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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지 말라카이! 니들 오면 내 죽어삔다!”

전운이 감돌았던 밀양 송전탑 행정대집행 현장… 8년의 전쟁 거치며 밀양 주민들은 ‘하나하나가 폭탄들’, 공사강행 한전에 맞서 현장 곳곳 장기화할 조짐
등록 2013-10-09 18:01 수정 2020-05-03 04:27
바드리 89번 송전탑 공사장 밑에서 목에 서로 몸을 연이어 쇠사슬을 묵고 버티는 주민들./2013.10.2/한겨레 박승화

바드리 89번 송전탑 공사장 밑에서 목에 서로 몸을 연이어 쇠사슬을 묵고 버티는 주민들./2013.10.2/한겨레 박승화

“밀양 놈의 쌈(싸움) 하듯 한다”고 했다. 오랫동안 계속 이어지는 일을 두고 하는 말이다. 어쩌면 그 말은 지금의 ‘밀양’을 두고 한 말처럼 들린다. 8년 넘게 계속된 ‘밀양 송전탑 사태’가 좀체 해결 조짐을 보이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그동안 대통령이 세 번이나 바뀌었지만, ‘밀양 놈’이 아닌 백발 성성한 ‘밀양 어르신’의 애처로운 싸움에는 마침표가 보이지 않는다.

영장 1호, 공사 자재 막는 움막

경남 밀양 단장천 뒤 산머리가 새벽부터 내린 비로 안개를 뒤집어썼다. 서쪽으로 이어지는 단장천을 따라가니 금곡교 근처에 늘어선 경찰버스가 보였다. 조환익 한국전력 사장이 넉 달 만에 밀양 송전탑 공사 재개를 선언한 다음날인 10월2일 오전, 밀양시청은 송전탑 공사장 부근에 마을 주민들이 만들어놓은 움막을 철거하는 ‘행정대집행’을 예고했다. 이곳, 금곡교 근처에도 산외면 희곡리 보라마을 주민들이 지어놓은 비닐하우스 움막이 있다. 행정대집행을 앞두고 움막 근처에는 마을 주민 20여 명, 그리고 경찰·밀양시청 공무원 등 300여 명이 모습을 드러내자 전운이 감돌았다.

한전 직원들이 1일 오전 경남 밀양시 단장면 바드리마을 89번 송전탑 공사현장에서 송전탑 건설에 반대하는 주민들의 출입을 막고 있다. 밀양/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한전 직원들이 1일 오전 경남 밀양시 단장면 바드리마을 89번 송전탑 공사현장에서 송전탑 건설에 반대하는 주민들의 출입을 막고 있다. 밀양/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송전탐 공사장으로 건설 자재를 날으고 있는 헬기./2013.10.2/한겨레 박승화

송전탐 공사장으로 건설 자재를 날으고 있는 헬기./2013.10.2/한겨레 박승화


가파른 산길을 따라 흰 줄이 단단히 매여 있다. 몸이 불편한 동화전마을 70~80대 할머니들이 송전탑 공사를 막으려고 산에 오르는 용도다.


이곳, 단장면 고례리에는 밀양 송전탑 건설 사무소가 있다. 움막 맞은편 임시건물에는 ‘765kV 신고리~북경남 송전선로 건설공사(4공구)’라고 쓰인 큼지막한 간판이 눈에 들어온다. 밀양 송전탑 관련 자재를 쌓아두는 창고이기도 하다. 높은 산을 올라야 하는 자재는 헬리콥터가 나른다. 보라마을 사람들은 3년 전부터 사무소 맞은편에 비닐하우스 움막을 짓고, 공사 자재가 들어오는 것을 밤낮으로 막아왔다.

