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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법 불신의 ‘인계철선’을 건드리다

<부러진 화살>의 흥행 돌풍이 드러낸 사법 불신의 현실… 전관예우·유전무죄 등 신념화된 ‘불신’ 넘는 첩경은 국민과의 소통과 교감뿐
등록 2012-02-02 10:40 수정 2020-05-03 04:26
»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법 로비에 법원 마크 모양의 그림자가 비치고 있다. 영화 <부러진 화살>을 계기로 ‘사법 불신’의 그림자도 깊어지고 있다. <한겨레> 김태형

»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법 로비에 법원 마크 모양의 그림자가 비치고 있다. 영화 <부러진 화살>을 계기로 ‘사법 불신’의 그림자도 깊어지고 있다. <한겨레> 김태형

‘석궁 사건’을 다룬 영화 이 2012년 벽두, 사법부를 향해 활시위를 당겼다. 은 2007~2008년 석궁 사건의 ‘진실’을 캐는 기사를 여러 차례 내보냈다. 재판과 마찬가지로 기사에도 예단은 없어야 한다. 이번호에는 영화를 계기로 4년여 만에 다시 불거진 석궁 사건과 사법 불신을 둘러싼 여러 층위의 시각을 담았다. 법조계와 시민단체, 법대생들, 석궁 사건 당사자들의 주장이 난마처럼 얽힌다. 활은 시위를 떠났지만 과녁에는 아직 닿지 않았다. 확실한 것은 ‘과녁’은 하나가 아니라는 점이다._편집자

한국 사회에서 법원과 검찰은 불신의 대상이자 개혁의 대상이다. 더욱 앙상한 현실은, 그럼에도 우리 사회의 갈등을 깔때기처럼 수렴하고 최종적으로 해결하는(혹은 어떻게든 봉합해버리는) 통로가 법원과 검찰이라는 사실이다. 그쪽 동네 사람들은 깔때기 대신 스스로를 ‘수챗구멍’ ‘하수구’라고 칭하기도 한다. 뒤치다꺼리를 한다는 자조가 섞여 있지만, 최고 권력까지 빨아들이는 강력한 수챗구멍이자 하수구다.

판단하는 판사 vs ‘진실’ 안다는 당사자

2007년 1월15일, 교수 재임용 선고를 기대한 재판에서 패소한 김명호 교수(영화에서는 김경호)는 석궁을 들고 교수지위 확인소송 항소심 재판장인 박홍우 판사(영화에서는 박봉주)의 집을 찾아간다. 영화 도 이 지점에서 시작한다. 현직에 있는 한 고위 법관은 이 개봉하기 전 사석에서 이렇게 말했다. “사건 판결을 어떻게 하면 잘할 수 있을까 밤늦게까지 고민하고 고민한다. 그런데 이런 영화가 나오면 그동안 쌓아온 노력들이 한번에 와르르 무너지니 미칠 노릇이다.” 대법원 관계자는 “매미 날개처럼 가벼운 것들이 쌓이고 쌓이더니 결국 큰 거 한 방에 무너지는 상황이 될 수도 있겠다”고 했다. 서울 지역의 한 부장판사는 “사법부에 대한 불신은 자동반사적이다. 어떻게 하면 좋겠느냐”고 푸념했다. 사법부는 이 장애인 학교에서의 성폭행 사실을 다뤄 재수사와 관련자 처벌까지 이끌어낸 영화 처럼 되지 않을까 우려한다고 한다.

김 교수를 둘러싼 쟁점은 크게 세 가지다. 우선 성균관대 수학과 교수 재임용 탈락이 수학 입시문제 오류를 지적한 괘씸죄 때문인지 아니면 교수로서의 자질 부족 때문인지를 두고 다툰다. 영화는 이 부분을 ‘괘씸죄’로 판단하고 시작하지만 교수지위 확인소송의 쟁점과 실제 재판 과정을 자세히 다루지는 않는다. 둘째는 김 교수가 석궁을 의도적으로 발사했는지, 실제로 박 판사가 활을 맞았는지다. 마지막으로 “재판이 아니라 개판”이라는 김 교수의 주장처럼, 석궁 사건 재판 진행(특히 항소심)이 공정성을 잃지 않고 적절히 진행됐는지다. 101분짜리 영화의 대부분이 여기에 집중하고, 100만 명이 넘는 관람객 대부분은 이 부분에서 사법부에 공분한다. 이 환기한 문제의식이 단지 교수 구명운동이나 유무죄만을 다투는 걸로 끝나서는 안 된다. 은 사법 불신이라는 ‘인계철선’을 건드렸다.

