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선거의 여왕’을 꺾을 것인가? 4·11 총선이 야권에 던진 가장 큰 충격은 ‘박근혜 대항마’의 부재라는 상황이다. 그래서 많은 이들이 ‘문재인과 안철수’를 한데 묶어 얘기하고 있다. 다만, 문재인 민주통합당 상임고문보다는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에 시선이 더 쏠리는 분위기다. 안 원장은 총선 직전 “지금 있는 분들이 잘해주시면 내가 나설 이유가 없다”(3월27일 서울대 강연)고 말했는데, ‘지금 있는 분들’을 야권 대선주자들로 보면 그가 대선에 나설 이유가 있는 것 같다. 야권 내 선두주자인 문재인 고문이 다소 타격을 받은 것으로 평가돼, 야권의 대선 레이스는 안 원장을 빼고 생각하기 어렵게 됐다.
대권 도전 속마음 내비친 손학규, 김두관
문 고문의 총선 성적표는 ‘절반의 성공’이라는 평가가 많다. 낙동강 벨트의 전투가 의석수에서 기대에 못 미쳤지만, 정당득표율에서는 역대 총선·대선보다 훨씬 높은 수치를 기록했기 때문이다. 그가 진두지휘한 부산·경남 지역(40석) 선거에서 야권은 부산 2석(사상 문재인, 사하을 조경태)과 경남 1석(김해갑 민홍철)을 얻었다. 애초 최대 목표는 두 자릿수였다. 18대 총선에선 민주당 2석, 민주노동당 2석이었다.
반면 부산에서 야권은 40.2%(민주당 31.78%+통합진보당 8.42%)의 정당득표율을 올렸다. 박근혜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장이 다섯 번이나 부산을 다녀간 상황에서 나온 성적이다. 18대 총선 때 민주당(12.7%)과 민주노동당(8.1%)의 성적에 견주면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준다. 문 고문이 야권 단일후보로 대선에 나설 경우 부산에서 40%의 지지를 받을 수 있다는 추론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고 노무현 대통령은 2002년 대선 때 부산에서 29.9%의 지지를 받고 당선됐고, 18대 대선 때 정동영 후보는 13.5%에 그쳤다. 문 고문이 아니었으면 내기 힘든 결과였다는 데는 큰 이견이 없다. 문 후보는 총선일 밤 트위터에 “새로운 정치, 깨끗한 정치, 큰 정치로 보답하겠습니다. 대선 승리, 정권 교체를 위해 제가 할 수 있는 모든 노력을 다하겠습니다”라고 썼다.
‘가능성’으로 대선을 치를 수 있을까? 더구나 상대는 이번 총선을 거치며 ‘괴력의 소유자’로 불리는 강자다. 문 고문 혼자 힘으로 대적하기 어려워 보인다. 안철수 등판론이 불거지는 이유다. 수도권의 한 민주당 재선 의원은 “문 고문이 여의도 국회에서 활동하며 국민에게 신선하고 뚜벅뚜벅 나아가는 모습을 보여주는 게 중요할 것 같은데, 아직은 그의 정치적 파괴력을 잘 모르겠다”고 말했다. 윤희웅 한국사회여론연구소(KSOI) 조사분석실장은 “문 고문은 예비고사를 통과했지만 기대했던 성적은 아니었기 때문에 크게 부각되기는 어렵다. 안철수 원장에 대한 진보 성향층의 관심이 높아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는 “이번 총선에서 정치 불신이 오히려 가중됐다는 점도 안 원장에게 나쁘지 않은 상황”이라고 덧붙였다. 대선에서는 심판론보다 미래지향적 투표 성향이 강해진다는 점도 안철수 등판의 필요성을 뒷받침하는 논리다.
‘문재인 대망론’이 한계를 나타냈다는 평가가 나오자, 민주당 내 다른 주자들도 ‘틈새’를 엿보고 있다. 문 고문을 지지하는 당내 친노 주류 그룹이 총선 패배 책임론에 부닥친 터라, 주자 간 경쟁이 격화할 수 있다는 얘기도 나온다. 손학규 전 대표는 총선 다음날 오전 트위터에 “국민은 역시 무섭다. 겉은 뜨거워도 속은 차다. 국민의 속마음을 찾아가야 한다. 이제 시작이다”라고 썼다. 김두관 경남지사는 광역단체장으로서는 이례적으로 ‘총선 결과에 대한 논평’을 내는 등 대선에 도전하고 싶은 속마음을 숨기지 않았다.
