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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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쉬쉬하다가 성노동자만 범죄자

‘성매매특별법’ 둘러싼 멈춰선 7년 논쟁… 한국 성산업 시스템 도외시하며
성매매 여성만 처벌해, 적어도 비범죄화해야
등록 2012-06-29 04:28 수정 2020-05-02 19:26
성매매집결지에 대한 대대적인 단속이 있던 2011년, 성매매특별법 개정을 요구하는 서울 영등포구 성매매 여성 노동자들. <한겨레> 김태형 기자

성매매집결지에 대한 대대적인 단속이 있던 2011년, 성매매특별법 개정을 요구하는 서울 영등포구 성매매 여성 노동자들. <한겨레> 김태형 기자

2008년 대만 타이베이에서 3명의 성노동자가 호객행위를 한 혐의로 체포됐다. 이 사건을 맡은 판사는 여성들이 생활비를 벌 수 있는 능력이 부족했기 때문에 성노동에 종사했다고 판단하고 강제 직업훈련을 받도록 판결을 내렸다. 타이베이의 사회유지법은 1년에 3번 이상 성판매로 적발되면 교정소로 보내 기술훈련을 받도록 정하고 있다. 그러나 법이 제정되고 8년 동안 그런 교정시설은 만들어지지도 않았음을 판사도 몰랐다. 그때까지는 체포된 여성을 며칠간 구금하고 풀어주는 것이 관례였다. 야페이슈 대만 난화대학 공공행정정책원 교수는 실행될 수 없는 법이 존재하는 이유는 “성노동자를 사회에서 제거하는 것이 필요한 것으로 간주”됐기 때문이라고 했다(‘사회를 멸균하다’, 3권).

월 40만원, 실효 잃은 자활

여성 노동시장이 각박한 나라에서 자활책은 현실적이기 어렵다. “우리보고 자활을 하라는 거예요. 자활센터에서 직업교육을 받으면 한 달에 40만원씩 준다는 건데, 40만원을 어디다 써요. 여기 다 20~30대고 집에서 가장인 애들도 많아요. 그리고 배워서 어디다 써먹나요. 먹고살 만한 일자리에 취직시켜주는 것도 아니잖아요.” 지난해 한국의 서울 영등포 성매매 집결지에서 강제 철거와 단속에 항의해 두 달 동안 시위를 벌인 세희씨의 말이다.

한국의 ‘성매매특별법’은 2004년 9월23일 시행된 ‘성매매 알선 등 행위의 처벌에 관한 법률’과 ‘성매매 방지 및 피해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을 함께 이르는 말이다. 성매매특별법은 2002년 전북 군산 개복동 유흥주점에서 화재가 났을 때 성매매 여성 등 14명이 숨진 사건이 발화점이 됐다. 현장 조사 결과 그들 대부분이 숙소에서 감금된 상태였던 것으로 드러나 ‘성매매 피해 여성들의 인권을 보호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았다. 그러나 국회 본회의로 넘어가자 법안 취지는 ‘성매매 알선 등 행위와 성매매를 근절하기 위하여’로 바뀌었다. 왜 성매매를 근절해야 하는지, 자발적인 성매매까지 범죄화해야 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분명하지 않은 채로 법안은 국회를 통과했다. 여성 인권은 거론되지 않고 ‘성매매는 범죄’라는 금지 규범만을 뚜렷이 각인한 결과라는 비판이 있다(‘성매매특별법의 입법 과정에 대한 연구’, 이지혜).

성매매특별법은 피해자로서 보호받을 권리, 감금당하지 않을 권리 등 최소한의 인권을 담고 있다. 그런데 특별법이 시행된 뒤 예상치 못한 일이 일어났다. 성매매 여성들이 피해자가 아니라 노동할 권리를 주장하고 나선 것이다. “자발적 성매매 여성은 없고 성매매 피해자의 목소리만을 담은 특별법”이라는 비판과 논쟁은 이때 시작됐다. 성노동자의 권리를 주장하고 나선 민주성노동자연맹(민성노련), 한터여종사자연맹 등의 단체에도 비난이 쏟아졌다. 성노동자를 자임하는 여성들은 포주들이 관리하는 여성들일 것이라는 지레 짐작에서다. 민성노련은 한국노총과 민주노총에 가입을 신청했으나 거절당했다. 이는 아마도 당시 입법을 추진한 여성계와 사회 일반의 인식이 작용한 탓일 게다.



