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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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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정당 애정남녀에게 묻다

진보정당 개척했거나 지지하지만 지금은 거리 두는 명망가 16명이 답한 통합진보당 사태의 원인과 해법…“‘무도덕적 가족주의’ 갇힌 낡은 정파 구도의 문제” vs “NL 이론 안에 잠재돼 있던 맹목성이 폭발한 것”
등록 2012-05-25 15:35 수정 2020-05-03 04:26

<font color="#877015"> <한겨레21>은 한발 걸어나와 최대한 많은 사람의 목소리를 듣기로 했다. 쇠라의 점묘화처럼, 다수의 발언이 모여 상황의 본질을 드러내리라 판단했다. 여럿에게 물은 이유가 또 있다. 논란은 일개 운동권 정파가 일으켰으나 나비효과처럼 진보정당 역사 전체가 부정당하게 됐다. ‘1997년 이후 진보정당 운동에 참여했거나 지지 선언을 하는 등 애정을 가진 명망가’ 중심으로 먼저 리스트를 짰다. 현재의 진보정당 운동에 일정한 거리를 둔 사람을 다시 추렸다. 뜨거움보다 차가움이 필요했다. 과거 민주노동당 당원이었으나 지금 통합진보당이나 진보신당에 적을 두고 있지 않은 사람, 혹 적을 뒀더라도 활동에 거리를 둔 사람들이다.
공통 질문은 다음과 같다. 1. 통합진보당 폭력사태 및 운영 비민주성 논란은 왜 일어났나, 특정 정파의 문제인가 운동 진영 일반의 문제인가? 2. 이석기·김재연 당선인은 사퇴해야 하는가? 3. 통합진보당의 회복 방안은 무엇인가?
정당인·학자·문화예술인 등 20여 명에게 전화로 물었고, 이 중 16명이 답했다. 원인 진단과 해법은 조금씩 달랐다. ‘이석기·김재연 당선인은 사퇴해야 한다’에는 16명 모두 한목소리를 냈다. 13명은 통합진보당에 한 가닥 희망이 있다고 봤고, 3명은 절망을 봤다._편집자 </font>

누구보다 마음 아픈 사람들이 있다. ‘민주당에 대한 비판적 지지’라는 유령과 투쟁하며 결국 2004년 민주노동당의 국회 진출을 이뤄냈던 분당 전 민노당 의원과 당직자들이다. 최순영(59) 헌정회 이사는 17대 국회 민노당 의원으로 활약했다. YH무역 노조 지부장을 했던 노동·여성 운동의 산 증인이다. “(원인) 부끄러워서 어디 나가기가 힘들다. 어디 가나 물어보니까. 민노당 10년 동안 부대표로 있었고 국회의원을 하고 마지막에 최고위원까지 당의 요직을 거쳤는데 그런 사람으로서 너무 낯뜨겁다. (2008년) 탈당 사태 때도 당을 살려야 한다는 생각에 온갖 활동을 했는데 결국 여기까지 왔다. 할 말이 없다. 이런 사태가 벌어질 거라는 예측은 총선 전에 했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가슴이 멍하다. 진보 전체가 도매금으로 넘어가는 안타까움이 크다. (해법) 정치는 원래 권력이지만 이번 사태는 그야말로 개인의 권력(욕구)에서 오는 문제다. 권력이 아니라 당직을 일하는 자리로 만들어야 한다. 마지막 민노당 비상대책위를 할 때 경기동부연합 소속 당직자를 다 대기발령시켰다. 분당 사태가 그 속에서 이뤄졌다. 강기갑 전 대표가 들어와 다 그대로 받았다. 그때만이라도 잘 정리를 했다면 괜찮았을 텐데. ”

<한겨레21>을 통해 발언한 16명은 모두 참담함을 감추지 못했다. (왼쪽부터) 최순영 전 민주노동당 의원 , 이영순 전 민주노동당 의원, 현애자 전 민주노동당 의원, 천영세 전 민주노동당 대표, 백승헌 변호사, 민경우 전 통일연대 사무처장, 배준범 전 민주노동당 국제부장, 김민하 정치평론가.

<한겨레21>을 통해 발언한 16명은 모두 참담함을 감추지 못했다. (왼쪽부터) 최순영 전 민주노동당 의원 , 이영순 전 민주노동당 의원, 현애자 전 민주노동당 의원, 천영세 전 민주노동당 대표, 백승헌 변호사, 민경우 전 통일연대 사무처장, 배준범 전 민주노동당 국제부장, 김민하 정치평론가.

