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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개혁, 이명박 경제, 박근혜는 무엇?

등록 2012-07-11 15:33 수정 2020-05-03 04:26
박근혜 전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장은 ‘비극과 탄압을 겪고 일어선 공주’ 이미지를 갖고 있다. 그러나 그에게 투영된 대중의 욕망이 무엇인지 뚜렷하지 않다. 경북 구미에 있는 한 양로원에서 노인들이 박 전 위원장을 향해 박수를 치고 있다.
한겨레 김봉규 기자 bong9@hani.co.kr

박근혜 전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장은 ‘비극과 탄압을 겪고 일어선 공주’ 이미지를 갖고 있다. 그러나 그에게 투영된 대중의 욕망이 무엇인지 뚜렷하지 않다. 경북 구미에 있는 한 양로원에서 노인들이 박 전 위원장을 향해 박수를 치고 있다. 한겨레 김봉규 기자 bong9@hani.co.kr

거품론은 이제 나오지 않는다. 그의 지지율은 40%를 넘어섰다. 대중은 이미 그를 새누리당 대선 후보로 여긴다. ‘이명박근혜’라는 신조어는 받아들이지 않았다. 정권 말기 온갖 부정부패의 파편을 맞아 휘청거리던 ‘여당 후보 핸디캡’은 없다. 다른 대선주자들과 달리 그에게는 ‘사랑’이라는 말도 종종 사용된다. 대중은 왜 그를 지지하는 것일까.

여당 비주류 시기에 지지율 더 높아

박근혜 새누리당 의원의 지지율은 견고하다. 오랫동안 차곡차곡 쌓여왔다는 점에서 그렇다. 2008년 이후로는 1위 자리를 뺏긴 적이 없고, 2010년 이후로는 30% 아래였던 적을 찾기도 어렵다. 영남·보수·고연령·저학력 중심의 지지 기반을 확고히 갖췄다. 35% 안팎이라고 평가되는 이 기반 위에 중도의 표를 더해가고 있다.

그가 한나라당 대표를 맡았던 2004년으로 거슬러 올라가보자. 그는 탄핵 역풍에 허우적대던 한나라당의 구원투수 역할을 기대 이상으로 해냈다. 17대 국회에서 참여정부·열린우리당의 ‘4대 개혁입법’ 추진에 ‘국가정체성 사수’로 맞섰다. 보수의 총아로 거듭났지만, 대중은 보수 본능을 드러낸 그를 달가워하지 않았다. 지지율은 10%대로 떨어졌다. 이후 각종 재·보궐 선거를 싹쓸이하며 ‘선거의 여왕’이란 찬사 속에 영남의 맹주, 보수의 대표로 자리매김했다. 그러나 2007년 한나라당 대선 후보 경선에서 중도·실용과 수도권을 앞세운 이명박 후보에게 여론조사에서 밀려 패했다.

그의 지지율은 여당 비주류 시기에 더 높아진다. 깨끗한 경선 승복에도 불구하고, 2008년 총선에서 친박계는 ‘공천 학살’을 당했다. 그는 친박연대 등을 통해 자기 세력을 대거 생환시킴으로써 오히려 자신의 위치를 끌어올렸다. 야당의 지리멸렬 속에 ‘박 전 대표’가 사실상 제1야당 역할을 했다. 2009년 말 이명박 대통령이 밀어붙인 세종시 수정안을 부결시켰다. 그가 손을 뗀 2010년 지방선거에서 한나라당은 참패했다. 2012년 4월 총선은 결정적이었다. 여당이 이기는 게 이상하다던 선거에서 그는 또다시 구원투수로 나서 ‘새누리당 과반’이라는 전공을 세웠다. 지지율은 40%를 돌파했다. 윤희웅 한국사회여론연구소(KSOI) 조사분석실장은 “박 의원은 큰 실수 없이 조금씩 조금씩 포인트를 쌓아왔다”며 “단순히 이미지로 얻은 지지율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물론 대중에게 그의 이미지는 다른 정치인들과 애초부터 다르다. 대중은 ‘정치인 박근혜’ 이전에 ‘박정희-육영수의 딸’이라는 이미지로 그를 알았다. 박 의원의 그런 ‘신분’은 대중이 그를 좋아하는 상당한 이유로 작용한다. 박 의원의 높은 지지율을 받아들이기 힘든 사람들은 그를 ‘독재자의 딸’이라고 비판하지만, 대중에게 ‘비극과 탄압을 겪고 일어선 공주’ 이미지가 작용하는 것은 사실이다. 절대빈곤 극복의 경험을 공유하며 박정희 시대를 추억하는 노년층이나, 가난한 삶을 보듬어주길 바라는 저소득층이 ‘박정희 대통령의 딸, 육영수 여사의 딸’을 보면 손을 붙잡고 우는 이유다.


