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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기업은 이기기만 한다

농심 횡포에 처제·동서 아파트까지 압류당한 김진택씨, 25억 떼먹은 삼성 편들어준 공정위에 가슴 멍든 반성오씨
등록 2012-11-23 16:48 수정 2020-05-03 04:27

11월18일, 서울 마포구 망원·월드컵시장 상인들이 천막농성을 시작한 지 100일째다. 8월10일 상인들은 ‘합정동 홈플러스 결사반대’라는 글귀가 적힌 연두색 ‘투쟁조끼’를 입고 합정역 옆 주상복합건물 앞에 천막을 쳤다. ‘홈플러스의 탐욕’에 맞서려는 마지막 수단이었다.

농심의 불공정 행위를 고발한 김진택씨가 지난 11월15일 서울 마포구 합정동에서 팻말을 들고 시위를 하고 있다. 그는 농심 대리점을 열고 새벽 4시부터 밤 9시까지 뛰어다녔지만 큰아들의 대학 등록금을 마련할 수 없었다(왼쪽). 27년간 한진건업을 이끈 반성오씨는 2004년 삼성엔지니어링과 하도급 계약을 맺었다가 공사대금을 받지 못해 부도가 났다. 공정거래위원회와 검찰, 법원에 탄원했지만 대재벌의 거대한 힘만 확인했다. 오른쪽은 2006년 4월5일 대·중소기업 상생협의회가 출범했을 때 반성오(가운데)씨가 참석한 모습. 김명진 기자, 이종근 기자

농심의 불공정 행위를 고발한 김진택씨가 지난 11월15일 서울 마포구 합정동에서 팻말을 들고 시위를 하고 있다. 그는 농심 대리점을 열고 새벽 4시부터 밤 9시까지 뛰어다녔지만 큰아들의 대학 등록금을 마련할 수 없었다(왼쪽). 27년간 한진건업을 이끈 반성오씨는 2004년 삼성엔지니어링과 하도급 계약을 맺었다가 공사대금을 받지 못해 부도가 났다. 공정거래위원회와 검찰, 법원에 탄원했지만 대재벌의 거대한 힘만 확인했다. 오른쪽은 2006년 4월5일 대·중소기업 상생협의회가 출범했을 때 반성오(가운데)씨가 참석한 모습. 김명진 기자, 이종근 기자

국내 매출 1위 매장과 1.5km 거리

망원시장에서 1.5km 떨어진 상암동 월드컵경기장에는 홈플러스 월드컵점이 있다. 국내 매출 1위 매장이다. 기업형슈퍼마켓(SSM)인 홈플러스익스프레스도 망원역과 이웃 동네인 상암동과 연남동에 매장을 두고 있다. 그런데도 망원시장과 불과 670m밖에 안 떨어진 합정역에 또다시 홈플러스 합정점의 터를 닦았다. 8월 개점이 목표였다. 마포구와 서울시의회가 입점 철회를 결의하고 중소기업청이 개점을 일시 정지하라고 권고했다. 지역주민 1만7천 명도 입점 반대 서명에 동참했다. 지난 9월23일 문재인 민주통합당 대선 후보가 망원시장을 찾아왔다. “대형마트를 신고제에서 허가제로 바꾸고 이미 들어선 대형마트의 영업시간과 품목을 제한하겠다.” 홈플러스 합정점이 ‘경제민주화의 상징’으로 떠오른 것이다.

대형 유통업체는 꿈쩍하지 않는다. 홈플러스는 10월31일 중기청에 ‘합정점 오픈 알림’이라는 제목의 공문을 보냈다. “수차례 협상을 진행하는 등 상생 방안을 찾고자 노력했지만 상인들은 적극적으로 협상에 임하지 않고 천막농성을 펴고 있다. 더는 중기청의 사업 일시정지 권고에 의한 손실을 감당할 수 없게 됐다. (이러한 상황이 계속되면) 어쩔 수 없이 영업을 개시해야 한다는 점을 알려드린다.” 11월15일 발족한 유통산업발전협의회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대형 유통업체는 이 자리에서 인구 30만 명 미만의 시·군 지역에는 대형마트 출점을 자제하고 평일에 월 2회 자율적으로 휴무하겠다고 합의했다. 상생을 위한 첫발이라고 했다. 하지만 이미 투자가 이뤄진 점포는 그 대상에서 제외했다. 어떤 일이 있어도 홈플러스 합정점은 포기할 수 없다는 선언이다.

