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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물쭈물하다가 내 이럴 줄 몰랐지?

선택지를 확 줄이거나 결정을 쪼개거나 작은 성공에 자축 세리머니를 하거나… ‘장애’를 극복하기 위한 11가지 방법
등록 2013-05-20 15:06 수정 2020-05-03 04:27

결정장애는 병이 아니다. 다만 복잡한 원인으로 인해 발현한 뒤 오랜 기간 강화된 조금 지독한 습관일 뿐이다. 그래도 본능에 가까워진 습관을 떨쳐내려면 환골탈태에 버금가는 노력이 필요하다. 이 (문요한) 등 결정장애를 다룬 책들에서 극복 방법 11가지를 추려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을 따라해야 한다”고 다짐하는 순간 부담감·두려움·압박감·귀찮음 등으로 또다시 결정장애를 일으킬 가능성이 높으니, 자신에게 맞는 2~3가지만 골라 천천히 실천하기를 당부한다.

좋아하는 사람에게 번번이 고백 한번 못해보고 여태껏 싱글인 내가, 저녁에 혼자 무얼 먹을까 매번 고민만 하다 밤 10시에 라면을 끓여먹고는 살이 통통하게 오른 싱글의 내가 그 결과물이다.

어떤 TV 프로그램을 볼지 좀처럼 결정할 수 없을 땐 채널을 반복적으로 돌리는 대신 배우자에게 리모컨을 맡기는 게 TV 시청의 만족도를 높여주기도 한다. 부부가 TV 리모컨을 두고 신경전을 벌이는 상황을 그린 LG유플러스 광고의 한 장면. 광고 화면 갈무리

어떤 TV 프로그램을 볼지 좀처럼 결정할 수 없을 땐 채널을 반복적으로 돌리는 대신 배우자에게 리모컨을 맡기는 게 TV 시청의 만족도를 높여주기도 한다. 부부가 TV 리모컨을 두고 신경전을 벌이는 상황을 그린 LG유플러스 광고의 한 장면. 광고 화면 갈무리

문제를 정면으로 맞닥뜨리는 게 첫 단추다. 내게 결정장애가 있다는 사실을 쿨하게 인정하자. 작은 결정에도 덜덜 떨기만 하는 나는, 신중한 사람도 완벽한 사람도 아니다. 그저 결정을 잘 못하는 사람일 뿐이다. 변명이 목구멍까지 차오를 땐 그간의 결정장애가 가져온 쓰라린 폐해를 떠올려보자. 좋아하는 사람에게 번번이 고백 한번 못해보고 여태껏 싱글인 내가, 저녁에 혼자 무얼 먹을까 매번 고민만하다 밤 10시에 라면을 끓여먹고는 살이 통통하게 오른 싱글의 내가 그 결과물이다. 이제 과감한 결정자로 거듭나기로 마음먹었다고 해도 제대로 변화하려면 약간의 충격요법이 필요하다. 죽음에 대한 성찰이 효과적이다. 유언장을 미리 써보거나 장례식을 스스로 기획해보는 것이 방법이다. 이도 저도 결정을 못하겠으면 조지 버나드 쇼의 유명한 묘비명을 떠올려보자. “우물쭈물하다가 내 이럴 줄 알았지.”

“난 뭘 해도 안 돼!” “나에겐 제대로 결정할 능력이 없어.” 결정장애를 겪는 이들의 레퍼토리다. 체념·무기력함·포기·두려움에 사로잡혀 자존감이 무너지면 급기야 검은 양말을 신을지 하얀 양말을 신을지도 고민해야 하는 지경에 이르게 된다. 자기 비난에 익숙한 이들은 자존감과 자신감을 회복할 때까지 어색하더라도 스스로에게 격려와 지지의 대화를 지속적으로 건네는 게 중요하다. 습관적으로 내뱉던 자기 비난의 말을 최소한으로 줄이고, 평소 듣고 싶던 ‘자뻑’의 멘트를 되뇌는 것만으로도 효과가 있다. “이 김치찌개는 내 탁월한 선택이야.” “내가 선택한 셔츠가 나에게 참 잘 어울려!”

반대로 자존감이 강한 완벽주의자라면 일단 저질러보자. 시작을 하고 나서 준비를 해도 늦지 않는다. 원래 완벽하고 성숙한 나는 최선의 선택을 할 충분한 능력과 경험이 있으니 말이다. 그래도 실패와 실수가 두렵다면 결정의 완성도를 계속 체크하는 대신, 그 에너지를 최악의 상황에 대비하는 데 생산적으로 쏟자. 일단 결정을 내린 상태에서 최악의 상황을 그려보고, 그에 어떻게 대처할지 나름의 컨틴전시플랜(비상계획)을 준비하는 식이다. 그 사이 실패·실수에 대한 불안은 저만치 사라질 것이다. 물론 컨틴전시플랜을 꺼내야 할 만큼 끔찍한 상황이 일어날 가능성은 희박하지만 말이다. 아니면 말고.

