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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승화
정부가 발표한 ‘2013년 세법개정안’에 찬성하는 목소리는 찾아보기 힘들다. 그렇다고 반대가 한목소리도 아니다. 각론은 각양각색이다. 근로소득세를 부과할 때 적용하던 소득공제의 일부를 세액공제로 바꾸는 것부터 대기업 법인세의 실효세율을 끌어올리지 않은 것까지 곳곳에서 다시 찬반 의견이 엇갈린다. 반대 이유가 다르니까 해법도 극명하게 나뉜다. 오건호 ‘내가만드는복지국가’ 공동운영위원장은 ‘증세 없는 복지 확대’는 불가능하다며 ‘복지 증세’를 내세웠다. “복지국가로 가려면 결국엔 누진적인 보편 증세로 가야 한다. 능력에 따라 다 세금을 내자는 것이다. 원포인트로 목적세인 ‘사회복지세’를 신설하자.” 반대로 홍기용 한국납세자연합회 회장(인천대 경영학과 교수)은 “증세는 시기상조”라고 못박았다. “가까운 병원을 가도 현금과 신용카드 결제액이 다르다. 세금 탈루하려는 거 아니냐. 증세를 하려면 먼저 세금을 탈루할 수 없는 투명한 사회가 돼야 한다. 지하경제 양성화가 앞순위다.” 같은 질문, 양쪽의 다른 답변을 정리했다.
오건호(이하 오): 친기업적인 조세정책을 고수했다. 얼마 전 박근혜 대통령이 “투자하는 분들은 업고 다녀야 한다”고 말하자, 현오석 경제부총리가 기업인을 직접 업는 ‘어부바’ 퍼포먼스를 벌인 것과 맞아떨어지는 세법개정안이다. 일단 대기업 과세 방안이 취약하다. 대기업에 혜택이 집중된다고 비판받아온 핵심 제도인 비과세 감면은 그대로 유지됐고, 중소기업 일감 몰아주기 과세를 완화해 ‘편법 증여에 대한 과세 원칙’도 훼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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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기용(이하 홍): 원점에서 다시 검토해야 한다. 증세를 하려면 먼저 세금을 탈루할 수 없는 투명한 사회가 돼야 한다. 소득자 간 형평성을 훼손하는 조세제도와 지하경제 등도 없애야 한다. 이자·배당소득 등 금융소득이나 부동산 임대소득 등에 대한 세금 책임을 강화하는 게 앞순위 정책이다. 그 뒤에야 근로소득자 등 투명한 납세자가 증세를 받아들일 수 있다. 형평성이 어긋나는 조세 환경은 그대로 놔둔 채 세원이 투명한 근로소득자에게 먼저 세금을 더 내라고 요구했으니 문제다.
오: 이번 세법개정안에서 전향적 조처로 평가할 만한 게 소득세 개편 중 세액공제로의 전환이다. 이러한 조처는 다수 중·하위 계층에게 세금 감면을 늘리고 상위 계층에게 세금 책임을 강화하는 일이다. 즉, 소득이 높을수록 세금이 증가하는 누진적 증세다. 민주당의 어이없는 ‘세금폭탄론’으로 3450만원에서 5500만원 선으로 완화되고, 5500만~7천만원 구간은 세 부담이 크게 줄기는 했다. 그러나 어쨌거나 이번 논란으로 국민이 증세 논의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긍정적이라고 생각한다. 세금과 복지를 함께 인식하고 미래지향적 논의를 계속하면 앞으로 2~3년 안에는 진정한 복지국가로 가는 터닝포인트를 마련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홍: 세액공제 개편으로 의료비·교육비·보험료 등 필수 경비를 많이 지출하는 중산층의 세 부담이 상대적으로 급증하게 됐다. 이러한 필요 경비를 지출하지 않는 근로자는 연봉이 10억원이 넘어도 이번 세제개편으로 세 부담이 늘지 않는다. 근로소득자 간 조세형평에 어긋나는 셈이다. 사실 근로자는 종업원일 뿐이다. 지금 1억원의 연봉을 받는 50대 임원이라도 3~4년 지나면 실업자가 된다. 그래서 고소득 근로자는 금융·부동산 재산가와 다르게 취급해야 한다. 미국·일본·독일·싱가포르·대만 등 다른 나라에서도 소득공제를 활용하는 이유다. 세액공제 개편은 원점으로 되돌려야 한다.
