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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흡연은 권리가 아니다” VS “과잉 금지 위헌이다”

등록 2012-07-18 17:49 수정 2020-05-03 04:26
한국의 금연정책 역사는 짧다. 정부가 흡연을 규제한 지 불과 17년이다. 그때부터 흡연자들은 병원에서, 대형 사무실에서, 강의실에서, 버스 정류장에서 빠르게 밀려나왔다. 오랫동안 무제한으로 흡연의 자유를 만끽해온 흡연자들은 거세게 반발했다. 그러다 2004년 헌법재판소가 혐연권이 흡연권보다 우선한다고 결정하자 흡연자들의 목소리는 잦아들었다.
최근 다시 불거진 담배 논쟁은 법조계의 문제제기에서 비롯됐다. 정부와 지방자치단체가 쏟아낸 강력한 금연정책이 헌재의 결정 취지를 고려하더라도 지나치다는 것이다. 김성수 연세대 교수(법학전문대학원)가 대표적이다. 그는 비흡연자지만 흡연자들의 권리가 일방적으로 침해되는 것은 위헌 소지가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반대 쪽에 있는 명승권 국립암센터 발암성연구과장(가정의학과 전문의)은 흡연권을 정부가 보호해야 할 권리로 인정하지 않는다. 그는 강력한 금연정책에서 한발 더 나아가 아예 담배의 제조와 판매를 금지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양쪽의 의견을 들어봤다_편집자
서보미 기자 spring@hani.co.kr·정은주 기자 ejung@hani.co.kr

명승권 국립암센터 발암성연구과장(가정의학과 전문의)

김성수 연세대 교수(법학전문대학원)

1. 최근 중앙정부와 지방정부가 확대한 금연정책을 평가해달라.

적극 찬성한다. 국제사회는 이미 흡연에 따른 피해를 전 지구적 문제로 인식하고 있다. 흡연을 효과적으로 통제하려고 국제적 협력을 하고 있는 건 이 때문이다. 세계보건기구(WHO)는 2005년 담배규제기본협약(FCTC·Framework Convention on Tobacco Control)을 발효시켰다. 한국은 2005년 5월 66번째로 이를 비준했다. FCTC는 실내 작업장, 식당, 술집, 대중교통 수단, 실내 및 기타 공공장소에서 담배 연기 노출을 규제하도록 권고하고 있다. 실내·외 금연 확대는 이런 국제협약에 부응하는 조처다.

모든 국민은 헌법상 건강권을 보호받을 권리가 있다. 간접흡연 피해에 대해 국가가 규제하는 게 당연하다. 그러나 실내 흡연과 실외 흡연을 구분해서 볼 필요가 있다. 실내 흡연에선 비흡연자의 간접흡연 피해가 여러 차례 과학적으로 증명됐다. 따라서 실내 금연은 타당하다. 그러나 건널목, 횡단보도, 버스 정류장처럼 다중이 모이는 장소를 제외한 일반적인 실외에서 간접흡연 피해가 발생하는지는 아직 과학적으로 충분히 뒷받침되지 못했다. 이런 상황에서 전면적인 실외 금연은 과잉 제한이다. 만약 서울 서초구나 강남구의 거리에서 과태료를 부과받은 흡연자가 소송을 낸다면 나중에 헌법재판소에서 위헌 소지를 충분히 다퉈볼 만하다. 2004년 헌법재판소는 실내에서는 흡연권보다 비흡연권(혐연권 대신 비흡연권으로 썼다)이 우선한다고 결론 내렸지만, 아직 실외 흡연에 대해선 판단이 없는 상태다.

국립암센터 가정의학전문의 명승권. 한겨레21 박승화 기자

국립암센터 가정의학전문의 명승권. 한겨레21 박승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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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헌재의 결정례에서는 혐연권이 흡연권보다 상위의 기본권이라 보고 있다. 흡연권은 사생활의 자유를 실질적 핵으로 하지만 혐연권은 사생활의 자유뿐만 아니라 생명권에까지 연결되기 때문이다.”
- 명승권 국립암센터 발암성연구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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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흡연권이 존재한다고 생각하나.

