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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지원금은 백색전위대의 보급로

행안부 2011년 비영리단체 지원금 98억7천만원 중 안보 관련 ‘백색전위대’에 16억7천여만원 지원… 자신이 대표인 단체에 지원금 주고, ‘주한미군 부인에게 꽃바구니 증정’ 등 퇴행적 사업 벌여
등록 2012-01-11 05:39 수정 2020-05-02 19:26

“애국가를 같이 힘차게 부르니까 배가 울렁거립니다. 우리들 마음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노인은 잠시 숨을 골랐다. 크리스마스이브인 2011년 12월24일 오전 10시30분 한강의 바람이 뱃전을 때렸다. 뚝섬유원지 방생법당이 흔들거렸다. 수상 법당이다. 90여 명의 불교 신자들은 노인의 입을 바라봤다. 대한민국지키기불교도총연합(대불총)이 주최한 송년법회에 참석한 신자들 앞에서 노인은 말을 이었다. “지난 19일 점심때 김정일이가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어찌나 기쁜지… 이북에서 300만 명을 굶어죽인 원흉이 죽은 건데 우리나라는 그놈의 조문 때문에… 이북에서 남남 갈등을 조장하는 이런 징후를 보면서 ‘죽고 난 다음에도 우리나라를 괴롭히는구나’라고 생각했습니다.”



안보전위대가 지원금을 줄 안보전위대를 선정한 사실도 눈에 띄었다. ‘안보전위대 매트릭스’로 부를 만하다. 국제외교안보포럼, 뉴라이트전국연합, 대한민국지키기불교도총연합, 한국자유총연맹의 간부가 2009년 4월~2011년 4월 비영리 민간단체 선정 작업에 참여했다.

전두환의 오른팔, 박희도의 활약

한국 현대사에 눈 밝은 사람이 아니라면 노인의 얼굴이나 대구 말투에서 ‘박희도’라는 이름을 떠올리기 쉽지 않을 것이다. 대불총 박희도 회장은 1979년 12·12 쿠데타 당시 전두환 전 대통령의 오른팔이었다. 당시 공수여단장으로 정승화 참모총장을 체포했다. 1987년에는 “(그해 12월 대선에서) 김대중이 대통령이 된다면 수류탄을 들고 뛰어들고 싶다”고 말했다. 노병은 잘 사라지지 않는다. 올해 77살의 박희도 회장도 그렇다. 대불총은 법률에 따라 등록된 비영리 민간단체다. 행정안전부는 2010년 대불총 사업에 3500만원을 지원했다. 대불총은 “친북세력으로부터 오염된 역사관을 치유”할 것을 사업목적으로 밝혔다. 행안부 지원금은 ‘화려한 사기극의 5·18’ 등 민주화운동을 비판하는 강연 등에 사용됐다.

취재 결과, 이처럼 행안부가 2011년 지원금을 준 220개 비영리 민간단체 가운데 대표자가 군 출신이거나 국방부에 등록된 안보 관련 단체만 20곳에 이르는 것으로 드러났다. 세금 16억7382만원이 이들 안보전위대에 지급됐다. 행안부가 최규식 민주통합당 의원에게 제출한 사업계획서를 보면, 이들의 활동은 순수한 안보보다 사회·역사적 쟁점에 쏠려 있다. ‘대한민국 육해공군해병대 예비역 영관장교 연합회’는 ‘제주 4·3 사건 진상 알리기’와 ‘이승복 사건 역사 알리기’ 사업으로 지원금을 받았다. 이들은 제주도민을 학살한 당시 군경의 입장을 담은 홍보물을 제작해 “지역 주민에게 전달, 이해 설득”하겠다는 등의 계획서를 냈다. ‘국제전략교류협회’는 “주한미군 장성 및 부인 40명에 생일 꽃바구니 증정” 등을 하겠다고 밝혔다.

