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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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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안을 해소할 희망을 찾아서

10·26 서울시장 선거에서 추세로 확인된 20~40대 야당 몰표… “세대가 곧 계급” 분석과 더불어 ‘불안 담론’이 세대 내부에서 공감 얻은 결과
등록 2011-11-01 17:51 수정 2020-05-03 04:26


를 쓴 유창오씨는 “세대 구도에는 계급이 숨어 있으며, 2011년 한국 사회에서 세대는 곧 계급”이라고까지 단언한다. 1997년 외환위기와 2008년 금융위기를 거치며 주변부 노동시장에 자동 편입된 20∼30대의 분노와 박탈감이 보수정당에 대한 ‘응징 투표’ 양상으로 나타났다는 진단이다.

“진 것도, 이긴 것도 아니”라는 ‘문신 눈썹’ 정치인의 말과는 사뭇 달랐다. ‘빅뱅’ ‘탄핵’ ‘전쟁’ ‘쓰나미’. 10·26 서울시장 보궐선거 결과를 전하는 보수신문의 활자에는 공포감이 가득했다. 한나라당 분위기도 마찬가지였다. 한 소장파 최고위원은 “혁명을 당할 것이냐 혁신을 할 것이냐는 갈림길에 서 있다”고 했다. 또 다른 최고위원도 “민주당의 집권은 조순 시장의 당선으로 문을 열었고, 한나라당의 집권도 이명박 시장의 당선으로 문을 열었다”며 정권 상실에 대한 불안감을 토로했다.

» 서울시장 보궐선거 투표가 끝난 10월26일 밤 박원순 야권 단일후보를 지지하는 20~30대 젊은이들이 서울광장에서 개표 방송을 보며 환호하고 있다. <한겨레21> 박승화

» 서울시장 보궐선거 투표가 끝난 10월26일 밤 박원순 야권 단일후보를 지지하는 20~30대 젊은이들이 서울광장에서 개표 방송을 보며 환호하고 있다. <한겨레21> 박승화

2010년 이후 상승한 20~40대 투표율

그들을 경악시킨 건 야권 후보에 7.2%포인트 뒤진 서울시장 선거의 지지율 격차만은 아니었다. 더 결정적인 것은 앞으로 상당 기간 한나라당이 정치적 소수파에 머무르게 될지 모른다는 불길한 지표들이었다. 2~3배까지 벌어진 20~40대 득표율 격차가 그랬다. 전체 유권자의 3분의 2를 차지하는 이 세대들의 ‘반한나라당’ 투표 성향이 지속된다면, 수도권은 물론 텃밭인 영남 지역의 수성마저 장담할 수 없게 된 것이다.

지난해 6·2 지방선거 직후만 해도 젊은 층의 이반이 일회적 사건에 그칠지 모른다는 기대섞인 전망이 있었다. 한나라당 정권이 출범하는 데 결정적 기여를 한 세대가 이 20~40대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표심은 가파르게 변화했다. 분석가들은 이번 서울시장 보궐선거의 가장 큰 특징을 ‘세대정치의 전면화’에서 찾는다. 지난 4·27 보궐선거(성남 분당을)에 이어 이번 선거에서도 20~40대의 야당 몰표가 경향성을 지닌 추세임이 확인된 탓이다.

한국 선거에서 세대 균열이 표면화된 것은 2002년 16대 대선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노무현 민주당 후보는 20∼30대에서 압도적 지지를 얻었다. 40대에선 이회창 한나라당 후보와 비겼다. 50대 이상 지지율에선 반대로 이회창 후보가 압도했다. 40대를 경계선으로 아랫세대와 윗세대를 민주당과 한나라당이 분할하는 구도가 만들어진 것이다. 하지만 2006년 지방선거를 거치며 이런 균열 양상이 옅어지더니 2007년 대선과 2008년 총선에선 아예 자취를 감췄다.

세대 균열의 등장과 소멸에 이은 재전면화, 이 드라마틱한 반전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실마리는 투표율이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공개한 16대(2002년)와 17대(2007년) 대선의 세대별 투표율을 보면, 20대는 56.5%(16대)→46.6%(17대), 30대는 67.4%(16대)→55.1%(17대), 40대는 76.3%(16대)→66.3%(17대)로 10%포인트 이상 떨어진 것에 반해, 50대와 60대 이상은 같은 기간 각각 7.1%포인트(83.7%→76.6%), 2.4%포인트(78.7%→76.3%) 떨어졌다. 투표율의 불균등한 하락이 젊은 층의 집합적 표심이 표출되는 것을 봉쇄했다고 유추할 수 있는 대목이다.