“행정대집행 영장 제1호로 발부한 단장면 고례리의 불법 시설물인 움막 철거에 따른 행정대집행을 개시한다.” 오전 11시, 행정대집행 책임자로 나선 이봉도 밀양시청 재난관리과장이 확성기를 들고, 계고장을 읽어 내려갔다. 마을 주민 10여 명과 통합진보당·민주노총 지역 관계자 20여 명이 움막을 에워쌌다. 경찰과 시청 공무원이 다가오자, 사람들은 비명을 질렀다. “오지 마, 오지 마, 오지 말라카이! 니들 오면 내 죽어삔다!” 움막 입구를 막아선 한 주민이 필사적으로 소리쳤다.

보라마을 사람들에게는 상처가 있다. 지난해 1월 마을 주민 이치우(당시 74살)씨가 송전탑 공사에 반대하며 몸에 휘발유를 뿌리고 분신해 숨을 거뒀기 때문이다. 한전이 이씨 밭에 송전탑을 세우겠다며 굴착기를 가져온 날이었다. 이씨의 죽음으로 밀양 송전탑 공사는 잠시 중단됐다. 그리고 다시 이어졌다. 보라마을 주민 10여 가구는 여전히 벼농사·비닐하우스를 하는 터전에 들어서는 송전탑을 막는 일을 하고 있다. 행정대집행을 시도하던 경찰·시청 공무원이 물러나자 마을 주민 김아무개(83)씨도 지팡이를 내려놓고 마른기침을 했다. “400만원(한전 특별보상금) 별거 아이다. 그기 없이도 잘 살아.” 다른 주민들과 팔짱을 낀 채 움막을 막던 이아무개(69)씨는 10년 전까지만 해도 부산에서 회사원으로 근무했다. “보라마을이 고향인 기라. 고등학교부터는 부산에서 댕겼죠. 회사 정년퇴직하고 쉬라꼬 고향에 돌아왔는데, 송전탑 공사를 한다 카네요. 처음엔 전신주를 세우는 줄 알았다니까요.” 밀양시청과 경찰은 이날 세 차례의 행정대집행을 시도했으나 실패했다.

“전자파가 머리에 쓰는 드라이기 수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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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양에 송전탑이 들어선다는 게 알려진 건, 8년 전이다. 한전은 2005년 8월23일부터 사흘 동안 단장·상동·부북·청도면에서 송전탑 건설 사업설명회를 열었다. 지난 7월 국제앰네스티 한국지부·다산인권센터 등 ‘밀양 송전탑 인권침해조사단’이 펴낸 ‘밀양 765kV 송전탑 인권침해조사단 보고서’에는 “당시 주민들은 단장면 50명, 상동면 38명, 부북면 10명, 청도면 32명이 참여했으며, 이는 송전선로가 통과하는 5개 면 인구(2만1069명)의 0.6%”라고 밝혔다. 보고서에는 당시 설명회에 참석한 주민들의 반응도 언급하고 있다. “주민설명회는 면사무소에 잠깐 나오라고 해서 갔더니 백지에 도장을 찍으라고 했고, 나중에야 설명회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상동면 고정리의 한 주민) “한전은 765kV 전자파가 우리 머리에 쓰는 드라이기 수준이다, 그런 식으로 강조했다.”(상동면 옥산리의 한 주민) 그해 11월 상동면 옥산리 주민들은 밀양 시내의 한전 밀양지점 앞에서 송전탑 사업 반대 집회를 처음 열었다. 그러나 산업자원부는 2007년 11월 한전이 제출한 송전탑 사업을 승인했다.

경남 양산시에서 이어지는 송전선로는 밀양 서북쪽인 단장면 백마산 기슭에서 시작해, 부북면 화악산을 거쳐 경남 창녕군으로 향한다. 밀양의 어깻죽지를 관통하는 공사다. 밀양 지역에만 140m 높이의 송전탑 69기가 세워지고, 39.2km의 송전선로가 깔리는 대규모 공사다. 마을 주민들은 765kV 초고압선이 지나가는 탓에 송전선로를 ‘765’라고 부른다.

