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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곗바늘을 한 달만 되돌려보자. 7월8일 청와대 수석비서관회의에서 박근혜 대통령이 한 발언이다.
“대선이 끝난 지 6개월이 지났습니다. 그런데도 대선 과정에서 문제가 됐던 국정원 댓글과 북방한계선(NLL) 관련 의혹으로 여전히 혼란과 반목을 거듭하고 있어서 유감입니다. 국정원 댓글 의혹은 왜 그런 일이 벌어졌고, 실체가 과연 어떤 것인지에 대해 정확하게 밝힐 필요가 있습니다. 여야가 국정조사를 시작한 만큼 관련된 의혹들에 대해서 철저히 조사한 후에 재발하지 않도록 노력해야 하고, 그 이후에는 더 이상의 소모적인 논쟁을 그치고 국민들을 위한 민생에 앞장서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셀프 개혁과 새누리당의 사보타주
한 달 전, 박근혜 대통령은 국가정보원 선거 개입 사건에 대해 국회 국정조사를 통한 진상 규명을 정치권에 주문했다. 국정원에는 “개혁에 박차를 가하고 개혁안을 스스로 마련해주기를 바란다”는 이른바 ‘셀프 개혁’을 요구했다. NLL에 대해 “우리 젊은이들이 목숨을 걸고 지켜온 생명선”이라며 “정치권에서 국민들에게 NLL 수호 의지를 분명하게 해서 더 이상의 논쟁과 분열을 막아야 한다”고 한 것도 이날이었다.
그러나 이후 한 달 동안 달라진 건 거의 없다. 국회 국정조사에서 새누리당은 야당 소속 위원들의 ‘부적절성’을 주장하고 증인·참고인 채택과 관련해 시비를 걸며 사실상 ‘사보타주’(태업)를 벌였다. 심지어 ‘너무 덥다’는 이유로 국정조사를 내팽개치고 휴가를 떠나기도 했다. 급기야 야당이 장외로 뛰쳐나가 서울광장에 천막을 쳐놓고 정부·여당에 대한 비판을 쏟아내는 초강수를 두자, 여당은 황급히 야당과 마주 앉아 국정조사 정상화를 다짐했다. 하지만 결과는 두고 봐야 할 일이다. 애초 국정조사는 여야 합의로 시작했지만 파행의 소용돌이에 빠지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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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LL 포기 발언’ 논란은, 국정원이 공개한 대화록을 근거로 노무현 전 대통령이 포기 발언을 한 적이 없었던 것으로 나타나면서 정리가 되는가 싶었다. 그러나 새누리당은 ‘사실상 포기 발언으로 볼 수 있다’며 국가기록원에서 잠자(고 있다고 여겨졌)던 원본을 끄집어내자고 했다. 여야는 본회의에서 이를 의결하고 국가기록원으로 ‘출동’까지 했으나, 결국 대화록을 찾지 못해 ‘대화록 실종’이란 새로운 사건을 만들어냈다. 대화록을 유출해 대선 과정에서 불법적으로 활용한 의혹에 대한 책임론은 온데간데없이, 새누리당은 “NLL과 관련해서는 일체 정쟁하지 않겠다”는 일방적인 선언을 내놨다.
상황이 바뀌지 않으니, 새누리당과 그 배후로 지목된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책임론도 잦아들지 않았다. 박 대통령이 ‘입장을 내놔야 한다’는 목소리도 계속 터져나왔다. 분노한 시민들은 주말마다 서울광장을 비롯한 전국 각지에서 촛불집회를 열었고, 학계와 종교계·노동계·여성계·대학생 등 각계각층에서 시국선언이 잇따랐다. 박 대통령은 이런 상황에서 애초 예정했던 대로 7월29일부터 닷새간 휴가를 떠났다. 그러나 휴가 도중에도 제1야당인 민주당의 김한길 대표가 여야 영수회담을 제안하는 등 정국은 그의 이름을 계속 불렀다. 휴가에서 돌아온 박 대통령이 단행한 청와대 참모진 교체 등 일련의 조처는 이런 상황에 대한 ‘나름의’ 답변이다. 한 달 전 발언이 ‘1차 답변’이었다면, 이번은 ‘2차 답변’이라고 할 수 있다.
야당 대표는 마주 앉을 만하지 않다?
