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월5일(미국 현지시각)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가 미국의 국가신용등급을 ‘AAA’에서 ‘AA+’로 한 단계 낮춘 충격이 국제 금융시장을 강타했다. 국가신용등급 하락은 미국 정부의 채권상환 능력에 대한 확신이 약화됐음을 의미한다. 물론 AAA와 AA+는 현실적인 투자 선택에선 별반 차이가 없는 등급들이다. 하지만 미국 국가신용등급에 변화가 가능하다는 사실 자체가 충격으로 다가온 것이다.
S&P의 신용등급 강등이 있기 전에, 미국 정부는 14조달러에 이르는 부채가 법정 한도에 도달한 상황이었다. 따라서 추가적인 부채 증액이 가능하도록 미 의회에서 합의를 이끌지 못한다면 채무불이행 상태에 도달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이미 7월에 다른 신용평가사 가운데 하나인 무디스는 미국의 국가신용등급 전망을 ‘부정적‘으로 전환하고 부채한도 증액에 대한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으면 국가신용등급을 낮출 수 있다고 경고했다. 무디스는 다만 S&P와 달리, 추가적인 부채 증액에 대한 합의가 이루어짐에 따라 신용등급을 실제 강등하진 않았다.
선진국의 재정위기 악순환
이러한 일련의 과정을 살펴보면 미국 정부의 재정건전성 악화와 이를 해결하지 못한 재정위기 상태가 이번 상황의 본질임을 확인할 수 있다. 물론 유럽과 미국의 재정위기가 어제오늘의 일은 아니다. 유럽과 미국은 지속적으로 정부 재정이 악화됐고 부채가 늘었는데,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부실 금융기관에 대한 구제금융과 경기회복을 위한 확장적인 재정정책으로 인해 정부 지출이 추가적으로 급증하며 현재 사태에 이른 것이다.
다만 S&P의 미국 국가신용등급 강등은 이런 상황에 기폭제 역할을 했다. 그렇다면 다음 질문은 현 사태가 어떤 강도로 세계경제에 영향을 줄 것이며 그 영향은 얼마나 지속될지다. 그것이 흔히 이야기하는 ‘더블딥’ 논쟁이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일부 회복된 세계경제가 다시 침체의 늪으로 빠져들지에 대한 논의다.
일단 미국의 국가신용등급이 하락하자 금융시장의 부정적 반응은 강렬했다. 일부에선 미국 재정 문제는 이미 알려진 것이고 신용등급 하락도 금융시장에 사전적으로 반영돼 그 영향은 제한적일 것으로 추측하기도 했지만, 시장 반응은 훨씬 부정적이었다. 당사자인 미국의 증시는 지난 8월8일 다우존스 지수가 5.6%, S&P500 지수가 6.7%씩 하락했다. 나스닥 시장 역시 6.9% 내리는 급락세를 보였다.
우리나라도 8월4일 종가 기준으로 2018이던 주가지수가 8일 1900 아래로 떨어졌고, 10일에는 연기금 등의 매수로 간신히 1800 선을 지켰으나 실제의 주가 하락 압력은 거셌다. S&P 발표 이후 불과 3~4일 사이에 장중 1700이 붕괴되기도 했다.
증권시장의 이런 움직임에 대해 일부에선 투자자들이 과민하게 반응하는 것이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하지만 실제로는 투자자들이 과민 반응한 것이 아니라 현재 상황을 고려하며 합리적으로 의사결정을 했을 가능성이 높다. 특히 해외 기관투자가는 거시적인 투자 재조정을 실시하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
그 이유는 유럽의 재정 불안에 이은 미국의 국가신용등급 강등은 모든 선진국이 사실상 재정위기에 직면했다는 점을 확인해준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일본의 경우는 직접적인 재정위기가 발생하지 않았으나 이는 일본 국채를 대부분 일본 금융기관이 보유하는 데 기인할 뿐이지 재정 여력이 있음을 의미하진 않는다. 따라서 미국·유럽·일본이라는 모든 선진국이 재정위기에 직면했음이 좀더 분명히 확인된 상황에서 국제투자자들이 자신의 포토폴리오를 조정하며 적극적으로 움직인다고 판단할 수 있다.
