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11월13일 하와이 호놀룰루 JW메리어트 호텔에서 열린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를 마친 뒤 각국 정상들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이들의 머릿속에 있는 지역 경제협력에 대한 구상은 제각각이다. 청와대사진기자단
동북아시아가 심상찮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을 둘러싼 미국·중국·일본의 움직임이 숨가쁘다. 동북아시아를 둘러싼 정황을 보면, 한-미 FTA 국회 비준이 동북아 지역에 끼친 영향은 크게 두 가지로 요약된다. 첫째, 한국·중국·일본의 경제 통합에 대한 논의가 급물살을 탈 가능성이 커졌다. 둘째, 아시아 지역에서 펼쳐지는 미국과 중국의 대결이 더욱 심화할 가능성이 커졌다. 이렇게 바뀐 상황은 부메랑처럼 돌아와 한국에 또다시 새로운 선택을 강요할 것으로 예상된다. 하나씩 살펴보자.
갑자기 바빠진 중국과 일본의 발걸음
우리나라 국회가 한-미 FTA를 비준한 다음날인 지난 11월23일, 겐바 고이치로 일본 외상은 중국 베이징으로 건너갔다. 중국 양제츠 외교부장과 회담을 하기 위해서였다. 두 외무장관은 회담에서 한·중·일 투자협정을 올해 안에 타결하기로 합의했다. 3국의 투자협정은 투자자와 국가 간의 분쟁 처리, 지적재산권 보호 등을 규정하는 틀을 가리킨다. 이는 흔히 FTA로 가기 위한 징검다리로 여겨진다. 두 외무장관의 합의 내용은 사실 새로운 게 아니었다. 두 외무장관이 만나기 나흘 전인 11월9일 한·중·일 3국 정상은 인도네시아 발리에서 만나 이런 내용에 합의했다.
흥미로운 점은 겐바 외상을 맞는 중국의 태도다. 결론부터 말하면, 중국 지도자들은 ‘버선발로 뛰어나와’ 일본의 장관을 반겼다. 겐바 외상은 원자바오 총리와 부총리급인 다이빙궈 외교 담당 국무위원과도 면담했다. 일본 은 “이례적인 환대”라고 풀이했다. 특히 원자바오 총리의 면담은 바로 전날 결정됐다고 일본 언론은 전했다. 중국 쪽의 환대에 대해 은 “한·중·일 FTA의 조기 실현을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중국의 이런 변화는 극적이다. 한·중·일 3국은 지역을 아우르는 공동 FTA를 추진하려고 2003년부터 민간 공동 연구를 진행했지만 이렇다 할 계기는 마련하지 못하고 있었다. 특히 중국과 일본이 서로 얽힌 이해관계의 실타래를 풀지 못해 논의는 제자리를 맴돌았다. 중국의 태도 변화는 그 점에서 주목할 만했다.
지지부진하던 한-중 FTA, 한-일 FTA도 탄력을 받는 분위기다. 김종훈 통상교섭본부장은 11월23일 한 인터뷰에서 “쇠도 달궈졌을 때 때려야 하고, 영어 속담처럼 탱고도 함께 춰야 한다. 상대편의 몸이 달아 있을 때 좀더 기다려달라고 말할 수 없다. 상대편이 푹 식어버리면 오히려 (협상이) 어려워진다”고 말했다. 중국과 일본이 우리나라와 FTA를 맺고 싶어 한다는 것은 이미 공공연한 사실이다. 흥미로운 것은, 중·일 가운데 어느 나라도 상대방이 우리나라와 먼저 FTA를 맺기를 바라지 않는다는 점이다. 따라서 우리나라가 어느 파트너를 선택하느냐에 따라 해당 FTA는 급물살을 탈 수도 있다. 는 11월25일 정부 관계자의 말을 인용해 정부가 이르면 내년 1월부터 한-중 FTA 협상 개시 선언을 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불과 4~5일 사이 한·중·일을 둘러싼 FTA 논의가 성큼성큼 진행되고 있는 셈이다.
