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세상은 개명했다. ‘빨갱이 딱지’ 붙이기가 예전처럼 쉽지 않다. 경찰이 들고 와서 검찰이 붙인 딱지를 법원이 한 번 더 눌러 붙이는 경우도 있지만, 검찰이 붙인 것을 법원이 긁어 떨어뜨리는 경우도 있다.
청와대가 8월18일 저녁 새 대법원장 후보를 발표했다. 예상을 깨고 후보군 중에 가장 보수적으로 평가되는 양승태 전 대법관이 낙점됐다. 청와대는 양 전 대법관을 고른 이유 가운데 하나로 “우리 사회의 중심 가치인 자유민주주의를 지켜나갈 안정성”을 꼽았다. 지난해 7월 대법원 전원합의체 선고에서 양 후보자는 참여정부 시절 공식 사회단체로 등록돼 정부 보조금을 지원받은 ‘남북공동선언실천연대’(이하 실천연대)가 이적단체에 해당한다는 다수 의견에 섰다. 실천연대는 2000년 ‘6·15 남북 공동선언’ 뒤 출범한 민간 통일운동단체다. 대표적 독소 조항인 국가보안법 제7조(찬양·고무 등)가 적용됐다. 대법관 13명 가운데 양 후보자 등 9명이 다수 의견에, 4명은 반대 의견에 섰다. 대통령이 대법원장 후보로 양 전 대법관을 낙점하자 보수 언론 등은 ‘종북·불법시위엔 단호’ 등의 제목을 내걸고 반겼다.
<font size="3"><font color="#006699"> 여전히 헐값인 표현의 자유</font></font>이적성에 대한 최종 판단은 사법부가 한다. 이적 혐의를 두고 사법부에 판단을 구하는 최후 역할은 검찰이 맡는다. 경찰이나 국가정보원 등이 대공사건 수사를 하더라도 검찰이 기소권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법부 못지않게 검찰의 ‘자세’도 중요하다.
“자유민주주의 체제의 우월함이 국경을 넘어 세계 곳곳으로 퍼져나가고 있다. …체제의 수호자로서 우리에게 주어진 국가적 소명을 다해야 할 것이다.” 지난 8월12일 한상대 신임 검찰총장의 취임사가 논란이 됐다. 그는 “이 땅에 3대 전쟁을 선포하고자 한다”며, 그중 하나로 “종북좌익 세력과의 전쟁”을 들었다. 종북좌익 세력을 용인하는 것은 “체제 수호자가 할 일이 아니다”라고 했다. 검찰이 ‘독수리 5형제’를 자임하며 한국을 지키겠다고 나선 것이다.
집권 후반기 이명박 대통령이 잇달아 임명한 사법부와 검찰의 최고 수장들에게 기대하는 바를 속 시원히 ‘대독’해준 것일까. 이명박 정부 들어 민주주의도 후퇴한다는 것을 알아버렸다. 헌법이 보장하는 사상·양심·표현의 자유는 2011년 8월 오늘 이 땅에서 헐값에 팔려다닌다.
“2006년 월일불상경 대구 시내에 있는 이름을 알 수 없는 헌책방에서 ‘아리랑’이라는 서적을 구입하였다. 그리고 피고인은 2009년 6월8일 해군사관학교 교수부 사회인문학처 국사교관으로 보직된 후 월일불상경 피고인의 집에 보관 중이던 위 ‘아리랑’ 서적을 우체국 택배를 이용하여 소속 부대인 해군사관학교 제2세병관에 있는 피고인의 사무실로 옮겨 보관하였다. 그 주요 내용은….”