우선, 박 대통령에게선 비판에 아랑곳 않는 태도가 거듭 확인됐다. 박 대통령이 새로 청와대 비서실장에 임명한 김기춘(74) 실장은 대표적 관권선거 사건인 ‘초원복집’ 사건의 주인공이다. 1992년 대선 직전 부산 지역 기관장들이 모여서 김영삼 후보의 승리를 위해 지역감정을 불러일으켜야 한다고 모의했던 사건으로, 김 실장은 이날 모임의 주선자였다. 지난해 대선에 국정원이 개입했다는 또 다른 관권 선거 사건이 불거진 상황에서, 김 실장이 다시 등장한 건 무슨 복선일까. 당시 초원복집 사건은 보수 진영의 전폭적인 지원 속에 ‘도청사건’으로 둔갑했고, 이번 국정원 사건 또한 보수 진영으로부터 ‘국정원 여직원 인권유린 사건’이란 엉뚱한 프레임이 씌워진 상태다. 김 실장 본인부터가 1970년대 국정원의 전신인 중앙정보부 수사국장까지 지낸 인물이기도 하다.
게다가 김 실장은 유신헌법의 초안 작업에 참여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박 대통령은 대선을 앞둔 지난해 9월 아버지 박정희 대통령 시절의 어두운 과거에 대해 사과한 바 있다. 당시 그는 “5·16, 유신, 인혁당 사건 등은 헌법 가치가 훼손되고 대한민국의 정치 발전을 지연시키는 결과를 가져왔다고 생각한다. 이로 인해 상처와 피해를 입은 분들과 그 가족들에게 다시 한번 진심으로 사과드린다”고 했다. 그러나 그때의 결심이 지금에 와선 표변한 양, 박 대통령은 유신헌법을 만든 인물을 현직으로 데려와 ‘복권’을 시킨 셈이다. 시사평론가 유창선씨는 “박 대통령과 아버지 박정희 전 대통령의 연결고리는, 비판하는 사람들이 엮어서 형성되는 게 아니라, 박 대통령 본인이 고집해서 끌고 가고 있다. 김기춘 실장 임명은 이런 고집스러운 태도가 반영된 것”이라고 평가했다. 청와대는 인선 배경으로 “탁월한 경륜과 역량” “종합적인 균형감각” 등을 언급했지만, 김 실장의 전력 탓에 되레 상당한 부담을 떠안게 됐다.
‘반대 진영’과의 소통에 손을 내젓다보면, 야당을 대하는 태도도 마찬가지가 된다. 김한길 민주당 대표가 제안한 여야 영수회담에 대해, 청와대는 즉각 반응하지 않고 시간을 두고 대응했다. 초기에는 ‘영수회담’이라는 표현조차 쓰기를 피하면서 거부감을 드러냈다. 새누리당 내에서의 지위상, 박 대통령은 영수(대표)가 아니라 일개 당원일 뿐이라는 논리도 등장했다. 그러면서 청와대는 대통령과 새누리·민주 양당의 대표 및 원내대표가 모두 참석하는 ‘5자회담’을 역제안했다. 야당 대표를 대통령과 일대일로 마주 앉을 상대로 인정하지 않는 듯한 태도로 받아들여졌다. 결국 민주당은 ‘양자회담 우선’을 주장하며 거부했다.
정무수석비서관 자리에 직업 외교관 출신인 박준우 수석을 임명한 것도 정치권을 상대하는 박 대통령의 자세를 엿보게 해준다. 원래 정무수석은 정치권과의 끊임없는 교류를 통해 청와대와 여야 사이의 가교 역할을 하는 자리다. 그러나 신임 박 수석은 ‘30년 외교관’ 경력을 자랑할 뿐, 정치권을 상대해본 경험은 전무하다. 정무수석에 임명된 8월5일 여야 지도부 예방차 다른 청와대 비서진과 국회에 간 박 수석은 인사를 나누는 정치권 출신 인사들을 어색하게 바라만 볼 뿐, 제대로 인사를 나누지도 못했다.
