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월12일, 서울 서초동 대검청사 대강당에서 열린 한상대 검찰총장의 취임식장.
“종북좌익 세력을 뿌리 뽑아야 합니다. 자유민주적 가치의 우수성이 여실히 증명된 지 오래임에도 아직도 북한에 대한 미망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이는 국가적 불행입니다. 북한을 추종하며 찬양하고 이롭게 하는 집단을 방치하는 것은 검찰의 직무유기입니다. 시대착오적인 위선과 기만을 외면하고 용인하는 것은 체제 수호자가 할 일이 아닙니다. 이 땅에 북한 추종 세력이 있다면 이는 마땅히 응징되고 제거되어야 합니다. 그것이 우리의 통일 기반을 마련하는 첩경인 것입니다. 다시 한번 공안 역량을 정비하고, 일사불란한 수사 체제를 구축하여 적극적인 수사 활동을 전개해야 할 것입니다. 종북주의자들과의 싸움에서는 결코 외면하거나 물러서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한 총장은 본인이 손수 작성한 취임사를 힘주어 읽어내려갔다. 이따금 색깔론을 거론하는 한나라당 최고위원회에서나 등장할 법한 ‘종북좌익 세력’ ‘체제 수호’ ‘응징’ ‘제거’라는 수사가 그의 입에서 거침없이 쏟아져나오자 장내는 술렁거렸다. 한 검찰 간부는 “역대 검찰총장 취임사에서 ‘종북좌익 척결’이 언급된 적이 없었다”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한 총장은 도대체 왜 그런 발언을 했을까?
한 총장의 강성 발언이 화제가 되자 대검 관계자는 “‘종북’이 전제돼 있다는 점에서 불법행위를 저지른 공안사범을 처벌하는 것은 검찰의 의무다. 문구 그대로일 뿐 확대해석할 발언은 아니다”라고 진화에 나섰다. 검찰 안팎에서는 북한 225호국의 지령을 받아 지하당을 건설해 남조선 혁명을 기도했다는 ‘왕재산 사건’ 수사가 한 총장 발언에 영향을 준 것 아니냐는 분석도 나온다. 지방검찰청의 한 부장검사는 “공안 업무와는 거리가 멀었던 한 총장이 왕재산 사건 수사 보고를 받고 ‘아직도 이런 사람들이 있느냐’며 충격을 받고 발언을 세게 했을 수 있다”고 분석했다.
공안검사들은 한 총장의 발언을 ‘당연하게’ 받아들였다. 한 공안통 검사는 “‘자유민주주의 체제 수호’라는 표현을 조금 더 세게 한 것 같다. 부정부패 척결과 마찬가지로 간첩도 당연히 잡아야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공안 부서 근무 경험이 있는 또 다른 검사는 “어쨌든 한 총장의 발언으로 검찰 공안 업무에 더욱 힘이 실릴 것 같다”고 말했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롤러코스터 타듯 부침을 거듭했던 공안 조직이 ‘옛날의 영화’를 되찾아가고 있다는 점은 분명하다.
1948년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 한동안 정보부로 존재하던 공안 기능이 지금의 공안부라는 이름을 얻은 것은 박정희 정권이 들어선 직후인 1964년이다. 그 뒤 ‘공안 수요’가 폭증하고 경찰과 국가안전기획부가 법의 통제를 받기 시작한 1980년대 들어 검찰 공안부의 조직과 역할은 급속도로 팽창한다. 대공 사건뿐만 아니라 노동·학원·선거 사건이 모두 공안부의 업무 영역으로 편입된 것이다. 반독재 투쟁에 나선 재야 인사와 학생들에 대한 합법적 ‘응징’은 공안검사들의 몫이었다. ‘권위주의 정권의 안녕’에 우선 복무한 공안검사들은 출세 가도를 달렸기 때문에, ‘국가관’이 투철한 검찰 내 초엘리트 검사들만이 서울지검 공안부 검사가 될 수 있었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부장이냐”잘나가던 공안검사들은 수평적 정권 교체가 이뤄진 국민의 정부 출범 이후 처음으로 쓴맛을 보게 된다. 1998년 4월 박상천 당시 법무장관이 △자유민주주의 체제 수호 △인권보장의 조화 △정치적 중립성 보장을 기치로 ‘신공안’ 개념을 들고 나온 것이다. ‘구공안’의 대표주자인 안강민·최병국·주선회 검사장과 이상형·함귀용 검사 등이 좌천성 전보를 당했고, 그 자리를 공안 경험이 전혀 없는 기획통 검사들이 대신 메웠다. 그러나 새롭게 공안 부서에 투입된 중간 간부들은 기존의 구공안 검사들과 심각한 갈등을 빚게 된다. 다음은 당시 지방검찰청의 공안부장으로 부임했던 신공안 검사의 회고담이다.