오: 민주당의 주장대로 ‘세금폭탄’ 수준이어서 직장인들이 분노한 게 아니다. 조세 형평성이 떨어지는 데 열받은 거다. 사회의 부가 집중돼온 부자와 대기업에는 왜 제대로 세금을 물리지 않느냐는 분노다. 만약 과세 불평등이 완화되고, 내가 추가 부담한 세금으로 누릴 수 있는 복지 혜택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한 시간이 있다고 하자. 그러면 아마 중간 계층도 세 부담을 받아들일 거다. 그 순간, 복지국가로 가는 엄청난 에너지가 만들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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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 이유는 두 가지다. 첫째, 중산층의 아픔을 정부가 이해하지 못한다. 정부가 복지를 확대한다고 하는데, 내가 복지 대상이라고 부르짖을 만큼 중산층의 삶이 힘겹다. 두 번째는 왜 근로자만 갖고 그러느냐는 불만이다. 근로소득자에겐 지하경제라는 게 없다. 한마디로 투명한 지갑이다. 하지만 근로소득자가 보는 세상에는 지하경제가 넘쳐난다. 가까운 병원을 가도 현금과 신용카드 결제액이 다르다. 세금 탈루하려는 거 아니냐. 이러한 지하경제를 양성화하는 게 급선무다.
오: ‘세금’이라는 뜨거운 감자를 피해갈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결국 자신의 복지 공약을 임의로 수정하는 ‘불신의 정치’ 늪에 빠져들고 있다. 시대적 물결인 보편 복지 확대에 역행하면서 세금을 더 내야 할 상위 계층과 대기업을 엄호해주는 것이다. 이번에 발표된 세법개정안도 그러하다. 조세부담률 목표를 2012년 20.2%에서 2017년 21%로 잡았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평균은 2010년 기준 25%다.) 빈약한 현재 조세 수준을 유지하겠다는 선언이다. 이런 소극적인 조세정책으로는 국민이 염원하는 복지국가를 향한 재정을 마련할 수 없다.
홍: 불가능하다. 이번 세제개편안으로도 사실상 증세가 됐지만 정부는 이조차 인정하지 않는다. 지금은 대통령 공약에서 제시한 복지 지출 규모와 범위, 속도를 재검토해야 할 때다. 복지 공약을 완전한 ‘상수’로 보고 더 이상 고칠 수 없다고 고집하면 내내 힘들어진다. 이제는 실행 가능성 차원에서 복지 확대가 적정한지 정부가 치밀하게 분석해야 한다. 그다음 복지 지출에 대응하는 세입 분석이 필요하다. 세율과 세목을 변경해 증세할지, 지하경제 양성화나 비과세 감면 축소라는 공약을 지킬지 결정해야 한다. 소득세·부가가치세·법인세 등에서 우선순위를 어디에 두고 어느 세목을 건드릴지도 정해야 한다.
오: 법인세는 기업의 경쟁력과도 밀접해서 (정부가 증세 요구를) 받아들이기도 어려울 것이다. 다만 현재 대기업에 특혜성으로 주어지는 각종 공제를 들어내야 한다는 데는 찬성한다. 올해 연구·개발(R&D) 세액공제에 2조7천억원, 고용창출투자 세액공제에 1조7천억원이 각각 들어간다. 이 중 60~80%가 대기업에 돌아간다. 이번 세법개정안에서 대기업에 대한 일부 혜택을 줄이기로 했지만 아직 부족하다. 이 두 가지 혜택만 전부 없애도 4조4천억원의 세수가 생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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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명진
홍: 예를 들어보자. 삼성전자는 2012년에 세금을 1조6900억원 냈다. 그런데 올해는 3조3800억원 냈다. 딱 2배로 늘어났다. 이명박 정부가 법인세 내렸다고 비판하지만 세율을 줄여도 기업이 장사를 잘하면 세수는 늘어난다. 법인은 가능한 한 돈을 잘 벌게 놔두는 게 좋다. 대기업이든 중소기업이든 차이가 없다. 대기업에 중과세하는 것, 신중해야 한다. 다만 고소득자·대자산가는 다른 문제다. 정치인들이 한데 묶어서 얘기하는 경향이 있는데 법인과 대자산가는 다르다.