‘불통’ 이미지도 지지율에 별다른 영향을 끼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이택수 리얼미터 대표는 “정치권 내부에선 불통이라고 느끼는 것을 대중은 권위나 카리스마로 인식할 수 있다”고 말했다.

독재자의 딸, 강점이 약점을 상쇄

박 의원은 정치적으로 중요한 대목에서 대중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천막당사’라는 감성적 방식으로 대중에게 헌신적 이미지를 느끼게 하고, 선거 목표를 달성함으로써 위기 극복 능력을 보여줬다. 경선에 승복했지만 공천에서 측근들이 줄줄이 잘려나가는 장면은 권력자에게 탄압받는 이미지로 대중에게 각인됐고, 그럼에도 선거에서 큰 지분을 확보해 존재감을 증명했다. 세종시 수정안 폐지를 관철함으로써 ‘원칙’과 ‘약속’을 지킨다는 이미지를 남겼다. 대중은 19대 총선으로 ‘위기에 강한 박근혜’를 다시 한번 목도했다.

박 의원의 절제된 화법이 대중에게 어필한다는 평가도 있다. 2006년 지방선거 때 얼굴에 칼을 맞고도 “대전은요?”라는 한마디로 선거를 걱정했다는 이야기가 곧잘 회자된다. 정치인들은 입만 열면 지키지도 못할 약속을 한다는 식의 불만이 그에게는 통하지 않는다. 자신의 정치 행보와 그 결과를 통해 ‘신뢰의 리더십’이라는 자산을 쌓은 것이다. 5월28~29일 동아시아연구원(EAI)·한국리서치의 대선주자 신뢰도 조사를 보면 박 의원이 1위다. 2009년 이후 같은 조사에서 늘 1위였다고 한다. 최근 당내 경선룰 논란에서 드러난 ‘불통’ 이미지도 지지율에 별다른 영향을 끼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이택수 리얼미터 대표는 “정치권 내부에선 불통이라고 느끼는 것을 대중은 권위나 카리스마로 인식할 수 있다”고 말했다. 원칙 없고 탐욕스러운 이명박 정부, 우왕좌왕하면서 뭔가 보여주지 못하는 야당의 존재는 박 의원의 존재감을 상대적으로 돋보이게 만든다.

박 의원이 ‘박정희·육영수 후광’뿐 아니라 독립된 정치인으로서 이미지를 각인시키자 ‘독재자의 딸’이라는 비판은 잘 먹히지 않는 것 같다. 독재자의 딸이라는 약점을 다른 강점이 상쇄하는 셈이다. 2007년 대선 때 이명박 후보의 도덕성은 문제가 있지만, 경제는 잘할 것 같으니 괜찮다는 인식이 팽배했던 것과 비슷하다.

그렇다면 대중이 박 의원에게 기대하는 건 뭘까? 2002년 노무현 후보에게 개혁과 변화의 욕망, 2007년 이명박 후보에게 경제의 욕망이 투영됐다면, 박 의원에게 투영된 대중의 욕망은 뚜렷하지 않다. 윤희웅 실장은 “박 의원은 어떤 분야에서 특별히 잘할 거라는 믿음을 주기보다는, 각 영역에서 다른 대선주자들보다 잘할 것 같다는 상대적 우위의 이미지를 갖고 있다”고 말했다. ·한국사회여론연구소의 6월29~30일 조사를 보면, 박 의원은 ‘국정 전반을 가장 잘 이끌 후보’ 1위(42.5%)를 차지했다. 2위인 안철수 원장(15.1%)과 큰 차이가 났고, 자신의 지지율(42.1%)과 비슷했다. 그런데 ‘국민 통합을 가장 잘 이뤄낼 후보’(36.0%)와 ‘경제를 가장 잘 이끌 후보’(32.6%) 항목에서는 상대적으로 적은 응답으로 1위를 했다. 국정운영을 두루 잘할 것 같은 이미지는 있는데, 특별히 뭘 해낼 수 있을지 보여주지 못하는 것이다.


논쟁 본격화하면 지지율 변화 생길 수도

특히 올해 대선의 중요한 화두인 경제민주화, 양극화 해소 등에 대한 논쟁이 본격화하고 대중의 요구가 구체화하면, 박 의원의 견고한 지지율에도 변화가 생길 수 있다. 박 의원이 김종인 전 의원을 내세워 경제민주화 이미지를 부각시키고 서민 복지를 강조하며 의제를 선점하는 이유다. 이택수 대표는 “박 의원의 입에서 직접 나오는 정책들을 국민이 어떻게 체감하느냐에 따라 지지율 변동이 올 수 있다”고 말했다. 7월5일 발표된 새누리당 대선 후보 경선 선거대책위원회 구성에서 ‘보수 본색’을 드러낸 것이 지지율에 어떤 영향을 끼칠지도 눈여겨볼 대목이다.

이지은 기자 jieun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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