김진택(49)씨는 “선거 바람이 지나갈 때까지 잠시 숨을 고를 뿐”이라고 말했다. 지난 3년간 대기업의 속살을 고통스럽게 경험한 뒤 그가 얻은 교훈이다. 김씨는 20대부터 건설업에서 잔뼈가 굵었다. 한때는 142m²(43평) 아파트에 살며 에쿠스를 몰던 중소기업 사장이었다. 연매출이 수백억원에, 순수익도 수십억원이었다. 서울 강북구 미아동에 건설하던 상가빌딩이 제대로 분양되지 않아 한순간에 나락으로 떨어졌다. 유동성 위기에 내몰린 회사는 부도나고 김씨는 부정수표단속법 위반으로 감옥살이를 했다. “일확천금을 좇는 건설업에서 손을 떼자”고 그는 다짐했다.

몸은 고달파도 마음이 편한 일을 찾아나섰다. 새벽 4시부터 밤 9시까지 일하더라도 월급을 꼬박꼬박 집으로 가져갈 수 있는 일 말이다. 농심 대리점(특약점)이 눈에 들어왔다. 대리점은 농심 제품을 본사에서 공급받아 동네 슈퍼 같은 소매점에 납품하는 개인사업이다. 농심 본사에 물었더니 연매출이 25억∼30억원이고 마진율은 5∼6%라고 했다. 직원 2∼3명을 데리고 일해도 아이들을 키울 수 있을 것 같았다. 가진 돈에 빌린 돈까지 합쳐 3억원을 마련했다. 일부는 처제와 동서가 보증을 섰다.

 

농심에서 신라면을 40개들이 박스당 2만3012원에 들여와 슈퍼에는 2만2200원에 판다. 그런데도 대리점이 신라면 등을 취급하는 이유는 그러지 않으면 본사나 슈퍼가 거래를 끊기 때문이다.
소매점 납품가보다 싸게 넘기는 농심 본사

2010년 9월, 김씨는 서울 노원구에 농심대리점을 열었다. 새벽부터 밤까지 열심히 일하는데도 첫 달에 1600만원의 적자가 났다. 경험이 부족해서라고 여겼다. 적자는 조금씩 줄었지만 흑자는 나지 않았다. 월급은커녕 빚만 자꾸 쌓여갔다. 급기야 대학생이된 큰아들의 등록금을 낼 수가 없었다. 아들에게 군대에 가라고 권했다. “감옥에서도 아이들 공부는 시켰는데….” 눈시울이 붉어진 채 김씨는 말을 잇지 못했다. 답답한 마음에 이웃 대리점 주인에게 상담했다. 놀랍게도 같은 고통을 겪고 있었다.

대리점 600곳 가운데 200곳이 이심전심이었다. 핵심은 대리점이 신라면 등을 본사에서 들여온 값보다 싸게 슈퍼에 넘기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예를 들면 이렇다. 본사에서 신라면을 40개들이 박스당 2만3012원에 들어와 슈퍼에는 2만2200원에 판다. 한 박스당 800원이 손해다. 안성탕면은 박스당 2만460원에 들여와 2만500원에 슈퍼에 넘긴다. 라면 1개당 1원이 남는 꼴이다. 인건비나 대리점 운영비를 고려하면 역시 팔수록 손해다. 그런데도 대리점이 신라면 등을 취급하는 이유는 그걸 팔지 않으면 슈퍼가 거래를 끊기 때문이다. 라면시장 점유율을 60% 장악한 농심이 우월한 지위를 이용해 마진율을확 낮춘 것이다. 반면 대형마트나 SSM에는 라면 5박스당 1박스씩 ‘판촉물량’을 넣어준다고 했다.