여기서 말하는 ‘아리랑’이 그 일까. 공소장이 옮긴 책의 ‘주요 내용’이 A4 한 장 분량으로 정리돼 있었다. “현실에 의해서 배반당하게 마련인 이상(理想)의 속절없음을 너무도 많이 보고 자란 탓인지… 이 나라의 많은 젊은이들이 ‘아리랑’을 읽으면서 극한 상황 속에서 더욱 빛나는 ‘김산’의 사상가적 지성과 좌절 속에서 더욱 강인해지는 혁명가적 신념에 감동받는 한 인간과 사회에 대한 희망을 버리지 않는다. 김산은 일본 경찰의 기록에서 보이는 ‘혼합 마르크시즘’ 혹은 1920~1930년대의 동양이 겪은 상황 아래서 시대가 낳은 하나의 순교자였다. …33세 김산은 일본의 억압 아래 있던 동시대 조선인들에게는 지도자요 사상가였으며 뜨거운 영혼과 가슴을 소유한 인도주의자요 더없이 고귀한 인물이었다. 조선이 받고 있는 억압과 갈취는 아마도 근대의 다른 어느 식민지보다도 더 클 것이다. 어쨌든 이제까지는 한반도에서 대중적 무장봉기가 일어나는 것을 어떻게 하든 막아왔다. …일본인 지배에 대한 조선인들의 끊임없는 투쟁 이야기는 어떠한 억압 아래서 이 투쟁이 유지되고 있는가를 고려해볼 때 대단히 영웅적인 것이다. 김산은 이데올로기가 만연하던 시대에 공산주의운동에 참여한 공산주의자였지만 적어도 김산의 동선(動線)은 이데올로기가 요구하는 원칙이 아니라 당면한 싸움의 리듬에 이끌리고 있다. 또 그 저변에는 톨스토이류의 인류애 또는 휴머니즘적 감성이 흐르고 있다. 따라서 성숙한 독자의 눈은 이 책에서 이데올로기적 편향과 좀더 보편적인 가치에 대한 성실성을 구별해내야 하는 것이다.”
<font size="3"><font color="#006699"> 허망한 공소장 감상</font></font>그 이 맞았다. 그런데 무엇이 문제라는 것인가. 독자에게 이데올로기적 편향과 보편적 가치를 구별하라고 하지 않는가. 의문은 곧 풀렸다. “…라는 내용으로, 피고인은 위 서적이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제외하고 김산 등 조선인 공산주의자들이 항일 독립투쟁 활동을 하였다는 북한의 주장에 동조하는 내용임을 알면서도 2011년 4월6일 영장에 의해 압수수색이 이루어질 때까지 위 사무실에 보관함으로써, 국가의 존립·안전과 자유민주적 기본 질서를 위태롭게 한다는 점을 알면서도 반국가단체인 북한의 활동을 찬양·고무 또는 이에 동조할 목적으로 위 표현물을 소지하였다.”
놀라운 도약이고 비약이다. 내용은 상관없다. 알고는 있었지만 허망했다. 남들은 다 읽는 책들이 이적표현물이 되는 허망한 시대가 있었다. 공안기관에서 작성한 이적도서 목록이 언론 보도로 까질 때마다 실소를 금치 못했던 일들이 2000년 이후로 몇 차례나 반복됐다. 이명박 정부 들어서는 국방부가 ‘불온서적’이라고 지정한 책들의 허망함에 또 한 번 무릎이 풀렸다. 그리고 이적표현물의 시대가 다시 도래했다.
지난 6월 해군사관학교 생도들에게 국사를 가르치는 교수요원인 김아무개 중위가 군검찰에 기소됐다. 국가보안법 제7조(찬양·고무 등) 5항 위반 혐의였다. 이적표현물을 소지·복사·반포한 혐의가 되겠다. 첨부된 압수증명서에는 외에도 (1~6권) 등 도서 18권, ‘조선공산당의 권력 구상과 조선인민공화국’ ‘북한의 인민민주주의 혁명과 통일전선 정책’ ‘해방 후 김일성의 정치적 부상과 집권과정’ ‘한국 노동자 계급 형성 연구’ ‘우리나라에서 인민민주주의의 발생과 발전’ 등의 논문 7편이 기록돼 있다.
군검찰의 공소장을 압축하지 않고 그대로 인용하는 이유는 이적표현물 사건의 허망함을 느껴보자는 취지다. 이건 어떤 문장으로도, 어떤 장문의 기사로도 의미 전달이 되지 않는다. 직접 읽어봐야 안다.