“작업 방해허믄 100만원, 헬기 방해허믄 3천만원”

지난 9월30일 단장면 태룡리 용회마을에서 만난 고준길(70)·구미현(65)씨 부부는 마을 사람들과 함께 옆 동네인 구천리 바드리마을 앞에 나가 송전탑 공사 현장을 지킨다. “우리 마을 뒷산에도 송전탑이 들어선대요. 아직 공사가 시작되지 않아서, 우선 바드리마을에 가서 농성을 하고 있죠.”(고준길) 부산에서 교사 생활을 했던 고씨는 6년 전 밀양으로 이사를 왔다.

고씨 부부는 다음날 아침 일찍 부랴부랴 바드리마을 입구로 향했다. 공사 재개를 하루 앞두고 새벽부터 경찰 병력이 89번 송전탑 건설 현장 근처 진입로를 모두 막아섰다는 소식을 들었기 때문이다. 마을 입구에는 트럭과 승용차를 타고 온 주민들이 모여 있었다. “가자! 와 문고(막고) 그러노.” “지금 주민들 하나하나가 폭탄 아닌교!” 고씨도 경찰과 대치하던 중 분을 참지 못하고 정신을 잃었다. 이날 한전에서는 각 지역본부에서 뽑은 3천여 명의 직원을 밀양 송전탑 공사 현장에 배치했다. 또한 경찰이 주민들의 접근을 차단하면서 사실상 공사를 시작했다.

바드리 89번 송전탑 공사장 진입로에서 경찰과 몸싸움을 벌이다 쓰러진 할머니.응급구조대가 병원으로 후송 준비하고 있다./2013.10.2/한겨레 박승화

바드리 89번 송전탑 공사장 진입로에서 경찰과 몸싸움을 벌이다 쓰러진 할머니.응급구조대가 병원으로 후송 준비하고 있다./2013.10.2/한겨레 박승화

단장면 사연리 동화전마을 뒷산에도 95번, 96번 송전탑이 들어선다. 가파른 산길을 따라 흰 줄이 단단히 매여 있다. 동화전마을의 몸이 불편한 70~80대 할머니들이 송전탑 공사를 막으려고 산에 오르는 용도다. 산 중턱에 있는 95번 공사장에는 오래전에 놓아둬 발갛게 녹슨 철골 구조물이 방치돼 있었다. 그 옆에는 파란 지붕의 작은 황톳집이 있다. “겨울에는 추버서(추워서) 살 수 없는 기라. 그래서 작년 가을에 황토 쁘로끄(블록)로 지따.” 동화전마을로 시집와 53년째 살고 있는 김수엄(71)씨도 이날 한전의 공사 소식을 듣고 한시가 급한 콩 수확을 뒤로한 채, 아침 일찍 95번 공사장을 찾았다. “5월에 그리 딱 올라가니께 동장들이 그러는 기라. 작업하는 데 방해허믄 100만원, 헬기 방해허믄 3천만원이라 하는 기라.” 그래도 산에 올라와 있는 마을 주민들 가운데 김씨가 가장 젊다. 물 떠오는 심부름을 도맡고 있다. “내 사는 기 사는 기 아이다. 이 골짜기에 어른 때부터 몇백 년 고향 대대로 사는데. 이(송전탑) 만들어놓으면 땅 한 평 살라코 너무 고생해가메 산 땅 우야노, 내 (우리 땅) 지키라고 시작한 기다. 돈 400만원 준다 카는데 그거 받아다 뭐한답니까.”

