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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신교 외피 쓴 극우정당?

최근 다시 일고 있는 기독당 창당 움직임… 정치하려면 세금부터 내라는 지적과 헌법정신 훼손 우려 등 회의론 높아
등록 2011-09-20 15:44 수정 2020-05-02 04:26
» 지난 9월2일 오후 서울 종로5가 한국교회 100주년기념관에서 열린 '기독자유민주당' 창당 준비 기자회견에서 참가자들이 발언하고 있다. 한겨레 신소영

» 지난 9월2일 오후 서울 종로5가 한국교회 100주년기념관에서 열린 '기독자유민주당' 창당 준비 기자회견에서 참가자들이 발언하고 있다. 한겨레 신소영

66년 전에도 기독교 정당이 있었다. 새 나라 건설을 두고 좌우익이 대립하던 1945년 새 나라의 정신적 기초가 기독교여야 한다고 믿은 일군의 목사들이 있었다. 그해 9월 신의주에서 기독교사회민주당의 깃발이 펄럭였다. 곧 정권을 장악할 조선공산당 북조선분국(조선노동당의 전신)과 기독교사회민주당은 빈번히 충돌했다. 주도적으로 참여한 목사는 좌익을 피해 월남했다. 그는 1947년 다음과 같이 썼다. “거짓말, 도둑질, 테로(테러), 이 세 가지는 현하 우리 사회의 가장 추악한 죄악인데 이는 유물론적 공산주의의 반도덕 사상의 악영향이 제일 큽니다. …새 나라의 새로운 도덕을 수립할 정신력을 오늘 우리 사회에서 기독교 이외의 어느 곳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까? 오직 기독교뿐입니다.” 그는 일본인 적산 건물을 미군정으로부터 불하받아 서울 저동에 영락교회를 세웠다. 한국장로교의 거두가 됐다. 삶은 청빈하고 성실했지만, 굳건한 보수주의자였다. 변혁의 1980년대, 그는 1989년 한국기독교총연합회를 만들고 명예회장에 올랐다. 추양 한경직 목사다.

“좌경화·자살 증가 두고 볼 수 없다”

다시 기독교 정당 논쟁이 벌어진다. 한국교회언론회가 지난 9월14일 서울 프레스센터 국제회의장에서 ‘기독교 정당 과연 필요한가?’라는 주제로 토론회를 열었다. 한국교회언론회는 보수적 기독교인들이 반기독교적 보도 대응 등을 목표로 2001년 결성한 단체다. 개혁 성향의 와 은 9월8일 ‘기독교 정당, 어떻게 봐야 하나?’라는 주제로 긴급 좌담회를 열었다. 은 교회일치운동(에큐메니컬)을 표방한 중도·진보 기독교 매체다. 미래목회포럼도 10월14일 토론회를 연다. 기독교 정당의 필요성, 정교분리 헌법 정신과의 충돌, 정강정책 등이 모두 논쟁 대상이다. 9월14일 토론회에서 전광훈 목사는 “한국의 경제 발전 이면에 자살률 등 그늘이 있고 국가가 점점 좌경화되는 것을 그대로 두고 볼 수가 없다”며 찬성 발언했다.

기독당 움직임은 간헐적으로 반복됐다. 해방 공간에서 기독교사회민주당이 창당됐다. 한동안 조용했다. 군사독재 시절 종교의 정치 참여는 외려 진보적 기독교인의 몫이었다. 그들은 신앙의 이름으로 민주화운동과 노동운동에 뛰어들었다. 민주화 투쟁과 김대중·노무현 정권을 거치며 보수 기독교의 정치 참여가 시작됐다. 1997년에 김한식 목사가 바른나라정치연합 소속 대통령 후보로 출마해 4만여 표를 얻었다. 2004년 총선에서 한국기독당이 22만여 표를 얻었고, 2008년 총선에서 현재 한국기독당을 주도하는 전광훈 목사 등이 만든 기독사랑실천당이 의석 확보 기준(3%)에 조금 못 미치는 44만여 표(약 2.6%)를 얻었다.

