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도 명령의 과잉을 용서할 수 없는 시대이지만/ 이 시대는 아직도 명령의 과잉을 요구하는 밤이다/ 나는 그러한 밤에는 부엉이의 노래를 부를 줄도 안다.” 이승만 정권하를 살던 1957년, 시인 김수영은 ‘서시’에서 자신의 시대와 시인의 존재에 대해 이렇게 읊었다. 이 짧은 진술은 정치와 시인의 관계를 짐작해볼 수 있다는 점에서 인상적이다. 김수영은 다른 시에서 “풍자가 아니면 해탈이다”(‘누이야 장하고나!-신귀거래7’, 1961년)라는 유명한 화두를 던지기도 했지만, 역사의 어둠이 삶을 목 조르는 시대에 시인의 운명이 그 역사적 어둠의 증언자가 될 수밖에 없다는 사실 자체를 부정한 일은 한 번도 없었다.
시인은 예민한 참여자, 즉각적 실천가
시는 짧은 문장과 압축적인 이미지로 지각 경험에 강렬한 충격을 줄 수 있는 문학 형식이다. 바로 이 특징에 개인적 삶의 특수성은 물론, 보다 거시적인 차원의 시대상이나 역사적 국면을 대중에게 효과적으로 전달할 수 있는 시적 언어 고유의 힘이 내재한다. 김수영은 시인으로서의 자신을 “부엉이”라고 말했지만, 이는 헤겔 같은 철학자가 스스로를 밤이 되어서 날아오르는 ‘미네르바의 부엉이’라고 비유했던 것과는 다른 뜻을 가지고 있다. 헤겔의 부엉이는 낮의 사건을 밤이 되어서야 뒤늦게 꼼꼼히 ‘해석’하는 부엉이지만, 김수영이 말하는 부엉이로서의 시인은 그가 밤이라는 시대를 현재 시간으로 살면서 생생하게 증언하는 자라는 뜻이다. 이 증언의 현재성으로 인해 시인은 철학자가 아니라 현실에 즉각적으로 개입하는 참여자이자 실천가가 된다.
한국 현대문학사 전체를 관통하고 움직여온 가장 강력하고 끈질긴 문학사적 압력은 문학의 정치성(사회성)에 대한 요구와 응답이었다. 한국문학은 다양한 발화 형식으로 자기 시대의 정치적 억압과 사회적 부조리에 대해 증언했으며, 이 증언들은 작가적 시선의 집요함과 예리함, 예언자적 지성이 결합되어 한국 지성사의 가장 중요한 구성 인자가 되어왔다. 특히 이른바 ‘정치시’는 시 장르 특유의 순발력과 발화 방식의 고유성, 현장성, 시적 열정의 직접적 표출 방식, 이에 따른 대중적 감염력 때문에 한국문학이 정치 현실에 개입하는 가장 효과적인 실천 방식이 되었다.
4·19 혁명과 5·16 군사 쿠데타라는 역사적 반동에 대응해서 나온 김수영과 신동엽의 격정적인 시들, 예컨대 “껍데기는 가라/ 사월도 알맹이만 남고/ 껍데기는 가라”(신동엽 ‘껍데기는 가라’, 1967년)라는 진술은 한국문학사라는 특정 영역을 넘어서 한국 지성사의 기념비적 진술 중 하나로 기억되고 있으며, 침묵의 선시를 읊던 파계승 고은이 전태일의 죽음 이후 “명상은 사상을 낳는 것이 아니라 죽인다” “그리하여 사상은 광장에서 처음으로 사상으로 공인된다”(고은 ‘사상에 대하여’)고 말했던 시적 전회는 한국 지성사에서도 극적인 ‘사상 전향’ 중 하나로 인식된다.
‘백색의 계엄령’ 증언하고 ‘노동의 새벽’ 노래하다
정치성을 띤 시적 언어의 특이함은 시인이라는 개인의 발화가 특정 예술 장르의 국지적 사건으로 축소되지도 않을뿐더러, 이 발화가 여전히 현재성을 띤 정치적 사건이 된다는 사실에도 있다. 예컨대 이명박 정부의 어떤 교과서 정책에서 엿보이는 것처럼, 일제시대와 유신시대에 대한 평가는 지금까지와는 달리 극단적으로 달라질 수도 있다. 최근에 유력한 대선주자인 박근혜 의원은 5·16 군사 쿠데타는 자신의 아버지(박정희)가 당시 할 수 있었던 최선의 선택이란 식의 발언을 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러한 발언이 정당성을 얻으려면 일제시대를 살면서 자신의 시대를 ‘님을 잃은 시대’(한용운 ‘님의 침묵’)나 “등불을 밝혀” 몰아내야 할 “어둠”(‘쉽게 씌어진 시’)으로 인식한 윤동주의 시적 증언들을 교과서에서 지워야 할 것이며, 유신시대를 “미칠 것만 같은 미칠 것만 같은/ 서로서로 물어뜯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별빛마저 보이지 않”는 밤(‘별빛마저 보이지 않네’)이라고 한 김지하의 당대적 절망을 은폐해야 할 것이다.
