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것은 ‘검은돈’이었다.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 후보가 12월4일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주최 토론회에서 “나중에 다 사회에 환원하겠다”고 밝힌 ‘6억원’ 얘기다. 사회 환원을 강조하고 나선 새누리당은 ‘돈의 성격’에 대해서는 침묵했다. 선거대책위원회 미디어본부장인 박창식의원은 토론 직후 “후보의 개인적인 일에 해당하는 것이라 토론회 준비 때는 전혀 언급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김성주 공동선대위원장은 12월6일 CBS 에서 “아버지·어머니를 잃으시고 동생들과 길바닥에 나앉은 거예요. 그때 소년·소녀 가장이었습니다. 그렇게 받은 하나의 아파트였고요”라고 말했다. 군사독재 시절의 검은돈은 ‘개인사’ ‘소년·소녀 가장이 받은 아파트’로 규정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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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9년 1월 검찰 5공 비리 특별수사부는 “비서실 금고에서 발견된 현금 등 6억1천만원은 전두환 당시 합수부장이 박근혜에게 전달하고, 2억원은 정승화 육군참모총장, 5천만원은 노재현 국방부 장관에게 교부해 각국에서 이를 사용했으며, 1억원은 합수부 수사비로 사용됐다”고 발표했다. 1979년 10·26 직후 사라진 ‘청와대 비밀금고 속 9억여원’의 행방이었다.
당시 세부 상황에 대한 증언은 조금씩 다르다. 김진 논설위원은 자신의 책 (1992)에서 이렇게 묘사했다. “통치 비자금이 들어 있던 청와대 금고를 개봉한 이는 다름 아닌 전두환 보안사령관이었다. (중략) 수색 작업의 초점은 비서실장 보좌관실에 있던 높이 1m20cm, 폭 1m 크기의 철제 금고였다. 1층 대통령 집무실에 있던 소형 ‘금고Ⅰ’과 함께 박(정희) 대통령의 통치 비자금이 보관되던 곳이었다. (중략) 유족 대표로 입회한 박 대통령의 장조카 박재홍씨 등이 지켜보는 가운데 샘소나이트 가방에 현금·수표 6억원을 차곡차곡 채워 근혜씨에게 전달했다.” 이는 “금고에 들어 있던 9억5천여만원의 비자금 가운데 6억원을 유족 생계비로 드리라”는 전두환 합수부장의 명령에 따른 것이었다.
박 후보는 2007년 한나라당 대선 경선 후보 청문회에서 “전두환 합수부장 쪽에서 심부름 왔다는 분이 만나자고 해서 청와대 비서실 쪽으로 갔다. 거기서 저에게 봉투를 전해주면서 ‘박정희 대통령이 쓰시다 남은 돈이다. 아무 법적인 문제가 없다. 지금 생계도 막막하지 않느냐’고 해서 감사하게 받고 나왔다”고 말했다. 이 돈의 성격에 대해선 “공금이라기보다 (박 전 대통령이) 격려금으로 주시곤 했던 돈이 아닌가 싶다”고 말했다. 요컨대 ‘아버지가 격려금으로 쓰시던 돈을 생계비로 주니 감사하게 받았다’는 것이다. 이명박 경선 후보 쪽 박형준 대변인은 “박 후보가 전두환 전 대통령으로부터 6억원을 받았다는 사실은 당원과 국민에게 큰 충격이었는데, 더 충격적인 사실은 1979년 당시 30평대 은마아파트 30채의 돈을 ‘생계비 명목’으로 받았다는 박 후보의 발언”이라고 공격했다.