“말 끊지 마세요.” “끝까지 들으세요.” “이게 재판입니까? 독재입니다.”(김경호 교수)

김 교수는 “당연히 법대로 합니다”라고 답했던 재판장과 끊임없이 싸워야 했다. 교수가 형사소송법의 법리보다는 자구와 조문에 ‘집착’했다는 비판도 있다. 법리는 법률 전문가나 법 기술자의 몫이다. 눈에 보이는 대로의 법 조문을 지키라는 시민의 요구를 거부할 명분은 없다. 영화 속 교수의 싸움은 증인·증거 신청이 필요 없다는 석궁 사건 항소심 재판장의 거듭된 ‘기각’ 결정에서 촉발됐다. 그 자리에서 판단할 수 있는 사안도 미루기를 반복한다. 증거조사는 기본적으로 ‘사실심’인 1심에서 이뤄진다. 항소심 역시 사실심이라는 틀 안에 있지만 재판 진행은 기본적으로 1심에서 드러나고 인정된 사실관계를 바탕으로 한다. 대법원 관계자는 “영화에서는 항소심만 잘라서 집중적으로 보여준다. 하지만 재판은 3심제다. 재판에는 흐름이 있고 항소심에서 살펴볼 수 있는 사실관계의 범위라는 게 있다”고 했다. 와이셔츠의 혈흔 감정 신청을 기각하고 박홍우 부장판사를 다시 증인으로 세우지 않은 데는 영화에서 나오지 않은 그만한 이유가 있다는 것이다. 제출된 증거만을 가지고 판단하는 판사와 ‘진실’을 알고 있다는 당사자 사이의 좁힐 수 없는 간극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법관은 법과 양심에 따라 판단한다’고 하지만 유독 약한 고리가 있다. 재벌 등 대기업과 사학재단이다. 간혹 단호한 판결이나 의미 있는 판례가 나오기는 하지만 상급심에서 곧바로 뒤집히기 일쑤다. 수백억원대 횡령이나 배임을 저지르고도 대기업 회장들은 기껏해야 집행유예와 사회봉사 명령을 달고 나온다.

당시 항소심 재판장, “부끄럽지 않은 판결”

그러나 법관이 생각하는 이런 식의 ‘합리적 판단’은 사법 불신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지난해 윤아무개씨는 ‘사법부를 포기했다’. 민사소송 과정에서 재판부는 윤씨에게 입증책임을 요구했지만 정작 자신이 제출한 입증자료들을 모두 배척해버렸기 때문이다. 윤씨는 소송 상대방이 인정한 자료까지도 재판부가 부인한 것을 몹시 억울해했다. 그는 1심에 이어 항소심에서도 졌다. 그는 “1심에서 한번 죽이고 항소심에서 확인사살했다”는 격한 표현을 썼다. 그리고 “국민을 위한 사법기관이 아닌 행정기관에 불과하다”며 상고를 포기했다.

“재판의 본질은 법정에서 이루어지는 법관과 소송관계인 간의 적절한 의사소통입니다. 법관은 법정에서 성의를 다해 당사자의 목소리에 귀기울여야 함은 물론, 당사자의 주장과 입증을 어떻게, 어느 정도 이해하고 있는지까지 가감 없이 표현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러한 의사소통을 통하여 당사자를 적극 설득하고, 재판 결과를 예측 가능한 것으로 만들어야 합니다. 인간은 본래 불완전한 존재이며, 법관도 여기에서 예외일 수 없습니다. 법관 역시 소송관계인들과 원활한 소통을 통해 자신의 오류와 편견을 바로잡을 기회를 가져야 합니다.” 석궁 사건 석 달 뒤인 2007년 4월2일, 신임 법관 임명장 수여식에서 당시 이용훈 대법원장이 한 말이다. 석궁 사건 항소심 3차 공판이 열린 날이었다. 이 대법원장은 “국민의 법관에 대한 불신이 급기야 법관에 대한 물리적 테러까지 벌어지게 하는 지경에 이르렀다”며 이같은 소통을 강조했다. 때늦은 반성일 수도, 아니면 새내기 법관들을 앞에 둔 의례적인 훈시였을 수도 있다. 대법원장의 ‘간곡한’ 요청이 있은 뒤에도 영화에 등장한 석궁 사건 항소심 재판부가 소송 당사자인 교수와의 소통에 얼마나 노력을 기울였는지는 의심스럽다. 실제 항소심 재판장을 맡았던 신태길 변호사는 최근 언론 인터뷰에서 ‘동료 판사의 피해에 감정적으로 대응한 것 아니냐’는 질문에 “‘합리’ 하나를 20년 넘게 추구했다. 부끄럽지 않은 판결”이라고 했다.

