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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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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배 팔아 세금 삥 뜯고 벌금 또 뜯는 정부…담배 ‘꼬나문’ 자들의 반격

등록 2012-07-18 14:33 수정 2020-05-03 04:26

“음식점, 카페 등 밀폐된 공간에서의 흡연을 강력히 규제하는 것, 찬성이다. 흡연의 규제를 확대 시행하는 방안이 최근 다투어 마련되고 있는 것, 대체로 마땅하다. 하지만 여전히 국민의 5분의 1 이상이 상시적 흡연자인데도 그들을 위한 대책은 금연의 일방적인 압박뿐이라는 것은 유감이다. 국가가 앞장서서 담배를 만들고, 폐해는 되도록 숨기면서 흡연을 ‘권장’해온 지난 역사에 대한 고려나 성찰은 전혀 없다. 흡연자는 잡아서 벌금만 물리면 다 된다는 식이다. 흡연을 권장하자는 게 아니다. 오로지 ‘금지’하는 것만으로 성공한 정책은 본 적이 없다. 피우려는 자의 권리도 배려해야 한다.”( 박범신 칼럼 ‘흡연은, 때로 나를 구한다’ 중에서)

지난 6월 1일부터 흡연하면 과태료를 내야 하는 서울 강남대로 금연구역의 모습. 2호선 강남역 주변 보도블록에 ‘금연‘이라고 큼직하게 적혀 있다.

지난 6월 1일부터 흡연하면 과태료를 내야 하는 서울 강남대로 금연구역의 모습. 2호선 강남역 주변 보도블록에 ‘금연‘이라고 큼직하게 적혀 있다.

2015년 커피숍의 흡연구역도 사라진다

정부의 ‘이율배반적’ 금연정책에 대한 반격이 시작됐다. 담배 공급은 내버려둔 채 담배 소비만 규제한다는 이유에서다. 흡연으로부터 자유로울 권리(혐연권)가 흡연권에 우선하지만 여전히 흡연자 권리를 우리 헌법이 보장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소설가 박범신씨는 “대기업에 강연을 갔는데 수만 명이 일하는 곳에 흡연실이 하나도 없더라. 간편하게 휴대할 재떨이 하나도 구할 길이 없는 상황이다. 흡연자를 위한 정책적 배려는 어디에도 없다”고 말했다.

담배 규제가 불필요하다는 주장이 결코 아니다. 담배는 두말할 필요 없이 해롭다. 담배에 들어 있는 4천여 가지 화학물질 가운데 발암물질로 알려진 것만 62종이다. 사형가스실에서 사용되는 독극물인 청산가리, 연탄가스 중독 주원인 일산화탄소, 뇌질환 및 중독질환으로 이끄는 니코틴 등이 들어 있다. 박재갑 서울대 교수(의학)는 “담배는 일본 방사능보다 위험하고, 석면보다 폐암을 일으키기 쉬우며, 고엽제보다 더 많은 발암물질을 포함하고 있다”고 말한다.

실제로 세계적으로 전체 사망 원인의 28%가 흡연과 관련 있고 흡연자의 절반은 담배 때문에 사망한다는 연구 결과가 나와 있다. 흡연으로 인해 사망하는 사람이 한국에서만 1년에 5만 명 이상, 하루에 150명꼴이라고 한다. 특히 폐암 사망의 경우 89%가 흡연이 원인이다. 우리 법원도 지난해 흡연 피해 소송에서 폐암과 흡연의 연관성을 인정한 바 있다. 하지만 다행히도 35살이 되기 전에 담배를 끊으면 담배로 인한 질병의 90%를 피할 수 있다. 50살 이전의 늦은 금연이라도 계속 흡연하는 사람에 비해선 15년 뒤에 사망할 위험이 절반으로 줄어든다. 강력한 금연정책이 필요한 이유는 분명하다.

문제는 방식이다. 정부가 예산이 들지 않는 금연구역 확대에만 열중하고 있어서다. 금연클리닉 등 흡연자를 도우려는 금연정책은 되레 줄어들고 있다.

