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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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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쇄 자살 공장’ 프랑스 텔레콤의 진실

등록 2012-08-16 10:40 수정 2020-05-03 04:26

“내 죽음은 전적으로 프랑스텔레콤에서의 내 업무 때문이다. 회사에 민간기업 경영 방식이 도입된 이후 과도한 업무 부하, 기존 업무와 관계없는 직무 배치, 경영진의 고압적 태도 등을 도저히 더는 견딜 수 없어 자살을 선택한다.”- 51살 프랑스텔레콤 노동자의 유서

프랑스어에서 노동을 의미하는 단어인 ‘트라바유’(Travail)의 라틴어 어원은 3개의 말뚝으로 만든 잔혹한 고문기구인 ‘트리팔리움’(Tripalium)이다. 노동은 신성하다지만, 현실은 고통 그 자체인 경우가 많기 때문이리라.

잘못된 답안지, ‘우파의 신자유주의 때문’
해마다 수십 명의 노동자가 자살하는 회사가 있다면, 이곳을 신성한 노동의 가치가 구현되는 곳이라 말할 수 있을까? ‘오렌지’(Orange)란 브랜드명으로 전세계에 잘 알려진 ‘프랑스텔레콤’ 얘기다. 국영기업에서 출발해 공사화를 거쳐 민영화된 이 업체는 프랑스 최대 통신회사이자, 유럽연합(EU) 안팎의 여러 나라에 진출한 유럽 최대 통신회사 중 하나다.
프랑스텔레콤 노동자가 매년 수십 명씩 자살하는 상황이 벌써 몇 년째 프랑스 사회를 논쟁의 도가니에 몰아넣고 있다. 최근에는 전직 최고경영자(CEO)에게 노동자 연쇄 자살의 책임을 물어, 노동법과 형법에 규정된 이른바 ‘정신적 괴롭힘’ 혐의를 적용할 수 있는지에 대한 법리·사회적 논란까지 일고 있다. 한국에서도 이 문제가 일부 언론에서 소개됐지만, 내용을 살펴보면 조금 당혹스러운 면이 있다. 보수언론이 이 문제에 관심이 없는 것은 그렇다 하더라도, 일부 진보언론이 이 문제를 프랑스 우파의 ‘신자유주의 때문’이라는 이미 정해놓은 쉽고 간단한 답안지에만 끼워맞춰, 제대로 된 사실 확인 없이 잘못된 팩트들로 사건의 인과관계를 구성해 소개해왔기 때문이다.

커피 전문가들은 대형 커피전문점들이 대량으로 만들어내는 커피의 맛과 향에 낮은 점수를 준다. 커피를 잔에 따르는 모습. 한겨레 박미향

커피 전문가들은 대형 커피전문점들이 대량으로 만들어내는 커피의 맛과 향에 낮은 점수를 준다. 커피를 잔에 따르는 모습. 한겨레 박미향

프랑스텔레콤 노동자의 연쇄 자살 문제를 우파의 신자유주의 정책 때문이라는, 그래서 좌파로 정권이 바뀐 지금 프랑스에서 본질적인 변화가 있을 것이라고 해석하는 건 위험하다. 결론부터 말하면, 이 비극은 신자유주의 깃발을 들었던 우파를 비판하기에 앞서 구호뿐인 ‘반신자유주의’를 외치던 ‘캐비아 좌파’에 반성을 요구한다. 또 프랑스텔레콤 노동자의 현실보다 한국 사회의 보편적 현실이 더 비극적일 수 있다는 사실을 상기해준다. 과연 프랑스텔레콤에서는 그동안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일까? 지금부터 그 ‘오래된 현재’를 살펴보자.

프랑스텔레콤의 역사는 프랑스혁명 시기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1792년 클로드 샤프가 ‘샤프 텔레그래프’라는 현대 통신의 시초가 된 수단을 개발했는데, 이를 프랑스 정부가 혁명 시기 파리와 릴 사이의 정부 통신수단으로 활용한 게 ‘프랑스 국영통신’의 기원이었다. 이후 전보와 전화가 발명되자 프랑스 정부는 본격적으로 이를 국민에게 보급하려고 1878년 전신·전화와 우정사업을 담당하는 정부 부처를 신설했다. 프랑스 국영통신은 1980년대와 90년대를 거치며 PC통신의 효시로 여겨지는 ‘미니텔’을 보급했고, 유럽형 이동통신(GSM)의 선구자로서 서구에서도 가장 앞선 통신 서비스를 제공하며 전성기를 누렸다.

