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트 민주화’ 세대로 불리는 지금의 20대에게 ‘박정희와 그의 시대’는 어떤 모습일까. 1987년 민주화 이후에 태어난 이 세대에게 박정희(시대)는 교과서나 부모 세대의 전언 속에 존재하는 아득한 이름이기 십상이다. 마치 486세대에게 한국전쟁과 자유당 시절이 그랬던 것처럼.
“독재 안 했으면 좋았을 걸”
박정희(시대)에 대한 이 세대의 인식을 엿볼 수 있는 지표는 지난 9월 서울대 통일평화연구원이 발표한 연례 의식조사다. 다소 의외인 대목은 이 세대에서도 10명 가운데 6~7명은 박정희를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있다는 점이다(호감도 65.1%). 30대 이상 연령층에서 보이는 호감도(30대 71.6%, 40대 85.3%, 50대 86.8%)에 견줘 상대적으로 낮지만, 같은 20대 내부의 부정적 평가층(23.9%)을 압도하는 수치다. 왜 그럴까. 20대들에게 직접 물었다.
충청권의 한 사립대 재학생인 손성민(25)씨는 “안 좋은 평가도 있지만, 끼니 걱정하던 국민들 배곯지 않게 해준 지도자가 박정희 아니냐”고 했다. 그가 박정희란 이름에서 가장 먼저 떠올린 것도 ‘새마을운동’과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이었다. ‘5·16을 아느냐’는 물음엔 “들어는 봤지만 숫자로 된 이름은 비슷한 게 워낙 많아 헛갈린다”며 즉답을 미뤘다.
박정희 시대의 헌정 파괴와 인권 탄압에 대해선 그 역시 “있어선 안 되는 것이었다”며 부정적 평가를 내렸다. 하지만 “그것만 없었어도 더 많은 국민들에게 좋은 평가를 받았을 것”이란 안타까움도 숨기지 않았다.
서울의 한 사립대 이공 계열에 다니는 송인수(26)씨 반응은 손씨와 사뭇 달랐다. “박정희 시대 하면, 독재와 인권 탄압이 가장 먼저 떠오른다”던 그는 “고등학교 역사 시간에도 배웠지만 이보다 큰 영향을 준 것은 당시 대학을 다닌 아버지의 가르침”이라고 했다.
박정희의 업적으로 꼽히는 경제성장에 대해서도 송씨의 평가가 인색했다. “성장은 대통령 혼자 만들어낸 게 아니라 국민이 함께 일군 것”이란 이유에서다. 그는 “자주 방문하는 인터넷 동호회에서 이 문제로 토론을 한 적이 있다”며 “경제개발계획이 박정희 이전 정권에 이미 수립돼 있었다는 이야기를 듣고선 이런 확신이 굳어졌다”고 했다. 10월 유신에 대해선 “지금은 상상할 수 없는 일들이 긴급조치란 이름 아래 행해진 것으로 안다”며 “내가 그 시절에 있었으면 일주일도 견디기 힘들었을 것”이라고 했다.
올해 초 대학을 졸업한 뒤 서울의 한 언론사에서 편집 아르바이트를 하는 김은솔(23)씨는 앞의 두 사람과는 또 달랐다. 그는 대학을 다닐 때까지도 현대사나 정치에 무신경했지만 언론사 아르바이트를 하며 관심을 키워온 경우였다. 흥미로운 대목은 김씨가 박정희 시대에 갖게 된 관심의 ‘8할’은 대선에 출마한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 때문이었다는 점이다. “아버지 박정희 문제로 논란을 빚으니 대체 그가 어떤 인물인지 궁금했다”는 김씨는 인터넷 게시물과 트위터를 통해 궁금증을 채워왔다고 했다.
이런 그에게 박정희에 대한 평가는 그다지 우호적이지 않다. 경제를 살렸으니 독재는 눈감아줄 수 있다는 논리도 수긍할 수 없다고 했다. “이만큼 살게 된 데 아무리 기여했어도, 국가 지도자가 국민의 인권을 탄압하는 것은 상식적으로 결코 용납될 수 없다. 공은 공이고 과는 과 아닌가.”
20대 박근혜 지지, 30대와 함께 가장 낮아
이런 전반의 분위기를 반영한 탓일까. 20대는 박정희의 딸인 박근혜 후보에 대한 호감도가 30대와 더불어 가장 낮다. 지난 10월7일치 조사를 보면, 이 연령층에서 안철수·박근혜 후보의 지지율은 65.6% 대 25.5%였다.
이세영 기자 mona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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