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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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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전의 먼 나라 이야기

신고리 3호기는 전력 생산량 1.6%에 불과한데 전력난 강조… 시험성적서
위조돼 가동 못하는 사정인데도, UAE 원전 사업 스케줄 맞춰 사업 강행해
등록 2013-10-09 17:14 수정 2020-05-03 04:27

“신고리 3·4호기 준공에 대비하고 내년 여름 이후 전력 수급의 안정을 위해, 10월2일부터 밀양 송전선로 공사를 재개하고자 합니다. 올여름과 같은 전력난이 또다시 되풀이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이제는 더 이상 공사를 늦출 수 없는 시점에 봉착했다는 점을 말씀드립니다.”


“신고리 원전 3호기는 UAE 원전의 레퍼런스 플랜트(참조용 발전소)다. 2015년까지 가동이 안 되면 페널티를 물도록 계약돼 있다.” -변준연 전 한전 해외담당 부사장

조환익 한국전력 사장이 지난 10월1일 서울 삼성동 한전 본사에서 굳은 표정으로 대국민 호소문을 읽어 내려갔다. 지난 5월 말 이후 멈췄던 경남 밀양 단장·산외·상동·부북 등 4개 면 구간의 송전탑 공사를 다시 시작하는 순간이었다. 조 사장은 밀양 주민들이 요구했던 우회 송전과 송전선로 지중화에 대해 “국회에서 전문가협의체를 구성했고, 그 결과 9명 위원 중 6 대 3의 다수결로 우회송전과 지중화가 어렵다는 압도적 결론이 나왔다”며 기존 입장을 반복했다. 더 이상 타협의 가능성이 없다는 것이다.

핵발전소 10기 멈춰도 블랙아웃 없었던 여름

그러나 한전이 내놓은 ‘절박한 공사 강행 이유’는 여전히 사회적 공감대를 형성하지 못하고 있다. 한전이 주장하는 가장 대표적인 근거는 ‘전력난 해결’이다. 밀양 송전선로는 일반적인 345kV 송전선로보다 4.7배 많은 전기를 보내는 이른바 ‘초고압 송전선로’다. 부산 기장군 신고리 3·4호기 핵발전소에서 만든 전기를 경남 창녕군의 북경남변전소까지 잇는다. 이에 대해 하승수 녹색당 공동운영위원장(변호사)은 “신고리 3호기에서 생산되는 전기는 영남권 수요 관리 등으로 충분히 해결할 수 있는 수준”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신고리 3·4호기의 전력 생산량은 각각 시간당 140만kW로 전체 설비 용량(8551만6천kW)의 1.6% 수준이라고 한다. 게다가 지난여름 핵발전소 10기가 멈춘 가운데 수요 조절 등으로 블랙아웃(대정전)이 없었던 것을 보면, 밀양 송전선로가 전력난의 직접적인 원인이라고 설명하기는 힘들다는 것이다.

국가정보원이 주도한 ‘이석기 내란음모 사태’ 발생 뒤인 9 월12일 대전 대덕구 통합진보당 대전시당사 앞에서 보수 단체 관계자들이 인공기와 통합진보당기가 함께 인쇄된 현수막을 불태우고 있다(왼쪽). 국정원 직원이 집필한 반 대세의 비밀, 그 일그러진 초상.

국가정보원이 주도한 ‘이석기 내란음모 사태’ 발생 뒤인 9 월12일 대전 대덕구 통합진보당 대전시당사 앞에서 보수 단체 관계자들이 인공기와 통합진보당기가 함께 인쇄된 현수막을 불태우고 있다(왼쪽). 국정원 직원이 집필한 반 대세의 비밀, 그 일그러진 초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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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전 등이 내놓는 밀양 송전탑 공사 강행의 또 다른 이유로는 한전 컨소시엄이 아랍에미리트(UAE)에 짓고 있는 핵발전소 사업이 있다. 변준연 전 한전 해외담당 부사장은 지난 5월23일 기자들과 만나 “밀양 지역은 터가 세고 (공사 반대 쪽에는) 천주교·반핵단체가 개입돼 있다”고 말해 논란을 일으킨 바 있다. 당시 변 전 부사장은 “신고리 원전 3호기는 UAE 원전의 레퍼런스 플랜트(참조용 발전소)다. 2015년까지 가동이 안 되면 페널티를 물도록 계약돼 있다”며 밀양 송전탑 공사가 UAE 원전 수출과 관련 있다는 발언도 했다. 그 다음날 발언이 문제가 되자, 변 전 부사장은 사표를 냈다.

현재 신고리 3·4호기는 지난 6월 전력·제어·계측케이블의 시험성적서 위조 사실이 드러나 완공을 하고도 가동을 못하고 있다. 김제남 정의당 의원실은 “신고리 3호기의 상업 운전을 2013년 9월에 한다고 명시돼 있으며, 2년의 유예기간을 두고 2015년 9월까지 상업 운전을 하지 못할 경우 공사비의 0.25%의 지체보상금을 물도록 하는 내용이 계약서에 명시돼 있다”고 설명했다. 신고리 3·4호기와 UAE 핵발전소에는 한 번도 상업 운전을 한 적이 없는 ‘한국형 가압경수로’(APR1400)를 쓴다. 그런 탓에 UAE가 신고리 3호기의 상업 운전을 통해 전반적인 핵발전소 운영 품질을 확인하겠다는 뜻이다.