“대학생 시위 사건 등을 불구속 수사하려고 했다. 그랬더니 밑에 있던 부하 검사가 회식 자리에서 ‘부장은 대한민국 공안부장이 아니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부장이냐’고 대들더라.”
멱살잡이 직전까지 갔다는 이 살풍경은 ‘신공안 체제’가 위태롭기 짝이 없는 ‘모래성’이었음을 방증한다. 결국 신공안의 시대는 ‘조폐공사 파업 유도 발언’ 사건으로 서둘러 종말을 고했다. 신공안의 선두주자였던 진형구 대검 공안부장이 1999년 6월, 대전고검장으로 영전이 결정된 뒤 점심식사 때 거나하게 폭탄주를 마시고 기자들과 면담하다가 “조폐공사 파업을 검찰이 유도했다”는 취지로 발언해버린 것. ‘공안 수요’가 줄어들어 할 일이 없어진 공안 조직이 동향 파악과 정부 유관기간 업무 조정 쪽에 치중하다가 빚어진 참사였고, 비대한 공안 조직은 그대로 둔 채 사람만 바꾸려 한 개혁의 ‘한계’였다. 뜻하지 않은 설화로 홍역을 치른 정권은 “그래도 공안은 해본 사람이 해야 한다”며 다시 구공안들을 일선으로 복귀시켰다.
참여정부 들어 공안검사들은 다시 위기에 봉착했다. 1980년대 ‘거리의 변호사’로 활약하던 노무현 대통령부터가 대우조선 파업 사태 때 ‘제3자 개입’ 혐의로 구속된 경험이 있는, 공안검찰의 ‘피해자’였다. 노 대통령은 “현재 검찰 수뇌부를 신뢰하지 않는다”며 인적 청산에 나섰고 공안 조직 손질도 시도했다. 국가보안법 폐지 논의와 함께 공안부 폐지나 축소, 개명 등 다양한 방안이 제시되는 상황에서 똘똘한 엘리트 검사들이 선호하던 공안부는 한순간에 기피 부서로 전락했다. 공안통 검사들은 자신의 ‘과거’를 부정하며, 특수부나 금융조사부를 지원하며 ‘경력 세탁’을 시도하기도 했다. 그러나 참여정부의 공안검찰 개혁도 대검의 공안3과를 폐지하는 정도에서 그치고 뚜렷한 성과를 내지 못했다.
MB의 공안부 햇볕 정책숨죽여 있던 공안검찰은 이명박 정부 들어 다시 ‘햇볕’을 보게 된다. “이명박 대통령 하야” 구호까지 나왔던 촛불집회로 위기감을 느낀 정권이 ‘공공의 안녕과 질서 유지’를 위해 공안통들을 전진 배치한 것이다. 그 결과 2009년 1월 ‘정통 공안’이라고 할 수 있는 천성관 검사장이 서울중앙지검장에 임명됐고, 그의 뒤를 이은 사람도 대검 공안부장 출신 노환균 검사장이었다. 평생 공안 업무와는 거리가 멀었던 한상대 검찰총장마저 ‘종북좌익과의 전쟁’을 선포하며 임기를 시작했다. 검찰 출신의 한 변호사는 “그랜저 검사 사건을 보듯 총장 취임사에는 자체적인 반성이 우선돼야 하는데, 그것보다 종북좌익과의 전쟁을 벌이겠다는 구태스런 발언에 방점이 찍혀 있어 깜짝 놀랐다”며 “공안 조직을 중시하는 정권과의 ‘코드 맞추기’ 발언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김태규 기자 한겨레 법조팀 dokbul@hani.co.kr
한겨레21 인기기사
한겨레 인기기사
“‘윤·건희’ 정권 탄핵, 윤 임기 채울 자격 없어”…대학생 용산 집회
외신 “김건희, 윤 대통령의 시한폭탄…정권 생존 위태로울 수도”
[단독] “명태균, 용산 지시 받아 ‘비선 여의도연구원’ 구상”
“반장도 못하면 그만둬요”…윤 탄핵 집회 초등학생의 일침
이라크까지 떠나간 ‘세월호 잠수사’ 한재명의 안타까운 죽음
[단독] 강혜경 “명태균, 사익 채우려 김영선 고리로 국회입법 시도”
“전쟁이 온다” [신영전 칼럼]
해리스 오차범위 내 ‘우위’…‘신뢰도 1위’ NYT 마지막 조사 결과
“보이저, 일어나!”…동면하던 ‘보이저 1호’ 43년 만에 깨웠다
한동훈 어딨나?…윤 대통령 ‘공천개입’ 육성 공개 뒤 안 보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