민주노동당 창당 전부터 최근까지 북한이 지령을 내리고 그게 실제로 시행됐다는 게 법무부 주장이다. 예컨대 2006년 당직 선거 때 ‘당 대표 문성현, 정책위의장 이용대’란 지령이 실현됐다는데.=누가 지령을 받았단 말인가? 통합진보당은 모든 공직 후보와 주요 당직자를 당원들의 직접 투표로 뽑는다. 전 당원이 지령을 받았다는 건가? 기존 정당들처럼 누구를 임명하는 제도를 갖고 있지 않다. 지령이 불가능한 정당이 진보정당이다.
-법무부는 이른바 ‘RO’가 당을 장악했기 때문에 당 전체가 종북정당이라고 한다.=RO는 들어본 바도 없고, 존재 자체가 논란이 돼 있는 상황이다. 당원 10만 명이 각계각층 전국에 퍼져 있다. 누가, 어떻게 장악하나? 새누리당이야 지도부 몇 명, 공천심사위 몇 명이 정리하면 되지만, 철저한 진성당원제 정당에서 그런 게 가능하냐는 거다.
기소도 안 해놓고 RO가 있다고만 주장 -RO는 실체가 없다는 건가.=우리는 그렇게 결론 내렸다. 들어본 일도 없고, 본인들도 아니라고 한다. 상식적인 거다. 1980년대 초반 전두환 정권 때 목숨을 걸고라도 세상을 바꾸겠다고 생각하면서 꿈꾸듯 그런 생각을 했던 사람들도 있었다고 본다. 법무부 보도자료는 그 시대의 얘기다. 1987년 민주화 이후 우리 정치를 우리가 해보자고 당을 만들었다. 정당은 단체와 다르다는 걸 우리도 수업료 내가며 배웠다.
-만약 RO의 실체가 입증되고 유죄판결을 받을 경우 정당 해산이 가능하다고 보나.=RO가 실재한다면 검찰이 반국가단체나 이적단체로 기소해야 하지 않나? 안 하면 직무유기인데 안 했다. 기소도 안 해놓고 RO가 있다고만 주장하는 게 상식적으로 이해되지 않는다. 결성 시기, 조직 체계, 실제 활동 등 아무것도 소명된 게 없다.
-명문 규정은 없지만 의원직 상실 청구도 함께 이뤄졌다.=황당하다. 법 위의 권력인가? 법무장관과 청와대 비서실장은 ‘미스터 법치’란다. 대통령도 늘 ‘법대로’를 외친다. 그러면서 누구에게는 법대로 하고 누구에게는 법대로 안 한다.
-11월15일부터 보조금 수령 등을 금지하는 가처분이 받아들여질 경우 정당해산 청구와 관계없이 정당 활동이 불가능하다.=‘작전세력’이 여러 갈래로 밀어붙이는 것 같다. 작전에 이의를 제기하면 잘랐다. ‘채동욱 찍어내기’ ‘윤석열 찍어내기’가 이뤄졌다. 의원직 상실은 법으로 다뤄야지 임의로 판단할 문제가 아닌데, 정치적으로 결정한다면 승복할 수 없다.
-승복할 수 없다면 무엇을 할 수 있나.=이번 사태의 본질은 수구·보수 세력이 민주주의를 유린하면서 장기 집권을 꾀하고 있다는 것이다. 합법적 활동은 막히겠지만, 이런 본질적 문제에 대해 국민과 함께 싸울 것이다.
-다른 야당들은 정당해산 심판청구에 대해 유감을 표하면서 헌법재판소의 결정을 지켜보겠다고 밝혔다. 김한길 민주당 대표는 “통합진보당도 당의 목적과 활동에 대해서 국민 앞에 분명하게 밝힐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민주당이 자기들에게 향하는 칼날을 보지 못하는 데 대한 아쉬움이 있다. 장기 집권 시도에 저항하는 세력을 모두 종북으로 규정해 배제시키는 전략을 잘 읽어야 한다. 모르고 있는지 애써 피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어느 쪽이라고 보나.=모르진 않는다고 본다. 솔직히 말하면 매우 실망스럽다. 민주당이 지금 일시적으로 어려움을 겪더라도 이를 넘어서지 않고 집권이 가능하겠나.
누가 뭐래도 우리에게 책임이 있다 -여론은 통합진보당에 매우 비판적이다. 민주개혁 진영 내에서도 마찬가지다.=진보의 맏형 격인 우리에게도 책임이 명백히 있다. 민주노동당 시절부터 야권 전체가 연대를 통해 정치를 변화시켜야 한다고 주장해왔고, 지금도 뼛속 깊이 연대를 기본으로 삼고 있다. 우리가 가진 힘의 크기만큼 현실을 인정하면서 연대를 해왔다. 그러나 실력이 부족했고, 분당의 아픔도 겪었다. 누가 뭐래도 책임이 있다. 문제는 그런 지점을 파고들어 통합진보당을 종북으로 매도해 탄압한다는 거다. 당장은 통합진보당에 몰아치고 있지만, 민주개혁 세력 전체를 종북으로 몰고 가려는 거다. 그래서 연대 방침을 가졌으면 좋겠는데…. 근본적으로는 민주주의 문제다. 궁극적인 답은 국민에게 있다. 어떤 정치세력도 민주주의 수호에 국민만큼 헌신하지 못했다. 더 낮은 자세로 국민과 함께 싸워나가겠다.
글 이지은 기자 jieuny@hani.co.kr·사진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한겨레21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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