에 대해 군검찰은 이렇게 설명한다. “위 서적이 서양 근현대사에 있어 독점자본주의의 모순을 비판하고 계급투쟁의 전개 방법을 제시하면서 결국 사회주의혁명을 일으켜야 한다는 북한의 주장에 동조하는 내용임을 알면서도….” 거꾸로 비틀면 1916년에 을 쓰고 1924년에 죽은 레닌이 북한의 등장을 예견하고, 북한의 주장에 동조하는 책을 쓴 셈이다. 을 보자. “위 서적이 칼 맑스의 유물론적 사고에 기초하여 관념적인 헤겔의 법철학을 비판하는 내용으로 북한의 주장에 동조하는 내용이며, 칼 맑스의 유물론적 사고가 북한의 사회주의 체제의 사상적 기반임을 알면서도 지속적인 사상 학습에 활용할 목적으로….” 22살의 마르크스는 박사학위 논문으로 고대 그리스 유물론자인 데모크리토스와 에피쿠로스의 자연철학을 주제로 삼았다. 마르크스는 헤겔 관념론을 뛰어넘는 계기를 이들에게서 찾았다고 하니 데모크리토스와 에피쿠로스까지 공안기관에 소환될 지경이다.
역시 밑도 끝도 없다. “위 서적이 노동자, 농민에 대한 수탈로 이어지는 자본주의 체제를 비판하고, 사회주의 체제를 바탕으로 한 북한의 주장에 동조하는 내용임을 알면서도….” 연세대학교 도서관도 공소장에 등장한다. “연세대학교 도서관에서 책을 대여하여 연세대학교 인근 상호를 알 수 없는 인쇄소에서 ‘반제민족통일전선 연구’라는 서적을 복사, 제본하였다. …국가의 존립·안전과 자유민주적 기본 질서를 위태롭게 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반국가단체인 북한의 활동을 찬양·고무 또는 이에 동조할 목적으로 위 표현물을 소지하였다.” 이런 위험한 책을 분류·보관하고 불특정 학생들에게 대여까지 하는 연세대 도서관은 어찌해야 할까.
<font color="#006699"> <font size="3">검사가 이적행위 ‘입증’해야</font></font>독립운동가 김산의 자서전 을 쓴 미국인 작가 님 웨일스의 본명은 헬렌 포스터 스노다. 중국 혁명의 대장정을 기록한 의 작가 에드거 스노가 그의 남편이다. 조선인 혁명가와 중국인 혁명가. 과 . 2011년 한국에서 두 책의 공통점은 따로 더 있다. 모두 법원에서 판례로 인정된 이적표현물이라는 점이다.
대검찰청은 1980~90년대에 이라는 공안자료집을 여러 차례 발간했다. “국가보안법 제7조 제5항 위반 사범의 수사·처리에 참고하도록 하기 위한” 것이었다. 우선 1974~87년 각급 법원에서 옛 반공법이나 국가보안법에 따라 이적표현물로 인정한 도서·유인물 등을 모아 발간했다. 이어 1990년에는 1988~89년에 법원에서 이적표현물로 인정하거나 검찰이 이적표현물로 인정해 기소한 도서 233종, 유인물 281종이 새로 추가됐다. 1992년에도 마찬가지로 1990~91년에 새로 인정된 도서 373종, 유인물 717종을 추가했다. 1996년에도 도서 1072종, 유인물 1584종이 이적표현물로 등록됐다. 이적표현물로 인정된 사례가 가파르게 증가한 것이다. 이때 목록을 보면 이 보인다. 과 같은 사회과학서적에 더해 조정래의 , 박노해의 , 전태일을 다룬 조영래의 , 김지하의 , 막심 고리키의 등도 실렸다. 김준엽·김창순의 역저인 , 도 포함됐다. 일일이 열거하기도 허망한 책들이다. 물론 북한 원전인 도 있다. 국회도서관, 대학도서관, 시중 서점, 인터넷 서점, 헌책방, 어느 누구의 책장에서도 쉽게 구하고 찾아볼 수 있는 책들이 왜 이적표현물이냐는 정당한 주장은 국가보안법 체제에서는 잘 먹히지 않는다.