아직 찬성 목소리는 작아 보인다. 보수 기독교 안에서도 반응이 미지근하다. 송평인 논설위원은 14일 토론회에서 “한국이 종교 간에 잘 공존해왔는데 기독교가 정치화되므로 나쁜 결과가 나올까 염려된다”며 “헌법 20조에서 말하는 정치와 종교의 분리는 종교가 직접적으로 정치에 참여하지 말라는 것 아니겠느냐. 차라리 기독교의 역량을 키우는 것이 낫다”고 주장했다. 보도를 보면, 조용기 여의도순복음교회 원로목사는 현재 한국기독당에 대해 “나와 무관하다”며 선을 그었다. 그는 2004년 만들어진 한국기독당 상임고문이었다.

극우적인 그룹과 연계 가능성

비판은 여러 지점에서 제기된다. 특히 종교인이 근로소득세를 납부하지 않고 종교법인이 과도한 비과세 혜택을 받는 등 사회적 책임을 다하지 않는데도 현실 정치에 참여하는 건 옳지 않다는 비판이 많다. 개신교인으로 (삼인)을 쓴 김선주씨는 “종교의 사회적 위치나 의무를 다하지 못하고 정치 이데올로기에 편향되어 한쪽 집단의 이념의 주구 노릇을 한다면 사회적 책임을 다했다고 보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그는 “일부 보수 기독교 지도자들이 기독정당을 만든다는데 이는 기독교가 이익집단화된 것 아닌가. 종교로서의 기능이 마비된 것이라면 종교인 소득세는 물론, 종교법인이 세금을 (비과세 없이) 전부 내는 게 우선이다. 세금이 부과되지 않는 것은 정교가 엄격히 분리되고 종교가 사회적 책임을 다할 때 그런 것”이라고 덧붙였다. 김씨는 종교인의 근로소득세는 정치 참여와 무관하게 당연히 납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현 세법상 종교법인에 주는 다양한 비과세 혜택도 철저한 정교분리에서만 명분이 선다는 게 김씨 주장의 취지다.

성공 가능성에 대해서도 회의론이 나온다. 백찬홍 씨알재단 운영위원은 9월8일 좌담회에서 한국기독당이 성공하기 어려운 이유로 한국 기독교인 다수의 정교분리 신앙관, 지역주의에 기반을 둔 강력한 정당 체제, 세력화에 성공한 독일·미국 기독정당과 달리 지역 기반이 없는 점, 사실상 기독정당의 대체 정당인 한나라당의 존재 등을 장애물로 분석했다.

‘이익집단론’과 ‘극우정당론’도 반론으로 제기된다. 구교형 사무총장은 9월8일 좌담회에서 “기독교가 한국에서 주류로서 큰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음에도 보수 기독교 지도자들은 기독인들이 핍박받는다는 착각을 만들려 한다”며 “(기독교가 가진) 힘을 자신들의 기득권 보호를 위해 정치세력화하려는 분들이 정치권력으로 자기들 문제를 해결하려는 게 가장 큰 문제”라고 주장했다.

양희송 청어람아카데미 대표는 한국기독당이 ‘개신교 외피를 쓴 극우정당’이 될까 우려했다. “현재까지 파악하기로 한국기독당은 주목할 만한 내용이 없고, 전광훈 목사의 발언도 농담에 가깝지 정강정책이라고 보기 어렵다. 같은 기독교니까 찍어주지 않겠느냐는 종교 연고주의에 가깝다. 다만 우려되는 것은 전 목사가 부산 희망버스를 막으려고 어버이연합에 돈을 지원했다는 발언이다. (2008년보다) 몇만 표만 더 얻으면 비례대표 의석 1석을 얻을 수 있는 이때, 한국 사회의 온건·중도우파 말고 (기독당이) 극우적인 그룹과의 연계 가능성을 염두에 둔 게 아닌가 우려된다. 지금은 기독당이 아니라 새로운 극우정당의 등장을 한국 사회가 더 우려해야 하는 것 아닌가 싶다. 이런데 개신교가 (극우정당의) 외피를 제공할 필요가 있는가.”

고나무 기자 dokko@hani.co.kr

*참고 문헌: (김흥수 엮음·다산글방 펴냄), (김상구 지음·해피스토리 펴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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