(왼쪽부터) 장상환 경상대 교수, 조돈문 가톨릭대 교수, 우석훈 2.1 연구소장, 조현연 성공회대 교수, 이택광 경희대 교수, 박상훈 후마니타스 대표, 이송희일 영화감독, 변영주 영화감독.

(왼쪽부터) 장상환 경상대 교수, 조돈문 가톨릭대 교수, 우석훈 2.1 연구소장, 조현연 성공회대 교수, 이택광 경희대 교수, 박상훈 후마니타스 대표, 이송희일 영화감독, 변영주 영화감독.

“NL의 수장급들이 사리사욕에 물들 나이”

이영순(50) 전 민노당 의원은 민족해방(NL) 계열 울산연합으로 분류된다. 그도 사퇴를 조언했다. “(원인) 진보정당운동이 권력화되면서 권력지향적이 되고, 당이나 진보운동보다 패권을 더 중요시하게 된 것이다. NL·PD(민중민주)라는 정파의 문제는 아니고 운동의 정신이 퇴색돼 권력지향적이 된 것이다. …조·중·동이나 정권 차원에서 진보운동의 싹을 없애기 위해 조작도 하고 침소봉대하는 측면이 있지만, 문제는 내부에서 찾아야 한다고 본다. (사퇴) 억울한 측면도 있겠지만 대의를 위해 자신의 뜻을 꺾어야 한다. 진보정당을 살리는 게 대의다.”

현애자(50) 전 민노당 의원도 참담한 심경을 전했다. “NL이라는 특정 정파의 문제는 절대 아니다. 자주민주통일 운동 진영 안에서 일부 정파는 대중정당의 민주적 의사결정을 만들려는 노력을 해왔다.” 천영세(69) 전 민노당 대표는 권영길·문성현 전 대표와 함께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었다. 천 전 대표는 <한겨레21>과의 통화에서 다시금 이석기·김재연 당선인의 사퇴를 간접적으로 주문했다.

백승헌(49) 변호사는 시민사회에서 야권 연대를 이끌었다. “(원인) 독재정권 시절 저항운동의 역사가 일정 부분 폐쇄성이나 소통의 제한을 지녔다. 진보정당의 의식 변화 부족 등이 겹쳤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사태는 진보 진영 전체가 같이 책임을 느끼고 대안을 마련해야 한다. 이번 사태로 진보적 시민들이 가장 아파하는 점은 진보정당뿐 아니라 진보세력과 진보적 의제가 훼손되고 있다는 것이다.”

민경우(47) 전 통일연대 사무처장은 NL 계열 운동 진영에서 오래 활동했다. 지근거리에서 진보정당 운동을 지켜봐왔다. 최근엔 <대한민국은 안철수에게 무엇을 바라는가>(열다섯의공감 펴냄)를 펴내는 등 자유주의 쪽으로 한 걸음 이동했다. “(원인) NL 진영이 1980년대 중반부터 1990년대 초반까지 긍정적 역할을 했지만, 이후 시대에 뒤떨어져 점차 고립됐고 그것이 비정상적 수준으로 확대돼서 문제가 폭발했다. 운동하는 사람들의 경우, 생각이 행동에 영향을 끼친다. 폭력 사태는 (당권파가) 도덕적으로 나쁜 사람들이라기보다 NL 이론 안에 잠재돼 있던 맹목성이 폭발한 것이다. 나는 2010년부터 2011년까지 NL이 몰락할 것이라고 말해왔다. 정파의 수장급 사람들이 전부 내 나이가 됐다. 10년 전만 해도 사리사욕이나 자리 욕심이 거의 없었던 이들이다. 굉장히 헌신적이었다. 지금은 나이가 들었기 때문에 자리 욕심이 많다. 정파적인 이해와 욕심이 많이 결합돼 있고, 거기에 시대와 맞지 않는 폐쇄적·맹목적·비지성적 태도가 문제를 일으켰다. (사퇴) 사퇴는 물론이고 그 이상의 책임도 져야 한다. …NL이든 PD든 2007년 대선 때 대중의 심판을 받은 거다. 심상정·노회찬 당선인이 걸었던 길도 마찬가지다. 결론적으로 통합진보당이 해체되는 게 좋다고 생각한다. 1990년대 중반 이후 닥친 정보기술 사회에 맞게 새로운 정당을 추진하는 게 맞다.” 민씨는 총선 때 청년당을 지지했다고 밝혔다.