안보전위대가 지원금을 줄 안보전위대를 선정한 사실도 눈에 띄었다. ‘안보전위대 매트릭스’로 부를 만하다. 국제외교안보포럼, 뉴라이트전국연합, 대한민국지키기불교도총연합, 한국자유총연맹의 간부가 2009년 4월~2011년 4월 비영리 민간단체 선정 작업에 참여했다. 민정당 출신 정치인 김현욱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수석부의장이 국제외교안보포럼 대표다. 국제외교안보포럼은 2011년 지원금을 받았다. 뉴라이트전국연합 김진홍 상임의장은 2010년 민생경제정책연구소 대표 자격으로 사업지원금을 받았다. 박세환 재향군인회장이 대표인 ‘자유대한지키기국민운동본부’와 그가 최근까지 의장직을 맡았던 ‘국가정체성회복국민협의회’ 모두 2011년 세금을 지원금으로 타냈다.

» 2011년 행안부 지원받은 주요 단체들

» 2011년 행안부 지원받은 주요 단체들

동일 인물, 중복 지원, 중립성 논란

한나라당, 신한국당, 자민련 등 보수 정당에서 활동했던 인물이 관여한 단체 11곳도 지원 대상에 선정됐다. 비영리 민간단체는 법률에 “영리가 아닌 공익활동을 수행하는 것을 주된 목적으로 하는 민간단체”(비영리 민간단체 지원법)로 정의된다. 사실상 특정정당 또는 선출직 후보를 지지·지원할 것을 주된 목적으로 하지 말 것, 최근 1년 이상 공익활동 실적이 있을 것 등 규제 조항이 따른다. 이들 단체 대표자들의 이력을 보면, 이들 단체가 실체가 있는 민간단체인지 의혹을 사게 한다. 이회창 전 한나라당 대표의 아들 병역 의혹에 연루됐던 여춘욱 전 병무청장은 2011년 ‘환경문화연대’ 단체 대표 명목으로 돈을 받았다. ‘전국자전거길잇기국민연합’ 이상원 대표는 대통령 직속 녹색성장위원회 민간위원을 지냈다. 이 단체는 2010년 설립돼 실적도 없었다. 그는 최근 형사처벌을 받은 부산저축은행 불법 대출 과정에서 돈세탁 창구 구실을 한 ㅇ회사의 사외이사도 지냈다.

이 때문에 행안부의 지원단체 선정이 부실하게 이뤄졌다는 비판이 나온다. 이런 비판을 살 만한 정황이 더 눈에 띈다. 동일 인물이 단체 이름만 바꿔 지원금을 받기도 했다. 녹색미래실천연합(김대희), 녹색환경포럼(김시약), 전국아파트입주자대표회의연합회(이재윤), 전국한자교육추진총연합회(백낙환), 한국화장실협회(김종해) 등 10개 단체의 대표자들은 2010년과 2011년 각각 다른 단체 사업 명목으로 연이어 지원금을 받았다.

» ‘12·12 쿠데타’ 주역인 박희도 대한민국지키기불교도총연합 회장이 송년 법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한겨레21> 탁기형 선임기자

» ‘12·12 쿠데타’ 주역인 박희도 대한민국지키기불교도총연합 회장이 송년 법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한겨레21> 탁기형 선임기자

서울시장 선거에서 드러난 빙산의 일각

행안부의 비영리 민간단체 지원사업은 김영삼 정부 때 시작됐다. 김대중·노무현 정부 때 지원 대상과 금액이 조금씩 줄었으나, 이명박 정부는 2011년 220개 단체에 98억7천만원을 지원키로 결정하며 대상과 액수를 크게 늘렸다. 2010년엔 146개 단체가 지원금을 받았다. 이명박 행정부가 세금으로 ‘백색전위대’를 기른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분석 결과, 2011년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 나경원 한나라당 후보를 지지한 ‘복지포퓰리즘추방국민운동본부’ 임원 271명 중 37명이 행안부에서 돈을 받은 단체 대표나 간부였음이 드러났다. 최규식 민주당 의원은 2011년 국정감사 때 “(비영리 민간단체 지원사업의) 공정성·투명성·적실성 제고를 위한 구체적 방안을 마련하라”고 요구했다. 백색전위대를 세금으로 기르는 것은 옳지 않다는 취지다.

고나무 기자 dokk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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