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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지’ 인수위의 악몽

‘박근혜식 통합’의 가늠자, 메시지·인사·정치 쇄신의 제도적 안착… 인수위원장에 대탕평 인사 점쳐지지만, ‘쇄신대상’ 최경환 의원이 인수위 주도해 논란 소지
등록 2012-12-28 21:51 수정 2020-05-03 04:27

‘국민 대통합’. 대선이 치러지는 5년마다 빠지지 않는 단골 메뉴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2002년 당선 직후 “지지자뿐만이 아닌 반대자까지, 모든 국민의 대통령이 되겠다”고 강조했다. 이명박 대통령도 “나부터 마음의 응어리를 풀겠다. 분열된 우리 사회의 화합과 국민통합을 반드시 이루겠다”는 당선 소감을 내놨다. 하지만 두 정부의 현실은 ‘통합’과는 거리가 멀었다.

대통령직 인수위원장 후보로는 김종인 행복추진위원장, 안대희 정치쇄신위원장, 김광두 힘찬경제추진단장 등이 거론된다(왼쪽부터). 박근혜 당선인은 12월20일 오후 서울 여의도 새누리당사에서 열린 중앙선거대책위원회 해단식에 참석했다. 한겨레 류우종 기자, 한겨레 강창광 기자, 한겨레 이정아 기자, 한겨레 강창광 기자

대통령직 인수위원장 후보로는 김종인 행복추진위원장, 안대희 정치쇄신위원장, 김광두 힘찬경제추진단장 등이 거론된다(왼쪽부터). 박근혜 당선인은 12월20일 오후 서울 여의도 새누리당사에서 열린 중앙선거대책위원회 해단식에 참석했다. 한겨레 류우종 기자, 한겨레 강창광 기자, 한겨레 이정아 기자, 한겨레 강창광 기자

 

박 당선인이 대선 하루 만에 경쟁자였던 문재인 후보에게 전화를 걸어 “앞으로 국민을 위해 협력과 상생의 정치를 할 수 있도록 노력하자”고 말했다.
봉하마을 다시 찾는 방안도 검토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의 첫 메시지도 ‘국민 통합’으로 수렴된다. 108만 표 차이의 신승이었지만 역대 어느 대선보다 반대 진영에 많은 유권자가 결집한 선거였기에 박 당선인으로선 불가피한 선택이다. 과연 ‘박근혜식 통합’은 다를까? 그의 정치력과 포용력의 크기를 가늠할 세 가지 척도가 있다. 메시지, 인사 그리고 통합과 정치 쇄신 논의의 제도적 안착 여부다.

박 당선인은 대선 하루 뒤인 12월20일 이승만·박정희·김대중 전 대통령 묘역을 참배한 데 이어 “과거 반세기 동안 극한 분열과 갈등을 빚어왔던 역사의 고리를 화해와 대탕평책으로 끊도록 노력하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이미 한 차례 방문했던 경남 김해 봉하마을을 다시 찾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박 당선인은 “모든 지역과 성별과 세대의 사람들을 골고루 등용해 대한민국의 숨은 능력을 최대한 올리는 100% 대한민국을 만드는 것이 저의 꿈이자 소망”이라며 “우리를 지지하지 않은 국민 여러분의 마음도 잘 챙기고 담는 것이 중요하다. 야당을 소중한 파트너로 생각해 국정 운영을 해나가겠다”고 거듭 강조했다.

캠프도 공식 해단식과 함께 “문재인 후보에 대한 놀라운 지지율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겸허한 마음으로 새기고 문 후보가 제시한 훌륭한 공약들을 받아들여 국민을 위해 집행하는 노력도 기울이겠다”(이상일 대변인), “절반을 넘긴 지지를 얻었다는 사실 못지않게 절반 가까운 분들의 지지를 얻지 못했다는 사실을 가슴 깊이 새기겠다”(박선규 대변인)는 등 상대 진영과 그 지지자들을 위로하는 메시지를 내놨다.

