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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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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장학회의 근원을 생각한다

등록 2012-10-09 16:54 수정 2020-05-03 04:26
이강택 언론노조 위원장(왼쪽)과 이호진 <부산일보> 노조위원장 등이 9월25일 서울 중구 정동 정수장학회 사무실 앞에서 <부산일보> 편집권 독립 등 요구사항을 전하겠다며 최필립 이사장과의 면담을 요구하고 있다. 2시간여 만에야 상근 직원이 서류를 전달받았다. 연합

이강택 언론노조 위원장(왼쪽)과 이호진 <부산일보> 노조위원장 등이 9월25일 서울 중구 정동 정수장학회 사무실 앞에서 <부산일보> 편집권 독립 등 요구사항을 전하겠다며 최필립 이사장과의 면담을 요구하고 있다. 2시간여 만에야 상근 직원이 서류를 전달받았다. 연합

음수사원(飮水思源). 물을 마시며 그 근원을 생각한다는 뜻이다. 박정희 전 대통령이 1967년 ‘5·16장학회’의 장학생 모임인 ‘청오회’에 써준 휘호다. 5·16장학회는 박 전 대통령이 1962년 고 김지태씨의 부일장학회를 강제로 빼앗아 만들었다. 1982년 박 전 대통령과 부인 육영수씨의 이름을 한 글자씩 딴 정수장학회로 개명됐다.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 후보는 1995~2005년 정수장학회 이사장을 지냈다. 그의 뒤를 이은 최필립 현 이사장은 박 전 대통령을 ‘임금님’이라고 부른다. ‘큰영애(큰딸) 박근혜’의 공보비서관 출신이다. 정수장학회는 지분 100%, MBC 지분 30%, 서울 중구 정동 경향신문사 땅 2385㎡(723평), 예금 238여억원(2011년 기준), 고급 주상복합 아파트 한 채(23여억원)를 갖고 있다.

강탈한 것은 장학회이자 언론사

노동조합은 9월10일 상경해 보름여 동안 서울 정동 정수장학회 사무실 앞 등지에서 농성을 했다. 이정호 편집국장은 한국프레스센터 앞 길바닥에 앉아 ‘박근혜는 정수장학회 해체, 즉각 이행하라’고 쓴 팻말을 들고 농성을 했다. 지난해 11월30일 경영진이 정수장학회를 비판하는 기사를 싣지 않으려 아예 신문 발행을 중단한 충격적인 사건 이후 10개월이 지났지만, 사태의 해결 기미는 보이지 않는다. 노조위원장 해고, 편집국장 대기발령, 정치부장·사회부장 정직 6개월 등 중징계가 이어졌다. 는 지분 100%를 소유한 정수장학회의 입김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처지다. 이호진 노조위원장은 “는 언론사다. 정수장학회는 유력 대선 후보인 박근혜 후보와 직접적으로 관계가 있다. 언론으로서의 존립을 위해 와 정수장학회의 관계가 새롭게 정립돼야 한다”고 말했다.

박 후보는 정수장학회에 대해 “나와 관계없는 일”이라는 태도를 되풀이하고 있다. 7월10일 대선 출마 선언 기자회견에서 이렇게 말했다. “정수장학회는 노무현 대통령이 바로잡아야 한다며 5년 내내 힘을 기울였다. 그때 잘못이 있거나 안 된 것이 있다면 그 정권에서 해결됐을 텐데, 왜 지금 저한테 하라고 하는지 모르겠다.” 박 후보는 한나라당 대표 시절인 2005년 국가정보원 과거사위원회가 부일장학회 강제 헌납 의혹을 조사하며 정치권에서 논란이 일자 정수장학회 이사장직에서 물러났다. 그 이후로는 ‘물러났으니 그만’이라는 태도다. 지난 2월 법원은 고 김지태씨 유족 일부가 정수장학회를 상대로 낸 주식반환소송에서 “과거 군사정부에 의해 자행된 강압적인 위법행위로 김씨가 주식을 증여한 점이 인정된다”고 밝혔다. 불법행위로 인한 손해배상 시효가 지났다는 이유로 반환 청구는 기각됐지만, 강제 헌납 사실은 인정한 것이다.

