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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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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장도 3주 휴가를 갑니다

누구도 남들의 긴 휴가를 언짢아하지 않는 영국…
건축 사업가 매클러스키 “7일 한국 휴가는 너무 짧다”
등록 2011-07-28 16:15 수정 2020-05-03 04:26
» 매클러스키가 2010년 타이를 방문했을 때 모습.

» 매클러스키가 2010년 타이를 방문했을 때 모습.

* 이 글은 통신원이 인터뷰 뒤 영국 현지인이 말하듯 고쳐 쓴 글입니다.

영국 런던 중부에 사는 게리 매클러스키(45)라고 합니다. 저는 건축회사를 운영하는 건축가 겸 사업가입니다. 사원은 저를 포함해 4명이고 개인이나 기업에서 건축 설계 등을 의뢰하면 직원들과 머리를 맞대고 일을 진행합니다. 여름휴가는 3주 정도 줍니다. 휴가는 2~3주 전에 미리 신청하면 누구나 받을 수 있습니다. 규모가 큰 프로젝트가 들어오면 휴가를 조금 늦춰달라고 부탁은 하지만, 이건 정말 드문 경우입니다. 한 직원은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휴가를 보내고 있는데 휴가비를 따로 지급하지 않아 마음에 걸립니다. 보통 영국인들은 인근 유럽 국가로 여행을 가는데 최근 영국 경제가 휘청거리다 보니 물가가 훨씬 저렴한 동유럽이 인기를 끌고 있습니다.

홍대가 인상에 남았던 여행

누군가 휴가를 가면, 나머지 직원들이 돌아가며 일을 떠맡습니다. 일이 좀더 늘어나는 셈입니다. 불만은 전혀 없습니다. 저나 다른 직원도 휴가를 갈 것이고, 휴가에서 돌아온 직원이 그 공백을 메울 것이기 때문입니다. 당연한 것이므로, 사장인 제가 언짢아해본 적은 없습니다. 이건 저희 회사만의 상황이 아니라 영국에 있는 모든 회사가 그렇습니다.

저는 서울과 아프리카 케냐 등에서 여름휴가를 보냈습니다. 남들보다 새로운 세계에 대한 궁금증이 강한 편입니다. 저 역시 여름휴가로 3주 정도 보내고, 비행기삯 등 총 4천~5천파운드(약 680만~850만원)를 씁니다. 영국인 평균 연봉은 2만4천파운드(약 4100만원) 정도인데, 좀 무리를 해서라도 세계 곳곳을 직접 눈으로 확인해야 죽는 순간 후회가 덜할 듯합니다. 혼자 사는 저는 휴가 기간에 불청객의 무단 침입에 대비해 비상벨이 울리는 경보장치를 설치합니다. 사장인 저는 휴가를 가더라도 매일 전화로 업무 보고를 받는 게 직원들과의 차이입니다.

지난해 여름에 간 타이 방콕도 좋았지만, 한국이 무척 인상적이었습니다. 처음엔 무뚝뚝해 보였지만, 가까워지니 모두 친절하고 정이 많았습니다. 서울 신사동의 카페들은 굉장히 현대적이고 세련되었습니다. 최고를 꼽으라면 서울 홍익대 앞이었습니다. 대학가 특유의 활력에 인디음악과 패션 등 한국 문화의 역동성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혹시 런던에 오면 홍대와 견줄 수 있는 번화가로 ‘쇼디치’가 있으니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한국에서는 평일인데도 정장 차림의 사람들이 폭탄주를 마시고 업무 시간 외에조차 상사에 주눅 드는 모습을 보곤 깜짝 놀랐습니다. 여름휴가 기간이 7일 정도 된다는 얘기를 듣고 비로소 그 ‘술 문화’를 이해했습니다. 과중한 업무에 시달리는데다 한 번씩 스트레스를 풀 휴가가 짧다 보니 술로 스트레스를 푸는 것이겠죠. 그래도 7일이라니….

가족이 일보다 소중하다

일에 치이다 보면 지치게 마련이고 건강이 위태로울 수 있습니다. 휴가가 짧으면 직원의 사기와 참여도를 저하시킵니다. 무엇보다 직원들의 가족을 생각해야 합니다. 저도 ‘일에 미쳤다’는 소리를 듣고 있고 평생 독신으로 살 것이지만, 가족보다 일이 더 소중하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여름휴가 7일은 끔찍합니다. 저는 아직 여름휴가 계획이 없습니다. 이것저것 할 일이 몰려 어쩌면 여름이 끝나야 몽골이든 한국이든 휴가를 갈 수 있을 듯합니다. 물론 이건 제 사정입니다. 몇 안 되는 소중한 직원들은 모두 재충전을 위해 여름 내에 휴가를 다녀올 것입니다.
런던(영국)=이승환 통신원




# 영국 1년 평균 노동시간 #
1653시간(2008년·OEC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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