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3월13일 현재, 새누리당과 민주통합당이 공천을 확정한 19대 총선 후보자들 가운데, 직업 정치인을 제외한 단일 직업군으로는 법조인이 가장 많았다고 한다. 또 새로 영입한 법조인만 새누리당 7명, 민주당 12명이란다( 3월13일치 보도). 그다지 새로울 것은 없다. 하지만 궁금한 일이다. 우리나라 정당들은 왜 이다지도 법조인을 좋아하게 되었는지.
사법부가 사실상 정치 규범도 정해
우선 생각해볼 수 있는 것은, 법조인이 높은 사회적 지위를 갖는 오래된 전통(?)에 익숙한 것이다. 권위주의 시절, 검사의 기소와 판사의 판결은 권력 유지의 핵심 도구였고, 기여한 판검사들은 그 공로로 국회에서 한자리씩을 꿰찰 수 있었다. 민주화 이후에도, 권력자들은 권력의 유지와 작동을 위해 끊임없이 검사와 판사, 변호사들을 정치의 장으로 불러들였다. 아니 입법부와 행정부가 스스로 해결해야 할 많은 일들을 사법부로 들고 갔다.
국회를 구성하는 선거구의 획정 기준도 헌법재판소가 정해주고, 국가의 중요 정책들도 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한다면 어떻게 해야 할지의 기준을 사법부가 정해주는 일이 빈번하다. 매번 선거가 끝나면 선거사범이 줄줄이 양산돼, 결국 사법부가 국회의원 재적 총수를 결정하는 권한을 갖게 되었다. 정당들은 자기 정당 소속 의원이나 간부들이 부정한 일에 휘말리면, 스스로 조사하거나 해결할 생각은 아예 포기해버렸다. 스캔들이 나면 ‘사법부의 판단을 지켜보겠다’는 것이 모범답안이 되었고, 사법부가 정당과 정치의 규범을 세우는 주체가 됐다. 하다못해 정치인 간의 사소한 다툼도 으레 소송으로 이어진다. 이러다 보니, 정당으로서는 현직 검사, 판사, 변호사의 친구들이 국회에 많이 있을수록 편리한 상황이 된 것이다.
국회가 법조인을 특별히 중시하는 전통도 오래됐다. 우리나라 국회에는 다른 나라 의회에서 찾아볼 수 없는 독특한 상임위원회가 있다. 법제사법위원회다. 현행 법률에 따르면, 법사위의 소관 사항으로 ‘법률안의 체계·자구 심사’라는 게 있다. 이건 일종의 숙제 검사 기능이다. 다른 상임위원회에서 만든 법률이 제대로 잘 만들어졌는지 아닌지를 검사하는 것이다. 법률안의 경우 국회의장의 직권상정 등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반드시 법사위를 거쳐야만 본회의에 상정될 수 있다.
법사위는 우리나라 국회 위원회 가운데 가장 오래된 위원회로, 제헌국회에서부터 있었다. 1963년까지는 지금처럼 다른 위원회의 숙제 검사를 전담하는 ‘위원회 중의 위원회’가 아니라, 그저 다른 위원회를 기능적으로 보조하는 구실을 했다. 하지만 군사정부 수립 이후 법사위의 위상은 달라져, 지금에 이르고 있다.
법률안 형식 다듬을 전문가 국회에 이미 있어
그럼 법사위 위원이 아닌 다른 상임위 국회의원들은, 법사위에서 숙제 검사를 맡아야 할 정도로 법을 만들 능력이 없는 것일까? 이건 능력의 문제가 아니라, 이해의 문제다. 헌법이 정한 ‘입법권’을 대한민국 국회가 어떻게 이해하는지에 관련된 문제라는 것이다. 다른 나라 의회에도 국회의원이 법률안을 성안할 때 이를 기술적으로 돕는 기관이 있다. 하지만 그 기관은 의원들로 구성된 위원회가 아니라, 의회가 급여를 주고 고용한 직원들로 구성된다. 물론 우리나라 국회에도 이런 지원조직이 있다. 그런데 여기에 더해 법사위가 그 기능을 하는 것이다.