황태순 위즈덤센터 연구위원은 “정치는 대통령 본인이 알아서 할테니, 앞으로 정무수석은 메신저 역할만 맡으라는 신호로 보인다. 야당을 외교적으로 좋게 좋게만 상대할 사람을 앉힌 것 같다”고 평가했다. 다수의 전문가들은 애초 정무수석이었다가 윤창중 전 대변인성추행 사건 이후 홍보수석으로 자리를 옮긴 이정현 수석이 실질적인 정무수석의 역할을 맡을 것으로 전망했다. “홍보수석이 정무수석까지 사실상 대행한다면, 이정현 수석이 어느 정도 ‘왕수석’인지 설명하는 것 아닌가”라는 반응도 나왔다. 강원택 서울대 교수(정치학)는 “지금은 임기 초니까 지지율도 높을 수 있지만 선거가 다가오면 야당뿐 아니라 여당도 소통하고 관리하는 게 중요하다. 그런 면에서 정무수석이 상당히 중요할 수 있는데, 그에 대한 고려는 충분치 않았다고 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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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춘 실장이 전면에 등장하면서 박 대통령의 원로 자문그룹으로 알려진 ‘7인회’ 또한 다시 주목을 받게 됐다. 7인회는 김기춘 실장 외에, 김용환 새누리당 상임고문, 김용갑 전 의원과 현경대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수석부의장, 최병렬 전 한나라당 대표, 안병훈 기파랑 대표, 강창희 국회의장 등이 참여하는 ‘친박’ 원로 그룹이다. 이들은 박정희~노태우 군사정부 시절에 각종 요직을 거쳤고, 2007년 한나라당 대선 후보 경선 당시 박근혜 캠프에서 선거대책위원장과 고문 등의 직책을 맡은 바 있다. 친박 진영에서는 “김용환 고문이 자신의 위상을 과시하려고 언론에 내보인 것”이라며 실제 영향력은 그리 크지 않다는 이야기도 나왔다. 그러나 실제로 한 달에 한 번가량 만나서 식사를 하는 등 회동을 갖는 것으로 알려져, 박 대통령과의 친밀도와 관련한 의구심은 가시지 않았다.
그러다 지난해 강창희 의장이 원내로 복귀한 뒤 국회 수장에 오르고, 지난 5월 현경대 부의장이 박 대통령의 지명을 받아 장관급 직무를 맡게 된 데 이어, 이번에 김기춘 실장까지 박 대통령을 지근거리에서 보좌할 자리에 임명되면서 실체론은 더욱 힘을 받는 분위기다. 비판여론을 수용하는 대신 박 대통령이 ‘과거지향’을 분명하게 밝힌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는 대목이다. 신율 명지대 교수(정치외교학)는 “소문만 떠돌던 7인회가 전면에 등장하는 것은 과거지향적이다. 국정원을 둘러싼 논란이 가시지 않은 현 정국에 이런 인선을 하는 건 야당의 더욱 거센 반발을 불러올 수도 있다”고 말했다.
대화록 ‘실종’만 언급… 수사 가이드라인?
NLL을 둘러싼 각종 논란에서 박 대통령이 주목하는 부분도 명확해졌다. 8월6일 국무회의에서 그는 “최근에 알려진 사건들만 봐도 다시는 있어서는 안될 잘못된 일들이 많았다. 중요한 사초가 증발한 전대미문의 일은 국기를 흔들고 역사를 지우는 일로 절대 있어서는 안 될 일”이라며 대화록 실종 사건을 언급했다. 김무성 새누리당 의원이나 권영세 주중대사 등이 연루 의혹을 받고 있는 ‘대화록 유출 사건’은 거론조차 하지 않았다. 박 대통령이 검찰 수사가 진행 중인 대화록 실종 사건만 들고나온 데 대해, 야당은 “수사 가이드라인을 준 게 아닌지 우려스럽다”는 비판을 내놨다. 박 대통령은 대화록 유출 사건에선 혜택을 본 당사자일 수도 있지만, 대화록 실종 사건에서는 비교적 유리한 상황이다. 최소한 책임 소재가 노무현 정부 또는 이명박 정부로 한정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박 대통령은 지난 6월24일 “국정원 댓글 사건에 대해서, 왜 그런 일이 생겼는지, 왜 그런 일을 했는지 전혀 알지도 못한다. 대선 때 국정원이 어떤 도움을 주지도, 국정원으로부터 어떤 도움을 받지도 않았다”며 국정원 사건과 자신은 무관하다고 강조한 바 있다.
청와대에서는 이번 인선을 비롯한 일련의 조처가, 취임 초기 인사실패와 정부조직 개편 지연 등 ‘위기’를 겪은 상황에서 내놓은 ‘새로운 카드’라고 말한다. 과연 얼마나 새로울까? 김기춘 실장은 8월6일 야당에 5자회담을 제안하면서 “윗분의 뜻을 받들어서…”라고 브리핑을 시작해, 새롭긴커녕 권위주의 정부 시절의 색채를 짙게 풍겼다는 지적이 나오기도 했다.
김 실장을 포함한 7인회의 군사정부 시절 전력이 새삼 화제가 된 가운데, 7인회 일원인 강창희 국회의장이 8월8일 한국에 온 일본 의원들을 만나 꺼낸 독일 철학자 니체의 말을 우리는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역사는 잊으려 해서 잊히는 것이 아니다. 미래에 대한 열정이 과거의 고뇌를 능가할 때 스스로 잊히는 것이다.”
김외현 기자 oscar@hani.co.kr한겨레21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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