일부에서는 흡연을 할 권리가 헌법 제17조 사생활의 자유나 행복추구권, ‘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의 범주에 속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 주장은 전혀 타당하지 않다. 직접흡연과 간접흡연의 폐해는 건강권뿐만 아니라 생명권, 생존권과 직결된다. 2004년 헌재의 결정례에서는 혐연권이 흡연권보다 상위의 기본권이라 보고 있다. 흡연권은 사생활의 자유를 실질적 핵으로 하지만 혐연권은 사생활의 자유뿐만 아니라 생명권에까지 연결되기 때문이다. 또 행복추구권이나 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에는 흡연권이 포함되지 않는다고 본다. 지금은 다른 사람이 흡연할 때 나오는 담배연기를 비흡연자가 흡입하게 되는 ‘간접흡연’까지 인정되고 있다. 그러나 수년 전부터는 담배연기가 신체, 소파, 의류 등에 남아 비흡연자에 피해를 주는 ‘3차 간접 흡연’도 연구되고 있다. 흡연의 피해가 우려보다 더 광범위할 수도 있다는 의미다.

헌재의 2004년 결정을 보면, 흡연권은 인간의 행복추구권이나 사생활의 비밀과 자유 등에 따라 보장받는 기본권의 하나로 인정되고 있다. 다만 비흡연권은 건강권·생명권과 직결되는 만큼 두 기본권이 충돌했을 때는 비흡연권이 우선한다고 판단한 것이다. 법치주의에서 국가는 이렇게 두 기본권이 갈등을 일으킬 때 양쪽의 본질적인 내용이 침해받지 않는 범위 내에서 균형과 조화의 길을 찾아야 한다. 그런데 지금 금연정책은 흡연권을 일방적으로 희생시키고 있다.

3. 금연지역으로 규정된 공원이나 거리에 흡연시설을 설치하자는 의견이 있다.

공원을 금연지역으로 지정한 이유를 생각해보면 답은 간단하다. 사람들은 아름다운 자연을 즐기고 운동을 하려고 공원을 찾는다. 흡연자의 금연을 유도하기 위해 이곳에서라도 담배를 피우지 못하게 하자는 게 금연구역을 지정한 이유다. 공원에 따로 흡연시설을 설치하면 금연구역의 의미가 없다. 공원뿐 아니라 거리 등 모든 금연구역에 흡연시설을 둬서는 안 된다.

흡연권을 보호하려는 당연한 조처다. 더 중요한 건, 흡연시설이 흡연자가 인간의 존엄성을 지킬 정도의 수준이 돼야 한다. 지금처럼 구석에서 쪼그리고 앉아, 비바람을 맞아가며 담배를 피우게 해서는 안 된다. 지금 흡연자가 내는 국민건강증진부담금만 1조8천원이다. 이 중 일부를 제대로 된 흡연시설을 만드는 데 써보자. 흡연자는 인간답게 담배를 피우고, 비흡연자는 간접흡연의 피해를 우려하지 않고 거리를 마음껏 활보하게 될 것이다.

4. 정부의 금연정책이 충분하다고 보는가.

전 국민의 금연을 유도하기엔 아직 부족하다. 정부는 담배로부터 얻어지는 세금 7조원 중 0.5%에도 못 미치는 200억~300억원 정도만 금연사업에 사용하고 있다. 금연정책이 성공하려면 강력한 흡연 규제와 함께 흡연자의 금연을 지원하는 다양한 제도를 병행해야 한다. 예를 들어 의학적으로 금연 효과가 인정된 금연 약물치료에 한해서는 보험급여를 적용하는 것이다. 그러면 비용 부담이 줄어들어 자발적으로 금연치료를 받는 흡연자가 늘어날 수 있다.

지금도 과도하다. 정부는 특정 시점까지 흡연율을 특정 수준까지 낮추겠다는 조급증과 강박관념에 사로잡혀 있다. 인간은 자기 운명에 대해 스스로 결정할 권리가 있다. 국가가 위험성을 국민에게 알릴 수는 있지만 선택은 각자의 몫이다. 정부가 정책 목표에 얽매어 억지로 끌고 가서는 안 된다. 어릴 때부터 충분한 교육과 홍보를 통해 개개인의 자발적인 동의와 협력을 이끌어내면 된다. 청소년에게 금연 교육을 할 때도 담배의 위해성은 알리되, 흡연자를 비정상적이거나 일탈자로 낙인찍어서는 안 된다.