시인의 증언은 어떠한 이해관계에도 얽매임 없이 자신의 시대가 지닌 일체의 가시적이고 비가시적인 폭력, 때로는 무의식적인 억압에 대해서조차 예민한 감각과 첨예한 인식, 절대적인 비타협성을 가지고 이루어진 증언이라는 점에서, 가장 강력하고 날카로운 지성을 내포한 자유의 기도가 된다. 이때 시인의 기도는 사후 천국을 향한 기도가 아니라 역사적 현실의 어둠을 증언하는 기도이며, 그의 하느님은 ‘지금 여기’의 현실에서 억압받는 모든 인간이다. 그러므로 시인의 기도는 물리적으로는 무력하지만 권력자에게는 가장 불편한 기도이며, 일체의 억압이 사라진 시간에 대한 염원을 담고 있다는 점에서 언제나 아직 이르지 않은 시간을 향한 현재진행형의 기도가 된다.
군부가 주도한 1980년대의 거대한 정치적 폭력을 “해일처럼 굽이치는 백색의 산과 골짜기에/ 눈보라가 내리는 백색의 계엄령”(‘대설주의보’)으로 표현한 최승호의 시적 증언이나, “영화가 시작하기 전에 우리는/ 일제히 일어나 애국가를 경청”하고 “각각 자기 자리에 앉는다/ 주저앉는다”(‘새들도 세상을 뜨는구나’)는 말로 표현된 황지우의 무력감, 그 시대를 “낡아빠진 군모에 구멍 뚫린 워카를” 신고 “장검 대신 깡통 차고 늠름하게 펄럭”이는 “허수아비”(‘아버지가 세운 허수아비’)라고 규정한 김혜순의 정치적 야유, 또는 “늘어처진 육신에/ 또다시 다가올 내일의 노동을 위하여/ 새벽 쓰린 가슴 위로/ 차거운 소주를 붓는다”(‘노동의 새벽’)는 박노해의 다짐이나 ‘동트는 미포만’에서 “단절의 꿈이 역사를 밀어간다”고 한 백무산의 1990년대발 노동혁명 의식이 모두 억압 없는 미래를 위한 현재진행형의 기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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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경동, 이영광, 심보선, 김선우
그리고 우리는 2008년 이후, 다시 격렬한 ‘정치시’의 시대를 살고 있다. 법과 공권력의 이름으로 서울 한복판(용산)에서 시민들이 불태워지고 그 시체가 애도도 없이 냉동창고에 갇히는 시대, 전직 대통령이 정치권력의 압박감으로 자살에 이르는 시대에 시인들이 주도한 189명의 작가 시국선언(2009년 6·9 작가선언)은 189편의 개별적인 한 줄의 시(시적 발화) 형식으로 선언되었다. ‘리얼리즘’ 계열의 시인들은 물론이고, 전통 서정시를 쓰던 시인들이 자연과 인간적 현실(정치)이 괴리되어 있는 시언어를 본격적으로 의심하기 시작했으며, 미적 실험에 집중하던 시인들 중 일부는 일상어에 내재한 정치적 이데올로기를 따져 묻기 시작했다.
노동시의 정치성과 현장성을 한층 지적인 차원으로 끌어올린 송경동, 전통 서정시 내부에 있으면서도 한층 무겁고 깊숙한 정치적 무의식과 전투성을 개방하고 있는 이영광, 미적 실험성을 늘 견지하면서도 정치적 전위와 현장성을 놓치지 않으려는 진은영, 정치사회적 사건에 대한 공감 능력을 바탕으로 한 심보선과 김선우의 호소력, 미시적 일상에 편재한 비가시적 억압과 대중 이데올로기에 대한 이장욱의 실험적이고 심층적인 무의식 탐구, 무협지 버전으로 탄생한 권혁웅의 풍자시는 우리가 여전히 “명령의 과잉을 용서할 수 없는 시대”를 살고 있음을 간증하는 이 시대의 간절한 기도들이다. 이 개별적 기도들이 향하는 방향은 김수영의 1950년대 기도와 다르지 않다. “정치의 작전이 아닌/ 애정의 부름을 따라서.”(김수영 ‘네이팜탄’, 1955년)
함돈균 문학평론가·고려대 민족문화연구원 HK연구교수한겨레21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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