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월5일 오후, 강원도 강릉시 노암동 강릉교육지원청 앞에 50여 명의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이들은 교육청 건물을 향해 확성기를 켠 뒤 “강릉교육지원청이 학생들의 안보체험 교육을 방해하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들은 강릉솔향사관학교 소속으로, 이 지역에 사는 예비역 장교가 모인 단체다. 이들은 지난해부터 강릉 지역 등에서 군부대를 빌려 초·중·고교 학생들에게 1박2일 병영체험 캠프를 운영하고 있었다. 제식훈련과 응급처치, 전차 소개, 전투기 소개, 안보 콘서트 등으로 짜인 이른바 ‘안보체험 교육’이었다.
그러나 강릉교육지원청이 이들의 병영체험 캠프를 문제 삼으면서 갈등이 시작됐다. 이 단체는 교육지원청의 허가를 받지도 않은 채 교육청과 일선 학교에 캠프 참여 협조 공문을 보냈다. 교육지원청은 미인가 캠프라며 운영을 중단하라고 했다. 이에 회원들은 군과 민간이 주축이 돼 안보교육을 하려는 것을 교육청이 막고 있다며 집회를 열었다. 교육지원청 직원을 비난하는 펼침막까지 내걸었다. 하지만 안면도 해병대 사설캠프 사고가 터지고, 교육부가 병영체험 캠프의 전수조사를 시작하면서 이들의 ‘막무가내’도 힘을 잃게 됐다.
강릉에서 벌어진 교육기관과 안보단체의 갈등은 병영체험 캠프를 둘러싼 역학관계를 그대로 보여준다. 현역·예비역군 관계자와 군부대, 그리고 교육기관이 면밀히 연결돼 운영되기 때문이다. 초·중·고교생은 병영체험 캠프로 대표되는 ‘안보교육 시장’의 가장 큰 손님이다.
병영체험 캠프는 2010년 천안함 사건이후 정부가 안보교육을 강화하면서 늘어난 것으로 알려졌다. 은 그 규모를 따져보기 위해, 지난 7월26일 정진후 정의당 의원실이 전국 16개 시·도 교육청에서 제출받은 2009년부터 최근 5년 동안 초·중·고교 학생들의 병영체험 캠프 운영 현황 자료를 단독으로 입수했다. 전국 시·도교육청의 병영체험 캠프 실태가 드러난 건 이번이 처음이다.
전국 17개 시·도교육청 가운데 서울시교육청은 “아직 현황 파악을 하지 못했다”며 자료를 제출하지 않았다.전국 시·도교육청의 병영체험 캠프 현황자료를 보면, 대부분의 교육청에서는 매해 적게는 수백 명에서 많게는 수천 명의 관내 초·중·고교 학생을 병영체험 캠프에 참여시켰다. 지난 5년 동안 병영체험 캠프를 다녀온 초·중·고교 학생 수는 전국적으로 11만1397명에 이른다. 이 가운데 가장 많은 인원을 보낸 곳은 대전시교육청(2만503명) 관내 학교들이었다.
정 의원실이 운영 현황과 함께 입수한 전국 16개 시·도교육청의 병영체험 캠프 관련 공문에 따르면, 일선 교육청들은 병영체험캠프 참가를 독려하기 위해 각 학교에 공문을 내려보낸 것으로 나타났다. 충남도교육청은 ‘2010학년도 하계휴가 중 나라사랑 병영체험캠프 추진계획’에 캠프 추진 계획을 자세히 제시하면서 “지역 교육청은 하계휴가 중 나라사랑 병영체험캠프를 적극 수립·추진하여주시고 그 결과를 2010년 9월3일까지 제출해달라”고 독려하는 내용을 담았다. 이 보고서에는 “각급 학교장은 지역 교육청과는 별도로 자체 실정에 맞는 다양한 학생 병영체험을 실시할 수 있으며, 그 결과를 2010년 9월1일까지 지역 교육청(수합) → 도교육청으로 제출”하라는 내용도 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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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청들은 병영체험 캠프를 독려하고자 다양한 예산 지원을 했다. 부산시교육청은 2011년부터 매해 1800만~2400만원 규모의 병영체험 캠프 예산을 지원했다. 충남도교육청은 2011년에는 예산으로 5500만원을 책정했고 올해는 이보다 훨씬 늘어난 8845만원을 배정했다. 대구시교육청은 501보병여단에서 올해 3100만원을 지원받았다.
학생들이 찾아가는 군부대의 종류도 다양했다. 사설 캠핑장뿐만 아니라 지역마다 위치한 육군 소속의 각 사단급 부대와 특전사, 육군부사관학교, 육군3사관학교, 계룡대, 공군사관학교, 해군사관학교 등에서도 캠프가 운영됐다. 경기도교육청은 2011년 3월 국가정보원에서 수도권 고등학생을 대상으로 하는 안보현장 체험교육을 진행하기도 했다.
학생들이 참여하는 캠프 프로그램에는 실제 군대를 방불케 하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지난해 대한민국재향군인회가 진행한 서울시교육청의 ‘나라사랑 DMZ 병영체험학습’의 내용을 보면, 내무반, 유격훈련 및 행군 훈련, 비무장지대(DMZ) 유적지 투어, 통일안보교육 진행, 군장 체험, 담력 훈련, 경계 근무 체험, 위장 체험 및 사진 찍기 등을 진행했다. 2011년 제주 해병대 부대에서 진행한 ‘국가안보는 가족사랑! 병영체험’에는 총검술, 각개전투, 화생방 등이 수업 세부 내용으로 담겨 있었다.
이처럼 전국의 교육청이 안보교육 등을 앞세워 추진하는 병영체험 캠프는 학생뿐만 아니라 교사들까지 참여를 독려하고 있다. 실제로 충북 충주교육청은 지난 7월16일 ‘2013년도 충주 지역 교직원 나라사랑 캠프 알림’이란 공문을 충주 지역 유·초등학교 40곳, 중학교 19곳 등에 보낸 바 있다. 학교별로 참가 권장 인원을 정해 1~4명씩 참가를 권유해 논란을 빚기도 했다. 최근에는 ‘학교폭력 예방’이나 ‘학교폭력 가해피해학생 해병대 캠프’ 등 이른바 학교폭력을 해결하는 방안으로 병영체험 캠프를 활용하는 경우도 늘고 있다. 게다가 서울시교육청은 2011년 서울시내 60여 개 특수학급 학생 200명을 대상으로 병영체험 캠프를 여는 ‘서울특별시 고등학교 특수학급 병영체험학습’도 진행했다. 계획서에는 “캠프를 통해 군 입대를 할 수 없는 장애학생들에게 군부대 생활을 경험케 하고 특수학급 학생들의 자기극복 의지를 형성하도록 한다”는 내용을 담았다.
학교폭력 예방 위해 병영캠프이에 대해 정진후 의원은 “학교에서 극기훈련이란 명목으로 병영 체험 캠프를 가는 게 유행처럼 번지면서 사설 병영 캠프가 늘어났는 데, 교육 당국마저 일선 학교에 공문을 보내 참가를 권유해왔다는 사실이 충격적”이라고 말했다. 정 의원은 “입시 경쟁에 찌들고 학교 폭력에 멍든 아이들에게 지금 필요한 건 휴식과 평화”라며 “학생들에게 폭력적인 군사문화를 가르치는 관행은 사라져야 한다”고 덧붙였다.
김성환 기자 hwany@hani.co.kr한겨레21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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