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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대정책 버려야 길이 열린다

김정일 사망 까맣게 모른 정보력의 MB 정부… 대북정책 부재, 남북교류 단절, 한-중 관계 악화 등 ‘속수무책’의 당연한 이유들
등록 2011-12-28 10:58 수정 2020-05-03 04:26

이명박 정부가 김정일 사망을 파악하지 못했다. 그럴 수 있다. 북한에 대한 정보 접근은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북한의 공식 발표가 있던 12월19일, 그날의 풍경은 이 정부가 얼마나 ‘개판’인지를 여실히 보여준다. 북한이 오전 10시에 중대 발표를 예고했다. 이례적이다. 1994년 김일성 사망 이후 처음이다. 아나운서의 표정은 어두웠고, 목소리도 가라앉았다. 몇몇 방송사에서는 이미 김정일 사망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준비를 시작했다. 그러나 청와대를 포함한 외교안보 부처 어느 곳도 그럴 가능성을 대비한 흔적이 보이지 않는다. 이 한심한 수준은 무엇을 말하는가?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이 사망했다는 발표가 나온 12월19일 오후 김황식 국무총리와 류우익 통일부 장관을 비롯한 안보 관련 장관들이 출석한 가운데 이명박 대통령이 청와대에서 국가안전보장회의(NSC)를 주재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이 사망했다는 발표가 나온 12월19일 오후 김황식 국무총리와 류우익 통일부 장관을 비롯한 안보 관련 장관들이 출석한 가운데 이명박 대통령이 청와대에서 국가안전보장회의(NSC)를 주재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검증 안 된 첩보 쏟아내는 정부

정보 실패에는 이유가 있다. 첫째는 대북정책이 없기 때문이다. 이명박 정부는 북한 문제에 대한 관심이 부족하다. 대부분의 대북정책 담론은 북한이라는 상대가 아니라, 국내 정치를 향해 있다. 상대에 대한 분석보다, 일방적인 희망을 말한다. 당연히 전문성이 떨어진다. 북한의 발표를 분석하고, 과거 사례와 비교하며, 다양한 가능성을 예측하는 기능이 약화될 수밖에 없다. 정보가 정책에 끼칠 영향에 대한 고려도 없다. 국정원장이 확인되지 않은 첩보 수준을 마구 언급하는 것은 남북관계가 부재하기 때문이다. 상대를 고려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에, 그만큼 정보에 대한 책임감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둘째, 북한과의 접촉이 중단됐기 때문이다. 접촉이 많으면 그만큼 얻을 수 있는 정보도 많다. 남북관계가 중단되고 교류협력이 축소되자, 인적 정보를 얻을 수 있는 기회를 잃었다. 인적 정보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정부 간 접촉이다. 북한이 어떤 생각을 하는지, 정책의 우선순위가 무엇인지 파악할 수 있는 기회다. 그리고 남북 경제협력과 인도적 지원 등을 통해 북한에서 듣고 본 정보들도 중요하다. 그 모든 것이 없다. 그 공백을 탈북자들의 ‘카더라 통신’이 대체했다. 과거 정부에서는 ‘카더라 통신’이 일부 언론에 보도되면, 반드시 정보 당국이 검증을 거쳐 사실 여부를 판단해줬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 들어 오히려 정보 당국이 검증되지 않은 첩보를 양산하는 경향이 있다. 정보는 신뢰가 핵심이다. 신뢰를 잃으면 설득력도 떨어진다.

셋째, 한-중 관계의 악화도 중요한 원인이다. 중국은 현재 북한과 가장 많은 접촉을 하고 있는 국가다. 정보가 많을 수밖에 없다. 북한 관련 정보에 대한 한-중 양국의 협력이 중요하다. 그러나 중요한 시기에 이명박 대통령과 후진타오 중국 국가주석의 전화는 불통이었다. 이미 한-중 관계가 악화돼, 한국 정보기관 요원이 구속될 정도로 중국 내 한국 정보 당국의 활동이 위축됐다. 양국의 갈등은 대북정책의 차이 때문이다. 중국은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을 원하기 때문에, 한국이 대북 강경정책을 선택하면 전략의 충돌이 발생한다. 대북정책을 전환하지 않는 이상, 중국과의 정보 공유 문제를 개선할 방법은 없다.

김정일 사망 이후 이명박 정부의 정보능력을 비판하는 여론이 높다. 그러나 정보는 정책을 반영한다. 정책 전환 없이, 정보 체계의 개선이 이루어지기 어렵다. 과연 이명박 정부 임기 동안 남북관계가 달라질 수 있을까?