<table border="0px" cellpadding="0px" cellspacing="0px" width="100%"><tr><td height="22px"></td></tr><tr><td bgcolor="#DFE5CE" style="padding: 4px;"><table border="0px" cellpadding="0px" cellspacing="0px" width="100%" bgcolor="#EBF1D9"><tr><td class="news_text03" style="padding:10px">

<font color="#003366"> 정당인·학자·문화예술인 등 20여 명에게 전화로 물었고, 이 중 16명이 답했다. 원인 진단과 해법은 조금씩 달랐다. ‘이석기·김재연 당선인은 사퇴해야 한다’에는 16명 모두 한목소리를 냈다. 13명은 통합진보당에 한 가닥 희망이 있다고 봤고, 3명은 절망을 봤다. </fo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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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파의 실체를 가리니 책임물을 대상도 없다”

배준범(35)씨는 분당 전 민노당 국제부장이었다. “(원인) 5월16일 김미희 당선인이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하던 중 언론의 당권파 비판에 대해 기자들에게 ‘소속된 언론사 입장 때문에 양심을 발휘하지 못한다는 것을 이해한다’는 발언을 한 것이 집약적으로 보여준다. 어느 정치조직이든 자신의 세계관에 따라 세상을 바라보지만, 이 발언을 보면 이들은 현실과의 긴장감을 상실한 듯하다. 2004년 민노당 원내 진출 이후 당내에서 현재의 (NL 계열) 당권파가 햇빛 아래로 나오면 변화하든가 소멸할 것이라는 전망이 있었다. 그게 10년 전이었는데 이들은 소멸하지 않았고 별로 변하지도 않은 것 같다. 2008년 분당 때문에 내부 견제와 경쟁이 사라져 이런 경향이 심화됐다. 정파 없는 정치조직은 없다. 문제는 국가 정책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정당의 가장 큰 정파에서 누가, 어느 단위에서 결정을 내리는지 알려진 바가 거의 없고, 책임을 물을 장치도 없다는 것이다. 옛 당권파 내부에서 영향력 있는 인사가 누구인지 알아내기 위해 언론이 탐사보도를 해야 하는 실정이다. 본인들에게 물으면 그 정파 자체를 부정하거나 자신의 역할이 없다고 한다. 결국 이석기·김재연 당선인도 당권파가 책임을 져야 할 일련의 사태에 대해 자신들이 책임을 질 수 없다는 입장 아닌가. 그것(정파 구조)의 악영향 중 하나가 진보정당 내부에 논쟁이 사라졌다는 점이다. 역사적으로 좌파의 이론적 혁신과 진화는 진보정당 내 여러 정파가 노선과 전략을 공개적으로 논쟁하며 이루어졌다. 지금 우리는 옛 당권파가 한국 사회를 어떻게 진단하고, 어떤 방향으로 이끌고 나가려는지 아는 게 거의 없다.”

정치평론가 김민하(30)씨는 “다른 정파에선 문제가 없었다고 이야기하긴 어렵다. 민주당도 모바일투표를 하면 잡음이 생긴다. 하지만 이번에 드러난 당권파의 문제는 심각했다. 이는 그들이 지닌 문제이지 운동 진영 전반으로 확장할 수 있는 부분은 아니다.”

진보정당에 애정을 지닌 학자들 다수도 마음으로 운다. 장상환(61) 경상대 교수는 초기 민노당 정책위원장이었다. NL 계열이 입당하기 전에 풍찬노숙하며 진보정당을 만들었다. “사필귀정이라는 생각이 든다. 진보정당은 노동자와 농민을 대표해야 한다. 출발은 민노당, 민주노총, 진보정당추진위원회 등이 주축이 됐다. 처음에는 소극적으로 참여하던 NL 계열이 전략적 중요성을 갖고 대거 가입했다. 그 당을 자기들 위주로 가져가려 한 거다. 진보정당의 최종 목표는 노동자·서민의 권익 향상에 있어야 하는데, 이른바 자주파 계열이 당의 재정·조직·당직 등을 장악해 자기들의 지향을 위한 수단으로 민노당을 바꿔나간 것이다. 결국 PD 계열이 견디지 못하고 밀려났다. 2008년 진보정당이 상당히 위축됐다. 폭력 사태의 경우 과거(2005년) 민주노총 대의원대회에서 이른바 ‘현장파’들이 단상을 점거한 일이 있었다. 비슷한 행태지만 당시에는 소수파가 다수파의 횡포에 대해 저항하는 몸부림이었다면, 지금 통합진보당의 폭력은 자신들이 다수파인데 여론에서 몰리니 기득권을 유지하려고 정당한 프로세스를 배제한 점이 다르다. (해법) 저들이 주도하는 한 통합진보당이 과거 민노당으로 되돌아갈 가능성은 보이지 않는다. 당의 정당성·민주성은 이미 치명적으로 훼손됐다. 안에서 바꾸는 건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철수해서 따로 만드는 게 빠르다고 본다.”

