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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없는 중도가 대통령을 만든다

등록 2012-08-21 16:07 수정 2020-05-03 04:26

중도는 없다. 정확하게 표현하자면 중도라는 세계관은 존재하지 않는다. 프레임 이론으로 이름을 날린 미국의 인지학자인 조지 레이코프는 스스로를 중도로 칭하는 유권자들을 “정치적 사고 활동의 영역에서 두 가지 다른 도덕 체계를 함께 사용하는 이중개념주의자”라고 규정했다. “경제적으로는 보수적이면서도 사회적으로는 진보적인 것, 진보적인 국내 정책과 보수적인 외교정책을 동시에 취하는 것은 별로 특이하거나 부자연스러운 일이 아니다. 정치적 이중개념주의자들은 평범하다. 그들 가운데는 단일 이념을 갖고 있다고 자신을 분류하는 사람들도 있다. 이중개념주의자를 중도주의자와 혼동해선 안 된다. 중도주의 세계관이란 결코 없으며, 진정한 중도파는 정말로 거의 없다.”

30~40%의 유권자가 “나는 중도다”

어쨌든 중도는 있다. 스스로를 중도라고 생각하는 유권자의 수는 점차 늘어나는 추세다. 한국리서치의 6월 여론조사에 따르면, 자신의 이념 성향을 ‘중도’라고 답한 응답자는 같은 기관의 1년 전 조사(38.9%)에 비해 3.5%포인트 늘어난 42.1%였다. 한국사회여론연구소(KSOI)가 6월29~30일 실시한 정기 여론조사에서는 36.1%의 응답자가 자신을 ‘중도’로 규정했다. 같은 기관의 한 달 뒤 여론조사에서도 중도층은 31.3%인 것으로 나타났다. 시점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전문가들은 대략 30~40%의 유권자 집단을 중도로 파악한다.

하나의 맥락 속에서 규정되지 않는 중도는 여러 얼굴을 갖는다. 정치에 무관심하며 투표에 참여하지 않는 계층도, 시점과 현안에 따라 지지하는 정당이나 후보자가 달라지는 교차투표자(스윙보터)도, 여야 어느 정당도 지지하지 않는 부동층이나 무당파층도 모두 중도라고 불린다. 한귀영 한겨레사회정책연구소 연구위원은 “여론조사에서 유권자들이 자신을 중도라고 답하는 것은 철학이나 가치에 의한 것이 아니라 진보와 보수의 중간이라는 상대적이고 주관적인 정치의식 때문”이라고 말했다.

정치에 아예 무관심한 층을 논외로 한다면, 2012년 대선을 앞둔 시점에 무당파층의 움직임은 그 어느 때보다 기민해 보인다. ‘안철수 현상’이라는 결집의 계기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이른바 ‘행동하는 무당파’다. 이슈와 가치, 인물의 대결이 한 점으로 수렴되는 대선에서 이들의 영향력은 절대적이다. 시사평론가 김종배씨는 “2002년 대선 당시 무당파층은 노무현·정몽준 단일화를 계기로 노무현 후보를 지지했고 2007년 대선에선 이명박 후보에게 쏠리는 등 일희일비하거나 언론과 여론의 쏠림에 따라 오락가락하는 메뚜기떼 같은 행태를 보인다”면서도 “플러스 1%면 당선이고 마이너스 1%면 낙선인 대선에서 이들의 존재가 중대한 변수로 작용할 것은 분명해 보인다”고 말했다.

김진석 인하대 교수(철학)는 저서 에서 중도층을 “더러운 주체”라고 썼다. “그들에게 전통적인 의미의 윤리적 정당성이나 정치적 진리가 부여되지는 않는다. 오히려 그들은 종종 구차스럽거나 뻔뻔한 행위를 한다. 삐딱하고 엉뚱하다. 그러나 그들은 동시에 세상의 우울과 상처와 허영과 불안과 판타지가 부딪치며 드러나는 표면이다. (중략) 이 중도적인 존재들이 윤리적으로 옳은 것은 아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정치적 실존은 인정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양극화 속에서 소외된 유권자”

최근의 ‘안철수 현상’과 맞물려 이들이 다시 주목받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이 최근 출간한 에서 밝힌 정책적 구상들이 중도적일까. 열광은 안철수 원장의 생각이 중도적이서가 아니라, 기존 정당 구조에서 자유롭기 때문에 나타난다. 정치권에 대한 누적된 실망이 전체의 3분의 1이 넘는 유권자들을 중도라는 무정형의 공간에 밀어넣고 있다는 이야기다.