또 오바마 행정부와 의회의 갈등에서 보듯이 재정위기를 극복하고 재정건전성을 해결하는 것이 쉽지 않다는 사실이 잘 알려져 있는데, 이는 향후 경기에 대해 더 비관적인 전망이 가능하도록 한다.
더욱 심각한 유로존 위기
결국 재정위기는 단기적으로 해결하기 어려운 특성상 실물경기의 장기적 침체를 부를 가능성이 높은 것이다. 물론 S&P가 미국의 국가신용등급을 강등한 것 자체가 곧바로 실물경제에 타격을 주진 않겠지만, 향후 그럴 수 있다는 예측이 현재 주가 흐름을 포함해 금융시장의 부정적 움직임에 반영된 것이다. 결국 선진국의 재정위기가 장기화되고 이로 인해 경기침체가 예상되는 현 상황에서 국제투자자들의 투자 재조정 반응은 합리적이고 예측 가능한 범위 내에 있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금융자산에 대한 투자 재조정은 투자자들이 주식 등의 위험자산을 회피하며 안전자산에 대한 선호를 보이면서, 실제로 실물투자와 소비를 줄여 경제 전반에 부정적 영향을 끼쳐 장기적으로 경기회복을 어렵게 할 것이다. 따라서 미국과 유럽의 재정위기가 실물경제를 곧바로 무너뜨리진 않더라도 부정적 영향은 시간을 두고 나타날 것으로 생각할 수 있다.
실제로 이미 재정위기를 여러 차례 겪은 라틴아메리카의 경우 재정위기는 금융위기로 전이되고 결국 실물경제의 위축을 부른 경험이 있다. 결국 미국과 유럽의 재정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면 이런 현상은 계속될 수밖에 없다.
다만 미국은 유럽과 달리 달러화의 추가 발행을 통해 경기를 부양할 여지는 아직도 있다. 물론 이러한 정책적 결정이 3차 양적 완화 형태로까지 진행될진 알 수 없으나 현재는 달러와 미국 국채를 대체할 수 있는 기축통화나 국제적 안전금융자산이 없는 상황이다. 따라서 전세계적으로 주식시장에서는 매도세가 우세해 주가가 하락하고 있음에도, 정작 재정위기에 직면한 미국의 국채 가격은 떨어지지 않고 달러화는 일부 강세를 보이기도 하는 것이다.
하지만 달러화라는 기축통화를 통한 통화정책 수단을 가진 미국보다 더 큰 문제는 유로화로 묶여 있는 유럽이다. 그리스의 재정위기는 이미 잘 알려져 있고 이 자체로도 유럽 경제에는 상당한 불안 요인이 되고 있다. 다만 지금까지는 유로존 내의 다른 국가들이 지원함으로써 문제를 봉합해왔다.
하지만 유럽에는 재정 문제를 겪고 있는 국가가 그리스만 있는 것이 아니다. 그리스는 대표적인 예이지만 이탈리아·스페인을 비롯한 다른 국가들도 유사한 형태의 정부 재정 문제에 봉착해 있다. 특히 이 국가들은 그리스에 비해 경제 규모가 커서, 일단 문제가 본격화되면 다른 유럽국가의 지원으로 재정 문제를 해결하기도 어렵다.
급격한 침체 아닌 장기적 위축
물론 이들 국가에 문제가 있다는 것이 새로운 일은 아니다. 하지만 마치 미국의 재정 문제를 이미 알고 있다곤 했지만 S&P의 발표가 기폭제가 돼 재정위기가 불거진 것과 같이, 유럽 국가들의 재정 문제가 좀더 대두될 계기가 있다면 이는 세계경제의 강력한 불안 요인으로 등장할 가능성이 높다.
요컨대 선진국들의 재정위기 속에서 실물경제는 급격히 무너지진 않더라도 장기적으로 위축될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장기적 위축을 선제적으로 반영한 금융시장은 실물경제의 흐름보다 훨씬 격렬한 형태로 높은 변동성을 가지고 부정적으로 반응할 것이다. 이것이 지금 미국 재정위기에 대해 국제 금융시장이 반응하는 양상을 설명하는 것이기도 하다.
성태윤 연세대 교수·경제학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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