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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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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법부, 국민 위해 있는 거 맞나”

숙명여대 법대 교수와 제자들의 <부러진 화살> 관람기… “팩트를 따져야겠지만 국민들의 사법부 불신 보여줘 가치 있어”
등록 2012-02-01 17:33 수정 2020-05-03 04:26
» 영화 <부러진 화살>의 주인공은 언제나 법전을 들고 법정에 나온다. 과연 법은 아름다운가, 모순덩어리인가.

» 영화 <부러진 화살>의 주인공은 언제나 법전을 들고 법정에 나온다. 과연 법은 아름다운가, 모순덩어리인가.

법을 공부하는 대학생들은 영화 을 어떻게 봤을까. 홍성수(37) 숙명여대 법대 교수(인권법)와 제자 6명이 설 연휴 마지막 날인 지난 1월24일 저녁 을 보고 영화관 주변 카페에서 강의실 밖 수업을 가졌다. 김현경(23), 정솔(22), 문유진(21), 정지혜(22), 기은환(25), 박선희(22)씨는 법과 현실과 영화 사이를 종횡무진 오갔다.

“판사의 문제보다, 제도의 문제”

정지혜(이하 정) 영화를 두 번 봤다. 놓쳤던 대사들이 다시 들린다. 와닿는 대사들이 있다. 다시 봐도 좋을 듯하다.

정솔(이하 솔) 이제 법대 1학년이라 알아듣는 법률 용어가 나오면 반갑더라. (웃음)

판결문을 읽고 나서 영화를 봤다. 영화는 재판 과정과 판결의 모순을 드러내는 데 초점을 맞춘 듯하다. 기본적인 시각이 교수의 시각이었다. 그러면서 법정 안의 문제점을 잘 드러냈다. 재판이 너무 말에만 의존했다. 검사의 증거는 모두 채택되고, 부러진 화살과 피가 묻지 않은 와이셔츠는 무시된다.

김현경(이하 김) 영화를 보기 전에 김명호 교수의 변호를 맡은 박훈 변호사를 인터뷰한 기사를 읽었다. 어디까지가 픽션이고 논픽션인지 구분해야 얘기할 수 있겠더라.

홍성수(이하 홍) 영화만 보고서 실체적 판단을 하기에는 영화가 주는 정보가 미흡하다. 일반인들에게는 어처구니없어 보일 수 있다. 이 사건에 대해 사전에 별 정보가 없었을 텐데, 영화만으로 판단할 때 교수가 활을 쐈을 것 같은가?

우발인지 고의인지는 모르겠지만 (배를) 뚫지는 않았다.

석궁 판사의 증언은 계속 바뀌었다. 석궁의 위력을 고려할 때 (활에 맞았을 가능성은) 굉장히 낮을 것 같기는 하다. 반면 김 교수가 사건 초기에 ‘사법부를 쐈다’ ‘심판했다’는 얘기를 한 것도 사실이고.

기은환(이하 기) 어쨌든 안 맞지 않았나? 영화 속 변호사 역시 ‘활을 맞지 않았으니 고의를 따질 필요가 없다’고 했다. 판사가 활에 맞았다면 화살이 휘지 않았을 테니까. 영화에서 교수는 “법은 아름다운 겁니다”라고 했는데 법을 공부하는 처지에서 조금 웃겼다. 법은 아름답다기보다 모순덩어리라고 생각한다. 정의가 제대로 지켜진다면 아름답다고 느낄 수 있겠지만. 재판 진행 과정에서 판사가 사퇴를 한다. 어떤 판사가 재판을 맡느냐에 따라 결과가 달라진다는 얘기로 비친다. 법대로 한다면 다 똑같았어야 하지 않은가.

미국 법정 드라마를 즐겨 본다. 인간이기 때문에 자기 주관이 있을 수밖에 없다. ‘판사가 어떻다’를 따지기보다 법관 기피나 회피제도를 활용해야 하지 않을까. 피해자가 판사이기 때문에 이런 제도가 적절히 활용되지 못한 것일 수도 있지만, 판사의 문제가 아니라 제도의 활용 문제로 넘어가야 현실적인 얘기가 될 것이다.

석궁 사건 직후에 고위 법관들의 대책회의는 어떻게 봤는가? 실제 판단에 어느 정도 영향을 줬는지는 모르겠지만 재판을 구리게 만드는 원인을 제공한 것 같다. 법원이 당사자인 사건에서, 실제 영향을 주지 않았더라도 형식적 정당성을 획득하기 위해서 생각해볼 만한 문제다. 사법부에 대한 불신을 실제보다 훨씬 더 가중시키는 것이 아닌지 대책회의 장면을 보며 많이 느꼈다.



사법 피해자들은 최후의 보루인 사법부만은 자신의 얘기를 들어줄 것으로 믿는다. 그것마저 안 됐을 때 그들은 억울함을 느낀다.
홍성수 숙명여대 법대 교수
“기각합니다”를 반복하는 판사

재판을 하기도 전에 사건을 규정하고 엄벌에 처하겠다는 것 자체가 모순 아닌가.