대형 건물은 물론 공원, 버스 정류장, 심지어 일부 서울 강남·양재대로에서도 흡연을 할 수 없게 됐다. 2015년부터는 모든 음식점(68만 곳)에서 담배를 피울 수 없게 한다는 내용의 국민건강증진법 시행규칙을 보건복지부가 지난 6월27일 입법예고했다. 현재 일부 커피숍이 운영하는 흡연구역·금연구역 분리도 불가능해진다. 흡연실은 재떨이만 놓아둬 담배만 피울 수 있는 소규모 밀폐공간으로 규정했기 때문이다. 환풍기 등 환기시설을 갖춰야 하기에 이마저도 설치하는 음식점이 많지 않을 전망이다. 금연 음식점에서 담배를 피우면 과태료 10만원을 내야 한다.


정부의 ‘이율배반적’ 금연정책에 대한 반격이 시작됐다. 담배 공급은 내버려둔 채 담배 소비만 규제한다는 이유에서다. 흡연으로부터 자유로울 권리(혐연권)가 흡연권에 우선하지만 여전히 흡연자 권리를 우리 헌법이 보장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흡연하면 과태료를 내는 실외 금연구역도 계속 늘어나고 있다. 서울시는 2014년까지 전체 면적의 5분의 1(128.4㎢)을 담배를 피울 수 없는 공간으로 지정할 계획이다. 올해는 자치구 관리 도시공원(1950곳)을 금연구역으로 지정한 데 이어 2013년에는 가로변 버스 정류소(5700곳), 2014년에는 학교 절대정화구역(1305곳) 등 9천여 곳으로 확대하기로 했다. 흡연시설은 따로 두지 않는다.

당초 서울시는 지난해 12월 공원을 금연구역으로 지정하며 일부 흡연시설을 둔다고 발표했다. 공원이 넓은데다 이용자가 머무는 시간이 길어 과태료만 물리면 흡연자 권리가 과도하게 침해된다는 이유에서다. 박재갑 교수가 항의서한을 보냈고 박원순 서울시장이 전화를 걸어 공감을 표했다. 서울시는 흡연시설 설치 계획을 유보했다. 신차수 서울시 건강증진과 주무관은 이렇게 설명했다. “공원을 금연구역으로 운영해보지도 않고 흡연시설을 만든다는 비판을 받아들였다. 올해까지 지켜보고 내년 초에 설치할지 최종 결정할 예정이다.” 박원순 시장은 일본 도쿄처럼 실외를 대부분 금연구역으로 지정하고 군데군데 흡연실을 만드는 방안을 검토해보라고 지시했다.

대법원 “흡연권, 본질적 권리 침해 안 돼”

대기업도 금연구역을 실외로 넓히는 데 동참하고 나섰다. 지난 7월3일 CJ그룹은 서울 남산 본사 등을 금연빌딩으로 지정하며 사옥뿐만 아니라 사옥 반경 1km 안에서도 담배를 피울 수 없도록 했다. CJ그룹 관계자는 “직원들의 흡연 금지를 위한 상징적인 규제”라고 말했다.

흡연자들은 몸부림을 친다. 41살인 한 CJ 직원의 말이다. “담배 피우고 싶은 사람들끼리 점심시간 등을 이용해 한 차에 타고 나가서 담배 피우고 돌아온다. ‘담배셔틀’이라고 부른다. 이렇게까지 피워야 하나 싶기도 하다가, 이렇게까지 끊어야 하나 싶기도 하고…. 끊고 싶어도 맘대로 끊어지나. 스트레스 받는데 담배도 못하게 하니 더 스트레스 받는다.”

금연구역으로 지정된 강남·양재대로에서도 모든 죄업은 흡연자들에게 돌아간다. 지난 6월 한 달간 5만원·10만원짜리 과태료에 적발된 흡연 건수가 2002건이다. 대로에서 쫓겨난 흡연자들은 뒷골목으로 숨어들었다. 재떨이도 없으니 꽁초가 길거리를 뒹굴었다. 한 건물 관리자는 “식당·가게 앞인데도 담배 피우는 사람들이 수시로 모였다. 건물 주인이 뒷골목도 금연구역이라고 붙여버렸다”고 말했다. 행여나 과태료를 물까봐 흡연자들은 뒷골목 금연구역에서도 담배를 물지 않는다. “‘금연구역’ ‘과태료 10만원’이라고 빨간색으로 여기저기 쓰여 있어 흡연할 엄두를 낼 수 없다. 금연구역이라는 표지판만 보면 찜찜하다. 이 거리를 빨리 벗어나고만 싶다.” 이 흡연자는 범법자가 된 것처럼 이 거리를 지나가기가 불안하다고 했다.