재검증 불합격하면 2015년으로 연기 불가피

최근 임명된 조석 한국수력원자력(한수원) 사장도 이 사실을 숨기지 않았다. 그는 10월2일 취임 직후 기자간담회에서 “밀양 송전탑 공사가 내년 2월 이전까지 끝나지 않으면 내년 8월 준공될 신고리 3호기의 시운전조차 할 수 없다”고 말했다. 아직 넘어야 할 산이 많은 신고리 3호기의 가동을 기정사실로 받아들이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조경태 민주당 의원실에 따르면, 현재 원자력안전위원회가 신고리 3·4호기의 전력·제어·계측케이블의 시험성적서 위조와 별개로 일부 케이블에서 열노화·방사선 처리를 하지 않은 시제품이 사용된 사실을 추가로 확인했다. 현재 한수원이 이 부품의 재검증 시험을 한국기계연구원에 의뢰한 상태이며 그 결과는 11월 말에 나온다. 조 의원은 “재검증에 불합격하면 신고리 3호기 가동은 적어도 2015년 이후로 미뤄지는 게 불가피하기 때문에, 밀양 송전탑 공사를 강행하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석연치 않은 이유를 뒤로한 채, 한전의 밀양 송전탑 공사 삽질은 시작됐다.

김성환 기자 hwany@hani.co.kr
새만금·부안·강정…
삽질부터 하고 보는 국책사업
경남 밀양 송전탑 사태에는 강한 ‘기시감’이 있다. 정부가 지역 주민과 갈등을 빚다 파국으로 치달았던 과거 국책사업과 그 모습이 닮았기 때문이다.
국책사업을 둘러싸고 격렬한 갈등이 벌어진 대표적인 사건은 2003년 ‘부안 방폐장 사태’다. 갈등의 시작은 정부가 방사성폐기물 처분장 부지 마련에 난항을 겪는 가운데, 김종규 전북 부안군수가 지역 주민들의 의견을 반영하지 않고 처분장 유치 신청서를 내면서부터다. 당시 1만 명이 넘는 시민이 격렬하게 반대집회를 했고 고건 국무총리가 나섰지만 중재에 실패했다. 6개월 넘게 이어진 부안 사태로 지역 공동체는 방폐장 유치 찬반으로 나뉘게 됐고, 2004년 열린 주민투표에서 투표자 91.83%가 유치를 반대하면서 마무리가 됐다. 주민 동의를 무시한 사업 추진의 대가는 혹독했다.
1991년부터 시작된 새만금 사업도 마찬가지였다. 전북 군산~부안을 연결하는 33.9km의 방조제를 축조해 대규모 간척지를 만들던 이 사업에 대해 환경단체 등은 수질 악화, 마을 공동체 파괴 등을 지적했다. 사회적 논란이 커지고 나서야 정부는 1999년 뒤늦게 환경 관련 민관공동조사를 추진했다. 2003년 법원이 방조제 공사 중지 결정을 내려 두 차례나 공사가 중단됐다. 2006년 3월 환경단체와 전북 지역 주민들이 낸 ‘새만금 사업’ 계획 취소 청구소송이 대법원에서 패소하면서 15년 만에 사업이 다시 진행됐다.
국방부가 2007년부터 시작한 제주 강정마을 해군기지 건설 사업은 현재까지 기지 건설 반대운동이 벌어지고 있다. 당시 국방부는 제주도가 실시한 여론조사를 근거로 공사를 시작했다. 그러나 기지가 들어서는 강정마을 주민투표에서는 전체 주민의 70% 이상이 건설에 반대하는 상황이었다. 그럼에도 ‘안보와 관련한 국책사업’ 이라는 이유로 공사는 계속 진행됐다 .
사회적으로 큰 갈등을 빚은 국책사업의 공통적인 특징은 사업 초기부터 지역 주민의 참여가 배제됐다는 점이다. ‘정부 주도의 사업 추진 → 지역 주민의 반발 → 무리한 사업 강행 → 뒤늦은 지역 의견 수렴’식의 과정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부안 방폐장 사태를 겪은 뒤 국책사업을 추진하는 공공기관장이 갈등 영향분석을 하는 내용 등을 담은 ‘공공기관의 갈등 관리에 관한 법률안’ 도 발의됐지만, 국회에서 통과되지 않았다. 윤상직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지난 6월 “밀양 주민들의 불만과 우려 등 갈등 문제를 사전에 해결하기 위해 ‘갈등조정협의회’를 구성하는 방안을 구상하고 있다”고 밝혔지만, 실천에 옮기지 않았다. 그사이 밀양 송전탑을 둘러싼 갈등의 골이 더 깊숙이 파였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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