2006년 지방선거와 2010년 지방선거의 세대별 투표율은 정반대 흐름을 보여준다. 20대는 같은 기간 8.4%포인트(35.7%→44.1%), 30대는 6.8%포인트(40.0%→46.8%) 투표율이 높아진 반면, 50대는 4.2%포인트(65.8%→61.6%), 60대는 1.0%포인트(69.5%→68.5%) 낮아졌다. 결과는 2006년 참패했던 민주당의 극적인 부활이었다. 20~30대의 투표율이 높아지자 이 세대들에서 반한나라당 투표 성향이 다시 표면화됐고, 이것이 야당이 승리하는 데 핵심적 구실을 했다는 얘기다.

2010년 이후 선거에서 다시 도드라진 20~40대 유권자층의 진보성은 가치관이 형성되던 시기(10대 후반~20대 초·중반)에 경험한 집단적 역사 체험을 통해 흔히 설명된다. 이들은 가치관 면에선 50대 이상 세대와 달리 질서보다는 자유, 성장보다는 분배, 대북강경책보다 화해협력을 선호하는 경향이 뚜렷하다(동아시아연구원·한국리서치 공동 2010년 지방선거 패널조사). 이런 가치관을 탄생시킨 배경으로 꼽히는 것이 탈빈곤과 탈냉전, 민주화라는 공통 경험인데, 여기에 학생운동(40대), 미선·효순양 촛불시위와 ‘노무현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30대), 미국 쇠고기 수입반대 촛불집회(20대) 같은 독특한 세대 체험이 결합하며 탈권위주의적이자 개인적·집단적 의사표현에 거부감이 없는 세대 성향을 노정시켰다는 것이다.

지역·세대와 결합한 계급

이런 세대 요인의 규정력을 과대평가해선 안 된다는 지적도 있다. 개인이나 집단의 정치적 선택에는 가치관이나 공통의 세대 체험보다 사회·경제적 지위나 직업 같은 계급 요인이 한층 강하게 작용한다는 것이다. 실제 유럽의 사민당(노동당)-보수당(기민당) 대립 구도의 바탕에는 노동과 자본의 대립이라는 계급적 균열이 작동한다. 나아가 연구자들은 세대에 대한 지나친 강조가 사회에 엄존하는 계급 균열의 심각성을 은폐하는 효과를 가져올 수 있다고 우려한다. 세대 변인의 규정력이 커질수록 계급 균열의 강도나 이를 정치적으로 재현하는 정당 구조의 영향력을 감퇴시킨다는 정치학계의 연구 결과도 있다.

세대 균열을 강조하는 쪽도 이런 사실을 부인하지 않는다. 계급 변수의 중요성에 대해서도 이의를 달지 않는 것은 물론이다. 그들이 주목하는 것은 계급적 균열이 표출되는 양상이다. 사회적 갈등 양상이 복합적일수록 계급갈등은 정치 영역으로 직접 표출되기보다, 지역이나 종교 같은 계급 외적 변수와 결합하거나 그것들을 경유해서 드러난다는 것이다. 이들이 볼 때 1980년대 중반까지 한국의 선거 구도를 지배한 ‘여촌야도’는 도시·농촌 갈등을 매개로 표출된 계급갈등의 정치적 표현이었다. 1987년 이후 수도권 선거에서 두드러진 ‘출신지 지역주의’도 마찬가지다. 1960년대 후반 본격화한 지역 불균등 발전의 결과, 수도권으로 이주한 호남 출신 중·하층민의 계급투표가 출신지 연고 정당에 대한 압도적 지지로 나타났다는 게 이들의 분석이다.

최근 두드러진 20∼30대의 세대투표 또한 이들이 보기엔 계급투표의 변종에 가깝다. (폴리테이아)를 쓴 유창오씨는 “세대 구도에는 계급이 숨어 있으며, 2011년 한국 사회에서 세대는 곧 계급”이라고까지 단언한다. 1997년 외환위기와 2008년 금융위기를 거치며 주변부 노동시장에 자동 편입된 20∼30대의 분노와 박탈감이 보수정당에 대한 ‘응징 투표’ 양상으로 나타났다는 진단이다. 정치학자 박상훈 후마니타스 대표의 견해도 비슷하다. “두 차례의 경제위기를 거치는 동안 신자유주의 세계화의 폐해가 지금의 젊은 세대에 집중되자 세대와 계급이 만나는 중첩 효과가 빚어지고 있다.”

