꼼수. ‘쩨쩨한 수단이나 방법’을 일컫는 어엿한 표준어다(국립국어원, ). 경북 지역에선 ‘더듬수’, 전라도에선 ‘꼴깍수’라고도 한다. 어원에 대해선 견해가 엇갈린다. 한글학회가 펴낸 (1991)은 ‘꾐수의 잘못’이라고 풀이해 ‘꾀다’에서 파생된 말로 규정했지만, 국어의미론의 권위자인 조항범 충북대 교수는 ‘작음’ ‘좁음’을 뜻하는 ‘꼼’과 ‘일을 처리하는 수완이나 방법’을 의미하는 ‘수’의 복합어로 본다. ‘도량이 좁고 너무 인색하여 야멸치다’라는 뜻의 ‘꼼바르다’, ‘마음이 좁고 지나치게 인색한 사람’을 가리키는 ‘꼼바리’의 ‘꼼’과 용례가 같다는 것이다.
불명확한 유래, 명확한 용래
꼼수란 말이 언제부터 사용됐는지는 분명하지 않다. 국립국어원 관계자는 “20세기에 만들어진 신어(新語)인 건 확실하지만, 정확한 시기는 특정하기 어렵다”고 말한다. 실제 1938년 이나 1947년 에는 꼼수란 표제어가 없다. (이희승 편)에는 1982년 증보판(초판은 1962년)부터 나온다. 전산화된 문자 텍스트 중에선 시인 김소운(1907~81)이 1967년에 쓴 수필 이 가장 앞선다. 바둑의 ‘얕은 속임수’를 일컫는 용어였다.
정치권에서 꼼수란 말이 공식 등장한 것은 1991년 7월이다. 집권 민자당의 대변인이던 박희태 의원(현 국회의장)이 김대중 당시 신민당 총재를 공격하며 “정치 9단의 꼼수정치”라는 논평을 낸 것이 시초다. 그 역시 공인 4단의 바둑 고수였다. 박 대변인이 노린 효과는 두 가지였다. 김대중이란 인물에 덧씌워진 ‘모사꾼’의 이미지를 극대화함과 동시에 대권을 노리는 거물 정치인의 정치 스케일을 ‘잡배’ 수준으로 끌어내리는, 장기로 치면 양수겸장의 수였다. 박상천 당시 신민당 대변인이 “집권당 대변인의 상스러운 말을 청소년들이 배울까 걱정된다”며 언어 사용의 저급함을 문제 삼았지만, 몇 차례 거친 공방이 오간 뒤 꼼수는 ‘얕고 잡스러운 음모’쯤을 뜻하는 정치권의 일상어가 됐다.
정적을 모욕하고 낙인찍는 경멸의 언어로 굳어졌지만, 꼼수를 “정치적 근대성의 징후”(김홍중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라거나, “근대 정치의 보편적 속성”(박동천 전북대 정치학과 교수)으로 보는 견해도 있다. 특정 목적을 성취하기 위한 최적의 수단을 강구하며 경쟁자가 선택할 수 있는 수까지도 셈하여 넣는 ‘전략적 합리성의 속된 이름’이 꼼수라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꼼수를 일각에선 ‘희극화된 마키아벨리즘’으로 정의내리기도 한다. 그러나 정치의 영역이라고 모든 꼼수가 용인되는 것은 아니다. 도덕의 거추장스런 굴레를 벗어던지며 출발한 근대 정치의 문법에서도 허용 가능한 꼼수와 그렇지 않은 꼼수가 있다는 얘기다.
정상호 서남대 교수(정치학)는 그 기준을 ‘목적의 공공성’에서 찾는다. 그는 “마키아벨리가 ‘군주는 도덕이나 선, 자비라는 덕목을 희생할 수 있어야 한다’고 쓴 것은 당시 피렌체 공화국이 스페인과 프랑스의 침범과 수탈에서 벗어나려면 강력하고 합리적인 리더십이 필요했기 때문”이라며 “지도자의 권모술수는 ‘정치 공동체의 안전과 번영’을 목적으로 할 때만 용인될 수 있는 것”이라고 말한다. 공익으로 포장한 사익, 공정을 가장한 기득권 추구를 위해 정치가 도구화될 때, 정치적 근대성은 약탈의 전근대성을 정당화하려는 공허한 수사로 전락하고 만다는 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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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물지배 기반에서 탄생한 정권
이명박 대통령의 ‘꼼수’가 비난받는 것도 이 지점이다. ‘능력 인사’(Meritocracy)라는 이름 아래 권부의 요직을 ‘고(고려대)·소(소망교회)·영(영남)’ 출신의 측근들로 채우고, 미디어 산업 발전과 일자리 창출이란 명분으로 방송이란 공공자산을 정치적 후견세력에 헌납하고, 경호의 편의를 빌미로 국고를 개인 재산을 불리는 데 전용한 서울 내곡동 사저 논란은 공적 명분과 국가 권력을 활용해 사적 이익을 극대화려는 약탈적 ‘지대 추구’(Rent seeking)의 전형적 사례이기 때문이다.
