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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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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박2일, 여기는 영하 15℃ 희망텐트촌

폭설을 헤치고 평택으로 찾아가 ‘무난방’ 텐트에서 보낸 외롭고 춥고 쓸쓸한 하루…뼛속까지 파고드는 냉대를 1000일 견뎠을 쌍용차 해고자들 이야기를 보고 듣고 느끼다
등록 2012-02-08 15:56 수정 2020-05-03 04:26
2월1일 새벽, 경기도 평택시 쌍용자동차 공장 앞에 마련된 희망텐트촌에서 쌍용차 해고노동자들이 취침용 천막에 누워 잠을 청하고 있다. <한겨레21> 박승화

2월1일 새벽, 경기도 평택시 쌍용자동차 공장 앞에 마련된 희망텐트촌에서 쌍용차 해고노동자들이 취침용 천막에 누워 잠을 청하고 있다. <한겨레21> 박승화

‘구과과과과곽.’

요란한 파열음이 새벽 공기를 가른다. 노면에 얼어붙은 잔설이 지나는 차량 바퀴에 짓이겨지는 소리다. 머리맡을 더듬어 스마트폰을 찾는다. 몇 시나 됐을까. 상단의 슬립 버튼에, 아래쪽 홈 버튼까지 연신 눌러보지만 액정은 무반응이다. 매서운 노천의 새벽 추위에 리튬 배터리가 방전된 것이다.

“우리는 최후까지 남는다”

“어이, 살아 있어?” 텐트 밖에서 들려오는 귀에 익은 목소리. 함께 취재 온 김남일 기자다. 어젯밤 그는 난방기구 하나 없는 구형 텐트에 선배를 남겨둔 채 가스 스토브를 구비한 ‘럭셔리 오성(五星) 텐트’로 몸을 피했다. 고행을 자처한 사십 줄 선배가 안쓰러웠던지, 핫팩 3개를 선심 쓰듯 넣어두고 가긴 했다.

겹으로 둘렀던 침낭 지퍼를 열고 상체를 일으켰다. ‘빠그르륵.’ 요추에서 경추까지, 등뼈의 마디마다 아우성이었다. 이틀 전 “경거망동 말라”던 아내의 말이 떠올랐다. 쌍용차 희망텐트촌에 입촌하게 됐다는 말에 아내는 토끼눈이 됐다. “그걸 왜 팀장인 당신이 가야 하지? 고나무, 김남일, 하어영 기자는 뭐하고?” 팀원들 이름을 거명하며 갑작스런 출장 통보에 불만을 표출하던 아내는, “나, 지난주에 놀았어”라는 쑥스런 고백에 “몸 간수 잘하라”는 말로 훈계를 마무리했다.

출장은 출발부터 꼬였다. 서울 공덕동 사옥을 나서는데 폭설이 쏟아졌다. 만리동 고개를 오르는 취재차의 앞바퀴가 연신 헛돌았다. 운전대를 잡은 김남일 기자가 당황한 듯 ‘어어’를 연발했고, 뒷좌석의 박승화 기자는 “기차를 타야 했다”며 기자의 서툰 판단력을 질책했다. 라디오에선 서울과 경기 일원에 대설주의보가 발령됐다는 특보 방송이 반복해서 흘러나왔다.

서울을 출발한 차는 눈길을 헤치고 3시간 만에 쌍용차 공장이 있는 경기도 평택시 칠괴동에 도착했다. 어둠이 깔린 공장 앞은 고요했다. 텐트도 생각보다 많지 않았다. 평일인데다 전날 시작된 ‘희망뚜벅이’ 행사로 현장 인력이 분산된 탓이었다. 취재를 위해 몇 차례 현장을 방문한 적 있는 박승화 기자가 해고노동자들이 있는 현장사무소로 일행을 안내했다. 문을 열었다. 스무 명쯤 될까. 밥을 먹던 사내들 시선이 일제히 취재진을 향해 꽂혔다. “어~, 환영합니다.” 그들은 우릴 ‘연대투쟁’ 나온 ‘외부세력’쯤으로 여긴 게 분명했다.

신분을 밝힌 뒤 자리를 잡고 앉았다. 스무 평 남짓한 실내는 어수선했다. 가장 먼저 취재진의 시선을 사로잡은 것은 갈색 나무판에 새겨진 비장미 넘치는 구호였다. “우리는 최후까지 남는다.” 아래쪽 화이트보드에는 ‘쌍차 투쟁 985일차, 희망텐트 56일차’라는 문구와 함께 농성 참여자들의 이름과 행선지가 빼곡히 적혀 있다. 반대편 벽면엔 해고자와 정직자들의 민·형사 소송 현황을 정리해놓은 패널이 걸려 있는데, 어림잡아 확인할 수 있는 2월 재판 일정만 7건이다.



“어이, 살아 있어?” 텐트 밖에서 들려오는 귀에 익은 목소리. 함께 취재 온 김남일 기자다. 어젯밤 그는 난방기구 하나 없는 구형 텐트에 선배를 남겨둔 채 가스 스토브를 구비한 ‘럭셔리 오성(五星) 텐트’로 몸을 피했다. 고행을 자처한 사십 줄 선배가 안쓰러웠던지, 핫팩 3개를 선심 쓰듯 넣어두고 가긴 했다.

여전히 첨예한 ‘산 자’와 ‘죽은 자’

폭설 탓에 매일 저녁 7시 공장 정문 앞 인도에서 열리던 촛불집회는 취소됐다. 실내에서 간단한 평가회의와 다음날 일정 공지가 이뤄졌다. 출근길 선전전 때 1월20일 발생한 희망퇴직자 강아무개씨의 사망 소식을 유인물에 담아 돌리기로 했다. 정문 1200, 후문 400, 4초소 300, 남문 400. 출입구별 유동인원에 맞춰 선전물 할당량이 정해졌다. 선전팀은 곧바로 유인물 편집 작업에 들어갔다.