“정파의 힘에 의해 당의 리더 되는 구조”

조돈문(58) 가톨릭대 교수는 1997년 대선 권영길 캠프인 ‘국민승리21’ 때부터 진보정당 운동을 이끌었다. 분당 직전 비상대책위원장도 맡았다. “민노당 활동가들이 창당 이전 비합법 시대를 포함해 오랫동안 정파끼리 운동을 하던 관성이 있었다. 이게 당이 만들어지고 정착하는 초기에는 기여를 한다. 근데 시간이 지나며 부작용이 나타났다. 정파에 대한 충성·결속이 당에 대한 결속·헌신과 시민 지지자에 대한 헌신을 뛰어넘는 구조가 오랜 기간 조성돼왔다. 이번 사태도 당의 미래와 진보정당운동의 미래, 일반 시민이 뭘 원하느냐보다 자기 정파가 어떤 지시를 주느냐에 따라 당권파가 신호에 반사적으로 움직여와서 생겼다. …당에 의해 진보정당의 리더가 선택받는 게 아니라, 정파 리더로 선택받은 뒤 그 정파의 힘에 의존해서 당의 리더가 되는 구조다. 당의 발전보다 정파에 얼마나 충성했느냐에 따라 리더가 결정된다. …이석기, 나는 그 사람 이름을 이번에 처음 들었다. (나는) 당 활동을 부천 등 경기도에서 주로 했다. 그런데도 처음 들었다. 듣도 보도 못한 사람이 이번 비례대표 선거에서 압도적 지지를 받은 것이다. 이석기씨가 속한 ‘경기동부’라는 정파가 가진 영향력 때문에 (당권파 당원이) 그 정파의 선택을 지지하게 되고, 그러다 보니 전체 당 수준에서 검증되지 않았고 전체 당을 위해 기여한 것도 전망을 보여준 적도 없는 사람이 많은 득표를 하게 된 것이다. 이석기씨는 4·11 총선 과정에서 거의 역할을 하지 않았다. …NL·PD를 넘어서 어떤 정파건 힘의 균형이 이뤄져야 민주적 담론이 가능하다. 그래서 과거 민노당 때 내가 조직 진단 보고서를 통해 ‘정파등록제’라는 대안을 제시했다. 정파들이 투명하게 활동하고, 자기 활동에 책임지자는 것이었다. NL 계열이 정파등록제가 가질 부작용을 이야기하며 반대했다. 그리고 대통령 선거 뒤 분당하게 됐다. 이처럼 정파 문제가 심각했는데 정파 문제에 대한 해법 없이 (통합진보당이) 출범한 거다. 지금 경기동부연합은 거의 폭력조직 수준의 조직이라는 게 드러났다. 나는 NL 계열을 싸잡아 비판하는 건 반대한다. 신중해야 한다. NL이지만 인천연합은 아주 건강한 조직이다. 인천연합은 노동문제에 대한 감수성이 있고 조직 민주주의 등 게임의 규칙을 존중하는 집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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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L은 민주주의 동의 않고 스탈린주의적”

우석훈(44) 2.1 연구소장은 지난 4·11 총선 때 녹색당을 지지했다. “(원인) 1980년대 조직의 의사결정자들은 이른바 ‘언더’로, 총학생회장 등 드러난 사람들은 얼굴, 이른바 ‘오픈’으로 내세우던 조직문화에서 현 사태의 뿌리가 왔다고 본다. 군사독재 시절, 조직의 의사결정자들과 일반인들이 접하는 얼굴이 달랐다. 이런 문제를 ‘우리끼리’니까 문제 삼지 못했던 역사가 너무 길었다. (사퇴) 길게 보면 사퇴하는 것 외에는 방법이 없다. 그냥 버티면 (진보 진영) 다 죽는다.”

조현연(50) 가톨릭대 교수는 전 민노당 진보정치연구소 부소장이었다. “당권파-비당권파 권력투쟁으로 진단하면 안 된다. 선거 부정의 퍼센티지가 중요한 게 아니라, 선거 부정이 있었고 당의 선거 시스템 자체가 고장난 것이 문제다. 정당이라면 정치적 책임을 져야 한다. 지금 당권파의 태도는 유권자를 우롱하는 거다. (사퇴) 비례대표 경쟁 부문 총사퇴가 맞다. 폭력 행사를 한 부분에 대해선 당 차원에서 철저히 조사해서 처벌해야 한다.”