“바로 그 사각지대가 문제다. 2010년 성매매 실태조사를 보면, 성매매 여성에 대한 평균 기소율은 26.3%로 성구매자의 기소율보다 높고 성매매 여성을 피해자로 인정한 사건은 단 한 건도 없었다.”-성노동자 권리모임 오김숙이 연구원

성매매 여성 피해자 인정, 한 건도 없어

“성매매방지법은 이제 출발점에 있고, 지금까지는 실제 포주가 보살펴줬어요. 물론 폭력과 착취를 수반하는 보살핌인 거죠. …그 여성들이 요구하는 것을 그대로 수용한다고 자기선택권을 올바로 준 것이라고 할 수 있나요.”(조영숙 전 한국여성단체연합 사무총장) “성매매 여성들의 인권은 인정하겠으나 노동권 인정은 시기상조.”(양현아 서울대 법학과 교수) 성노동자와 여성계의 엇갈림은 “여자들끼리 진흙탕 싸움하는 꼴”이라는 거부감이 큰 탓에 그 뒤 좀처럼 토론이 이뤄지지 않았다. 7년 동안 논쟁은 멈추었다.

성매매 문제에 대해 한국 사회가 합의할 수 있는 지점이 정말 없을까? 홍성수 숙명여대 교수(법학)는 이 법의 딜레마를 이렇게 설명한다. “성매매를 불법 상태로 둘 경우 현실적으로 존재하는 성노동자들이 법적 보호의 사각지대에 놓인다는 문제가 있지만, 그렇다고 합법화하면 국가가 성매매를 합법적 거래소로 공식 용인하는 것이 된다.”

성노동자 권리모임의 오김숙이 연구원은 “바로 그 사각지대가 문제다. 2010년 성매매 실태조사를 보면, 성매매 여성에 대한 평균 기소율은 26.3%로 성구매자의 기소율보다 높고 성매매 여성을 피해자로 인정한 사건은 단 한 건도 없었다”고 했다. 성노동자 권리모임은 “한국에서 반성매매법이 제정된 이후 2만5천 명의 성노동자가 체포됐다”고 추산한다. 이덕인 부산과학기술대 교수(경찰경호계열)는 “처벌법이라면 누가 피해를 입었는지, 보호법이라면 무엇을 보호하는지 모호한 경우가 많다. 성매매특별법에서 여성은 공범적 피해자로 규정된다”며 폐지를 주장한다. “국가 규범 정책이 필요 이상의 규제에 나서면 경찰법화돼갈 우려가 있다”는 것이다.

어찌됐든 급진주의적 페미니즘과 자유주의적 페미니즘, 여성계의 두 시각에서도 일치점은 있다. ‘성매매 여성의 비범죄화’다. “국회 법사위에서는 성매매 여성의 비범죄화 주장을 용인할 수 없다는 것이었죠. 형법 체계가 단일해야 하기 때문이라는 거죠.”(조영숙) “근본적으로는 법 개정을 통해 (성매매 피해자에서) ‘성매매 여성’으로 보호 대상을 확대하는 것이 필요하다.”(오지원 판사, 2권) 양현아 서울대 교수(법학)는 말한다. “성매매 여성은 불처벌주의다. 이 법이 목표하는 것은 여성들의 탈성매매를 돕는 것이고, 더 중요하게는 중간업자나 성산업을 좌우하는 큰손들을 없애는 것이다. 우리나라가 처해 있는 문제는 성매매가 너무나 많다는 것이다. 고리대금업자, 조직폭력배, 임대업자 등 성매매를 통해 불법으로 축적된 이윤에 대해 징수하고 몰수하는 법 규정이 있지만 일선에서 거의 시행되지 않는다. 단순 매매업자만 잡아들인다. 성노동권에 대한 논쟁은 한국 성산업의 무지막지한 시스템을 너무나 도외시하는 것이다. 이런 논쟁, 공허하다.”

“자활 대책보다 저희 이야기를 들어주세요”

끝나지 않을 듯한 논쟁에 대해 성노동자들은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성노동자 혜리씨는 이렇게 말한다. “저는 책도 많이 읽고 신문에 나오는 말 정도는 알아들을 수 있는데, 성노동자가 알아들을 수 있는 성노동 담론이 별로 없어요. 누구를 위해 쓴 건지 알 수가 없어요. 성매매 관련 정책들도 실제 성노동을 하나도 모르는 사람들이 만든 탁상공론이 많다고 생각해요.” 영등포 성노동자 세희씨도 말한다. “저희가 원하는 것은 자활 대책보다도 저희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거예요.”

참고 문헌: (서울대 여성연구소)

남은주 기자 mifoc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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