연세대 법대 김성수 교수. 한겨레21 탁기형 선임기자

연세대 법대 김성수 교수. 한겨레21 탁기형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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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재와 대법원은 기본권이 개인과 개인 사이에서도 지켜져야 한다고 본다. ‘나는 당신이 담배 피우는 게 짜증나지만, 저기 흡연시설에 가서 피울 권리는 인정한다.’ 이런 게 민주주의고, 다원주의 사회다.”
- 김성수 연세대 교수

<hr>5. 일부 기업이 금연지역을 건물 밖 1km로 확대하고 흡연자에게 인사상 불이익을 주고 있다.

지지한다. 국내외 연구 결과를 보면 흡연자의 70% 이상은 금연할 의사가 있는 것으로 나온다. 이들은 담배를 끊고 싶지만 의지가 약하거나 여건이 안 돼 금연에 실패하는 것이다. 이런 직장인들에게 회사의 강력한 금연정책은 금연 의지를 높여주는 좋은 기회가 될 것이다. 금연정책이 성공하려면 정부만 나서서는 힘들다. 민간도 자율적으로 동참해야 한다.

기업이 흡연자에게 입사나 승진 등에서 불이익을 주는 건 개인의 행복추구권이나 사생활의 비밀과 자유 등을 침해하는 행위다. 흡연 여부를 알아보려고 직원들에게 소변을 받아오라고 했다고 치자. 어쩔 수 없이 동의는 했다고 하지만 사람에 따라선 수치심을 느낄 수도 있지 않을까. 기본권은 국가와 국민의 관계에서 규정되는 헌법상 권리이긴 하지만, 헌재와 대법원은 기본권이 개인과 개인 사이에서도 지켜져야 한다고 본다. ‘나는 당신이 담배 피우는 게 짜증나지만, 저기 흡연시설에 가서 피울 권리는 인정한다.’ 이런 게 민주주의고, 다원주의 사회다.

6. 정부가 담배의 생산이나 판매는 제재하지 않고, 소비자인 흡연자들만 ‘죄인’으로 내몰고 있다는 비판이 있다.

국가가 적극적으로 나서서 담배의 제조·판매를 금지해야 한다. 담배의 제조·판매 근거를 마련하고 있는 ‘담배사업법’은 헌법이 보장하는 보건권, 행복추구권, 생명권, 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 등을 침해한다. 당연히 헌법에 위배된다. 지난 1월11일 이석연 변호사, 담배제조및매매금지추진운동본부장인 박재갑 서울대 교수(의학과)와 함께 헌법재판소에 ‘담배사업법은 헌법에 위반된다’는 취지로 헌법소원심판청구서를 제출했다.

미국에서 1919년 금주법을 만드니 밀주가 성행했다. 담배가 유해하다고 생산을 전면 금지하는 것은 인간의 본성을 거스르는 일이며 또 다른 부작용이 생기게 한다. 합리적으로 규제를 하는 게 옳다. 소비를 억제하려면 가격을 대폭 올려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어느 정도 현실화에는 동의하지만 한꺼번에 2~3배 올리는 건 안 된다. 담배를 주로 피우는 육체노동자나, 저소득 가구 등 서민에게 피해가 갈 수 있다.

7. 흡연권과 비흡연권을 조화시킬 수 있는 대안이 있나.

흡연권과 비흡연권은 공존시킬 필요가 없다. 담배는 마약과 같다. 마약을 할 권리가 인정될 수 없는 것처럼, 담배를 피울 권리도 보장받을 수 없다. 모든 암 사망 원인의 30%가 담배다. 심혈관질환, 만성폐쇄성폐질환 등 각종 질병의 원인이기도 하다. 흡연으로 인해 엄청난 사회·경제적 손실이 초래되고 있다.

흡연자와 비흡연자가 상생하는 방법은 분명히 있다. 실외뿐만 아니라 실내에도 제대로 된 흡연시설을 갖추면 된다. 물론 구체적인 방식은 신중해야 한다. 예를 들어 실내에 흡연시설을 설치하는 게 맞지만, 이를 강제하면 영세한 업소에 부담을 준다. 자영업자들의 직업 자유를 침해할 수 있는 것이다. 또 담배를 무조건 줄이면 지방세인 담배소비세가 줄어 세수가 감소해 지방재정에 위기를 초래할 수 있다. 금연정책은 그만큼 복잡한 문제다. 정부는 섬세하고 세련된 금연정책을 마련하기 위한 고민을 시작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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