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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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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들부들 떨려서, 판결문 들추기도 싫다”

국가권력에 짓밟힌 마음을 번역 등으로 달래온 김종익씨
“사찰하고 증거인멸하게 만든 권력 밝혀져야”
등록 2012-03-07 18:18 수정 2020-05-03 04:26
김종익씨.

김종익씨.

(무라이 요시노리·우쓰미 아이코 지음)은 일제 치하 인도네시아의 일본군 포로수용소에서 포로감시원으로 일하던 조선인들의 저항을 담은 책이다. 일본 최고의 정치학자로 손꼽히는 마루야마 마사오는 인간의 자유를 보장하는 정치를 고민했다. 그에 비견되는 사상가 다케우치 요시미는 일본의 제국주의와 민족주의를 연구했다.

이들이 국가와 권력, 개인의 관계를 고민했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기 때문이었을까. 국가로부터 삶을 짓밟힌 불법사찰 피해자 김종익(사진)씨는 그간 이들과 함께 시간을 보냈다. 의 번역 작업을 최근 마쳤고, 일주일에 한 번씩 고려대 민족문화연구소에서 마루야마 마사오, 다케우치 요시미 강독을 했다. 그를 통해 마음의 상처는 많이 치유한 것 같았다. 그러나 분노까지 사그라진 건 아니었다. 은 3월1일 그와 전화 인터뷰를 했다.

-목소리가 한결 밝아진 것 같다.

=회사(KB한마음) 직원들은 물론 거래 관계 때문에 부조한 사람 50여 명, 국민은행 후배들까지 검찰에 불려다녔고, (내 사건을 맡은) 최강욱 변호사 사무실 세무조사에 최 변호사 동생까지 고초를 겪었다. 나 때문에 너무 많은 사람들이 고통받는 것 같아 내가 그 고리를 끊어줘야겠다고 생각한 적도 있었다. 하지만 주변에서 진심으로 지지해준 사람들 덕분에 우울증도 많이 나아졌다.

-재판 기록을 보면, 증거인멸 과정에 청와대가 개입했다는 주장이 나온다. 기록을 다 검토했나.

=아직 1심 판결문도 읽지 못했다. 지금은 몸이 부들부들 떨려서… 들추기가 싫다. 총리실 공무원들은 모두 엘리트일 텐데, 그 사람들이 민간인을 사찰하고, 강제로 대표이사직과 지분까지 뺏는 게 불법인 걸 몰랐겠나. 그게 이슈화되면 얼마나 사회적 파장이 클지 몰랐겠나. 사기업도 그렇게 못하는데 어떻게 국가기록물을 없앴겠나. 그 사람들이 그런 짓을 하게 만든 대단한 권력의 실체가 무엇인지 밝혀져야 한다.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한 한나라당 의원들은 무혐의 처분됐다.

=이명박 정부가 특정 정치세력에 편파적인 건 다 알지 않나. 큰 기대는 하지 않았지만 허탈했다. 그 의원들이 똑같은 내용으로 나를 고발했으면 검찰이 그런 판단을 하진 않았을 거다. 유감스럽다.

-아직 국가 등을 상대로 한 손해배상 소송이 진행 중인데.

=이미 고등법원까지 내가 불법사찰 때문에 회사 소유권을 넘겨줬다는 사실을 확인해줬다. 대법원 확정판결이 남았는데, 법원도 신중하게 판단하지 않겠나. (대법원에서까지 내가 불법사찰 피해자라는 사실이 확정되면) 손해배상 소송도 큰 어려움은 없을 거다.

-지난해 말 검찰 개혁 콘서트에 참여했다. 앞으로 사법 개혁 문제를 지속적으로 제기할 생각인가.

=사법 개혁 문제에서 직접 뭘 할 수는 없지만, 내가 겪은 부당함은 적극적으로 증언하려고 한다. 올해 두 차례 중요한 선거를 통해 검찰을 개혁하고, 이명박 정부 들어 벌어진 역행을 청산할 수 있는 토대가 만들어져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한국에서 살고 싶지 않다. 새로운 국회가 특별위원회를 만들어 불법사찰, 정연주 전 한국방송 사장 해고, 4대강 사업, 용산 참사 등에 부역한 공무원들을 철저히 정리해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언제든 이명박 정부 같은 괴물이 불쑥 나타날 수 있다.

조혜정 기자 zest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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