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오래전, 진보정당 운동에 대한 기대와 지지를 가득 안고 민주노동당 당원이 되었다. 10년의 세월 동안 당의 모습이 마음에 들지 않을 때는 셀 수도 없을 만큼 많았고, 이제 그만 ‘탈당’해야겠다는 마음도 한 해에 서너 번씩은 먹었다. 그러나 당이 둘로 쪼개져 서로 비난의 화살을 날리고, 그 핑계로 이른바 ‘진보 진영’이라고 불리는 사람들이 원수처럼 갈라지는 때에 당을 떠난다는 것은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았다.
일정액의 당비를 내고 마음으로 응원하는 것이 당원으로서 했던 일의 전부지만 진보정당 ‘운동’은 포기할 수 없는 중요한 일이라 믿었다. 당을 떠나더라도 ‘대한민국 헌법’에서 강조하고 있음에도 진정으로 바라는 정치세력이 있는지 의심이 들 지경인 ‘한반도 통일’을 우선 과제로 삼는 정당 하나쯤 필요하다는 생각은 변치 않았을 것이다.
TV와 신문,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와 인터넷, 만나는 사람들과 만나지 못하는 사람들 모두 지치지 않는 에너지로 ‘이석기’와 ‘RO 녹취록’을 이야기한다. 많은 이들이 황당하고 짜증 난다고 말한다. 지식인이라는 분들이 ‘정치적 발달장애’라거나 ‘시대의 지진아’라는 등 인권 감수성이 결여된 언어까지 동원하며 원색적인 비난을 이어가기도 한다. 같은 당의 이름으로 총선을 치른 사람들이 “이럴 줄은 몰랐다”며, “국민은 헌법 밖의 진보를 절대 용납하지 않을 것”이라는 비겁한 말을 내뱉으며 장벽 치기에 바쁘다.
국정원 불법 대선 개입 정국을 맞아 천막까지 치고 장외투쟁에 나섰으면서도 ‘대선 불복’이냐는 여당의 질문에 “그건 아니다”라며 발뺌하기 바빴던 제1야당은, 이번에도 ‘야권 연대’에 책임이 있다는 여당의 주장이 나오자마자 국회 본회의 이석기 의원 체포동의안 처리를 서두르며 자유투표도 아닌 찬성당론을 밀어붙였다. 보수 언론의 무시무시한 기사들은 물론이고, 진보 언론도 정확하게 확인되지도 않은 엄청난 정보와 의견을 쏟아내며 여론재판에 동참하고 있으니 참으로 답답할 뿐이다.
국정원 개혁에 대한 국민의 요구가 최고조인 절묘한 시기에 국정원이 전략적으로 이 사건을 터뜨렸다는 의심을 거둔다고 해도, 국정원 또는 국정원의 정부가 바라는 것은 이미 성취되었다. 벌써 내란 음모 혐의에 대해 법원에서 무죄가 나온다고 하더라도 국가보안법 위반 유죄는 틀림없을 것이기 때문에 지금의 소란은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뉘앙스의 말들이 흘러나오고 있다.
‘간첩’이나 ‘국가보안법’이 아닌 ‘내란 음모’라는 단어를 선택하면서 국정원은 이미 승기를 잡았고 상대역 ‘이석기’와 함께 정국의 주인공으로 우뚝 섰다. 국정원은 실력 행사에 성공했고 진보 진영은 그 실력이 드러나고야 말았다. 원인이 무엇이라고 해도 오랫동안 기다려온 국정원 개혁의 결정적 시기에 찬물을 끼얹게 된 상황을 초래한 ‘이석기’와 ‘통합진보당’은 국민의 매서운 책임 추궁을 면할 생각을 해서는 안 될 것이다.
이미 공은 법원으로 넘어갔고 실정법에 의한 재판 과정과 그 결과를 지켜보는 것 외에는 남은 일이 없다. 많은 이들이 진실이 궁금하겠지만 법원의 판단이 모두 진실일 수 없다는 것은 이미 전세계 사법부의 역사가 증명해주었다. 같은 시간, 같은 공간에 있었다는 사람들의 증언이 상반되고 있으니, 이제 그 실체적 진실에 다가가는 일은 불가능해진 것이 아닐까?
적용된 혐의에서 내란 음모나 내란 선동은 지금 공개된 증거만으로는 성립되기 어렵다는 많은 전문가들의 의견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인권운동 진영과 국제사회에서 끊임없이 주장해온 국가보안법 폐지를 변함없는 원칙으로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라면 이석기 의원 등의 구속은 부당한 일이라고 주장해야 하는데 그런 목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혼란스러운 척하며 머뭇거리고 있는 내 자신도 발견한다. 국가보안법이 적용되어도 마땅한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으로 구분짓자는 것은 아닐 것인데. 돌의 크기나 모양이 다를지는 몰라도 우리는 모두 돌을 던지고 있는 것은 아닐까? 어디를 향해, 누구를 위하여 돌을 던지고 있는가?
김덕진 천주교인권위원회 사무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