자신을 중도로 여기는 유권자들의 이념 성향을 가늠하기는 쉽지 않다. 이내영 고려대 교수는 2011년 발표한 논문 ‘한국 사회 이념 갈등의 원인’에서 “국민들의 이념 성향은 중도로 통합되는 경향을 보이는 데 비해 정당 지도부를 구성하는 의원들은 이념적 양극화가 나타난다”며 “정치권이 국민들 사이의 이념적 분화를 반영하는 것 이상으로 이념 갈등을 증폭시키고 있다”고 짚었다.

도서출판 후마니타스의 박상훈 대표의 시각은 결이 조금 다르다. 그는 “유권자 분포는 오히려 지난 10년 동안 왼쪽으로 서서히 움직였다”고 진단한다. “그건 불평등이 심해졌고 빈곤이나 노동문제가 악화됐기 때문이다. 그런데 정당의 정치 언어와 행태는 양극화됐다. 양당화가 아니라 양쪽이 배타적으로 치닫는 양극화다. 그러니까 이들은 고전적인 의미의 중도가 아니라, 정치적 양극화에 의해 소외된 유권자라고 할 수 있다. 진보나 개혁세력이 포괄하지 못하는, 소외된 불만의 유권자라는 흐름이 안철수라는 비정치적인 정치세력 쪽으로 몰려버린 거다.”

그러나 중도층을 바라보는 정치권의 논의는 ‘집토끼·산토끼’ 수준의 정치공학을 여전히 벗어나지 못한다. 보수의 ‘중도강화론’은 주로 위기의 순간에 제기됐다. 2008년 촛불집회 이후 ‘민생’을 강조하는 쪽으로 방향을 선회한 이명박 대통령이나, 4·11 총선 전 당명을 개정하고 복지와 경제민주화 담론을 제기한 박근혜 새누리당 경선 후보가 그런 사례들이다. 하지만 새누리당은 다시 역행하고 있다. 예상을 뛰어넘은 총선 승리를 안겼던 경제민주화·복지 담론의 수위 조절과 ‘보수 대연합론’이 골자다.

박근혜 경선 캠프의 최경환 총괄본부장은 8월16일 “경제민주화와 복지가 대선에서 굉장히 중요한 과제지만 그 두 가지 화두만 갖고 갈 수는 없다”며 “미래 비전과 일자리 담론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여기에 보수 대연합의 문제의식이 제기되는 등 논쟁은 내부의 노선 투쟁 양상으로까지 번지고 있다. 최 본부장은 “먼저 토대부터 단단히 하고 그다음 외연을 확대하는 것이 선거의 ABC”라고 말했다. 구체적으로는 보수 색채가 강한 김무성 전 원내대표의 합류와 새누리당 경선일(8월20일) 이후 김문수·임태희 후보 등 비박계 주자들을 끌어안는 방안이 거론되고 있다. 친이계 실세였던 이재오 의원을 영입해야 한다는 목소리까지 나온다. 홍사덕 공동선거대책위원장도 당의 기반인 보수층의 결집으로 1층을, 중도층을 포괄하는 외연 확장으로 2층을 지어야 한다는 이른바 ‘1층2층론’을 제기했다.

새누리당은 4·11 총선에서 승리한 뒤 ‘도로 한나라당’으로 회귀하려는 조짐을 보이고 있다. 사진 사진공동취재단

새누리당은 4·11 총선에서 승리한 뒤 ‘도로 한나라당’으로 회귀하려는 조짐을 보이고 있다. 사진 사진공동취재단

새누리 ‘1층2층론’과 민주당의 원칙 없는 널뛰기

반론도 만만찮다. 김종인 공동선대위원장은 “박근혜 후보가 대선 전에 경제민주화를 포기하면 일시적으로 이용하기 위해 경제민주화라는 이야기를 했다는 판단을 받게 된다”며 “그렇게 해서는 절대 대선에서 승리할 수 없다”고 반박했다. ‘김무성 영입론’을 중심으로 한 보수 대연합의 문제의식에 대해서도 부정적인 인식을 드러냈다. 중도 강화를 통해 외연을 확장하지 않으면 대선 승리는 어렵다는 판단에서다. 이상돈 정치발전위원은 홍사덕 위원장의 ‘1층2층론’과 관련해 “사람들이 거리를 다닐 때 1층을 보지 2층을 올려다보느냐”며 “우리가 확보해야 하는 또 다른 10%의 지지자가 공감할 수 있는 1층을 꾸려야 한다”고 선을 그었다.