법관윤리강령은 ‘신속하고 능률적이면서도 충실한 재판’을 규정한다. 양립하기 힘든 조건들이지만 그 최대치를 법관에게 요구한다. 소송관계인에게 친절하고 정중하게 대할 것도 규정하고 있다. 대법원 설명에 따르면 “소송관계인과 일반 국민은 일차적으로 법정에서 법관의 재판 진행 태도를 보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법관의 불공정한 발언이나 태도만으로도 재판이 불공정하다는 의심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하니 조심하라는 취지다.

사법부의 약한 고리, 재벌과 사학재단

과거보다 많이 개선됐다고는 하지만 체감으로 느끼는 법정 현실은 다를 수 있다. “원심이 유죄를 선고했다고 하여 선입견을 갖고 검사의 증거신청은 입증 취지도 묻지 않고 받아주면서 변호인이 제출한 증거는 모두 필요 없다면서 배척하여 사실상 심리를 거부함.” 의 한 장면이 아니다. 서울지방변호사회에 제출된 ‘2011년 법관 평가’ 자료 가운데 하나다. 어느 변호사는 증거신청을 했다가 재판장으로부터 “피고 대리인, 지금 여유 있는 것 같은데 내가 참고 있다”는 핀잔을 듣기도 했다고 한다.

“사학재단과 사법부의 짜웅.” “이거 2천만원짜리 전화다.”(영화 속 박준 변호사)

‘법관은 법과 양심에 따라 판단한다’고 하지만 유독 약한 고리가 있다. 재벌 등 대기업과 사학재단이다. 간혹 단호한 판결이나 의미 있는 판례가 나오기는 하지만 상급심에서 곧바로 뒤집히기 일쑤다. 수백억원대 횡령이나 배임을 저지르고도 대기업 회장들은 기껏해야 집행유예와 사회봉사 명령을 달고 나온다. 판사들은 법과 양심 이외에 “한국 경제에 대한 기여”라는 모호한 단서를 든다. 시장 질서를 황폐하게 한 이들에 대한 ‘봐주기 판결’ ‘솜방망이 처벌’이라는 비판에도 의연하다. 지난 1월19일 담철곤 오리온그룹 회장이 항소심에서 집행유예를 받고 풀려났다. 담 회장은 회삿돈으로 미술품을 사들이는 등 300억원을 횡령한 혐의 등으로 기소돼 1심에서 징역 3년이 선고됐다. “피해액 변제, 향후 윤리경영과 사회공헌활동 다짐 등 개전의 정이 보인다”는 이유로 형이 줄었다. 1심에서 인정된 사실관계는 크게 달라진 게 없는데 법관의 판단만 달라진 셈이다.

사학비리도 마찬가지다. 비리재단은 잘못된 법과 교육관료, 사법부가 키웠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대법원은 2007년 판례를 바꿔 대표적 비리재단인 상지대 김문기 전 이사 쪽이 학교에 다시 발을 딛게 해주는 판결을 내놨다. 형식적 해임 절차 등을 근거로 사립학교에서 부당하게 해임된 이들의 손을 번번이 꺾어버린 것도 사법부였다. 김 교수가 교수지위 확인소송에서 패소한 것을 “사법부와 사학재단의 짜웅”으로 볼 수는 없다. 그렇다고 과거 사학재단 손을 숱하게 들어줬던 사법부에 대한 불신까지 국민의 탓으로 돌리는 것은 자가당착이다. 힘있고 돈 있는 사람들은 죄를 지어도 풀려난다는 ‘유전무죄’ 신화는 사법 불신을 떠받드는 기둥이 된다.