달걀을 법정에 던지는 장면이 나온다.

사실 통쾌한 마음이 컸다. 그러면서도 사법부의 권위 문제를 고민하게 되더라.

사법 피해자들은 최후의 보루인 사법부만은 자신의 얘기를 들어줄 것으로 믿는다. 그것마저 안 됐을 때 그들은 억울함을 느낀다.

사법 피해자들 마음이 이해되는 부분도 있다. 판사는 영화에서 ‘기각합니다’를 반복한다. 자신의 억울함을 풀어줄 곳이 법원인데 판사가 그렇게 나오면 통로가 막혀버리는 것 아닌가.

실제 법정에 가서 공판을 많이 지켜봤다. 나이 든 어르신이 길게 하소연을 하는데 한참 나이 어린 판사가 말을 잘라버리더라. 내가 직접 당하면 억울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판사가 인격적 모욕을 준 것은 아니지만 결과적으로 억울한 상황이 됐다. 할머니의 말은 두서없는 하소연이었다. 사건은 많고 시간은 없다는 판사의 처지도 이해되지만 그런 사람들이 나중에 사법 피해자가 되지 않을까….

박선희(이하 박) 영화가 선악 구도를 취한다는 점은 비판받을 수 있다. 사법부와 법에 대한 선입견을 심어줄 수 있으니. 그렇다 해도 그들이 법정에서 달걀을 던질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누가 그들의 말에 귀기울이고, 그들을 무력하게 만들지 않을 수 있을까 고민된다.

납득이 안 되니 억울함이 쌓이는 거다. 법관이 기각하더라도 설명을 충분히 했어야 한다.

궁금한 점이 있다. 피가 묻지 않은 와이셔츠는 정말 어떻게 된 건가?

문유진(이하 문) 판사의 어머니가 빨았다고 한다. 그런데 형사사건의 처리 절차를 잘 아는 판사라면 당연히 와이셔츠가 중요한 증거로 채택될 것임을 알았을 텐데 빨게 놔두었다는 게 이해되지 않는다.

항소심에서 다시 혈흔 검사를 하자고 했는데 재판부가 받아들이지 않았다.

증거조사는 기본적으로 1심에서 한다. 1심에서 미진했던 부분은 항소심에서 다시 조사할 수 있는데, 이 사건의 항소심 재판부는 거부했다.

피해 판사가 진술을 번복했다면 항소심에서 다시 증인으로 부를 수 있는 것 아닌가?

판사는 왜 증거신청을 잘 안 받아줄까? 이 사건뿐만 아니라 일반적으로 안 받아주는 경향이 있는 건 사실이다. 왜 그럴까?

귀찮아서? (웃음)



영화가 선악 구도를 취한다는 점은 비판받을 수 있다. 사법부와 법에 대한 선입견을 심어줄 수 있으니. 하지만 누가 그들의 말에 귀기울이고, 그들을 무력하게 만들지 않을 수 있을까 고민된다.
대학생 박선희
“전문가에게만 가까운 법은 흉기”

피해자 처지에서는 증거로서 효력이 있다고 생각하는데 법관이 보기엔 효력이 없다고 생각하는 게 아닐까.

신청한 증거 이외에 다른 증거들로 판단하려는 것 아닐까. 이건 필요 있다, 이건 필요 없다, 이것 무죄다, 이건 유죄다, 예단을 하는 거 같다. 그래서 증거를 배제하는 것이고. 자기 생각에 방해가 된다고 보는 것 아닐까.

유무죄를 판단할 때 합리적 의심을 배제해야 한다고 배우기는 하지만, 현실적으로 완벽히 배제할 수는 없다. 그 요청은 판사가 양심껏 최대한 노력해 의심을 배제한다고 해석하는 게 옳다. 그럼에도 최대한 의심을 배제할 수 없으면 유죄판결을 하면 안 된다는 것이 형사재판의 기본 원칙이다. 그런 측면에서 이 사건에서는 웬만한 것은 다 들어줘야 하지 않았을까.

신속한 판결을 위해 안 들어주는 게 아닐까.

재판 수에 비해 법관 수가 너무 적다고 알고 있다.

모든 증거신청을 받아주면 재판 진행이 어렵기는 하지.

증거가 나와서 재판이 뒤바뀌면 앞선 판결을 뒤집게 된다. 판사 개인으로서는 부담스러운 일일 수 있다.

사법연수원 선후배 관계처럼 보이지 않는 힘이 작용하지 않을까. 입신양명에 걸림돌이 될 수도 있고. 영화를 보면 실체적 진실을 외치면서도 여론의 힘을 빌리려는 장면이 나온다. 사법부가 여론에 휘둘리는 측면을 이용하려는 것인데 불편했다.

관련 기사나 방송이 나왔다면 재판 결과가 바뀌었을까?

그건 너무 위험하지 않은가. 약자의 처지에서는 여론을 이용하려는 것이 이해되기도 하지만, 그 반대의 경우라면 정말로 위험한 칼이 될 수 있다.