박근혜 vs 안철수, 양자대결 판세 역전
그러나 안 원장이 나서지 않으면, 고만고만한 지지율을 보이는 범야권 주자들이 ‘도토리 키 재기’ 경쟁을 했던 2007년 대선 때와 다르지 않은 상황이 전개될 수 있다는 부정적인 전망도 있다. 민주당의 한 재선 의원은 “안 원장이 야권 대선 경쟁에 합류해야 중도는 물론, 합리적 보수 성향 표심까지 끌어안을 수 있다”고 말했다. 기존 야권 주자들만으로 대중의 관심을 끌기도, 표를 확장시키기도 어렵다는 것이다. 이철희 두문정치전략연구소장은 “총선에 졌고 안철수 원장이 당 밖에 똬리를 틀고 있는 상황에서 야권 주자들이 지지율 상승 계기를 찾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안 원장이 나서게 될 경우 야권의 대선 레이스 방식은 여러 가지로 예상해볼 수 있다. 첫째가 지난해 10·26 서울시장 보궐선거 때 ‘박원순 모델’이다. 당시 민주당은 박영선 후보, 민주노동당은 최규엽 후보를 각각 후보로 선출했고, ‘시민후보’로 나선 박원순 후보가 이들과 야권 단일후보를 뽑는 통합경선을 치렀다. 둘째는 2단계 후보 단일화 방식이다. 민주당과 통합진보당이 후보 단일화를 먼저 한 뒤, 안 원장과 다시 단일화하는 방법이다. 안 원장이 민주당에 입당해 경선을 치르는 방식도 있지만, 그동안 안 원장의 스탠스나 민주당이 총선에서 패한 뒤 헤매고 있는 상황 등을 고려하면 가능성이 상대적으로 낮다.
야권 처지에서는 통합경선이 이상적일 수 있다. 대중의 관심과 참여를 끌어내는 데 가장 효과적이기 때문이다. 야권은 시민참여경선으로 치른 서울시장 후보 통합경선, 모바일투표를 도입한 민주당 당 대표 선거 등에서 흥행 대박을 거둔 바 있다. 윤희웅 실장은 “야권은 여러 주자들이 경쟁하며 대중의 관심을 모을 수 있다. 반면 새누리당은 경쟁 없는 박근혜 1인 체제로 가는 게 오히려 경쟁력과 대중의 관심을 떨어뜨리는 한계로 작용할 수 있다”고 말했다. 정치 전문가들은 안 원장이 출마할 가능성을 높게 보지만, 서울시장 보궐선거 때처럼 안 원장이 야권 후보에 대한 ‘양보와 지지’를 통해 막강한 지원군의 역할을 할 수도 있다.
가장 중요한 건 안 원장의 결정이다. 출마한다면 언제, 어떤 방식으로 하게 될지에 관심이 쏠린다. 그는 지금까지 스스로 정치 변화를 위한 ‘촉매제’ 역할을 강조했다. “기성 정치권이 긴장하고 경쟁하도록 하는 존재”라는 것이다. 대선 출마 가능성에 대해서도 “제가 선택하는 게 아니라 저에게 주어지는 것”이라고 했다. 총선 국면에서는 ‘강연 정치’, 유튜브 동영상을 통한 투표 독려 활동을 하며 존재감을 내보였다.
그러나 정치권 외곽에서 간접적인 영향을 행사하려는 안철수식 정치가 예전 같지 않다는 평가도 나온다. 총선 투표율(54.3%)도 2010년 지방선거(54.5%)보다 낮았고, ‘신선함’은 시간이 갈수록 떨어지게 마련이기 때문이다. 총선 직후 한국갤럽이 투표 참여자 800명을 대상으로 한 여론조사 결과도 총선 이전과 달랐다. 안 원장은 박 위원장과의 양자 대결에서 35.9% 대 45.1%로 밀렸다. 총선 이전에는 대부분의 조사에서 이기는 걸로 나왔다. 박 위원장과의 양자 대결에서 16.3%포인트(31.4% 대 47.7%)의 격차를 보인 문 고문보다는 격차가 적었지만, 다자 대결에서는 박 위원장(37.0%)에 이어 2위를 차지한 문 고문(17.0%)보다 약간 낮은 16.0%를 기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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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철수, 탈 배와 탈 시간을 정해야”
그러나 야권의 패배라는 총선 결과가 안 원장에게 그만큼 정치적 공간을 열어줬다는 점은 분명해 보인다. 총선 다음날 주식시장에서 박근혜 관련주가 가격 제한폭까지 올랐고, 한동안 내리막길을 걷던 안철수 테마주도 크게 뛰었다. 문재인 관련주는 정반대였다. 안 원장이 대선 출마를 선언할 경우 지지율이 다시 솟구칠 가능성이 적지 않다. 정치평론가 김종배씨는 “그에게 남은 것은 (대선출마 선언) 타이밍”이라고 했고, 노회찬 통합진보당 대변인은 “안 원장 자신이 탈 배를 정해야 하고, 배를 탈 시간도 정해야 한다. 이제 스스로 결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노 대변인은 “야권이 돌아가는 상황을 보고 그 결과로 자신의 진로를 선택한다면 그것은 대권에 도전하는 사람으로 걸맞지 않다. 조기에 자신의 거취를 정해야 하고, 그게 정해지는 가운데 야권도 신속히 정비를 해야 한다”고도 했다. 하지만 안 원장이 결심을 하더라도 시기는 일러야 6월 이후가 될 가능성이 크다. 당분간은 학교 강의와 5~6월쯤 나올 것으로 보이는 에세이집 작업에 몰두할 것으로 보인다.
이지은 기자 jieun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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