조문 문제가 기회였다. 그러나 ‘조의’라고 해석하기엔 애매하고, 상대에게 전달할 수 있는 형식을 갖추지 않았다는 점에서 긍정적 영향을 끼치기 어렵다. ‘북한 주민을 위로한다’는 표현은 국내의 비판 여론을 고려한 것이다. 그러나 청와대 관계자가 그 표현이 정권과 주민을 분리한다는 정부의 기본 방침을 반영한 것이라고 설명해, 대북 적대감을 재확인했다. 대화는 정권과 하는 것이다. 남북관계의 현안을 누구랑 논의한단 말인가? 대화의 상대를 인정하지 않겠다는 건 대화의 의지가 없음을 공개적으로 선언한 것이다. 조문 문제는 이념이 아니라, 외교로 접근해야 했다. 그러나 ‘비즈니스’는 내팽개치고 ‘낡은 이념’만 드러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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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붕괴론이라는 ‘희망적 사고’

김정일 사후 남북관계를 전망하며, 우리 사회의 편견과 오해들이 쏟아져나온다. 우리 정부가 첫 조처로 비상경계령을 발령한 것이 대표적이다. 물론 안보는 만약의 경우를 대비하는 것이다. 그러나 북한 지도자가 사망했는데, 북한이 도발할지도 모른다는 판단은 근거가 있는 것인가? 지도자의 사망이 북한 정치의 혼란으로 나타나고, 그것이 한반도 정세의 불안으로 나타날 것이라는 전망은 ‘희망적 사고’이지 객관적 현실이 아니다. 다행히 금융시장은 안정세를 찾았지만, 사망 초기에 시장에 드러난 불안감 역시 오래된 편견의 반영이 아닐 수 없다.

대북정책은 정확한 정보 판단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있는 그대로의 북한’을 상대해야 한다. 김정일 사망은 앞당겨진 측면이 있지만, 예견된 것이다. 북한은 내부적으로 후계체제의 제도화 과정을 서둘러왔다. 그 이유는 김정일의 건강 때문이었다. 급격한 체제 불안이 나타날 가능성이 낮다. 여전히 북한 붕괴론의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다. 그동안 이명박 정부는 북한 붕괴론을 대북정책의 기조로 유지해왔다. 북한 체제가 불안정하기 때문에 기다려야 하고, 현 집권 체제를 지원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국내적으로는 급변 사태와 통일 대비 공론화 사업에 막대한 예산을 낭비해왔다.

붕괴론에 매달리면, 결국 ‘김정은 체제’가 어떻게 작동할지, 외교정책과 대남정책의 리더십 스타일이 달라질지, 그리고 정책결정과정의 특성이 어떻게 나타날지에 대한 구체적 분석을 소홀히 할 수밖에 없다.

편견과 오해의 핵심은 남북관계를 누가 결정하느냐의 문제다. 이명박 정부 들어 북한만 쳐다보는 경향이 있다. 서해에서 군사적 충돌이 발생하면, 우선적으로 북한 내부로 그 원인을 돌린다. 그러나 남북관계는 기본적으로 상호작용의 결과다. 군사적 충돌은 긴장이 고조되면 발생한다. 한반도의 안정이 필요해서 우리가 정세를 관리하는 것이다. 예방외교를 펼치고, 문제의 근원을 찾아 해결하는 것이 대북정책이다. 북한의 대남정책을 예측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나 전반적인 남북관계를 대북정책이 주도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남북관계의 역사는 그것을 증명하고 있다. 북한이 어느 날 갑자기 ‘선한 행위자’가 되는 것이 아니다. 적극적인 설득과 협상의 지혜로 상황을 관리하고, 미래지향적으로 변화해가는 것이다.

현재의 시점도 마찬가지다. 당연히 김정일 사후 북한 내부의 정책결정 과정을 주목해야 한다. 그러나 우리가 어떤 선택을 하느냐가 더 중요하다. 외교정책과 대남정책은 현재의 전문 관료들이 맡을 것이다. 핵 외교는 강석주 부총리, 김계관 부상, 리용호 6자회담 대표로 이어지는 대미 라인이 맡을 것이고, 대남정책은 김양건 통일전선부장이 지속적으로 관할할 것이다. 후계자인 김정은이 경험이 부족하기 때문에, 관련 부서의 전문적 판단이 더 중요하게 작용할 수 있다.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 사망과 관련해 ‘정보 실패’에 대한 비판의 표적이 된 원세훈 국가정보원장이 12월20일 오전 국회 정보위원회에 출석하고 있다. 국회사진기자단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 사망과 관련해 ‘정보 실패’에 대한 비판의 표적이 된 원세훈 국가정보원장이 12월20일 오전 국회 정보위원회에 출석하고 있다. 국회사진기자단