전관이나 로비가 통한다는 ‘불신’

또 다른 기둥은 전관예우와 법조 인맥이다. 에서 박준 변호사는 “초등학교 친구라 친하다”는 판사에게 배당된 사건을 맡기로 하고 착수금 500만원을 받는다. 잘만 되면 “2천만원”을 받을 수 있는 사건이었다. 돈 좀 있다는 사람들은 수사 단계에서는 검찰 출신 변호사를, 기소가 돼 재판이 시작되면 판사 출신 변호사를 선임하는 것이 기본이다. 경찰 단계 수사에서는 경찰 출신 변호사를 붙이기도 한다. 같은 건물이나 방에서 일했거나, 사법연수원 동기이거나, 고향이 같거나, 출신 대학은 물론 출신 초·중·고교까지 찾아서 엮는다. 검사는 검사가 알고, 판사는 판사가 잘 안다는, 그래서 조금이라도 더 유리한 판단을 받아낼 수 있다는 기대가 있기 때문이다.

2010년 국정감사 자료를 보면, 2005년 이후 법원을 떠난 퇴직 판사 520명 가운데 절반이 넘는 273명이 로펌행을 택했다. 이 가운데 김앤장·광장·태평양 등 상위 10대 로펌으로 자리를 옮긴 판사는 168명이었다. 양질의 법률 서비스라는 측면에서 법관들의 로펌행을 무조건 나쁘다고 볼 수는 없다. 문제는 대형 로펌들이다 보니 일반인들보다는 대기업·재력가 등과 관련한 송무·자문 일을 주로 하게 될 가능성이 크다는 점이다. 최근에는 이용훈 대법원장, 이홍훈·박시환·김지형·김영란 대법관이 퇴임 뒤 변호사 개업이나 로펌행 대신 강단 등을 택하기는 했지만, 현직에서 물러난 고위 법관들이 거액을 받고 대형 로펌으로 옮겨가는 현상은 심각한 수준이다. 2005년 이후로 사법부 최고 수장인 대법원장을 포함해 퇴임 대법관 9명이 로펌에 들어갔다. 서울 서초동의 한 법조인은 “재판 결과를 뒤집는 식의 전관예우는 이제 없다”고 말했다. 그 정도까지는 아니더라도 ‘전관이나 로비는 통한다’는 일반인들의 ‘사법 불신’은 도처에 만연하다. 지난 1월26일 대법원3부(주심 민일영 대법관)는 판검사에게 로비를 해 구속 피고인을 석방시켜주겠다고 속여 피고인 가족에게서 6억원을 가로챈 장아무개 변호사에게 징역 2년을 선고했다. 대법원은 “법조계 전반에 국민의 불신을 야기했다”고 설명했다. 불신 제공자는 누구일까.

» 영화 <부러진 화살>의 한 장면. 사법부는 “법관도 불완전한 존재”라는 점을 인정한다. 그러나 실제 재판에서 법관은 신과 같은 ‘전권’을 행사하는 경우가 많다.

» 영화 <부러진 화살>의 한 장면. 사법부는 “법관도 불완전한 존재”라는 점을 인정한다. 그러나 실제 재판에서 법관은 신과 같은 ‘전권’을 행사하는 경우가 많다.

“전치 3주에 징역 4년은 과했다”

“판단은 재판장이 합니다.”(박봉주 판사)

지난 1월19일 서울 서초동 대법원 대법정. 대법관 13명 전원이 참석하는 전원합의체 선고가 있었다. 대법원장을 포함한 대법관 13명의 자리가 간만에 꽉 찼다. 국회 동의가 늦어져 대법관 자리 두 석이 한동안 공석이었는데, 최근 김용덕·박보영 대법관이 뒤늦게 자기 자리를 찾아갈 수 있었다. 대법관석을 정면에서 바라보고 오른쪽에서 네 번째, 신영철 대법관의 자리다. 대법관이 되기 전, 그러니까 서울중앙지법원장으로 있던 2008년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 촛불집회 사건의 재판을 맡은 판사들에게 압력을 행사한 사실이 드러났다. 어영부영 대법관 자리를 보전하기는 했지만 ‘법률과 양심에 따라 재판한다’는, 사법부 독립을 믿고자 하는 ‘소박한 기대’는 뿌리부터 흔들렸다. “재판을 윗사람이 지시하는 대로 하는군요?” 부장판사 출신으로 오래전부터 사법개혁을 주장해온 문흥수 변호사는 자신의 책 에서 신 대법관 사건 직후 사건 의뢰인으로부터 이런 말을 들었다고 썼다. 법관의 신분은 법으로 보장된다. 권력에 흔들리지 말고 제대로 재판하라는 취지인데, 이는 재판에서 가장 중요한 공정성을 지키기 위해서다. 스스로 물러나지 않고 버틴 신 대법관을 내칠 뾰족한 방법은 없었다고 해도, 신 대법관 사건은 사법부가 사법부 스스로를 ‘징치’하는 데 한계가 있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줬다.