‘과거에는’ 일단 법원이나 대검에서 이적성을 인정한 도서 등에는 별도의 이적성 분석이 필요하지 않았다. ‘자동빵’인 셈이다. 검찰은 이를 위해 을 펴내는 한편, 수시로 이적표현물 목록을 일선청 등에 내려보냈다. 경찰에서 관련 사건 영장을 신청할 때는 이제는 없어진 경찰청 산하 공안문제연구소에서 작성한 감정서를 첨부하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검찰은 “이적성 평가는 결국 법률적 판단이므로 법률전문가가 작성하지 않은 감정서를 맹신해서는 안 되며 참고자료로만 활용한다. 검찰의 독자적인 판단에 따른 분석이 필요하다”고 했다. 이 때문에 1980~90년대 공안검사가 이사를 갈 때는 집 앞에 폐지로 내놓은 ‘빨갱이 서적’이 수북이 쌓이기도 했다. 공안검사 출신의 한 변호사는 “책 내용은 잘 기억나지 않지만 출판사, 저자 이런 것은 줄줄이 꿰고 있었다. 그런 책을 집 밖에 내놓으면 지나가는 사람들이 이상하게 쳐다보기도 했다”고 말했다.
그런데 2010년 7월 이적표현물 판단의 중요한 전기가 마련됐다. 앞서 언급한 실천연대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를 다룬 대법원 전원합의체 선고는 실천연대를 이적단체로 규정하면서도 이적표현물을 소지한 사람의 이적행위를 ‘추정’해 처벌해온 대법원 판례를 바꿔, 검사가 이적행위를 ‘입증’하도록 했다. 검사가 미뤄 짐작해 처벌하던 것을 이제는 증거를 가져오라는 당연한 판례 변경이 수십 년 만에 이뤄진 것이다.
예를 들어 2010년 7월 이전에는 을 ‘소지’하고 있었다면 그 자체로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처벌이 가능했다. 은 이미 법원에서 이적표현물로 인정됐기 때문이다. 기존 판례는 “이적표현물 소지자에게는 이적표현물의 내용과 같은 이적행위를 할 목적이 있는 것으로 추정”했다. 그러나 2010년 7월 이후에는 “이적행위 목적이 있음을 증명할 직접증거가 없는 때에는 피고인의 경력과 지위, 이적표현물을 소지·반포하게 된 경위, 이적단체 가입 여부 등 간접사실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판단해야 한다”로 바뀌었다. 을 라면냄비 받침대나 컵라면 뚜껑 덮개로 썼을 뿐인데 처벌할 수는 없다는 얘기다.
<font size="3"><font color="#006699"> 기소 중에 바뀌는 이적 범위</font></font>2007년 경찰은 인터넷 헌책방을 운영한 김아무개(56)씨에 대해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이적도서로 확정 판결받은 북한 원전과 노골적인 친북 성향 이적도서 및 자유시장경제 체제를 부정하는 내용의 마르크스레닌주의 원전들을 판매했다”는 것이다. 경찰이 첨부한 이적표현물 현황표에는 도서명, 출판사와 함께 해당 서적을 이적표현물로 인정한 검찰청 사건번호, 이적표현물로 인정한 법원의 사건번호가 빼곡하게 들어차 있다. 사건번호 대부분은 1980년대와 1990년대 초반에 몰려 있다. 20여 년 전 냉전시대의 잣대를 2007년 인터넷 세상에 그대로 들이민 것이다. 경찰은 “실질적으로 국가의 존립·안전을 위태롭게 하는 등 사안이 중대하다”고 했고, 변호인은 “시대착오적인 현대판 분서갱유다. 북한 사회의 현실과 우리 남한 사회의 성숙도 등에 비춰볼 때 이 정도의 책을 판매한다고 하더라도 충분히 우리 사회가 소화시킬 수 있는 정도로 세상은 이미 변화되었다”고 맞섰다.
수원지방법원은 지난 3월 김씨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대법원 전원합의체에서 바뀐 판례가 근거였다. 재판부는 “이 사건 서적들은 대부분 국립도서관 및 대학도서관에 비치되어 있어 일반인들이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점, 대부분은 인터넷으로 검색되고 또한 판매되어왔던 점, 내용을 알고 있는 서적이 극히 일부분으로 보이고 피고인이 국가보안법 위반 행위에 가담했다는 자료가 보이지 않는 점” 등을 무죄 이유로 들었다. 판결문에 첨부된 범죄일람표에는 책 제목과 함께 내용이 간략하게 정리돼 있다. (자본주의의 필연적 멸망과 사회주의의 필연적 도래를 기술하고 있는 내용), (민중이 교육을 통해 현실을 차차 인식하게 된다는 내용으로 인간 해방을 위한 민중교육론을 기술), (좌파적 신학사상인 해방신학을 소개하고 있는 내용). 이런 식의 기소에 제동이 걸린 것이다.