한반도 안정, 우리의 선택이 중요

대북정책을 어떻게 해야 하나? 남은 임기 동안 남북관계는 어떻게 될까? 류우익 통일부 장관이 취임한 뒤 대북정책에서 약간의 유연성이 생긴 것은 사실이다. 류 장관은 과거 정부의 원로들에게 지혜를 구하고, 문제의 쟁점을 파악하려고 노력하며, 현재의 남북관계를 우려하고 있다는 점에서 긍정적이다. 조금 일찍 통일부 장관이 되었다면, 남북관계가 이렇게까지 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 정도의 유연성으로 남북관계를 전환하기 어렵다. 날은 저무는데, 엉킨 실타래는 너무 복잡하다. 그것을 단숨에 끊어 버릴 수 있는 권한과 책임도 없다. 대북정책은 통일부 장관이 아니라, 대통령이 결정하기 때문이다. 대통령은 대북정책의 방향을 제시하고, 외교안보 부처의 이견을 조정해야 한다. 대통령의 철학이 확고하지 못하고, 중요한 현안에 대한 판단이 시시각각 달라진다면, 아무리 통일부 장관이 전향적 사고를 가졌다 하더라도 한계가 있다.

그리고 너무 늦었다. 이제 정치의 계절이다. 보수층은 남북관계의 개선을 바라지 않는다. 선거가 다가오면, 보수에 기반을 둔 정부가 자신의 지지층과 충돌하기 어렵다. 국내 정치적으로 정책 전환이 더 어려워진다는 뜻이다. 대북협상에서도 마찬가지다. 임기말 현상으로 이제 ‘기다리는 전략’은 북한으로 넘어갔다. 북한은 당분간 장례 국면을 거칠 것이다. 장례 기간이 끝난다 하더라도 내부 정비를 우선할 것이고, 그리고 ‘유훈통치’ 기간을 거칠 것이다. 북한 내 사정으로 북한이 적극적으로 나올 가능성은 낮다.

또한 북한은 임기 초보다 더 많은 것을 요구할 것이다. 협상 수단은 부족해지는데 상대의 요구 수준이 높아진다면 타협의 여지는 줄어든다. 그동안 몇 번의 대북정책 전환 기회가 있었다. 그러나 모두 놓쳤다. 마지막 기회였던 조문 문제 역시 남북관계 개선의 기회로 살리지 못했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남북관계를 안정적으로 관리해야 할 필요성은 여전히 남아 있다. 2012년 3월 핵안보정상회의를 앞두고 있다. 국제적 행사를 치르려면 정세를 안정시켜야 한다. 남북관계는 움직여야 상황이 관리된다. 비가 오기만을 기다리는 천수답 식이라면 상황을 관리할 수 없다. 교착과 대립이 계속되면 충돌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6자회담을 비롯한 국제 환경도 마찬가지다. 예정되었던 북-미 3차 접촉은 다소 연기될 가능성이 있지만, 미국의 정세 관리 필요성이 있기 때문에 재개될 것이다. 6자회담 재개 국면에서 남북관계를 풀어야 한국 외교가 역할을 할 수 있는 공간이 생긴다.

어떻게 해야 하는가? 기회가 사라지고 있지만, 의지가 있다면 기회를 만들 수 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이명박 정부가 남북관계 현안에 대해 입장을 정리하는 것이다. 현재의 남북관계가 접촉 채널이 없어서 이러고 있는 것이 아니다. 내용이 있으면 형식은 어렵지 않다. 현안에 대한 입장을 정리하면, 접촉의 형식과 기회는 자연스럽게 만들어진다. 서해에서 평화 정착을 어떻게 할 것인가? 금강산관광 재개에 대한 방침은 무엇인가? 그리고 남북 경제협력 전반에 대한 제재를 계속할 것인가? 정상회담이든, 장관급 회담이든, 만나려면 중요한 쟁점에 대해 정리해야 한다.

남북관계, 이대로 마무리될 가능성

결론적으로 이명박 정부에서 남북관계는 이대로 마무리될 가능성이 높다. 안타까운 일이다. 차기 정부의 부담이 아닐 수 없다. 2012년은 정치의 계절이다. 정치에 뜻이 있는 사람들이 지녀야 할 덕목이 여러 가지 있다. 그러나 김정일 사후 한반도 정세는 외교안보 문제에 대한 식견을 요구한다. 특히 대권을 꿈꾸는 사람들이라면 말이다. 그런 점에서 박근혜 비상대책위원장이 조문 문제를 회피한 것은 문제가 있다. 조문 문제는 보수와 진보의 문제가 아니라, 국가 지도자로서의 외교적 판단에 관한 것이다. 외교에 국내 정치적 득실의 문제로만 접근한다면, 불안한 한반도 정세를 제대로 끌고 갈 수 없다. 야권도 마찬가지다. 한반도의 미래에 대한 확고한 비전과 현안을 해결할 수 있는 능력을 이제 보여줘야 한다.

김연철 인제대 교수·통일학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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