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누리당 박근혜 후보가 선호하는 최상의 시나리오는 물론 ‘지금 이대로’다. 대선 정국에 공식 등판한 안철수 후보와 경선 과정을 거치며 만만치 않은 상승세를 보인 민주통합당 문재인 후보가 끝내 단일화에 실패하고 박근혜·문재인·안철수의 3자 구도로 대선을 치른다면 넉넉한 승리를 장담할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박근혜 후보가 정말로 원하는 상대방은 어느 한쪽이 아니라 두 사람 모두라는 이야기다.
박 후보 지지층 사이에서 일어난 ‘역선택’
황우여 새누리당 대표가 비교적 솔직하게 표현했다. 9월20일 충청 지역을 방문한 황 대표는 “(안철수 후보는) 국민들에게 의구심을 남기는 정치 행보와 단일화 논의를 그만둬야 한다”며 “당당히 세 분이 중심이 돼 대선을 마쳐주셨으면 하는 것이 새누리당의 바람”이라고 말했다. 이혜훈 최고위원도 “본인(안 후보)이 말하는 정치 선진화가 막판 단일화라는 정치적 술수에 걸려 넘어지지 않도록 국민의 생각을 경청해주기 바란다”고 했다.
하지만 새누리당의 뜻대로 현재의 3자 구도가 끝까지 이어질지는 미지수다. 결국 야권 단일화가 이뤄진다면 어떨까. 박 후보의 핵심 측근인 김재원 의원은 “당연히 문재인 후보가 훨씬 더 어려운 상대”라고 잘라 말한다. 그는 “실질적으로 문재인 후보는 제1 야당 진영의 대표자”라며 “민주통합당 경선을 치르며 문재인으로 충분히 대선을 치를 수 있다는 믿음도 심어줬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지지층의 여론은 다르다. 한국갤럽이 9월17~19일 전국 성인 968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야권 단일 후보 지지도에서 문재인 후보가 50%를 기록했지만, 새누리당 지지층에서 문 후보에 대한 선호도는 60%로 10%포인트 상승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박 후보의 한 측근은 “상대방으로 누구를 선호한다고 이야기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며 조심스러운 반응을 보이면서도 “지지층 차원에서 역선택이 나타나고 있는 건 사실”이라고 했다. “문재인 후보가 더 어려운 상대”라는 공개적인 언급과 캠프 전반의 속내 사이에는 적지 않은 괴리가 있다는 얘기다.
박 후보 쪽은 참여정부의 핵심이던 문재인 후보에 대한 공격 포인트가 비교적 뚜렷하다고 본다. 상대적으로 중도·무당파 지지층이 두꺼운 안철수 후보로 단일화가 된다면 그 확장력의 크기를 가늠하기 어렵다는 위기감도 작용하고 있다. 9월19일 공식 출마 선언 직후 공세의 화살이 안철수 후보 쪽으로 수렴되는 흐름을 보이는 것도 마찬가지 맥락이다. 박근혜 후보는 같은 날 “정치 생활을 15년 했는데 어떤 경우든 그 분야에 전문가가 된다거나 내공을 쌓으려면 최소한 10년은 필요하다”고 견제구를 던졌다. 박 후보가 9월20일 양대 포털업체인 네이버와 다음 사무실을 방문한 것을 두고도 정보기술 분야에서 잔뼈가 굵은 안 후보를 다분히 의식한 행보가 아니냐는 해석이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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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이 변곡점? 박 “제가 알아서 적당한 때…”
김종인 새누리당 국민행복추진위원장은 9월20일 인터뷰에서 “(안철수 후보는) 경제민주화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사람”이라고 맹공을 퍼부었다. 전날 출마 선언에서 안철수 후보가 “새로운 경제 모델이 필요하다”며 “지금 논의되고 있는 경제민주화와 복지는 성장동력과 결합하는 경제 혁신을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한 데 대한 반박이다. 김 위원장은 “경제민주화가 성장과 상충되는 것처럼 설명하는 자체가 그 사람의 수준이 그 정도밖에 안 된다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꿈나라 같은 소리를 하고 있다”고까지 했다. 이한구 원내대표도 “이제는 간보기 전략을 그만두신 것 같은데 아직도 많은 국민들은 안철수 후보의 개인 의혹과 관련해 궁금해하는 것이 많다”고 비난했다. 그는 안 후보를 “정치판의 호객꾼”이라 지칭했고, 본격적인 논의를 앞두고 있는 야권의 단일화 흐름을 “짝짓기하는 정치쇼”로 폄하하기도 했다.