검찰 공안부 관계자는 “과거에는 이적표현물로 보였지만 지금은 아닌 것들이 있다. 시대에 따라 이적표현물도 달라진다. 과거의 이적표현물을 수사 기준으로 삼는다면 위험해질 수 있다”고 했다. 지금 기준으로는 이적표현물이 아닐 수도 있으니 하나하나 새로 따져봐야 한다는 것이다. 다른 공안부 관계자도 “2010년 대법원 전원합의체 선고 이전과 이후의 처벌 기준이 달라지게 됐다. 선고 전에 경찰에 입건 지휘를 했지만, 선고 뒤로 기준이 바뀌면서 기소하기 곤란하거나 아예 기소를 하지 않는 경우도 생겼다. 수사도 그에 맞춰가야 한다. 그게 옳은 길인데 대신 수사는 쉽지 않아졌다”고 했다. 검찰은 “일선청에 사건을 입체적으로 분석하라고 지시한다. 이적성이 의심되는 표현물을 소지하게 된 경위, 단순 호기심 여부 등을 종합적으로 엄밀하게 보라고 주문한다”고 설명했다.
경찰의 경우 ‘문건 감정’으로 악명이 높았던 공안문제연구소는 2005년 문을 닫았다. 그 기능은 경찰청 소속 치안정책연구소로 일부 이관됐지만 문건 감정은 더 이상 하지 않는다고 한다. 대신 경찰 보안인력들에 대한 문건 감정 교육을 실시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최규식 민주당 의원이 2009년 내놓은 국정감사 자료를 보면, 경찰청은 공안문제연구소가 폐지된 뒤 극심한 우편향을 보이는 기관들에 주로 문서 검증을 맡겨온 것으로 드러났다. 당연히 대부분의 문건에 이적성 판정이 내려졌다.
<font size="3"><font color="#006699"> ‘명백하고 현존하는 위험’ 원칙</font></font>
대검은 현재 2007~2010년에 이적표현물로 인정된 도서와 유인물 등을 목록화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 인터넷 게시글과 컴퓨터 파일 형태의 이적표현물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고 있다고 한다. 한 공안부 검사는 “요즘은 패턴이 달라졌다. 과거에는 도서류·유인물류 등의 이적표현물이 많았지만 요즘은 일반적으로 출간되는 도서가 이적표현물로 걸리는 경우는 흔치 않다. 대신 인터넷 게시글이나 댓글, 컴퓨터에 저장해둔 한글파일 등이 대세”라고 설명했다. 컴퓨터 하나를 압수수색해도 이적성이 의심되는 파일이 수백 건씩 쏟아진다는 것이다.
검찰 관계자는 “을 이적표현물로 인정하던 시기가 있었지만 지금 그걸 이적표현물이라고 할 수 있겠나. 지금 문제가 되는 인터넷상의 글들도 10년 뒤에는 이적성이 인정되지 않을 수 있다”고 했다.
1991년 부산에서 배아무개씨는 수사기관에 일기장을 압수당했다. 놀랍게도 개인의 내밀한 기록인 일기장이 이적표현물로 인정됐다. 법원 역시 일기장에 이적표현물이라고 도장을 찍어줬다. 이 황당한 일은 검찰 스스로 이라며 기록으로 남겼다. 일기장을 기소하고 유죄를 선고하는 일이 반복되지 않으려면, 검찰과 법원이 과거로 돌아가지 말아야 한다.
대법원 전원합의체에서 소수 의견을 낸 대법관들은 “이적표현물이 되기 위해서는 국가의 존립·안전이나 자유민주적 기본 질서에 대한 ‘명백하고 현존하는 위험’이라는 기준이 적용돼야 한다”고 했다. 바뀐 판례도 위험하기는 마찬가지라는 얘기다. 이 땅에 ‘체제 수호자’를 자처하는 이가 너무 많은 탓이다.
김남일 기자 namfic@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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