난 석궁 판사가 이해되지 않는다. 그는 법률 전문가다. 사건 직후 옷을 갈아입을 정신이 있는 사람이 당시 상황이 기억 안 난다고 한다. 검사나 판사는 이를 의심해야 하지 않을까?

실제 재판에서는 와이셔츠가 이상하지만 이를 배제하고 나머지 증거들로도 충분히 판단이 가능하다며 유죄로 갔다. 피고인 처지에서는 의심이 배제되지 않았다고 주장할 수 있다. 그런 측면에서 영화만 보고 유무죄를 판단하는 것은 위험하다.

영화를 보고 정의란 무엇인지, 법치주의는 어떤 것인지를 생각하게 됐다. 일반인들에게 법은 어렵다. 수많은 판례가 쌓이다 보니 법률 전문가들도 어려워한다. 전문가 집단에만 법이 가까워진다면 그건 법이 아니라 무기가 될 수 있다. 일반인들이 얼마나 (사법에) 개입해야 하는지 고민하게 만든다.

김 교수는 법정에 나올 때마다 항상 법전을 들고 나온다. 블랙코미디라고 해야 하나. 보통의 사법 피해자들은 왜 상식과 다르냐고 따지는데, 이 교수는 법을 들고 나온다. 영화에서 훈시규정을 가지고 싸우는 장면이 나온다. 법대로 나라가 굴러간다고 해놓고서는 이건 훈시규정에 불과하다고 한다? 사기치는 것이다. 나도 한 번도 생각해보지 않은 주제다. 법을 공부하는 사람들이 생각하게 만드는 장면이다.

» 김현경·정솔·문유진·홍성수(숙명여대 법대 교수)·정지혜·기은환·박선희씨(왼쪽부터). 홍 교수는 제자들과 영화 <부러진 화살>을 보고 토론 자리를 마련했다. <한겨레21> 김남일

» 김현경·정솔·문유진·홍성수(숙명여대 법대 교수)·정지혜·기은환·박선희씨(왼쪽부터). 홍 교수는 제자들과 영화 <부러진 화살>을 보고 토론 자리를 마련했다. <한겨레21> 김남일

“‘내가 옳다’라는 생각의 위험함”

사실 내 주변에 김 교수 같은 사람이 있으면 때려주고 싶을 것 같다. (웃음)

판결문을 읽고서는 당연히 활을 쐈을 것이라 생각했다. ‘이상한 사람이 판사를 쐈구나’ 생각하며 영화를 봤다. 영화에서는 미화된 부분이 있는 것도 같다.

‘법대로’를 요구하면서 활을 들고 간 것은 모순이지.

영화로 압축하다 보니 현실보다 과장된 면도 없지 않다. 하지만 김 교수를 이상한 사람으로 보는 것에는 동의하기 어렵다. 그의 성격을 이 사건과 연관지어 보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

영화는 비판적으로 봐야 한다. 영화 를 보고 까지 보면 사법부는 정말 쓰레기처럼 느껴지게 된다. 어디까지가 팩트이고 팩트가 아닌지 판단해야 한다. 때도 그랬지만 선동으로 갈 수도 있고.

국민이 생각하는 정의와 사법부가 생각하는 정의에는 차이가 있다.

요즘 사법부는 국민을 위해 있는 게 아니라는 생각이 들게 한다.

실제 이 사건을 맡은 변호사는 법원장급과 지검장급을 선출직으로 뽑자고 얘기한다. 무조건 선출직이 좋다고 할 수 있는가?

옳고 그름, 선악의 문제가 아니라 그 나라의 정치·사회적 상황을 고려해서 판단해야 할 문제다. 선출제도는 미국에서만 시행되는 제도다. 우리나라에 과연 적합한 것인지는 장기적 검토가 필요한 사안이다.

사법에 대한 접근을 쉽게 한다면 사법 불신 문제도 사라지지 않을까. 판사들도 쉬운 말을 쓰고 쉽게 판결문을 작성하고….

법대생이 판결문을 보더라도 무슨 말인지 모르는 경우가 많다. 두루뭉술한 경우도 많고. 공부가 부족해서 그런가? (웃음)

사법시험을 통과해서 성적순으로 자르다 보니 나이 어린 판사가 많은 것도 문제 아닌가? 법조일원화로 점차 변하기는 하겠지만.

모든 판사가 동일한 판결을 할 거라는 기대는 환상인 듯하다. 그렇다고 소송 당사자가 판사를 지정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최대한 노력하는 수밖에 없지. 그런데 그 최대한에 대한 법원의 생각과 국민의 생각 사이의 간극이 근본적 문제가 아닐까.

판사가 신이 아닌 이상, 자신의 생각을 100% 배제하고 실체를 명확히 파악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옳다’라는 생각이 얼마나 위험할 수 있는지 알아야 하지 않을까. 이런 측면에서 영화가 던지는 사법부에 대한 불신도 충분히 가치 있다고 본다.

정리 김남일 기자 namfic@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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