간접흡연의 피해가 증명된 실내와 달리, 거리나 공원 등 실외를 흡연시설도 없이 금연구역으로 정하는 것은 헌법 위반의 소지가 있다. 헌법재판소가 2004년 혐연권을 흡연권에 우선해 인정하면서도, 흡연권 역시 인권의 존엄과 가치, 행복추구권, 사생활의 비밀과 자유에 근거한 기본권으로 보장했기 때문이다. 김성수 연세대 교수(로스쿨)는 “필요한 경우 흡연권을 일부 제한하더라도 본질적인 내용을 침해해서는 안 된다”고 풀이했다.


“담배 피우고 싶은 사람들끼리 점심시간 등을 이용해 한 차에 타고 나가서 담배 피우고 돌아온다. ‘담배셔틀’이라고 부른다. 이렇게까지 피워야 하나 싶기도 하다가, 이렇게까지 끊어야 하나 싶기도 하고….”- 41살 한 CJ 직원

지난 3월 ‘금연부대’를 운영하며 금연을 강요하던 한 군부대가 국가인권위원회에서 권한남용과 인권침해를 이유로 시정권고를 받은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이 부대는 흡연자 450명에게 금연서약서를 작성하게 하고 흡연하면 징계 처분을 내렸다. 인권위의 판단은 이렇다. “흡연을 할 것인지 말 것인지에 대한 개인적 결정은 헌법상 자기결정행동권, 사생활의 자유에서 나온 기본적 권리에 해당한다. 목적이 정당하더라도 금연운동의 범위를 넘어서 일률적으로 금연을 강제한 행위는 지위권 남용이며 헌법을 침해한 것이다.”

흡연자 눈치는 안 봐도 담배회사 눈치는 본다

직원의 자기결정권을 제한하며 금연을 강제하는 기업도 금연부대와 크게 다르지 않다. 전 사업장을 금연구역으로 정하고 금연서약서를 쓰게 하고 지키지 못하면 인사상 불이익을 주는 경우가 빼닮았다. 더 나아가 소변·혈액 검사로 흡연 여부를 확인하고 임원 승진이나 해외주재원 발령, 해외연수자 선발에서 제외하기도 한다.

흡연권을 본질적으로 침해하지 않는 금연정책도 얼마든지 있다. 그런 방식을 도입하지 않을 뿐이다. 국민권익위원회는 지난해 4월 ‘간접흡연 피해방지 및 흡연율 감소를 위한 제도개선 방안’으로 세 가지를 제시했다. 그림 경고문 도입, 담뱃값 인상, 흡연자를 위한 금연지원사업 확대 등이다.

한국은 경고 문구만 담뱃갑에 쓴다. ‘흡연은 폐암 등 각종 질병의 원인이 되며, 내 가족, 이웃까지도 병들게 합니다.’ 이건 별 효과가 없다. 반면 그림 경고문은 흡연의 위해성을 더 잘 전달하고, 특히 청소년의 흡연을 억제하는 효과가 탁월하다.