정수장학회에 대한 박 후보의 태도가 문제되는 것은 역사인식 때문만은 아니다. 사태에서 보듯, 정수장학회 논란에는 언론 장악, 언론의 공정성 문제가 중첩돼 있다. 박정희 정권이 강탈한 것은 장학회라기보다는 언론사였다. 2005년 국가정보원 과거사위는 “부일장학회 헌납 의혹 사건은 당시 최고 권력자였던 박정희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의 언론 장악 의도에 의해 발생한 것으로, 이는 자유민주주의의 기본 질서의 핵심인 언론 자유와 사유재산권이 최고 권력자의 자의와 중앙정보부에 의해 중대하게 침해당한 사건”이라고 규정했다.

지원도 대구·경북 지역에 편중돼

당시 민간위원으로 활동한 한홍구 성공회대 교수는 “박정희가 돈이 탐났다면 재벌을 빼앗았을 것이다. 왜 언론사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은 1960년 4·19 혁명 때 와 부산MBC의 혁명 생중계에 있다. 박정희는 당시 부산 지역 계엄사령관이었고, 이걸 보고 언론 장악의 필요성을 절감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고 김지태씨의 유족들은 경영진의 편집권 개입을 막기 위해서라도 박근혜 후보와 가까운 사람이 아니라, 사회적 명망가 중심으로 장학회를 새로 꾸리자고 제안하고 있다.

강탈이 아니고 관계가 없다고 하지만, 대선 후보들에 대한 검증이 본격화하자 박 후보와 정수장학회의 관계, 정수장학회의 정치적 편향성에 대한 문제제기가 잇따르고 있다.

야당 의원들은 박 후보가 이사장 재임 10여 년 동안 받은 보수가 연 1억~2억3520만원에 달한 사실도 집중 부각시키고 있다. 최 이사장과 장학회 사무처장 등이 박 후보에게 고액의 정치후원금을 낸 사실도 밝혀졌다. 민병두 민주통합당 의원이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최 이사장은 2008년과 2010년 개인 최대 한도인 500만원씩을 냈고, 2008년에는 부인과 세 자녀, 장학회 사무처장 등도 500만원씩 후원했다. 김경협 민주당 의원은 9월11일 국회 대정부질문에서 “정수장학회가 2002~2011년 16개 시도 교육청을 통해 고등학생들에게 지급한 장학금의 22%가 대구·경북에 몰려 있다”고 밝혔다. 대구·경북의 인구 비율이 10% 수준인 것에 견주면 장학금 지급이 박 후보의 출신 지역에 편중됐다는 지적이다. ‘상청회’란 이름도 선거철마다 거론된다. 정수장학회 장학생들은 대학에 다닐 때는 청오회, 졸업한 뒤에는 상청회란 모임에 자동으로 가입되는데, 이 모임이 박 후보의 외곽 지지조직으로 활용되는 게 아니냐는 것이다. 상청회는 회원이 3만8천여 명에 이르며, 김기춘·현경대 전 한나라당 의원 등 박 후보와 가까운 이들이 주도적으로 활동하고 있다. 상청회는 동창회 모임일 뿐이라고 반박한다. 10월5일 시작된 국회 국정감사에서도 최 이사장 등 정수장학회 관련자들의 증인 채택 문제가 쟁점으로 떠올랐다.

“정수장학회는 박정희와 육영수 이름을 내걸었지만, 개인 재산은 한 푼도 출연되지 않았다. 납치범이 몸값을 뜯어내 그 돈으로 장학금을 준다는 건 학생들을 모욕하는 일이다. 음수사원. 박정희는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이런 휘호를 남긴 것인가.” (한홍구 교수, 7월10일 배재정 민주당 의원 주최 특강에서)

최측근 앉혀놓고 나는 모른다?

“정수장학회 기사가 나가는 날이면 이사진에서 편집국에 항의하는 전화를 합니다. 박근혜 (전) 대표가 유력 대선 후보가 되면서 가 겪는 혼란과 부조리한 상황입니다. 그런데도 박 대표는 나와 상관없다고만 합니다. 최측근인 최필립 이사장을 앉혀 놓고 나는 손 뗐으니 모르는 일이라고만 합니다. 부모님 이름을 딴 장학회가 편집권 유린에 앞장서고 있는데 가만히 있는 게 책임지는 정치인의 자세입니까. 박 대표는 정수장학회에서 정치 후원금 받고 장학사업을 통해 우호 기반의 지지도 받고 있습니다. 대통령이 되시겠다며 국민의 꿈이 이뤄지도록 헌신하겠다고 했습니다. 국민의 뜻을 전하는 언론의 입을 막고 그 뜻을 이루실 수 있겠습니까.”(9월14일 기자들이 박근혜 후보에 드리는 동영상 편지)

이지은 기자 jieun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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