피해자가 고법부장이었던 석궁 사건에서도 사법부는 사법부 스스로를 다루는 데 미숙함을 드러냈다는 것이 법조계 안팎의 중론이다. 대법원 관계자는 “당시에는 아직 국민참여재판 제도가 시작되기 전이었다. 지금이었다면 국민참여재판으로 석궁 사건을 다뤘을 것이다. 사법부가 사법부를 판단하는 문제는 조심했어야 한다. 당시에도 좀더 세심하게 재판을 진행했어야 한다는 아쉬움이 있다”고 했다. 김 교수에게 확정된 징역 4년도 ‘감히’ 사법부를 공격한 데 대한 ‘보복’이라는 지적이 있다. 한 부장판사는 “사법 테러라는 점에서 사안이 심각하긴 하지만 전후 사정을 고려할 때 전치 3주에 징역을 4년이나 때린 것은 과하다고 볼 수도 있다”고 했다.

지난 1월26일 곽노현 서울시교육감에게 벌금 3천만원을 선고한 김형두 서울중앙지법 부장판사의 집 앞으로 보수단체 회원들이 몰려가 “법복을 벗겨라”는 현수막을 들고 집으로 달걀을 던졌다. “국민 저항권 차원”이었다는 석궁도, 이념에 따른 달걀 세례도 옹호할 생각은 없다. 김일수 한국형사정책연구원장은 “이른바 ‘분노사회’에서 대중이 찾는 분노의 대상은 MB가 될 수도, 검찰이 될 수도 있다. 이번에는 사법부 차례”라고 했다. 그는 “사법부의 권위도 신성한 법전 속에서 세속의 차원으로 내려왔다고 봐야 한다. 공정성을 통해 국민을 설득하고 섬기지 않으면 권위를 확립하기 어렵게 됐다”며 “한 개인, 하나의 사건에서는 억울할 수 있겠지만 사법은 사회질서를 위해 빼놓을 수 없는 메커니즘이다. 한 단계 더 높은 단계로 고양시켜야 한다”고 했다.



김일수 한국형사정책연구원장은 “이른바 ‘분노사회’에서 대중이 찾는 분노의 대상은 MB가 될 수도, 검찰이 될 수도 있다. 이번에는 사법부 차례”라고 했다. 그는 “사법부의 권위도 신성한 법전 속에서 세속의 차원으로 내려왔다고 봐야 한다. 공정성을 통해 국민을 설득하고 섬기지 않으면 권위를 확립하기 어렵게 됐다”고 했다.

당신이 심판받기 원하는 방법으로 심판하라

법학전문대학원 설치, 법조일원화, 양형기준 마련, 지법-고법판사 이원화 등을 통해 사법개혁 요구에 응해온 대법원은 최근 전관예우를 막으려고 평생법관제를 도입하기로 했다. 대법원 관계자는 “은 결국 국민과의 소통, 교감의 문제 아니겠냐”고 말했다.

그러나 대법원은 1월27일 오후 법원행정처장 명의로 김형두 부장판사에 대한 보수단체 회원들의 집단행동 및 영화 과 관련한 공식 견해를 한데 묶어 발표했다. “법치주의와 민주주의에 대한 심각한 도전으로 매우 유감스럽게 생각한다. 재판 당사자가 재판장에게 가한 테러를 소재로 한 영화가 상영되고 있는 상황에서 일어난 이러한 사태는 재판의 독립을 심각하게 침해한다. 특히 해당 영화는 기본적으로 흥행을 염두에 둔 예술적 허구이다. …이는 결과적으로 사법 테러를 미화하고 근거 없는 사법 불신을 조장하는 것이어서 심히 유감스러운 일이다.” 영화에 대해 말하고 싶어도 차마 못하고 있었는데 뺨 때려줘서 고맙다는 꼴이다.

일본 법정영화 (2006)는 홍성수 숙명여대 법대 교수(인권법)의 말을 빌리면 “교과서 같은 영화”다. 억울한 피고인이 나오고 판사는 증거신청을 기각한다. 사법 피해자들이 등장하고 피고인의 주변인들은 어느덧 형소법 절차 전문가가 된다. 영화의 마지막은 이렇게 끝난다. “부디 당신이 심판받기를 원하는 그 방법으로 나를 심판해주시기를.”

김남일 기자 namfic@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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