» 서울시장 보궐선거를 사흘 앞둔 지난 10월23일 세계국학원청년단 회원들이 서울 탑골공원에 모여 젊은 층의 투표 참여를 독려하는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 <한겨레> 이정아

» 서울시장 보궐선거를 사흘 앞둔 지난 10월23일 세계국학원청년단 회원들이 서울 탑골공원에 모여 젊은 층의 투표 참여를 독려하는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 <한겨레> 이정아

사이버 프레임 전쟁터

이런 ‘세대·계급 결합 가설’에 대해선 반론도 만만찮다. 20대의 열악한 지위 조건을 강조하는 ‘88만원 세대론’에 제기됐던 비판이 그런 경우다. 신광영 중앙대 교수(사회학)는 말한다. “세대 간 불평등보다 세대 내부의 불평등 강도가 훨씬 큰 상황에서 20대만이 양극화의 피해를 고스란히 입고 있다는 식의 세대 담론은 탈정치화된 젊은 세대를 향한 정치적 호명 효과는 있을지언정, 객관적 사실에는 부합하지 않는다.” 실제 동일한 20∼30대라더라도 학력(학벌)·직업과 거주 지역에 따라 삶의 조건은 천차만별이다. 불우한 20∼30대의 증빙 지표로 활용되는 비정규직과 실업자 비율은 50∼60대가 더 심각하다는 데이터도 있다.

여기서 궁금증이 생긴다. 다른 연령 집단보다 사회·경제적 처지가 특별히 열악하지 않고, 구성원들이 계급적으로 균질적이지도 않은 20∼30대를 ‘반한나라당’이라는 정치 캠페인에 결집시킨 요인이 무엇인가. 눈여겨볼 지점은 세대 내부에서 벌어지는 담론 투쟁이다. 사실 한 세대 안에서도 정치적 지향은 단일하지 않다. 구조적으로 고착된 것도 아니다. 20∼30대 안에도 진보적 분파와 중도·보수적 분파가 있고, 그들 간의 세력관계도 부단히 변한다는 얘기다. 그런데 중요한 이슈나 사건이 발생하면, 그 의미를 두고 다양한 해석이 경합한다. 각종 인터넷 동호회 게시판이나 포털 사이트의 뉴스 게시판, 최근 활성화된 트위터나 페이스북은 물론 오프라인의 친교모임 등이 그 전쟁터가 된다.

이슈들 가운데는 진학·취업·보육·주택 등 실생활과 밀착된 것일수록 관심도가 높다. 이슈에 대한 해석은 다양하지만, 충돌은 대개 두어 개 프레임으로 수렴된다. 진보와 보수의 프레임이다. 이 과정에서 우세를 점하는 프레임은 그 연령 집단의 구성원들이 자신의 삶의 조건을 해석하는 유력한 참조 틀로 작용한다. 20대의 ‘88만원 세대론’, 30대의 ‘3포(연애·결혼·출산 포기) 세대론’이 그런 경우다. 이들이 20∼30대의 ‘헤게모니 담론’으로 등장한 것은 2008년 금융위기 이후 한층 가속화한 양극화·비정규직화와 떼놓고 설명하기 힘들다. 담론들의 공통된 정조는 ‘불안’이다. 불안의 강도는 대체로 생존에 대한 절박감에 비례하기 마련이어서, 여생이 길수록 체감하는 강도는 커진다. 유사한 정도의 경제적 어려움이라도 그것이 노년층보다는 청년층에게 더 큰 고통으로 경험되는 것도 이런 이치와 무관하지 않다. 나아가 그것은 대단히 정치적인 감정이다. 삶의 조건이 변하지 않는 한, 더 이상 인생에 희망을 걸기 힘들다는 인식을 갖게 하기 때문이다. 선거 국면과 만나면 불안의 정치적 폭발력이 한층 극대화된다.

불안의 동원으로 충분치 않다

이렇게 본다면, 2010년 지방선거를 통해 첨예한 형태로 분출되기 시작한 20~40대의 반한나라당 투표 성향의 심층에는 ‘세대투표냐 계급투표냐’의 이분법이나, 단순한 ‘세대·계급 결합 가설’만으론 해명되기 어려운 복합적 요인과 과정이 개입돼 있는 셈이다. 문제는 젊은 층의 적극적 심판투표를 조직하는 데는 ‘불안의 동원’만으로 충분치 않다는 점이다. 정치적 반대표를 흡수할 대안 세력이 명확하지 않고, 투표 행위의 효과에 대한 확신(효능감)이 없다면 ‘불안한 다수’ 역시 쉽게 움직이지 않는다는 사실이 최근의 선거들을 통해 입증됐기 때문이다. 세대 문제에 대한 ‘진보개혁’ 세력의 개입(호명과 동원) 전략이 한층 정교하고 풍부해져야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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