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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발자도 치유받는 기술”

등록 2012-08-08 23:57 수정 2020-05-03 04:26

“스펙을 쌓으려고 적정기술을 시작해도 괜찮다. 하다 보면 생각이 바뀌니까.”
적정기술을 개발·보급하려고 한국 과학기술자들이 만든 단체인 ‘나눔과기술’의 김찬중 기획위원장(한국원자력연구원 책임연구원)은 적정기술이 개발자에게도 ‘치유의 힘’을 발휘한다고 강조했다. “33살에 박사과정을 마친 뒤 나도 욕심을 부렸다. 더 많이 갖고 성과를 내고 이름을 빛내고 싶었다. 그러다가 이미 가진 게 너무 많다는 걸 깨달았다. 적정기술을 한국 사회에 알리며 삶이 건강해졌다. 이런 작은 규모로 아프리카의 몇 사람이나 변화시킬 수 있느냐고 누가 묻던데, 중요한 건 몇 명이 아니라 내가 집중하고 있는 바로 그 사람이 변한다는 사실이다.”

‘나눔과기술’ 김찬중 기획위원장. 사진 정용일

‘나눔과기술’ 김찬중 기획위원장. 사진 정용일

적정기술을 어떻게 접하게 됐나.

세계적으로는 1970년대부터 적정기술에 대한 논의가 있어왔다. 한국에서는 경제가 성장하며 관심을 갖는 사람이 생겨났고, 2005년쯤 몇몇 적정기술 모임이 만들어졌다. 과학기술이라는 전문성으로 가난한 이웃을 돌보는 일을 해보자는 움직임이 대덕연구단지에서 생겼고 나눔과기술의 설립으로 이어졌다.

어떤 활동을 해왔는가.

시범사업으로 2009년에 전기가 없는 캄보디아 프레이벵의 컴퓨터학교에 전력 생산 장치인 1.5kW급 태양광발전기를 설치했다. 과학기술자들이 일주일간 휴가를 내어 한국 부품을 싣고 캄보디아로 날아가 메콩강을 건넜다. 발전기를 설치한 뒤에는 현지인이 운영·관리할 수 있도록 교육했다. 이런 교육이 없으면 몇 년 지나면 태양광발전기도 쓰레기가 된다. 지난 50년간 유엔이 아프리카에 수십조달러를 쏟아부었지만 변한 게 없는 이유다. 아프리카 차드에서 사탕수수 숯과 건망고도 제조하고 몽골에서 국제 컨퍼런스도 열었다.

공적개발원조(ODA)의 한계를 지적하는 건가.

가난한 나라는 병원을 세워달라, 학교를 지어달라, 인프라를 구축해달라고 요구한다. 그 돈을 주면 부패한 정부가 적당히 나눠갖고 이런저런 시설을 대충 건설한다. 부자 나라는 “우리가 이런 일을 이만큼 했다”고 생색을 내면 그만이니까, 건설하는 데까지만 책임진다. 하지만 실제로 가보면 운영·관리가 제대로 되지 않는 경우가 허다하다. 운영 재원이 없어 교사를 채용할 수 없는 학교라든가, MRI(자기공명영상장치)가 고철로 방치된 병원이라든가. 외교적 원조와 달리, 적정기술은 작은 규모지만 현지인이 빈곤에서 탈출해 경제적 자립을 이룰 수 있도록 지속 가능한 지원을 목표로 한다.

개인적으로는 어떤 영향을 받았나.

회사를 다니다 보면 많이 지친다. 적정기술에 참여하면 시간도 열정도 빼앗길 것 같지만 되레 직장 생활이 더 건강해지고 새로운 에너지가 생긴다. (그는 자기부상열차 등을 만드는 데 필요한 초전도 단결정 덩어리의 제조시간과 생산비용을 4분의 1로 줄이는 첨단 공정기술을 최근 개발했다.) 여러 과학자들을 네트워크해 적정기술 제품을 만들어내고 그 제품으로 사회적 기업이 생기고 현지인의 삶이 달라졌다는 소식이 들리고…. 은퇴한 뒤에는 더 열심히, 그리고 평생 이 길을 갈 생각이다

후배들에게 한마디.

우리 스스로를 선진국의 ‘주는 자’로, 상대방을 후진국의 ‘받는 자’로 규정하는 건 위험하다. 아프리카 우간다나 중국 옌볜에서 적정기술 강의를 했는데, 반응이 냉랭했다. ‘언제부터 한국이 그렇게 잘살아서 우리한테 생존 기술을 가르쳐준다고 하느냐’ ‘우리도 반도체 같은 첨단기술을 키울 것이다’라고 격하게 항의하더라. 형제애를 느끼며 세계의 문제, 지구의 문제를 함께 해결하려는 자세로 다가가야 한다.

정은주 기자 eju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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