오: 박근혜 정부가 강조하는 재정지출 개혁, 비과세 감면 축소, 지하경제 양성화 등 기존 재정·조세 체계를 개혁하는 작업은 중요하다고 본다. 철저하고 근본적으로 진행돼야 한다. 아직 우리나라에서는 조세 정의에 대한 불신이 크고, 재정지출도 엉성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재정 개혁 논의를 여기에만 묶어둬서는 안 된다. 이미 보편 복지에 대한 요구가 높다. 이젠 복지국가를 논의하려면 증세 논의를 피할 수 없는 상황이다.
지금은 증세 논의와 관련해 여러 대안이 나온다. 민주당은 이명박 정부의 감세정책 철회, 다시 말해 ‘부자 증세’를 들고나온다. 그러나 상위 1%에만 징벌적으로 세금을 내라고 해서는 복지국가 원리에도 맞지 않고 세수도 적다. 복지국가로 가려면 결국 누진적인 보편 증세로 가야 한다. 능력에 따라 다 세금을 내자는 것이다. 그렇다고 법인세·소득세 등 세목별로 증세를 하면 전선도 너무 복잡해져서 (보수와 진보 간) 싸움을 하기도 어렵고, 국민에게 (증세를) 설명하기 힘들다. 그러나 원포인트로 목적세인 ‘사회복지세’를 신설하는 게 맞다.
홍: 증세 등 세입 수준은 납세자의 수용성이 먼저 중요하다. 납세자가 받아들이지 않으면 될 수 없다. 그런데도 정치인은 선거철이 되면 세출을 선언해버리고 세금 등 세수에 대해선 언급하지 않았다. 앞으로는 약속한 세출을 위해 어떻게 세수를 확보할지 ‘세수확보 계획서’를 제출하고, 국민이 이를 검증해야 한다. 증세의 필요성이 생긴다면 소득세·부가가치세·법인세의 순으로 개편이 이뤄져야 한다. 소득세라고 해도, 금융소득·사업소득·근로소득으로 구분해 이 중 무엇을 먼저 거론할지 정해야 한다. 그러나 현시점에선 지하경제 등도 제대로 양성화되지 않았고, 소득자 간 불균형도 있으므로 증세 얘기를 꺼내는 것은 이르다.
복지 증대는 능사가 아니다. 납세자의 조세 순응과 세수 상황에 맞춰 복지 지출을 조정할 필요가 있다. 세수를 확보하지 않은 복지는 오래가지도 않고 실행할 수도 없다. 사회복지세를 만들자는 것도 신중해야 한다. 사회복지세라는 목적세가 있으면, 확보된 세수는 반드시 복지에 지출해 좋은 점도 있지만, 비탄력성이라는 제약도 따른다.
오: 기본적인 증세 원칙은 ‘소득별 복지 증세’다. 구체적인 원칙은 네 가지다. ‘복지 증세’다. 재정지출에 대한 국민적 불신을 감안할 때 세입과 복지 지출을 결합하는 복지 증세가 필요하다. 그다음이 ‘누진 증세’다. 상위 계층과 대기업에 더 많은 재정 책임을 적용한다. 그리고 ‘보편 증세’다. 가능한 한 많은 사람이 증세에 참여하도록 한다. 마지막으로 ‘단일 증세’다. 국민이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단일 세율을 적용한다. 이 모든 원칙을 충족하는 게 사회복지세다. 이런 사회복지세를 걷을 수만 있다면 지금껏 국민에게 행하는 ‘착취’의 상징이었던 세금이 함께 잘사는 국가를 이루기 위한 연대와 협력의 씨앗이 될 수 있을 것이다.
홍: 세금이 많으면 정부의 통제가 커진다. 복지가 늘어날수록 개인의 자유는 줄어든다. 이렇게 납세자를 옥죄어서는 안 된다. 자유롭게 능력을 발휘해 돈을 벌 수 있도록 보장해야 한다. 근본적으로 세수 확보는 증세가 아니라 경제 활성화에 달려 있다. 경제가 잘 돌아가면 소득세와 법인세가 저절로 많아진다. 특히 우리나라 소득세는 금융소득·사업소득·근로소득 등 상호 간의 균형이 필요하다. 금융소득의 경우 주식과 파생상품 등의 양도차익에 대해선 비과세가 되고, 다른 나라에 비해서도 세율이 낮은 편이다. 불로소득이라는 점에서 근로소득에 비해 세수 비중을 더 높이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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