이택광(44) 경희대 교수는 4·11 총선 때 진보신당 지지 선언을 했다. 학생 시절 NL 운동을 경험했다. “NL 내 경기동부연합 부류의 노선과 통합진보당 대중정당 노선이 충돌한 것이다. NL이 통합진보당에 들어온 건 통일전선 일환이기 때문이다. 통합진보당 민주주의는 자유주의적 가치다. 기본적으로 NL은 민주주의에 동의하지 않는 정파다. 이 사람들의 기본 노선은 스탈린주의적이다. 민족해방운동이 고양기에 있을 때 스탈린주의적 당으로 제국주의와 투쟁한다는 관성을 가진 것이다. 그래서 어떤 도덕적 비난을 해도 반성하지 않는다. 그들이 정당하기 때문에. (해법) NL 노선 문제를 정리하면 가능성은 있다. 이 문제가 커진 것도 대중이 진보정당에 관심이 많아졌음을 반영한다.”

박상훈(47) 후마니타스 대표는 “NL이다 종북이다, 그런 접근은 아닌 것 같고 드러난 행동의 문제에 대해 말하고 싶다. 원래 벗어났어야 할 문제인데 정파 구도가 너무 오래 지속됐다. 특정 정파가 문제가 아니라 권위주의 정파 구도가 민주화 이후에도 ‘무도덕적 가족주의’라 할 만한, 자기 정파만 무조건 옹호하는 문화가 지속됐다.”

진보정당 지지 선언을 했던 작가와 예술가들도 참담한 심정이다. 영화 <후회하지 않아> 등을 만든 이송희일(41) 감독은 2004년 ‘그날’을 기억했다. “(소회) 2004년 민노당이 국회에 처음 입성할 때 나도 서울 여의도에 갔다. 개표날 여의도 당사 앞에서 같이 축하하며 개표 방송을 봤다. 그때의 소회란… 나 역시 영화 만드는 사람 이전에 90학번이었다. 한국에서 진보의 목소리가 적었는데 그나마 민노당이 국회에 입성한 게 감동적이었다. 문화예술인 지지 선언에 이름도 걸었다. 분당이 되고 통합진보당이 재결성되는 과정을 보며 많이 화가 나고 분노했다. …중앙위의 생중계를 보며 비참했다. ‘10년 운동의 역사가 퇴보했구나’라는 생각에.”

꼬맹이 괴물을 만든 어른 괴물은 누굴까?

영화 <화차> <낮은 목소리> 등을 만든 변영주(46) 감독은 오랫동안 민노당 지지 선언을 해왔고, 최근엔 진보신당 지지 선언을 했다. “(소회) 나는 아직도 (폭력을 행사한) 학생당원들의 얼굴과 모습이 기억에서 지워지지 않는다. 무엇이 저들을 자기가 가장 미워하는 어른들과 닮게 만들었을까. 그것에 대해 ‘우리(386) 세대는 어떤 책임감을 가져야 할까’ 생각했다. ‘우리(386)는 아직도 이 사회에 필요한 존재인가’라는 생각이 들 정도다. 내 방식으로 말하면 ‘저 꼬맹이는 어떤 것에 절망했기에 저 썩은 동아줄(당권파)을 희망이라고 부여잡고 꼬맹이 괴물이 되었을까. 그리고 그 꼬맹이 괴물 주변의 어른 괴물들은 어떤 괴물인가’라고 생각했다. 유시민 전 대표가 애국가 이야기를 했다. 신선했다. 진보 진영은 이런 걸 논의해본 적도 없다. 함께 의논하는 문화가 없으니, 옳다는 인간들만 모여서 살았으니 이 꼴이 되었구나라고 생각했다. 비정규직, 언론노조 파업 등을 정면으로 이야기하고 이슈화할 5월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5월 정국을) 사파 무림의 무협지로 완전히 장악해주신 통합진보당 당권파분들, 당신들은 역사의 책임을 질 것이다.”

<table border="0px" cellpadding="0px" cellspacing="0px" width="100%"><tr><td height="22px"></td></tr><tr><td bgcolor="#DFE5CE" style="padding: 4px;"><table border="0px" cellpadding="0px" cellspacing="0px" width="100%" bgcolor="#EBF1D9"><tr><td class="news_text03" style="padding:10px">

<font color="#003366"> “내 방식으로 말하면 ‘저 꼬맹이는 어떤 것에 절망했기에 저 썩은 동아줄(당권파)을 희망이라고 부여잡고 꼬맹이 괴물이 되었을까. 그리고 그 꼬맹이 괴물 주변의 어른 괴물들은 어떤 괴물인가’라고 생각했다.”- 변영주 영화감독</fo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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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나무 기자 dokko@hani.co.kr·송호균 기자 uknow@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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