회의가 끝나자 조촐한 술상이 마련됐다. 막걸리 몇 통과 평택의 명물이라는 연탄 구이 돼지껍데기가 상 위에 올랐다. “사무실에선 처음 마시는 겁니다. 원래는 집회 끝난 뒤 모닥불 옆에 둘러서서 몇 잔 들이켜는 정도인데, 오늘은 눈도 오고 날도 차니….” ‘우윳빛깔 쾌남아’ 김득중 금속노조 쌍용차지부 수석부지부장이 잔을 건넨다. 2009년 지부 조직실장으로 공장 점거농성을 주도했던 그는 1년9개월형을 살고 지난해 옥문을 나왔다. 함께 구속됐던 한상균 지부장은 여전히 화성교도소에 수감 중이다.

“득중이하고 희망버스 아이디어 낸 이창근이하고, 옛날에 평택서 얼굴값 좀 했지. 안 그래?” 정직자 신분인 김성만씨가 짓궂게 놀려댄다. 그는 2009년 파업에 참여해 3개월 정직 처분을 받았지만, 회사 쪽이 3개월마다 휴대전화 문자로 ‘휴업 연장’을 통보해오고 있다. 그가 말을 이었다.“공장 분위기가 좋지 않은 건 사실이죠. 출근 투쟁하는 해고자들 보며 미안해하던 사람들도 이제는 ‘당신들 어려운 건 알겠지만 우리도 살아야 하는 것 아니냐?’ 이런 분위기니까. ‘회사가 살아야 해고자도 불러올 수 있다’는 회사 쪽 논리가 힘을 얻어가는 겁니다.” 여기저기서 맞장구치는 소리가 들려온다. “뭘 바라겠어? 우리 파업할 때 사 측에 이끌려 ‘관제데모’했던 사람들인데.”

“난 그 사람들 이해해.” 묵묵히 듣고만 있던 양형근 조직실장이 입을 열었다. 항소심을 앞둔 해고무효 소송의 위임장 작성을 위해 초저녁부터 전화통과 씨름해왔던 그다. “언제 감원 태풍이 불어닥칠지 모르고, 회사는 그걸 무기로 자꾸 압박하는데 어쩌겠어? 그 사람들, 해고됐으면 우리랑 함께 싸웠을 사람들이야. 복직되면 함께 기름밥 먹을 사람들이기도 하고.”

양 실장의 말에 젊은 해고자 가운데 한 명이 목소리를 높인다. “형님, 대우차 얘기 들어보셨소? 밥은 함께 먹어도 술은 복직자끼리만 마신답디다. 그나마 거긴 관제데모 같은 것도 없었지. 우린 어땠소? ‘산 자’와 ‘죽은 자’로 갈려 반목했던 그 앙금이 정년이 된들 사라지겠소?”

그때였다. 한 무리의 젊은이들이 안주거릴 싸들고 사무소로 들어온다. ‘희망뚜벅이’ 참가단으로 도보 캠페인을 마치고 온 경기지역 시민단체 회원들이라고 했다. “진짜 ‘외부세력’들이시네?” 객쩍은 농담에 최아무개(39)씨가 반문했다. “우리가 외부세력이면, 회사 쪽만 비호하는 경찰과 언론들은 뭐라고 불러야 합니까?”

눈웃음도 손인사도 없는 아침

시간은 어느덧 새벽 1시가 가까워온다. 고독한 결단의 시간이다. ‘옥내 취침이냐 텐트 노숙이냐.’ 침낭 2개를 들고 눈 덮인 2인용 텐트 안으로 들어갔다. 만류하는 듯하던 김 기자, 박 기자는 “동태가 되든 입이 돌아가든 맘대로 하라”며 각자 살길을 찾아 흩어졌다.

아침 7시20분. 공장 정문이 마주 보이는 텐트촌 앞에는 장작 난로가 지펴졌다. 해직자들이 하나둘 피켓을 들고 정문 앞에 도열한다. “우리는 이긴다. 공장으로 돌아가자.” “한솥밥 먹던 동료의 아픔, 무관심으로 외면 말자.” 7시40분. 출근 행렬이 절정이다. 잔뜩 몸을 웅크린 노동자들은 종종걸음을 치며 공장 안으로 사라진다. 피켓을 든 옛 동료들과는 흔한 눈웃음도 손인사도 없다. 문기주 정비지회장이 마이크를 잡았다. “스무 번째 죽음이 나왔습니다. 이제는 공장 안 동지들이 바꿔야 하지 않겠습니까. 움츠리지 말고, 당당히 목소리를 내주십시오.”

2009년 파업 직후 쌍용차 노사는 ‘무급 휴직자 456명은 1년 경과 후 생산물량에 따라 순환근무가 이루어질 수 있도록 한다’고 합의했다. 하지만 회사는 공장 가동률이 100%에 근접한 현재까지도 어떤 조처를 취하지 않고 있다. 이날 이유일 쌍용차 사장은 한 경제지와의 인터뷰에서 “생산 목표대수(16만대)를 달성하고 주간 연속 2교대제를 할 수 있는 여건이 조성되는 2014년 쯤에야 복귀를 검토할 수 있다”고 했다. 약속은 부도나고 희망이 유예되는 사이 쫓겨난 자들의 삶 위엔 불길한 죽음의 그림자만 어른거린다.

평택=이세영 기자 mona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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