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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평통도 백색전위대로 변질됐나

헌법기관 민주평통, ‘4·3’을 폭동으로 규정한 극우단체 자료집 배포하고 회원수 늘려 사조직화 의혹…안보전위대 단체 출신이 주요 간부 차지하고 국회 지적에도 아랑곳 않는 그들
등록 2012-01-11 05:31 수정 2020-05-02 19:26

원혜영 민주통합당 의원의 목소리가 점점 커졌다. 2011년 9월20일 국회 외교통상통일위원회 회의실에 긴장감이 돌았다.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민주평통) 이상직 사무처장의 표정은 덤덤했다. 민주평통은 ‘통일에 관한 국내외 여론 수렴’과 ‘통일에 관한 국민적 합의 도출’을 목표로 한다. 헌법기관이다. 당시 국회 회의록을 보면 긴장감의 이유가 보인다.
원혜영 의원(이하 원) 민주평통 사무처장님께 좀 묻겠습니다. ‘자유주의진보연합’이라는 데서 발행한 이라는 책을 민주평통의 지역별 협의회 출범회의에 대량 배포를 했지요?
이상직 처장(이하 이) 대량 배포한 것은 아닌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500부는 대량이 아니다?
예.
알겠어요. 지난해 민주평통이 국감을 두 번 받은 것 알고 계시지요?
거기에 대해서는 제가 잘 모르겠습니다.
그것도 모르세요?
올해 3월에 제가 취임을 했기 때문에….
그러니까 그 전의 것은 전혀 관심이 없어요? 국감을 준비하면서 작년 국감에서 민주평통에 어떤 일이 있었나 그것도 안 보고 왔어요? (중략) ‘중국은 국익을 위해서 한반도 갈등을 이용하는 비도덕 국가다’ 이런 걸 홈페이지에 턱 올려놔서 중국 공산당 기관지 가 비판하고 국제적인 문제가 됐습니다. 여기 이 책에는 ‘제주 4·3 폭동’이라고 쓰고 있습니다. 제주 4·3특별법이 규정한 바와 전혀 상관없이 쓰고 있고, 심지어 ‘좌우합작운동은 실은 친공 성향의 리버럴한 관료들이 장악하고 있던 미 국무부의 원격조종 아래 미군정이 기획, 연출한 것이다’, 미 국무부, 미군정 자체가 친공 성향이다, 메커니즘에 뺨치는 이런 주장이 공공연하게 여기 담겨 있어요. 이런 것을 민주평통이, 대통령 자문기관인 민주평통이 공식적으로 배포했어요. 홈페이지에 실었어요. 이 짓을 하고 있으니까 ‘권력의 사유화’라는 얘기가 나오는 것 아닙니까? (중략) 적어도 헌법에 규정된 대통령 자문기구의 책임자로서 맞춰 생각하고 행동을 해야 합니다. 아무리 개인이 극우·보수 생각을 갖고 있다 하더라도 적어도 민주평통의 사무처장으로 이런 일을 해서는 안 되는 겁니다.
왜곡성의 문제가 있으면 체크해보고 시정 조치하겠습니다.