박 당선인이 대선 하루 만에 경쟁자였던 문재인 후보에게 전화를 건 것도 마찬가지 맥락이다. 박 당선인은 “치열하게 선거를 치렀지만 이게 다 국민의 삶을 위해 일할 수 있도록 선택받고자 함이 아니었겠느냐. 앞으로 국민을 위해 협력과 상생의 정치를 할 수 있도록 노력하자”고 말했다. 이에 문 후보는 “박 당선인에 대한 기대가 크고 잘할 것으로 생각한다. 내가 당을 책임지고 끌어갈 수는 없겠지만, 민주당이 정파와 정당을 넘어서 국정에 협조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화답했다.

 

인수위원장 ‘깜짝 카드’ 가능성

결국 관건은 실천의 영역에 달렸다. 늦어도 1월 초에는 발표될 대통령직 인수위원회의 면면이 첫 시험대다. 이명박 대통령의 인수위는 출범 초반부터 이경숙 당시 위원장이 ‘어린지’ 논란을 필두로 영어몰입교육 등 각종 설익은 정책을 쏟아내 혼선과 비난을 자초했다. 인수위 출신 인사들이 대거 요직에 기용돼 ‘고소영·강부자’ 논란이 일었다.

‘박근혜 인수위’는 전임자의 실패를 되풀이하지 않겠다는 각오다. 우선 인수위원장에는 호남 출신이자 ‘경제민주화의 아이콘’ 김종인 국민행복추진위원장, 진념 전 경제부총리, 안대희 정치쇄신위원장, 새누리당 지도부 중에서도 ‘비둘기파’로 통하는 황우여 대표 등이 후보로 거론된다. 2007년 ‘줄푸세’(세금은 줄이고 규제는 풀고 법질서는 세운다) 공약의 저작권자인 김광두 힘찬경제추진단장도 하마평에 오르고 있지만, 강경한 시장만능론자 이미지는 인수위원장에 어울리지 않는다는 반론이 많다.

‘깜짝 카드’의 가능성도 없지 않다. ‘대탕평 인사’라는 박 당선인 자신의 말대로 야권 혹은 중도 성향의 인사를 인수위원장에 기용하면 상징적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박상증 전 참여연대 공동대표, 송호근 서울대 교수의 이름도 오르내린다. 다만 인수위원·전문위원을 포함한 인수위 구성안을 박 당선인의 최측근 실세인 최경환 의원이 주도하는 대목은 논란의 소지가 있어 보인다. 인수위 부위원장으로도 거론되는 최 의원은 새누리당 내부에서조차 여러 차례 ‘쇄신의 대상’으로 지목돼왔다. 인수위 구성이 위원장 등 일부 상징적인 자리를 제외하면 친박 측근들의 ‘자리 나눠먹기’로 전락할 우려가 있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연석회의, ‘충격 속’ 민주당이 참여할까

선거 과정에서 박 당선인은 여야의 인물과 정책, 공약을 아우르는 초당적 협력기구 설치를 거론했지만 실현 가능성엔 물음표가 따라 붙는다. 그는 12월15일 유세에서 “당선 직후 새 정부가 출범하기 전까지 여야 지도자가 만나 대한민국의 새 틀을 짜기 위한 국가지도자 연석회의를 제안한다”고 했다. 박 당선인과 여야 대표, 원내대표 등이 참석 대상이라고 한다. 선거 과정을 통해 확인된 새로운 정치와 쇄신에 대한 요구는 별도의 ‘국정쇄신 정책회의’를 구성해 수렴한다는 구상이다. 하지만 그 논의의 상대방인 민주통합당이 패배의 충격을 딛고 전열을 재정비하기까지는 상당한 시일이 걸릴 수밖에 없다. 시점을 취임 이후로 늦춰 잡는다고 해도 연석회의 구성 자체를 장담하기 어렵다는 관측도 있다.

송호균 기자 uknow@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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