2000년 캐나다가 도입한 뒤 40여 개국으로 확산됐다. 브라질은 2002년부터 담뱃갑 앞·뒷면에 모두 흡연 관련 질병 사진을 넣었는데, 이후 흡연율이 31%에서 22.4%로 뚝 떨어졌다. 그림 경고문의 효과가 입증되자 2004년 싱가포르, 2005년 베네수엘라·요르단·타이, 2006년 오스트레일리아·우루과이·칠레 등이 뒤를 이었다. 세계보건기구(WHO) 담배규제기본협약(FCTC)은 최소 30% 이상의 면적에 그림을 포함한 경고문을 싣도록 권고했다. 한국은 2005년에 FCTC를 비준했고, 오는 11월12∼17일에는 서울 강남구 삼성동 코엑스에서 당사국 총회도 연다. 그림 경고문 도입이 필요하다는 국민 의견도 49.5%로 높다. 하지만 국회의 문턱을 넘지 못하고 있다. 수년 전부터 관련 법안 개정안이 발의됐지만 무산된 탓이다. 한국금연운동협의회는 “담배회사의 로비와 관련 종사자의 반대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실제로 담배회사는 담뱃갑 정책에 거세게 반발하고 있다. 미국계 담배회사 필립모리스는 2010년에는 우루과이, 2011년에는 오스트레일리아의 금연정책에 맞서 투자자-국가 소송제(ISD)를 신청했다. 담뱃갑 단순포장 의무화, 담배회사별 단일 브랜드 사용, 일정 면적 이상의 그림 경고문 명시 등을 문제 삼았다. 지적재산권을 침해한다는 이유에서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이 발효된 탓에 한국도 안전지대가 아니다.

담뱃값을 올리는 것도 효과가 증명된 금연정책이다. WHO가 세계 주요 국가를 조사해보니 담뱃값이 낮은 국가일수록 흡연율이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1.98 달러)의 경우 프랑스(7.38달러), 영국(7.64달러), 독일(6.55달러), 미국(4.58달러) 등에 견줘 매우 낮은 수준이다. 보건복지부의 지난해 상반기 실태조사를 보면, 응답자의 41%가 담뱃값이 싸다며 적정 가격으로 8599원을 제시했다.

그런데도 담뱃값 인상에 사회적 저항이 만만찮은 데에는 취약계층의 경제적 부담을 가중시킬 수 있다는 점도 작용한다. 소득이 낮은 사람이 담배를 더 많이 끊거나 줄일 가능성이 높다. 그렇다 하더라도 담배를 끊지 못하는 저소득층의 경제적 부담은 담뱃값 인상으로 가중될 수밖에 없다. 2004년 담뱃값을 500원 인상 이후 사회계층 간 흡연율의 불평등은 계속 더해졌다. 고학력자와 고소득자들은 담배를 끊고 있지만, 사회 취약계층의 흡연율은 좀처럼 줄어들지 않는다.

건물 중간층 흡연장소에서 담배를 피우고 있는 흡연자들. 탁기형 선임기자

건물 중간층 흡연장소에서 담배를 피우고 있는 흡연자들. 탁기형 선임기자

7조3천억원 중 고작 300억원도 줄여

더 근본적인 문제는 인상된 담뱃값이 흡연자를 위한 금연정책에 투입될 가능성이 희박하다는 점이다. 한국은 담배 한 갑(2500원)에 각각 세 종류의 세금과 부담금을 매겨 1549.8원을 떼간다. 이 돈을 기획재정부, 보건복지부, 행정안전부, 환경부, 지방정부가 나눠갖는다. 그 금액이 매년 7조3천억원 정도다. 특히 국민건강증진기금(354원)은 폐암과 같은 담배 관련 질환 지원, 금연운동 등에 쓰이도록 책정돼 1조7천억원이 걷힌다. 하지만 금연클리닉 등 흡연자를 위한 금연사업에 쓰는 예산은 300억원에도 못 미친다. 이마저도 지난해부터 줄고 있다. 매년 건강보험 적자를 메우는 데 1조원이 넘게 쓰기 때문이다. 담뱃값을 인상하려면, 흡연자를 위한 금연정책을 어떻게 펼칠지, 사회 취약층의 경제적 부담을 어떻게 줄여나갈지 구체적인 방안을 제시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2015년에 모든 음식점에서 담배를 못 피우게 하겠다고 정부가 발표하자 언론인 고종석씨는 지난 6월28일 트위터에 이런 글을 올렸다. “당신들 하는 짓 무지무지하게 뻔뻔하다. 흡연자가 부담하는 세금은 탐나고 외국의 대형 담배회사엔 감히 못 대들겠고. 국민 건강이 그렇게 걱정되면 담배의 소비만이 아니라 판매·구입·소지를 전면적으로 금지하는 법안을 국회에 내라.”

정은주 기자 eju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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