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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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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가 없다, 모두 겁에 질려 있다”

노정객 남재희 전 노동부 장관의 일갈… MB 실정·남북·경제·노동 등에서 이슈 만들지 못해 “이대로라면 야권이 진다”
등록 2012-11-29 21:58 수정 2020-05-03 04:27

지난한 야권 대선 후보 단일화 협상이 거듭되던 11월22일, 서울 중구 태평로에 위치한 관훈클럽 사무실에서 남재희 전 노동부 장관을 만났다. 공화당의 국회의원으로 정계에 투신했지만 평생 동안 ‘새로움’을 추구해온, 팔순을 앞둔 노정객에게 길을 물으려 했다. 뜻밖에도 남 전 장관의 시선은 야권 대선 후보 단일화의 결과보다 대선을 코앞에 둔 상황에서조차 양극화와 노동·남북관계 등 정책적 이슈들이 수면 아래 가라앉아 있다는 점에 쏠려 있었다. 그리고 하루 뒤 안철수 후보의 전격적인 사퇴로 대선판은 새로운 국면을 맞았다. “누가되든 이대로라면 야권이 진다”는 그의 일갈을 새겨들어야 하는 쪽도 분명해졌다.

남재희 인터뷰
2012.11.22
탁기형 선임기자 khtak@hani.co.kr

남재희 인터뷰 2012.11.22 탁기형 선임기자 khtak@hani.co.kr

선거전에 MB가 없다‘아름다운 단일화’에 대한 기대감이 높았지만 실제 과정은 그렇지 못한 게 아니냐는 우려가 많다.

국민의 열기를 모아나가는 데 차질이 생겼던 것이 아닌가 싶다. 간접적으로 느끼는 것이지만, 대선이 며칠 안 남았으니 국민의 열기가 있어야 하는데 그게 아직 없다. 지금 국회가 열려 있으니 얼마나 좋은 기회인가. 국회에서 여야 간의 이슈를 부각시키지 못했다. 민주당의 사령탑들이 한 방 먹어서 그런가. 당의 중추인 이해찬도 한 방 먹고, 박지원도 그렇다. 이해찬이 머리는 좋은 사람인데 이러면 꾀를 안 낼 것 아닌가. 두 사람이 뭔가 구악인 것처럼 공격을 받으니까 제대로 능력 발휘를 못하는 것으로 본다. 신이 나지도 않을 것이고. 두 사람을 무력화시킨 것에도 영향을 받았다고 본다. 국민의 뇌리에 뚜렷하게 박힐 만한 이슈를 하나도 만들지 못했다는 이야기다.

관건은 단일화의 모양새보다는 결국 사회·경제적 정책과 이슈라는 의미인가.

그렇다. 이슈 부각에 실패했다. 예를 들어 가장 중요한 것은 이명박 대통령의 실정이 아닌가. 선거전에 MB가 없다. MB는 상처도 입지 않고 공중에 뜬 채로 즐기고 있지 않은가. 선거를 조용하게 치르면, 우리는 보수층이 강하기 때문에 보수가 이기도록 돼 있다. 보수란 뭐냐, 영남 세력과 개신교, 재벌들은 말할 것도 없고 그 영향하에 있는 막강한 거대 언론들…. 조용히 선거를 치르면 박근혜씨가 이긴다. 야당이 이기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준혁명적 분위기여야 한다. 반란의 분위기 말이다. 국민이 ‘때려엎자’고 해야 한다. 옛날 이야기지만 ‘못 살겠다, 갈아보자’라고 하는 분노. 그래야 이기는 것인데 촉발을 못했다.

“조용히 선거를 치르면 박근혜씨가 이긴다. 야당이 이기려면 어떻게 해야하는가. 준혁명적 분위기여야 한다. 반란의 분위기 말이다. 국민이 ‘때려엎자’고 해야한다. 옛날 이야기지만 ‘못 살겠다, 갈아보자’라고 하는 분노.”
그런 분노를 어떻게 촉발할 수 있는가.

앞서 말했지만 MB의 실정을 치고 들어가야 야당으로선 공세가 된다. 그다음은 경제인데, 경제는 비교적 국제적 현상이라 이슈화가 되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 남는 것은 남북관계인데, 2007년 대선에서 정동영씨가 남북관계를 주요한 이슈라고 했다가 대패해서 그런지 문재인·안철수 후보 모두 함구하더라. 선거전의 주요한 이슈로 만들 의사가 보이지 않더라는 이야기다. 이렇게 되면 이슈가 하나도 없다. 그러면 야당이 진다. 김대중 대통령이 될 때, 정말 능수능란했다. 이슈화를 시켰기 때문이다. 국민이 열렬하게 좋아하고 박수쳤다. 그것을 못하고 있다. MB는 지금 즐기고 있지 않나. 사저 문제는 지엽적이다. 민주주의가 후퇴했고, 부자들만 덕을 보고 나머지는 희생시키는 ‘부자 정권’이었다는 것을 왜 이슈화하지 못하냔 말이다. 답답하다. 어쨌든 누가 후보가 되든 이대로 가면 진다. 전망을 하자면, 글루미(gloomy)다.