손해를 보니 대리점은 본사에서 지급하는 ‘판매장려금’에 목을 맨다. 매출 목표의 80%를 채우면 매출액의 4.2%를 장려금으로 되돌려준다. 장려금이 다른 업체의 절반 수준인데다 정상적인 거래로는 달성하기도 어렵다. 또 특정 제품의 매출을 강제로 할당하기도 했다. 결국 대리점은 소화하지 못한 물량을 다시 헐값으로 ‘땡처리’ 한다. 빚은 자꾸 불어날 수밖에 없다.

그런데도 대리점은 왜 문을 닫지 못할까? 김씨는 “카드 돌려막기와 비슷하다”고 했다. “대리점을 그만두면 밀린 돈이 한꺼번에 쏟아진다. 수천만원을 갚아야 하고, 갚지 못하면 경매 절차에 들어간다.” 김씨와 뜻을 같이하면서도 다른 대리점 주인들이 본사에 당당히 맞서지 못하는 이유다.

농심은 김씨가 예상하던 절차를 밟고 있다. 6월17일 김씨에게 일방적으로 계약 해지를 통보했다. 김씨가 인터넷상에 허위 사실을 유포해 농심의 명예를 훼손했다는 이유에서다. 물품 공급은 중단됐고 빚 독촉이 시작됐다. 농심은 제품을 공급하기에 앞서 대리점 주인이 우리은행에서 신용대출금을 받게 한다. 그리고 대리점 계약이 해지되면 은행이 그 대출금을 회수한다.

6500만원을 갚지 못한 김씨는 집이 압류됐다. 보증을 섰던 처제와 동서의 아파트도 같은 상황이다. “11월29일까지 해결하지 못하면 경매에 들어간다고 통보해왔다. 내가 왜 이렇게 살아야 하는지, 밤잠을 설치고 있다.”

김씨는 공정거래위원회에 희망을 품고 있다. 그는 지난 7월 농심의공정거래법 위반 행위에 대한 신고서를 공정위에 제출했다. 주요 내용은 △일방적 매출 목표 부과 △거래 조건 차별 △일방적 계약 해지와 재계약 거부 △근거 없는 정산금 독촉 등이다. 반면 농심은 “판매장려금은 자율적인 선택이고, 대리점과 SSM을 차별하지 않는다”며 “담보도 제품을 받아가고 대금을 지급하지 않아 묶어둔 것뿐”이라고 반박했다. 김씨는 “공정위의 결정이 나오면 소송이든 뭐든 해볼 생각”이라고 말했다.

한때 반성오(67)씨도 공정위에 기대를 걸었다. 하지만 이제는 때리는 삼성보다 말리는 공정위와 검찰, 법원의 처사가 더 밉다. 건설설비 공사업체인 한진건업을 27년간 운영하던 반씨는 2004년 부도를 맞았다. 삼성엔지니어링과 하도급 계약을 맺었다가 공사대금을 제때 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공정위와 검찰, 법원을 쫓아다녔지만 대재벌이 대한민국 사회를 장악한 모습에 절망만 깊어졌다.

 

“대기업 부당행위를 제재할 수 있는 수단은 지금도 막강하다. 하지만 재벌 편에 서서 애써 눈감는다.”
-삼성에 25억원 떼인 반성오씨
공사 발주팀도 50억원 인정한 자료 있는데…
망원·월드컵시장 상인들이 지난 11월15일 서울 마포구 창전동에서 열린 ‘중소상인 살리기 국민대회’에 참여해 국회로 행진하려 하자 경찰이 제지하고 있다. 홈플러스 합정점 개점에 반대하는 지역 상인들은 11월 18일 합정역 옆 주상복합 건물 앞에서 100일째 천막농성을 이어가고 있다.김명진 기자