오히려 결정에 따르는 성공이 두려운 이들도 있다. 몇 년 만에 서재의 책꽂이를 정리하기로 마음먹기 직전이다. 그러나 책꽂이 정리이후 쓰나미처럼 다가올 무질서한 책상 서랍 정리, 꼬질꼬질한 커튼빨기, 먼지 수북한 바닥 쓸기가 두려워 도저히 최종 결정을 할 수가 없다. 이럴 땐 무조건 현재의 상황에만 집중하는 게 도움이 된다. 오로지 엉망인 책꽂이만 쳐다보는 것이다. 지금의 결정으로 일을 끝내는 게 미래에 더 많은 일을 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선택지를 확 줄이는 것도 결정의 스트레스를 없애는 방법이 된다. 옷 쇼핑은 3곳의 매장만 다녀보고 무엇을 살지 결정한다, 소개팅에선 2번을 만나고 만남의 지속 여부를 결정하는 식이다. 이 원칙을 만드는 과정에는 난관이 있다. 자신의 취향과 욕구를 정확히 파악하는 일이다. 결정장애를 겪는 이들에게 가장 취약한 부분이다. 그러나 나에게 가장 어울리는 옷을 파는 브랜드는 무엇인지, 내가 같이 있을 때 즐거운 이성은 어떤 성향의 사람인지를 미리 알고 있어야 애초에 선택지를 줄일 수 있다.

다가오는 여름휴가를 어떻게 보낼지를 결정한다고 예를 들어보자. 모처럼 5박6일짜리 해외여행을 떠나고 싶다. 그러나 스스로 내려야 할 엄청난 결정에 몸도 마음도 움직이지 않는다. 매일 압박에 시달리다 스트레스만 얻고 결국 올해도 ‘방콕행’이다. 이런 경우엔 일을 나누는 게 답이다. 결정을 쉽게 내릴 수 있도록 작은 단위로 일을 쪼개기만 하면 된다. 일단 오늘은 여행하고 싶은 유럽까지만 정하자. 내일은 서유럽, 모레는 프랑스까지 선택하면 된다. 그다음엔 비행기표를, 그다음엔 숙소를 하루씩 정해나가면 프랑스가 코앞이다.

최선의 선택은 고민하는 시간에 비례하지 않는다. 고민을 무한 반복하지 않으려면 적절한 시간 제한이 필요하다. 어떤 것에도 방해받지 않고 결정에만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을 하루 15분이든 30분이든 스스로 정하자. 최상의 컨디션일 때가 가장 좋은 타이밍이다. 아침에 일어나 스트레칭을 하는 15분 동안 오늘 회의에서 무슨 말을 하고 점심에는 무엇을 먹을지 미리 선택하는 것이다. 결정의 시간 이외에는 일에만 집중하거나 푹 쉬면서 에너지를 비축하는 게 낫다.

내 어깨에 오롯이 세상의 평화와 정의 구현이 달려 있는 건 아니다. 충분히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아들이자. 나는 오늘 텔레비전에서 드라마와 야구와 뉴스를 모두 보고 싶다. 3분 간격으로 채널을 돌린다. 그러나 옆에 배우자가 있으면 잔소리가 무서워서라도 무엇을 볼지 선택하게 된다. 이때 오히려 텔레비전 시청의 만족도는 높아진다. 학교에선 선생이나 친구, 직장에선 선후배나 동료가 결정장애로부터 나를 자유롭게 할 수 있다.

작은 성공에도 자축 세리머니를 하자. 자잘한 성공의 기쁨을 만끽할 줄 알아야 더 큰 결정을 할 에너지가 축적된다. 논문이나 리포트 주제를 정한 날에는 하루 종일 집에서 뒹굴댐으로, 신용카드를 자른 날에는 근사한 저녁으로 스스로에게 보상을 해주면 된다. 물론 자신과 약속한 시간에 결정을 내리지 못했을 때는 밥을 한 끼 굶거나, 치킨을 먹으며 맥주나 콜라를 마시지 않는 정도의 형벌도 필요하다.

결정은 꼬리를 남기지 않아야 한다. 미련은 후회를 낳고, 후회는 결정장애로 이어진다. 며칠간 인터넷 홈쇼핑 사이트에 들락거리면서 우여곡절 끝에 물건을 정했다면 즐겨찾기 메뉴에서 해당 사이트 주소를 과감하게 삭제하자.

수많은 선택의 기로에서 꿋꿋하게 결정을 내린 투쟁의 역사는 기록으로 남겨두면 좋다. ‘결정 일기’는 자신에게 가장 큰 격려가 되는 동시에 내일 할 결정을 예고해주는 일과표도 되기 때문이다. 전혀 번거롭지 않다. 질문은 매일 똑같이 4개 정도만 반복하면 된다. 답은 한 줄이면 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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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보미 기자 spri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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