물론 국가 권력을 이용한 공적 자산 약탈 행위는 박정희·전두환으로 이어진 군사정권 시절 극성을 부렸다. 하지만 ‘꼼수정치’란 비난을 받는 경우는 드물었다. 비판을 잠재우는 수단으로 그들이 선호한 건 ‘말’보다 ‘주먹’이었던 까닭이다. 사술(詐術)을 쓰더라도 치밀하되 스케일이 컸다. ‘꼼수’보다 ‘공작’(工作)에 가까웠단 얘기다. 말 그대로 ‘공작정치’가 횡행하던 시절이었다.
꼼수가 문제적 행위로 부각된 건 1987년 민주화 이후다. 통치와 정쟁의 수단으로 주먹보다 말의 중요성이 커진 탓이었다. 여기에 적자생존의 신자유주의 시스템이 정착되자 꼼수는 생존을 위한 규범의 지위로 격상됐다. 국민은 살기 위해 지배층의 꼼수를 부단히 학습하고 내면화한 ‘속물’이 되어야 했다. 꼼수와 꼼수가 격돌하는, 속물 대 속물의 투쟁 상황이 펼쳐진 것이다. 역대 대통령 후보자 가운데 도덕적 흠결이 가장 많은 것으로 평가된 인물이 대통령에 당선될 수 있었던 것도 이런 ‘속물지배·꼼수만능’의 사회적 기반 위에서 가능했다는 진단(김홍중 교수)이 설득력 있게 다가오는 이유다.
흥미로운 사실은 ‘이명박식 꼼수’의 기술적 완성도에 대한 세간의 평가가 대단히 인색하다는 점이다. 대중철학자 강신주 박사는 “꼼수 중에서도 가장 저급에 속하는 깨알 꼼수”로 규정한다. 안목과 스케일, 전략적 치밀함에서 이건희 삼성 회장이 기업 승계 과정에서 보여준 ‘고급 꼼수’엔 한참 못 미친다는 것이다. 문제는 대통령과 측근들이 그 사실을 자각하지 못한다는 점이다. 자신들을 “도덕적으로 완벽한 정권”이라고 자화자찬하는 것이나, 사저 논란에 대해 “대한민국은 시끄러운 나라”로 일축하고 넘어가는 데서도 드러난다. 황상민 연세대 교수(심리학)는 그 원인을 ‘자아 부재’에서 찾는다. 타인이 자신의 행동을 어떻게 보는지에 대한 인식 자체가 없다는 뜻이다. 한마디로 ‘후안무치’다.
20세기 클렙토크라시 떠올라
이런 점에서 장은주 영산대 교수(법학)는 이명박 정부의 통치 행태를 20세기 중·후반 아프리카나 남미 후진국에서 나타난 ‘클렙토크라시’(Kleptocracy·도둑정치)에 비유한다. 클렙토크라시는 가진 것이라곤 천연자원뿐인 국가에서 소수의 지배층이 국가기구나 법, 여론을 활용해 국가 자원을 사적으로 강탈하는 체제를 일컫는다. 장 교수는 “고소영 인사 독점과 종합편성채널 배분, 인천공항 매각 추진에서 최근의 사저 논란까지 대통령과 측근들이 보여준 행태는 20세기의 도둑정치와 다른 점을 찾기 힘들다”고 말한다. 의 작가 제레드 다이아몬드(로스앤젤레스 캘리포니아대(UCLA) 교수·생리학)가 기술한 도둑정치의 특징을 요약하면 이렇다.
“첫째, 특정한 이념과 종교 등으로 사람들의 생각을 획일화하려 든다. 둘째, 정치적 절차는 형식과 껍데기만 남고 지배자들의 의사가 일사천리로 관철된다. 셋째, 일체의 반항에 대한 폭력적 진압과 공포 분위기가 조성된다.”(744호 노 땡큐! ‘클렙토크라시’에서 재인용)
이세영 기자 mona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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