왜 그럴까? 다른 나라 의원들은 우리나라 의원들보다 법 만드는 기술이 더 뛰어나서 고용된 직원들의 도움만 받으면 되는데, 우리나라 국회의원들은 무능해서 그런 것일까? 아니다. 국회의원은 법률안의 내용을 어떻게 하면 더 잘 만들 수 있을까 고민하는 사람이고, 법률안의 형식을 갖추는 일은 훈련된 고용인들의 도움을 받으면 충분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반면 우리나라에서는 오랜 권위주의 시기 동안 법률안의 내용은 집권자가 결정하고 국회는 법률안의 형식을 갖춰 통과시키면 되는 역할을 맡아왔다. 그 시기에 법사위는 국회가 맡은 일을 수행하는 데 핵심 역할을 했던 것이다. 그런데 민주화가 되고 국회가 요구받는 기능이 전혀 다른 방향으로 바뀌었는데도, 그 전통(?)은 아직 살아남아 있다.
물론, 법사위 위원들이 법조인 경험을 가져야 한다는 요건은 없으며, 실제 그렇지도 않다. 문제는 국회의원이 해야 하는 ‘입법 활동’을 이해하는 방식이다. 국회의원들도 우리 사회의 다른 모든 분야에서와 마찬가지로 전문성을 요한다. 특히 모든 국민의 복리에 직접 영향을 끼치는 법률을 입안하고 결정하므로, 그 전문적 능력은 아무리 강조되어도 지나치지 않다. 하지만 그 전문성이 법률안의 ‘체계·자구’를 갖추는 기술적 능력은 아니다.
<table border="0px" cellpadding="0px" cellspacing="0px" width="100%"><tr><td height="22px"></td></tr><tr><td bgcolor="#DFE5CE" style="padding: 4px;"><table border="0px" cellpadding="0px" cellspacing="0px" width="100%" bgcolor="#EBF1D9"><tr><td class="news_text03" style="padding:10px"><font color="#1153A4"><font size="3">한국요리 전문가가 어느 날 갑자기 서양요리 전문가가 될 수 없고 행정고시 통과자가 검사나 판사가 될 수는 없듯이, 법조인이나 기업 최고경영자(CEO)가 어느 날 갑자기 정치전문가가 될 수는 없는 일이다.</font></fo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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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인 능력은 훈련되어야 한다
국회의원이 가져야 하는 정치인의 전문성이란, 우리 사회 각 분야에서 유권자가 원하는 의제를 발굴하고, 다양한 이해관계자의 의견을 청취하고, 갈등하는 이해관계를 조정해 법률안의 내용을 만들어내는 능력이다. 이 능력은 하루아침에 만들어지지 않으며 훈련돼야 한다. 지방의회나 지방정부의 선출직 공직자의 경험을 통해 훈련될 수도 있고, 정당의 당직자로 훈련될 수도 있고, 국회의원의 보좌진 경험을 통해 훈련될 수도 있다. 민주주의의 방식으로 유권자와 소통하고 갈등을 조정하는 일은, 결코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한국요리 전문가가 어느 날 갑자기 서양요리 전문가가 될 수 없고 행정고시 통과자가 검사나 판사가 될 수는 없듯이, 법조인이나 기업 최고경영자(CEO)가 어느 날 갑자기 정치전문가가 될 수는 없는 일이다.
국회의원이 해야 하는 ‘입법’의 내용을 이렇게 이해한다면, 검사·판사·변호사·교수 등 다른 분야의 전문가가 어느 날 갑자기, 아무런 훈련도 없이, 정치전문가가 되기를 기대해서는 안 된다. 그럼에도 우리 국회와 정당들은 이런 일이 가능하고 또 필요한 일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서복경 서강대 현대정치연구소 연구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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