평밭마을 주민들이 1일 오후 경남 밀양시 부북면 평밭마을 들머리에서 한전 직원들과 경찰의 진입을 막기 위해 밧줄을 걸고 농성을 하고 있다. 밀양/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평밭마을 주민들이 1일 오후 경남 밀양시 부북면 평밭마을 들머리에서 한전 직원들과 경찰의 진입을 막기 위해 밧줄을 걸고 농성을 하고 있다. 밀양/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허리춤 밧줄을 풀어 카우보이처럼 휘익

이처럼 마을 주민들의 저항이 이어지면서, 자칫 불미스러운 사태가 일어나는 게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상동면 옥산리 여수마을 주민 김영자(57)씨(979호 2013 만인보 ‘송전탑보다 더 싫은 건 내 이웃을 잃는 일이야’ 참조)는 지난 10월1일 126번 송전탑 공사 현장의 좁은 오르막 입구에 주저앉았다. “세상천지에 내 하늘 땅 밑에 이런 나라는 없지 싶습니더. 공사 현장으로 향하는 아침에 경찰들이 올라온다고 하기에 서둘러 혼자 올라왔네예.” 단식농성을 벌였던 김씨는 이틀 만에 상태가 악화돼 구급차로 병원에 후송됐다.


당시 한국전력 직원 30여 명이 주민을 막아서고, 공사장 주변의 벌목을 시도했다. 그러자 할머니들은 오물을 뿌리며 윗옷을 벗는 등 격렬하게 저항했다. 당시 할머니 3명이 구급차에 실려간 뒤에야 경찰과 직원들이 철수했다.


“와 우리 땅, 와 빼똘노(빼앗냐)! 와 우리 땅, 와 빼똘는데!” 김씨 소식을 전해들은 여수마을 주민들이 현장에 모여들었다. 여수마을 주민 김종천(72)씨는 나무를 잘라 만든 지팡이를 흔들며 말했다. “내가 많이 배우지는 못했지만, 주민 소리 좋고 나쁘고를 떠나서, (우리한테) 당신 주장 아니라 카면 우리가 바꿀 텐데, 한마디 말도 없이 가삐니까(공사를 해버리는 게) 말이 되나?”

화악산 500여m에 위치한 127번 공사장은 밀양 송전탑 현장 가운데 유일하게 마을 주민들이 점거하고 있는 곳이다. 주민의 저항이 큰 탓에 한전이 가장 마지막에 공사를 진행할 것이라고 예상되는 곳이다. 부북면 대항리 평밭마을 주민인 10여 명의 할머니들이 이곳에 만들어놓은 움막에서 생활하며 지키고 있다. 커다란 태극기가 꽂힌 움막 입구에는 아예 묫자리를 파두었다. 이곳은 지난 5월22일 경찰과 한전 직원들이 강제 철거를 시도하면서 위험한 상황까지 갔다. 당시 한전 직원 30여 명이 주민을 막아서고 공사장 주변의 벌목을 시도했다. 그러자 할머니들은 오물을 뿌리며 윗옷을 벗는 등 격렬하게 저항했다. 당시 할머니 3명이 구급차에 실려간 뒤에야 경찰과 직원들이 철수했다.

“딸내미가 ‘엄마 경찰 3800명이 온다던데 어떡해’ 카더라. 그래서 내가 ‘야, 1만8천 명이 와도 내는 괘안타 했다.” 주민들이 나누는 대화를 들어보니, 지난 5월의 일을 겪은 뒤 더 단단해진 듯 보였다. 찜통 같은 움막 속 할머니들의 목에는 쇠사슬이 걸려 있었다. 한 할머니가 비닐하우스 뼈대를 움켜쥐었다. 움켜쥔 손목도 뼈처럼 앙상하다. “내 끌어내면 이리 붙잡고 버틸 끼다.”

움막으로 올라가는 길목에는 김사레(85) 할머니가 마대를 깔고 앉아 지키고 있었다. 김씨는 서울에서 살다가 6년 전 평밭마을로 이사를 왔다. “내 여기 들어오기만 허믄 다 혼쭐을 내주려고 여기 있다.” 갑자기 허리춤의 밧줄을 풀어 카우보이처럼 허공에 흔들었다. 그러곤 새를 쫓는 듯한 시늉을 했다. “워어어어이!”