역동성 측면에서 본다면 유권자의 시선은 박근혜 후보 대신 문재인·안철수 후보에게 쏠려 있다. 박 후보 지지율은 정체 국면에 머물러 있다. 그의 대선 일정을 취재하는 기자들은 안철수 후보의 출마에 대한 생각이나 안 후보가 제안한 ‘3자 회동’ 등에 대한 반응을 주로 묻는다. “역사의 판단에 맡기자”는 수준의 역사관도 좀처럼 바뀔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여기에 홍사덕·송영선 전 의원이 불법 정치자금을 받았다는 의혹까지 제기됐다.
새누리당 내에선 9월24일로 예정된 박근혜 후보의 부산 방문이 변곡점이 될 것이라는 관측도 있다. 야권 유력 후보들의 출신지인 부산을 찾아 ‘박정희 시대’에 대한 전향적인 역사관과 측근, 친·인척 비리와 관련한 더욱 강력한 쇄신 방안 등을 내놓을 수도 있다는 기대섞인 전망이다. 앞서 가천대학교 특강을 앞두고도 비슷한 전망이 있었다. 하지만 박 후보는 아무런 언급을 하지 않았다. 대신 학교 쪽의 ‘학생 동원’ 논란만 불거졌다.
여전히 캠프와 측근들은 박 후보의 입만 바라보고 있다. 캠프 내부에서는 “대선 민심의 향방을 가를 한가위 연휴 전에 역사 문제에 대한 전향적 입장을 내놔야 한다”는 쪽과 “이미 여러 차례 사과한 만큼 더 이상 언급할 필요가 없다”는 목소리가 뒤엉켜 나오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새누리당의 한 고위 당직자는 “부산에서 어떤 언급을 할 것인지는 전적으로 박근혜 후보에게 달렸다”고 했다. 혼선을 우려한 박 후보는 “제가 알아서 적당한 때 쭉 한번 정리를 하려고 한다”고 9월21일 밝혔다. 부산을 방문한 시점 혹은 별도의 기자회견을 통해 ‘과거사 논란’의 수렁에서 빠져나오고 싶다는 의지를 피력한 것이다. 물론 그 진정성이 얼마나 받아들여질 것인지는 미지수다.
“지금처럼은 위험” vs “위기는 무슨 위기”
비교적 최근에 합류한 새누리당 안대희 정치쇄신특위 위원장은 언론 인터뷰에서 “지금과 같은 모습이라면 대선은 위험하다”며 “2004년 천막당사 때처럼 뼈를 깎는 쇄신이 없으면 연말에 좋은 결과를 얻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우려했다. 하지만 박근혜 후보 본인과 핵심 측근들의 인식은 달라 보인다. 박근혜 후보는 9월21일 경기도 성남에서 열린 새누리당 광역·기초의원 워크숍에서 “새누리당 내 위기감이 적지 않다”는 기자들의 질문에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고 묵묵부답으로 일관했다. 친박계의 한 핵심 인사는 “위기는 무슨 위기냐”며 “악재들이 이어진 것은 사실이지만 지지층은 견고하지 않으냐. 박근혜 후보에게 저력이 있기 때문”이라고 반박했다. 위기를 위기로 인식하지 못하는 불감증이 문제라는 우려가 끊이지 않는 까닭이다. ‘박근혜의 유일한 적은 박근혜’라는 지적이기도 하다.
송호균 기자 uknow@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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