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루에서 시너를 투척하고 화염병을 던지는 것을 보고받았더라면 중지시켰을 것이다.”(신두호 전 서울지방경찰청 기동본부장) “현장 상황을 잘 전달받았다면 진압을 중단시켰을 것이다. 특공대원들이 공명심에 일을 크게 벌였다.”(이송범 전 서울지방경찰청 경비부장)
숨기는 데에는 다 이유가 있었다. 서울 용산 참사도 그랬다. 2010년 1월15일, 이충연 용산철거대책위원회 위원장 등 철거민 4명의 변호를 맡았던 김형태 변호사가 기자회견을 열었다. 사건 발생 1년이 다 되어서야 진통 끝에 검찰이 공개한 용산 참사 당시 경찰 지휘부의 진술 등이 포함된 미공개 수사기록 2천여 쪽의 내용을 공개하기 위해서였다.
예상대로 미공개 수사기록에는 당시 현장에 출동한 경찰의 상황 판단 미숙 등 과잉 진압을 의심할 만한 경찰 관계자의 진술이 담겨 있었다. 그러나 기소된 철거민들은 이 내용은 보지 못한 채 1심 재판에서 실형을 선고받았다. 변호인이 미공개 수사기록 열람·등사를 요구하고 법원이 이를 받아들였지만, 검찰은 법원의 명령까지 무시했다.
검찰이 이처럼 ‘배째라’식으로 버텼던 배경에는 수사기록 관리를 독점하려는 의도가 숨어 있었다. 2008년부터 새로 시행한 형사소송법에는 피고인이나 변호인의 주장과 관련된 자료라면 해당 수사기록에 상관없이 등사·열람권을 주도록 돼 있다. 그러나 검찰의 반발로 이를 따르지 않을 경우 강제할 수단에 대해서는 명시하지 않았다. 검찰이 “재판과 관련이 없다”며 버텼던 이유다.
그러나 이씨 등 철거민 4명은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침해당하는 등 정신적 손해를 입었다”며 국가를 상대로 1인당 500만원씩 요구하는 손해배상 소송을 냈다. 검찰의 오만함을 바라보는 법원의 시각도 다르지 않았다. 2010년 9월28일 서울중앙지법 민사33단독 고연금 판사는 “검찰이 용산 참사 수사기록을 공개하지 않은 것은 위법”이라며 국가가 이씨 등 4명에게 각각 300만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이 판결은 의 2010년 형사 부문 ‘올해의 판결’로 뽑히기도 했다. 항소심을 맡은 서울중앙지법 민사항소2부(재판장 장재윤, 배석판사 안석·오승이)도 원심을 따랐다.
배상되지 않는 철거민의 망가진 삶
최근 대법원도 같은 판단을 내렸다. 지난 11월15일 대법원 1부(주심 김창석 대법관)는 “국가가 철거민들에게 각각 300만원씩 지급하라”는 원고 일부 승소 판결을 확정했다. 재판부는 “법원이 수사서류의 열람·등사를 허용하도록 명령했는데도 검사가 9개월 동안 이를 거부함으로써 철거민들은 신속·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가 침해당했다”고 밝혔다. 앞으로 이유 없이 수사기록 제출을 거부하는 검찰에 큰 부담으로 작용할 수밖에 없다. 억울한 재판의 시시비비를 가리기까지 4년 가까이 시간이 흘렀다. 용산 남일당 망루에 올랐던 철거민 4명 가운데 김대원·김재호씨가 지난 11월 가석방으로 출소했지만, 이씨 등 둘은 여전히 감옥에 있다. 법원의 뒤늦은 ‘꾸짖음’은 과연 이들에게 얼마나 위로가 될 수 있을는지.
김성환 기자 hwan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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