배경에는 미-중 갈등이 있어
이런 변화가 왜 나타났을까. 답의 실마리는 아시아의 패권을 두고 격돌하는 미-중 관계에 있다. 가장 큰 변수는 아시아로 성큼 다가온 미국이다. 오바마 대통령은 지난 11월17일 오스트레일리아 의회를 방문한 자리에서 “아시아·태평양을 미국 외교 안보 정책의 최우선 순위에 두겠다”고 선언했다. 이는 단순한 수사가 아니었다. 미국의 » 미중일에 둘러싸인 한국
미-중 관계에서 가장 눈에 띄는 대목은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이다. TPP는 미국이 아시아·태평양 지역에서 경제적 패권을 유지하려고 구상한 다자간 협정이다. 당연히 중국의 지역경제 구상인 ‘동남아시아국가연합(ASEAN)+3(한·중·일)’과 충돌한다. 영국 는 TPP를 일컬어 “중국을 제외한 아시아 클럽”이라고 했다.
이렇게 팽팽한 미-중 관계를 흔드는 사건이 11월에만 두 차례 발생했다. 첫째는 일본의 TPP 협상 참여 선언이었다. 노다 요시히코 일본 총리는 11월11일 TPP 체결을 위한 협상에 참여하겠다고 공식 발표했다. 이로써 TPP 협상 국가는 미국과 오스트레일리아, 뉴질랜드, 베트남, 말레이시아, 싱가포르, 페루, 칠레, 브루나이 등 10개국으로 늘어났다. 한-미 FTA의 국회 비준은 중국에 반갑지 않은 두 번째 사건이었다. 보름도 안 된 사이 한국과 일본이 나란히 중국과 등을 지고 미국 쪽으로 성큼 다가섰다.
중국 정부는 이에 대해 공식적인 반응을 내지는 않고 있다. 중국의 속내는 간접적으로 읽는 수밖에 없다. 중국 푸단대학교 송구오요우 교수는 최근 와의 인터뷰에서 “(한국과 일본) 두 나라가 중국과 FTA를 맺는 데 상대적으로 소극적으로 돌아서거나, FTA 협상 과정에서 중국에 더 많은 양보를 요구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일본 외상을 맞는 중국의 환대의 저변에는 이런 초조함이 흐르고 있는 셈이다. 이 변수가 한-중 관계에는 어떤 영향을 끼칠까? 통상교섭본부 사정에 밝은 한 인사의 설명을 들어보면 상황의 전말을 추정할 수 있다. “한-미 FTA 비준이 이뤄진 뒤, 중국은 미국과의 형평성을 들어 전방위로 FTA 협정을 압박해올 것이고, 우리나라 통상관료들이 이를 간단히 거부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실제로 김종훈 통상교섭본부장은 11월23일 한 인터뷰에서 “중국과는 아직 협상을 개시하지 않았고, 일본과는 본협상이 잠정 중단된 상태다. 중국과의 절차를 먼저 당겨 한-일 FTA 협상과 같은 선상에 맞춰놓는 게 순서에 맞다”고 말했다. 한-중 FTA 협상 개시에 방점을 찍는 발언이다.
어떤 부작용이 생길지 모르는데
성큼 다가온 지역경제 협력의 흐름이 한국에 도움이 될까. 김양희 대구대 교수(경제학)는 고개를 저었다. 지역경제 협력의 기반이 갖춰지지 않은 상황에서 서둘러 추진하는 FTA는 한국에 ‘독’이 될 것이라는 설명이다. 그는 “서로 필요해서가 아니라, 제3자를 배제하기 위한 목적으로 FTA를 추진하는 모양새는 장기적으로는 지역 협력에 역작용을 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사랑해서 결혼하는 것이 아니라, 남이 데려갈까봐 서둘러 결혼부터 한다고 해서 화목한 가정이 이뤄질 턱이 없다는 말이다. 게다가 먼저 발효된 FTA 효과에 대한 검증을 거치지 않은 채 여러 개의 FTA를 동시에 추진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는 지적도 뒤따른다. 김 교수는 “미국·유럽연합(EU)과 한꺼번에 FTA를 맺은 것도 이미 우려스럽다. ISD(투자자-국가 소송제) 등 조항이 끼칠 영향을 충분히 검토해야 한다. 그 뒤 중국·일본 같은 이웃 국가와 FTA를 서서히 추진해도 늦지 않다”고 말했다. 주장환 한신대 교수(중국지역학)는 “현재 한국은 미국과 중국 가운데 한 편으로 서라고 강요받는 곤혹스러운 상황이 연출되고 있다. 이는 중·장기적으로 국익에는 별로 도움이 안 된다. 이렇게 미국과 중국 가운데 택일해야 하는 상황으로 내몬 것이 다름 아닌 우리 자신이라는 게 더욱 안타깝다”고 말했다. 한-미 FTA 비준을 둘러싼 서글픈 진실이다.
김기태 기자 kk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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