프랑스 국영통신이 공사화한 건 1991년, 민영화한 건 1998년이다. 공사화는 좌파가 대통령직은 물론 의회의 다수를 점하던 시기인 1988~91년에 이뤄졌다. EU의 경제통합 과정에서 회원국 내 통신사업 독점 방지를 위해 EU 집행위원회가 주도한 입법에 따라 시행된 것이었다. 프랑스 정치권은 자국 통신정책 주도권 유지를 위해 EU 집행위원회와 힘겨루기를 했으나, 결국 유럽사법재판소에서 패소해 독점을 포기했다.

이전 우파 정부의 민영화 규모 상회해

1993년 우파 정부가 시작한 민영화는 98년 좌파 정부가 완성했다. 1980년 프랑스 좌파는 사회당 소속 프랑수아 미테랑 대통령의 등장과 함께 주요 산업 분야에서 대규모 국유화를 실시했다. 하지만 1986·93·95년 우파가 잇따라 의회 다수를 차지해 미테랑 대통령의 국유화를 되돌리는 대규모 민영화를 추진한다. 이에 좌파 진영은 1997년 ‘주요 공기업 민영화 백지화’를 공약으로 내걸고 총선에서 승리하게 된다. 하지만 사회당 리오넬 조스팽 총리가 주도한 좌파 정부는 이듬해 안팎의 거센 반발에도 공약을 뒤집고 프랑스텔레콤 민영화를 전격 실시했다.

15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주요 노조와 일부 좌파 진영이 당시 사회당의 행보를 비판하는 것은, 사회당이 처음부터 ‘민영화 백지화’ 공약을 지킬 의사가 없었다고 보기 때문이다. 당시는 유럽 통합에 따른 통신시장 변화로 프랑스텔레콤의 역내 통신회사들 간 연쇄적 합병과 대규모 자본 확충이 불가피한 상황이었다. 또 유로화 출범에 따라 EU 성장안정협약에 규정된 재정적자 한도를 맞춰가며 주요 정책을 수행해야 했다. 이를 위해선 “일부 국영기업 및 공사의 단계적 민영화는 불가피하다”는 게 도미니크 스트로스칸 재무장관 등 당시 사회당 경제전문가들의 시각이었다. 실제 1997년부터 2002년까지 조스팽 총리가 이끈 좌파 정부 5년 집권 기간에 프랑스텔레콤·에어프랑스·크레디리오네 등 굵직한 주요 공기업들이 민영화되는데, 이 기간 민영화 규모는 이전 우파 정부가 10여 년 동안 진행한 민영화 규모를 상회했다.

1998년을 기점으로 프랑스텔레콤은 빠른 속도로 변화해갔다. 파리와 뉴욕 증시에 주식이 상장되고, 외국 통신회사들과의 대규모 합병이 이어졌다. 2004년까지는 정부 지분 비율을 50% 이상 유지했으나, 이후 정부 지분이 지속적으로 감소해 2012년 현재는 27% 선까지 떨어졌다. 특히 2006년부터 2008년까지 ‘넥스트플랜’(Plan NExT)이란 이름으로 강도 높은 경영 합리화 조처를 취한다. 국영기업 시절의 비효율적 인력 구조 및 운영 방식 개편을 목표로 한 이 계획에 따라 민간기업 경영 방식이 본격 도입되고, 회사 전체 인력의 10%인 2만2천 명 감축이 목표로 설정됐다. 이것이 나중에 노동자 연쇄 자살의 원인 중 하나로 지목된다.

2009년 초부터 프랑스텔레콤 노동자의 자살 소식이 하나둘 지방 언론에 보도되기 시작했다. 그해 여름 남부 마르세유에서 목숨을 끊은 51살의 프랑스텔레콤 노동자는 “내 죽음은 전적으로 프랑스텔레콤에서의 내 업무 때문이다. 회사에 민간기업 경영 방식이 도입된 이후 과도한 업무 부하, 기존 업무와 관계없는 직무 배치, 경영진의 고압적 태도 등을 도저히 더는 견딜 수 없어 자살을 선택한다”는 내용의 유서를 남긴다. 그리고 잿빛 하늘이 이어지던 2010년 1월과 2월 두 달 사이 무려 9명의 프랑스텔레콤 노동자가 연쇄 자살을 했다. 이 문제는 프랑스 주요 언론의 주목을 받으며 전세계에 알려지게 됐다.