박근혜 후보의 의중은 아직 정확히 확인되지 않고 있다. 박 후보는 보수 대연합과 관련한 기자들의 질문에 “무슨 이름을 붙이는 게 아니라 정치 지향점이 같고 추구하는 가치가 같은 분들과 같이할 수 있다”는 원론적인 답변만을 내놨다. 여당 내부에선 박 후보가 ‘보수 대연합’의 문제의식 쪽으로 기울어져 있는 게 아니냐는 관측도 적지 않다. 새누리당은 위기의 상황에서 중도를 외쳤다. 그리고 위기 이후에 다시 전통적 지지 기반인 보수로 회귀하는 모양새다. 오만이다.

반면 민주통합당은 최소한의 전략·전술도 없이 중도를 호명하는 ‘익숙한 오류’에 빠져 있다. ‘실용정당론’을 제기한 2004년 총선 직후의 정동영 당시 열린우리당 의장(위)이나 ‘뉴민주당 플랜’의 주역인 정세균 전 대표(아래), 김효석 전 의원의 사례는 어떤 교훈도 남기지 못한 걸까. 사진 한겨레21 윤운식, 한겨레 김봉규

반면 민주통합당은 최소한의 전략·전술도 없이 중도를 호명하는 ‘익숙한 오류’에 빠져 있다. ‘실용정당론’을 제기한 2004년 총선 직후의 정동영 당시 열린우리당 의장(위)이나 ‘뉴민주당 플랜’의 주역인 정세균 전 대표(아래), 김효석 전 의원의 사례는 어떤 교훈도 남기지 못한 걸까. 사진 한겨레21 윤운식, 한겨레 김봉규

반면 민주통합당의 중도 논쟁에선 그나마의 전략조차 찾아보기 어렵다. 그건 무능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 역풍으로 열린우리당이 유례없는 승리를 거둔 2004년 총선 직후에도 그랬다. 당시 정동영 의장은 총선 직후 연 당선자 워크숍에서 “이 시대는 이념정당이 아니라 실용정당, 민주정당을 원하고 있다”고 말하며 중도개혁 노선을 주장했다. 최근 그가 ‘담대한 진보’를 내세우며 민주당의 좌클릭을 주도적으로 제기하는 것을 고려하면 아이러니한 일이다. 2010년 6·2 지방선거를 전후로는 정세균 당시 대표를 중심으로 중도개혁 성향을 강화한 ‘뉴민주당 플랜’이 수립되고 폐기되는 과정을 거쳤다.

원칙 없는 널뛰기는 최근에도 이어진다. 7월 초 민주당의 싱크탱크인 민주정책연구원은 ‘2012년 정권교체 실현을 위한 민주당의 당면 과제와 전략적 구상’이라는 제목의 보고서를 발간했다. 보고서는 “민주당의 이념적 정체성은 진보적 지향성과 서민·중산층의 계층 대표성을 강화하고, 정책 노선의 유연성을 통해 중도 성향 유권자와 보수정당 경향 지지층을 견인하는 지지 기반 외연 확대 전략이 가장 효과적일 것으로 판단된다”고 제안했다. 이념은 진보를 지향하되 정책은 우클릭해야 한다는 의미다. 보고서는 “당의 정체성이 현저히 훼손되지 않는 범위 내에서 민심과 유리된 정책을 수정 및 보완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하기도 했다.

함정은 ‘중도층 유권자는 중도적인 정책과 후보자를 지지할 것’이라는 가설 속에 있다. 한귀영 연구위원은 “보수는 과거 한나라당과 현재의 새누리당이라는 상대적으로 견고한 정당 기반을 갖고 있지만, 민주당이나 진보정당은 사실상 사회적 기반을 상실했다”며 “그렇기 때문에 보수가 중도를 외칠 때는 외연 확대와 세력 확장에 긍정적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높지만 진보개혁 세력의 중도론은 공허하게 들릴 수밖에 없다”고 비판했다. 박상훈 대표도 “현재의 중도는 변화를 열망하지만 기존 정치권에 신뢰를 갖지 못하는 불만의 유권자”라고 전제한 뒤, “이 때문에 더 가운데로 가야 한다는 민주당 일각의 주장은 오류”라며 이렇게 지적한다. “인위적으로 무게중심을 이동시키면 중도층을 흡수할 수 있다는 것은 웃기는 논리다. 윤리적으로 볼 수 없는 정치 행위다. 야당은 야당다우면 된다. 동시에 일관성과 책임성을 구현하는 것이 먼저다. 그러면 시민들은 반응할 거다. 이런 (민주당식 중도) 논리가 정치를 투기로 전락시킨다. 그러니까 사람들이 정치에 화를 내고 소외감을 느끼는 거다.”

