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자력안전기관은 그 책임을 다하기 위해 원자력진흥조직이나 기구로부터 효과적으로 독립해야 한다.’ 국제원자력기구(IAEA)는 1993년 이런 내용을 담은 ‘기본안전원칙’(Fundamental Safety Principles)을 발표했다. 핵발전소를 운영하는 회원국이 최소한의 안전을 지키기 위해 따라야 하는 이른바 ‘가이드라인’인 셈이다.
우리나라에서 원자력안전기관 역할은 ‘원자력안전위원회’(원안위·위원장 이은철)가 한다. 핵발전소가 고장나거나 사고가 났을 때 원인을 분석하고, 재가동·연장 여부도 심사한다. 거대한 자본력뿐만 아니라 대규모 사고 가능성을 안고 있는 핵산업을 감시하는 유일무이한 ‘감찰기관’인 셈이다.
원안위가 생긴 1996년은 원자력안전에 관한 국제규범을 정한 ‘원자력안전협약’이 발효된 해다. 국내에 핵발전소가 10기를 넘어선 시기였다. 당시 김영삼 정부는 과학기술부 산하에 원안위를 만들었다. 원자력 정책을 홍보하는 한국원자력문화재단은 앞서 1992년에 생겼다.
IAEA는 우리나라가 과학기술부 아래에 규제기관인 원안위와 홍보기관인 한국원자력문화재단을 두고 있는 것이 ‘기본안전원칙’에 어긋난다며 꾸준히 지적을 해왔다. 권고가 받아들여진 건, 일본 후쿠시마 핵발전소 사고가 벌어진 뒤인 2011년 10월이었다. 기존 원자력법도 원자력진흥법과 원자력안전법으로 나뉘고, 당시 지식경제부 장관 소속이던 원안위는 국무총리실 산하 독립기관이 됐다. 한국원자력안전기술원·한국원자력통제기술원도 원안위 아래로 옮겼다.
핵발전을 하는 미국·캐나다는 이미 오래전부터 원자력안전기관과 원자력진흥조직을 구분해왔다. 미국은 1차 오일쇼크가 한창이던 1975년 에너지부 산하 원자력에너지위원회(AEC)가 하던 진흥·규제 업무를 분리해 ‘원자력규제위원회’(NRC)라는 독립기구를 만들었다. 프랑스의 원자력안전기구(ASN), 캐나다의 원자력안전위원회(CNSC)도 모두 핵발전 사업과 연구·개발 분야와 독립해 있는 기구다. 일본의 경우, 원자력안전보안원(경제산업성)과 원자력안전위원회(내각부)에 흩어져 있던 규제기관을 후쿠시마 핵발전소 사고 뒤 한 데 모아 원자력규제청(NRA)이라는 기관을 세웠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유독 ‘역주행’을 하고 있다. 박근혜 정부는 출범 초기 국무총리실 산하 원안위를 한국수력원자력 등을 관장할 미래창조과학부 산하로 옮기려 했다. 현재 원안위는 원자력진흥위원회 당연직인 국무총리가 관리하는 국무총리실 밑에 있다. 규제기관과 진흥기관이 한 지붕 아래 있는 셈이다. 각종 안전 업무를 하는 전문 인력 수도 초라하다. 지난 1월 국회입법조사처의 ‘원자력 안전 현황과 정책 및 입법과제’ 보고서를 보면, 지난해 6월 기준 원안위·원자력안전기술원 인력은 512명이다. 1기당 담당 인원은 18.2명이다. 캐나다(47.2명), 프랑스(37.8명), 미국(37.7명), 일본(22.7명)에 견줘 턱없이 부족하다. 박근혜 정부가 키우고 있는 핵산업계 샴쌍둥이의 모습이다.
김성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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