송전탑 건설을 둘러싼 갈등이 8년째 이어지면서 마을 주민들의 고충도 커지고 있다. 가장 직접적인 건, 금전적 문제다. 한전은 송전탑 부지는 감정가로 보상하며, 송전선이 지나가는 바로 밑(선하지)은 폭 34m의 땅만 토지 가격의 약 28%라는 보상률을 적용하고 있다. 그러나 송전탑 건설 사업이 알려진 뒤 보상 대상이 아닌 곳도 땅값이 떨어지면서 생계를 위한 담보대출 등이 어려워지고 있다. “농협에 가 돈 빌리라 카믄 평당 24만원 하던 땅이 4만원으로 주니 어찌 대출을 한단 말입니꺼.”(보라마을 주민 이아무개씨)

한전이 마을마다 돈을 통한 개별 보상에 나서면서, 마을 공동체 사이에서도 보상 문제로 갈등을 빚고 있다. 지난 9월11일 정홍원 국무총리가 밀양을 방문해 공개한 보상안을 보면, 30개 마을 1800여 가구에 지역특수보상비 185억원을 지급한다. 이 가운데 60%인 111억원은 마을별 공동사업에 사용하며, 나머지 40%(74억원)는 각 가정에 평균 400만원씩 현금으로 지급하기로 했다. 산업통상자원부가 파악한 내용을 보면, 송전선로가 지나가는 5개 면 30개 마을 가운데 공사에 합의한 마을은 6곳뿐이다.


“딸내미가 ‘엄마 경찰 3800명이 온다던데 어떡해’ 카더라. 그래서 내가 ‘야, 1만8천 명이 와도 내는 괘안타 해따.” 주민들은 지난 5월의 일을 겪은 뒤 더 단단해진 듯 보였다.


한전의 공사 재개 선언으로 시작된 경찰과 주민 사이의 대치는 한동안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지난 10월3일에는 농성 중이던 시민단체 활동가 11명이 경찰에 연행되는 등 일촉즉발의 상황이 이어지고 있다. 주민들의 단식농성도 이어지고 있다. 밀양송전탑 반대대책위원회는 10월4일 일부 주민들이 농성하고 있는 공사 현장의 주민 통행을 허용하고 의료진 출입, 음식물 반입, 노숙용 비가림막 설치를 허용해달라는 내용을 담은 긴급구제신청을 국가인권위원회에 제출했다. 언제 시작할지 모르는 송전탑 공사를 앞두고 주민들은 보이지 않는 공포와 스트레스에도 시달리고 있는 것이다. 평밭마을 주민 이남우(71)씨도 그렇다. “마을 사람들이 대부분 ‘외상 후 스트레스성 장애’가 있다 카데요. 우리도 몰랐는데…. 나도 막 자다가 ‘아아악’ 욕을 하면서 깨고 그랍니더. 별일 아닌데도 버럭 화를 내기도 하고요.”

프로펠러의 거친 소음 들리고

한전은 지난 10월1일 호소문에서 “한전 직원들이 주민들을 꾸준히 만나고 대화 노력을 해왔다”고 강조했다. 실제로 지난 8년 동안 국민권익위원회·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국회 등이 중재에 나서 한전과 주민들 사이에 갈등조정위원회, 보상제도개선추진위원회, 전문가협의체 등이 운영됐다. 그러나 중재 기구가 운영된 횟수가 무색하게 한전은 기존 공사 계획에서 좀처럼 양보를 하지 않았다. 밀양 송전탑 사태가 국책사업 추진 역사에 뼈아픈 실책 가운데 하나로 남을 가능성이 높아진 것도 이 때문이다. 정 총리는 지난 10월3일 개천절 행사에서 “지금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대화와 타협, 배려와 소통으로 우리 사회를 통합된 선진 공동체로 만드는 것”이라는 말을 남겼다. 그러나 같은 시간, 밀양 하늘에는 송전탑 자재를 매단 채 헬리콥터가 분주히 움직이고 있었다. 프로펠러의 거친 소음이 밀양의 오랜 싸움으로 지친 주민들의 상처를 다시 후비고 있다.

밀양=글 김성환 기자 hwany@hani.co.kr·사진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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