지금 야권의 후보들이 가진, 정치인으로서의 한계일까.

문재인이 김대중을 당하지는 못하지. 안정감도 있고 어느 정도 대인의 면모도 보이지만 선동가적 기질이 없다. 신사라고 할까. 나쁜 의미가 아니라 좋은 측면에서 데마고기(demagogy)도 필요한 것이다. 문재인 후보로 단일화가 되는 경우 이탈하는 표가 있을 것이다. 문 후보 본인이 많이 연구해야 할 문제다. 일단은 야권의 전망이 어둡다. 나는 박근혜씨보다는 이쪽이 되기를 바라는 입장인데, 그것은 내 희망이고 현실은 다르니까. 현실은 야권에 불리하다는 것이다.

 

박근혜, 보수를 아우르는 챔피언박근혜 후보의 행보는 어떻게 평가하나. 과거사와 관련해 어쨌든 사과를 했다.

그게 무슨 사과인가. 적당히 체면치레만 했다. 진실성도 없고.

박 후보가 4·11 총선까지는 중도·통합 행보에 방점을 찍었고, 이후에는 다시 강경보수로 회귀한 부분은 전략적으로 봐도 오류가 아닌가 싶다.

박근혜는 재벌을 포함한 강력한 보수세력을 전부 아우르는 챔피언이니까 그런 것 아니겠나. 경제민주화로 김종인을 갖고 사기를 쳤다. 사기를 치다가 지금와서 보니까 ‘그거 안 해도 되겠다’ 이거다. 그러니까 재벌의 영향하에 있는 언론이나 지식인들이 맞장구치는 것이고. 오늘 신문을 보니까 보수단체에서 “경제민주화는 공산주의”라는 내용의 광고를 냈던데, 이런 이야기가 앞으로 계속 나올 것이다. 김무성이 안철수를 두고 마르크시즘이라고 하지 않았나. 그런 논리가 막 나올 것이다. 민주당도 안보파에 미리 항복한 측면이 있다. 남북관계를 이슈화하지 못한다는 건 백기를 든 것이나 마찬가지다. 결국 천안함으로 남북관계가 막혔다. 그런데 정부 발표대로라면 북한에 이순신 장군을 능가하는 명장이 있다는 것이 아닌가. 가 열심히 쓰지만, 결국 미리 설치한 기뢰가 터졌을 가능성이 제일 높아 보인다. 그런데 밤낮으로 조갑제니 서정갑이니 시청 앞에서 데모하고 말이지. 기가 죽은 거다. 후보 단일화 토론에서 금강산 문제가 잠깐 언급됐지만 그것으론 약하다. 물론 남북관계를 제1이슈로 하자는 건 아니다. 중요한 건 역시 양극화요, 부자 정권이다. 하지만 사이드 이슈라도 남북관계 문제를 내세울 수 있어야 한다. 그런데 그것을 못한다. 전부 겁에 질려 있다.

이번 대선에선 노동 문제 역시 실종됐다는 지적이 많다.

그렇다. 노동 문제는 결국 재벌 문제다. 월가를 점령한 99%의 시위대를 보라. 왜 원내 투쟁과 대선 후보를 통해 그것을 이슈화하지 못하는가. 심각한 문제다. 김종인의 우려도 결국 그것이었다. ‘이렇게 가면 박근혜는 위험하다, 경제민주화를 하지 못하면 박근혜는 불만을 가진 99%에게 당할 수밖에 없다’는 거다. 김종인마저 양극화에 의한 99%의 반란을 우려했다는 이야기다. 그런데 박근혜가 계산해보니 그러면 자신을 지지하는 보수세력에 문제가 생길 수 있다고 봤다. 그러니 김종인을 내치고 말았지. 박근혜씨가 이용만 해먹은 것이다. 김종인에게 명예퇴진도 권고했지만 결국 이렇게 됐다.

최근 김종인 새누리당 국민행복추진위원장이 라는 책을 냈다. 하지만 책에서는 박 후보를 한 번도 언급하지 않았다.

김종인은 책으로 답하고 만 것이라고 봐야지. ‘내 대답은 이거다’라는 식으로. 책을 통해 자신의 입장을 공개적으로 밝힌 것이니 그나마 다행이라고 본다.

 

김종인이 책으로 ‘내 대답은 이거다’ 한 것진보정치의 앞날도 관건이다. 통합진보당 사태 이후 진보정당들은 아예 ‘논외’가 돼버렸다.

기로다. 진보정당이 독자적 정당으로 유지될 수 있느냐, 아니면 미국처럼 민주당의 진보 분파로 변신할 것인가. 그런데 진보정당 당수까지 했던 문성현이 문재인 캠프에 갔다. 상징적 의미가 있다. 미국민주당처럼 하나의 정책 블록을 이룰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다.

글 송호균 기자 uknow@hani.co.kr사진 탁기형 선임기자 khta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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