집무실 금고에는 뭐가 들었을까
박 전 대통령이 ‘격려금’으로 썼다는 이 돈은 당시 기업들로부터 받은 비자금으로 보인다. 여러 관계자의 증언과 보도를 종합하면, 당시 청와대에는 대통령이 직접 관리하는 집무실 금고와 비서실장이 관리하는 비서실 금고가 있었다. 대통령이 집무실 금고에서 돈을 꺼내주면 비서실 금고에 넣어두고 썼다는 것이다. 김정렴 전 청와대 비서실장은 자신의 회고록 에서 “민주주의의 필요악적 비용인 정치 성금”을 걷었으며, 성금은 최고 1억원, 최하 1천만원 범위였다고 증언했다. 김계원 전 청와대 비서실장도 1990년 3월 인터뷰에서 “수십억원의 돈이 거기(집무실 금고)에 들어 있었다고 추리하는 것이 억측이라고만 볼 수도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10·26 당시 비서실 금고에 들어 있던 돈의 규모가 드러난 것과 달리, 집무실 금고에 무엇이 들어 있었는지, 있었다면 어디로 갔는지 등은 명확히 밝혀진 바 없다. 당시 합수부의 집무실 조사팀에 속했던 이광형 부관은 1990년 3월 인터뷰에서 “11월14일 금고를 열었을 때 돈이 한 푼도 없었다”고 말했다. 박 후보는 같은 인터뷰에서 “서류와 편지가 들어 있었고, 아버님이 개인적으로 쓰실 용돈이 들어 있었고 액수는 많지 않았다”고 말했다. 2007년 경선 때는 “문제의 그 금고는 열쇠로 여는 게 아니라 손으로 쉽게 열 수 있는 것이었고, 내용물도 서류들이었으며, 귀중품은 전혀 없었다”고 발언했다. 박 전 대통령이 조성한 비자금이 스위스 계좌로 빼돌려졌다는 의혹도 끊임없이 제기돼왔다. 재미 블로거 안치용씨는 “미국 하원 외교위원회 프레이저 청문회의 1978년 10월 종합보고서에는 ‘박정희는 정치자금을 스위스 은행 계좌에 예치해 관리했으며, 이후락(비서실장)의 아들 이동훈이 박정희 자금 스위스 계좌의 존재를 증언했다’고 기록돼 있다”고 말했다.
박 후보가 생중계 토론회에서 ‘6억원’에 대한 사회 환원 의사를 밝힌 것은 이런 검은돈 논란이 계속되는 데 대한 선제적 대응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선대위의 한 관계자는 “토론회에서 사회 환원을 약속한 것은 사전에 준비했던 발언은 아니었던 것으로 안다. 다만 후보가 그렇게 말한 것을 보면 그 돈이 떳떳한 돈은 아니었다는 점을 계속 생각해왔던 것 같다”고 말했다. 그러나 박 후보한테 유리하지 않은 이 문제가 대선 이슈로 부각된데다, 이 사실을 잘 모르던 사람들의 주목도가 높아진 데 부담도 느끼는 것 같다. 박선규 선대위 대변인은 12월6일 브리핑에서 “30년도 더 지난 과거의 일을 갖고, 그것도 엄청난 비극, 충격 상황에서 벌어진 일을 공격의 소재로 삼는 데 대한 안타까움을 느낀다. 후보가 (사회 환원을) 약속했고, 어떤 경우에도 약속은 반드시 지켜질 것이다. 청와대 있을 때부터 가진 것 갖고 돕는 것에 익숙한 분”이라고 주장했다. 문재인 민주통합당후보 쪽 이인영 선대본부장은 “떳떳하지 않은 돈을 받은 것이고, 현재 가치로 반영하면 100억원이 넘는다고 하는데, 이 검은돈에 대해 사회에 환원하겠다고 말한 것은 공당의 대통령 후보답지 않은 처사다. 정식으로 사과하고 즉각 환원해야 마땅하다”고 비판했다.
대통령 되면 재산을 사회 환원하겠다는 의미라고
구체적인 환원 계획은 아직 불투명한 상태다. 새누리당은 박 후보의 언급이 산술적으로 돈 가치를 환산하겠다는 뜻이 아니라, 대통령이 될 경우 서울 삼성동 집을 포함해 전 재산을 사회에 환원하겠다는 의미라고 설명하고 있다. 박 후보는 1982년 신기수 경남기업 회장이 전 전 대통령 지시로 마련해준 성북동 집에서 살다가 이 집을 팔아 1984년 장충동으로 갔다가 1990년부터 삼성동 단독주택(공시지가 19억4천만원)에 살고 있다.
이지은 기자 jieuny@hani.co.kr한겨레21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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