2006년 ‘넥스트플랜’ 시행 이전부터 심각한 상황

결국 2005년 취임해 민간기업 경영 방식을 적극 도입한 CEO 디디에 롱바르가 2010년 3월 사임하고, 회사 쪽은 인력 감축 중단 및 심리상담 등을 통한 자살 예방 프로그램을 마련해 ‘죽음의 행진’을 막아보려 애썼다. 이런 조처 덕분인지 연쇄 자살은 일시적으로 진정되는 듯했지만, 2011년 다시 11명의 노동자가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 그런데 최근 밝혀진 놀라운 사실은 이 회사 노동자의 연쇄 자살이 프랑스 주요 언론이 대대적인 보도를 시작한 2010년 전후부터 시작된 게 아니라는 점이다.

프랑스텔레콤 노동자 연쇄 자살의 시작은 무려 10년 이상 과거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미 2000년대 초부터 노동자의 자살이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었다. 회사 쪽 통계 수치로 최근 일부 확인된 내용을 보면, 2000년과 2002년에도 각각 28명과 29명의 노동자가 자살을 했다. 문제가 본격적으로 부각된 2010년(27명)보다 많은 수치다. 인구 1만 명당 자살률로 치환해봐도 △2000년 2.15명 △2002년 2.49명이 △2010년 2.30명 △2011년 1.32명보다 훨씬 높다. 2006년 ‘넥스트플랜’ 시행 이전부터 이미 심각한 상황이었다는 뜻이다. 다만 프랑스 사회와 주요 언론이 10년 넘게 이 문제에 주목하지 않다가 뒤늦게 관심을 갖게 된 것뿐이다.

지난 10년간 프랑스텔레콤에서 무려 200여 명의 노동자가 자살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며 프랑스 사회가 가장 충격을 받은 것은 노동자의 직장 문제로 인한 자살이 이미 만연해 있었다는 점이다. 프랑스텔레콤 직원들의 연쇄 자살은 10만 명이 훨씬 넘는 고용 규모 덕분에 대표적으로 문제가 부각될 수 있었다. 하지만 대부분의 회사는 노동자의 자살을 개인적인 동기로 단정짓고 회사 차원의 통계조차 내지 않는다. 프랑스텔레콤 사태 공론화 과정에서 노동자의 자살이 단순히 개인이나 개별 회사만의 문제가 아니라, 프랑스 사회 전체의 문제라는 인식이 자리잡은 것은 불행 중 얻은 성과다.

프랑스텔레콤 노동자의 연쇄 자살 사건을 계기로 프랑스 사회에서 터져나오는 문제제기와 반성 과정에서 우리가 특히 주목해야 할 점이 있다. 바로 프랑스 사회가 충격적으로 받아들인 프랑스텔레콤 노동자의 자살률보다, 지금 한국 노동자의 자살률이 더 높은 것으로 추정된다는 점이다. 프랑스의 인구 1만 명당 자살률(2009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통계 기준)은 서구 주요국 중 결코 낮은 수준이 아닌 1.38명이다. 이를 기준으로 치환한 프랑스텔레콤 노동자의 자살률이 2010년에 2.3명이었다는 사실에 프랑스 언론은 경악했다. 지금 한국 국민 1만 명당 자살률은 같은 통계 기준으로 무려 2.84명에 이른다.

‘캐비아 좌파’는 반성을

우리에게는 2009년 정리해고 이후 22명의 노동자·가족이 죽은 쌍용자동차의 사례가 있다. 전체 자살률은 OECD 회원국 중 가장 높다. 그럼에도 많은 사람들은 이를 ‘우리의 문제’가 아닌 ‘그들만의 문제’로 생각하는 듯하다. 반면 프랑스는 지금 프랑스텔레콤 노동자의 연쇄 자살에 대해 당시 전문 경영인에게 법적 책임을 묻는 형식을 빌려 전 사회적인 주의를 환기하고 있다. 선언적인 반신자유주의로 유권자를 기만한 캐비아 좌파들 또한 그 책임이 있음을 상기시키는 기억의 정치도 작동하고 있다. ‘아무도 책임지지 않으면 결코 나아지지 않는다’는 프랑스 격언은 단순히 미움이 아니라 희망을 싹틔우기 위한 것이기 때문이리라. 새삼, 주변을 둘러보게 된다.

파리(프랑스)=윤석준 통신원 파리정치대학(시앙스포) 유럽학연구소 박사과정 연구원 semio@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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