구경꾼을 끌어들이지 못하는 싸움꾼

같은 맥락에서 정치학자 샤츠슈나이더가 제시한 ‘싸움꾼·구경꾼’ 모델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그에 따르면 모든 정치적 싸움은 두 집단적 주체를 통해 구조화된다. 갈등의 중심에서 적극적으로 가담하는 소수의 싸움꾼과 그 광경을 바라보는 다수의 구경꾼이 그것이다. 그는 저서 에서 “대개의 경우 구경꾼이 싸움의 결과를 결정한다. 그들은 결코 중립적인 태도를 취하지 않는다. 모든 갈등의 결과는 이에 관여하는 구경꾼의 규모, 즉 갈등의 전염 범위에 의해 결정된다”고 썼다. 6·2 지방선거를 앞두고 벌어졌던 무상급식 논란이 이런 ‘갈등의 사회화’의 대표적 사례다. 이철희 두문정치전략연구소 소장은 “구경꾼이 늘어나게 하려면 더 크게 싸워야 하고 싸움꾼들 간의 차이를 더 크고 분명하게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열정과 기대를 가졌던 이들이 다시 투표장에 나오게 하는 것은 민주당이 한나라당(새누리당)과의 차별을 분명하게 하는 것이다. 이것을 포기한다면 그들이 기득권을 지키려고 소수파 지위에 만족해하고 있다는 것을 뜻한다. 2004년 이후 한국 민주당이 그렇다.”(샤츠슈나이더 역자 해제)

그러나 민주당 내부에서 제기되는 중도론은 이런 역동적 과정을 배척한다. 싸움꾼이 싸움을 멈추고 구경꾼의 위치로 스스로 걸어 들어가는 꼴이다. 갈등은 더 이상 사회화되지 않는다. 그 자리를 채우는 건 상대방의 존재 자체를 인정하지 않는 원색적인 비난과 저주에 가까운 쟁투뿐이다. 결국 오만한 새누리당과 무능한 민주당은 현재의 ‘안철수 현상’에 숨어 있는, 동시에 가장 강력한 조력자들이다.

안철수 원장과 중도적·무당파적 유권자층의 결합이 어떤 변화의 징후인 것은 분명해 보인다. 하지만 그 결말이 어떨지는 예단하기 어렵다. 몇 차례의 변곡점이 남은 탓이다. 우선 안 원장 본인이 ‘결단의 과정’을 이어가고 있다. 경선을 통해 선출될 민주당 후보와의 단일화 문제도 남아 있다. 딜레마의 지점은 분명하다. 상당수 유권자들은 안 원장이 기존 정치권과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고 있기 때문에 그를 지지한다. 관건은 대선 때까지 안 원장이 현재의 지지층을 배반하거나 자신의 신념과 배치되지 않는 방식으로 야권과 만날 수 있는지에 달렸다.

만일 ‘안철수 정권’이 정말 탄생한다면 어떨까. 주된 우려는 물론 정당정치론의 맥락 속에서 제기된다. 박상훈 대표는 “만일 안철수 원장이 집권한다면 민주당 후보가 되든지 아니면 끝까지 무소속으로 남아 기존의 정치 모두를 무너뜨리는 방식이 될 것”이라며 “후자의 경우 정당이 아니라 청와대를 통한 정치가 될 텐데 그 결과는 뻔하지 않겠느냐”고 우려했다. 민주당에 입당하거나 그 부분과 손잡는 방식에 대해서도 그는 “현재 민주당은 통합돼 있지 않기 때문에 특정 계파는 쏠리고 다른 계파는 배제되는 형태가 될 것”이라며 “정상적 당-청 관계란 존재하지 않을 것이며 특정 서클의 통치로 귀결될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했다.

“정당정치론적 비판, 새 세대 감성과 맞지 않아”

반론도 있다. 한 정치평론가는 “안철수 원장이 대통령이 된다면 당연히 여당이 생길 것이고 그 과정에서 민주당을 그대로 흡수하거나 새누리당을 완전히 배척하기보다는 양쪽의 극단을 배제한 세력을 흡수하는 형태의 정계 개편이 이뤄질 가능성이 있다”고 내다봤다. 노무현 전 대통령과 열린우리당은 수평적 당-청 관계 속에서 갈등을 거듭했다. 이명박 대통령과 2008년 대선 직후의 한나라당(현재의 새누리당)은 수직적 상명하복의 관계를 형성했고, 여당은 청와대의 거수기로 전락했다. 그는 “두 가지 모델 모두 실패하지 않았느냐”며 “정당정치가 기반이 되어야 한다는 시각에서 안철수 현상을 비판하는 논리는 새로운 유권자 세대의 감성과 맞지 않는 분석”이라고 반박했다.

송호균 기자 uknow@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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