망원·월드컵시장 상인들이 지난 11월15일 서울 마포구 창전동에서 열린 ‘중소상인 살리기 국민대회’에 참여해 국회로 행진하려 하자 경찰이 제지하고 있다. 홈플러스 합정점 개점에 반대하는 지역 상인들은 11월 18일 합정역 옆 주상복합 건물 앞에서 100일째 천막농성을 이어가고 있다.김명진 기자

반씨는 2004년 1월 삼성전기 부산공장 신축공사를 삼성으로부터 하도급 계약을 받았다. 2004년 8월1일 공사를 끝마쳐 59억2천만원의 공사비를 청구했다. 그러나 삼성은 계약서 이면에 불리한 특약 조항을 넣은 뒤 공사대금 정산금을 34억7천만원밖에 줄 수 없다고 했다. 우월적 지위를 이용한 횡포였다. 이런 하도급 계약은 공정위 지침이나 대법원 판결에도 어긋났다. 더구나 공사 때 삼성엔지니어링의 본부장은 한진건업에 보낸 문서에서 공사비가 42억원이라고 밝혔다. 삼성 본사 발주팀에서도 50억원 정도라고 인정한 사실이 드러났다. 발주팀이 자기네들끼리 보려고 계산했는데, 실수로 반씨에게도 전자우편이 전송된 것이다. 그러나 공사가 끝난 뒤 삼성은 돌변했다. “신고든 소송이든 할 테면 하라”고 큰소리쳤다.

그때까지 반씨는 대한민국 공권력을 신뢰했다. 먼저 공정위에 불공정 하도급피해 사례로 신고했다. 공정위는 무혐의 처리했다. 객관적 자료가 명백한데도 말이다. 그는 공정위의 담당 공무원 4명을 직무유기 혐의로 검찰에 고발했다. 법정싸움도 시작했다. 삼성엔지니어링을 상대로 공사대금 차액 24억5천만원을 돌려달라는 거였다. 검찰은 ‘각하’ 처분했다. 항고·재항고, 감사·재감사 등을 다거쳤지만 결론은 바뀌지 않았다.

다만 법원은 일부 승소 판결했다. 공사대금 9억2천만원과 지연이자 등 15억9천만원을 삼성이 추가로 지급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하지만 반씨는 상소했다. 삼성이 스스로 인정한 금액에도 못 미치고 지연이자도 6%로 계산돼 하도급법(25%)에 어긋나서다. ‘달걀로 바위 치기’라며 가족도 만류했지만 그는 포기하지 않았다. 누구든 언젠가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했다.

2009년 12월 대법원은 원심을 그대로 확정했다. 소송이 시작된지 4년 만이었다. 한진건업은 폐업했고, 반씨는 깊은 화병을 얻었다. 불면증과 우울증으로 인한 합병증으로 고통스러운 나날을 보내고 있다. 김용원 변호사는 책 에서 반씨 사건을 이렇게 소개했다. “삼성은 반성오 사장을 짓밟았다. 아니, 이나라의 판사들이 그를 짓밟았다. 아무튼 삼성이 이겼다. 아니, 삼성은 늘 이긴다. 그 때문에 반성오 사장은 평생 일궈온 사업을 잃었다. 그는 건강도 잃었다. 그는 삼성을 더 증오해야 할까, 아니면 판사들을 더 증오해야 할까.”

 

제재 수단은 지금도 막강하다

반씨는 지난 9월 피를 토하는 심정으로 썼다는 체험 수기에서 이렇게 밝혔다. 수기의 제목은 이다. “대기업 부당행위를 제재할 수 있는 수단은 지금도 막강하다. 하지만 재벌 편에 서서 애써 눈감는다. 그들은 삼성의 편을 들어 사건을 잘못 처리해도 책임을 지지 않는다는 확신이 있는 것 같다.” 삼성의 불공정에 맞서려면 삼성 편에서 그릇된 판단을 일삼는 공권력을 먼저 바로 세워야한다는 지적이다. 그는 “중소기업의 고통을 잘못 처리하면 공정위 공무원과 판검사에게 책임을 지울 수 있는 감찰제도가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정은주 기자 eju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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