학교, 관공서 등으로 퍼진 안보강연
대구 출신으로 영남대를 나온 이상직 처장의 말투는 담담했다. 이 처장의 무성의한 답변을 한나라당 의원도 비판했다. 이 처장은 ‘왕차관’으로 불리던 박영준 전 지식경제부 차관과 선진국민연대에서 함께 활동한 것으로 알려졌다. 남경필 한나라당 의원이 이를 물었다. 이 처장은 박 전 차관과의 관계를 부정하다 뒤늦게 “친구로 대화한 적이 있다”고 답했다. 민주평통이 국회의 지적에도 불구하고 회원 수를 늘린 것에도 의혹이 제기됐다. 홍정욱 한나라당 의원은 “(회원을 늘리는 게) 무슨 이유가 있습니까? 당 만드시는 거예요, 사조직 만드시는 거예요? (회원을) 줄이라고 국회에서 그러는데 2천 명씩 늘리십니까? 무슨 특별한 이유가 있어요?”라고 이 처장을 추궁했다.
헌법기관인 민주평통이 백색전위대로 변질됐다는 게 원 의원의 취지다. 민주평통의 인적 구성을 보면 의혹에 근거가 있다. 김현욱 현 민주평통 수석부의장은 신한국당과 자민련 국회의원을 지냈다. 1939년생인 김 전 의원은 1981년 민정당 국회의원으로 정치 생활을 시작했다. 김 부의장은 동시에 ‘국제외교안보포럼’ 대표다. 박승춘 보훈처장 같은 정치군인들도 자주 이 단체의 모임에서 발언한다. 행정안전부는 이 단체에 2011년 국민 세금에서 지원금을 줬다. 정치적 중립을 요구받는 조직인 민주평통과 극우단체가 보수 정치인을 교집합으로 갖고 있다. 백색전위대의 돈과 사람은 이런 방식으로 꼬리를 문다. 이런 현상을 원 의원은 ‘권력의 사유화’로 표현했다.
2011년 부활한 안보산업이 돈과 사람이 도는 핏줄 역할을 한다. 안보강연은 예비군과 민방위를 넘어 학교, 공공기관에서 일제히 실시됐다. 안동보훈지청에서 경일고등학교 3학년 학생을 상대로 2011년 11월22일 ‘나라사랑 정신 함양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안보강연을 했다고 이 학교는 홈페이지에서 밝혔다. 고3 수험생 174명 전원을 대상으로 한 것이었다. 국가발전미래교육협의회(국발협) 강사인 김태경씨가 ‘최근의 한반도 안보 현실’을 주제로 강의했다. 경일고 쪽은 “본교의 3학년 수험생들은 심도 있는 국가안보 관념과 정체성을 확립하는 데 도움이 한층 되었다는 강연 후평을 남기기도 했다”고 밝혔다. 를 보면, 서울 성북소방서는 2011년 1월20일 주민으로 구성된 의용소방대원을 대상으로 안보강연을 했다. ‘급변하는 한반도 정세와 우리의 안보 현실’이라는 주제로 국발협 강사가 안보교육을 했다. 를 보면, 수원보훈지청은 장안고등학교 1·2학년 학생을 상대로 안보강연을 했다. ‘노박사 웃음치료 연구소’ 소장으로 알려진 노용균씨가 ‘영광의 대한민국과 국가안보의 중요성’에 대해 강연했다. 그 역시 국발협 소속 강사다.



헌법기관인 민주평통이 백색전위대로 변질됐다는 게 원혜룡 의원의 취지다. 민주평통의 인적 구성을 보면 의혹에 근거가 있다. 김현욱 현 민주평통 수석부의장은 신한국당과 자민련 국회의원을 지냈다. 1939년생인 김 전 의원은 1981년 민정당 국회의원으로 정치 생활을 시작했다. 김 부의장은 동시에 ‘국제외교안보포럼’ 대표다.

모호한 재산 출연, 풍부한 자금?

국발협 설립 때 누가 재산을 출연했는지는 불분명하다. 국발협은 에 “예비역 장성들이 주축이 돼 설립한 비영리 재단법인이며, 각계 후원금으로 운영되고 있다”고만 밝혔다. 어쨌든 자금은 풍부해 보인다. 국발협 강원지회는 자비를 들여 안보강연에 나섰다. 강원도 인제군은 강사비와 관련해 “지자체가 여력이 없어 (안보강연료) 13만원은 (국발협이) 부담하고, 나머지 7만원은 지자체가 줬다”고 밝혔다.

민방위 담당 공무원들조차 국발협의 실체에 의혹을 제기했다. 수도권의 한 기초지자체 공무원은 “(국발협을) 가만히 봤더니 장군으로 예편하신 분이 많은 것 같았다. 그런데 지자체 처지에서 안 할 수도 없었다. 이왕이면 탈북자 출신 강사를 요청했다”고 말했다.

고나무 기자 dokk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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