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노무현재단 이사장은 몹시 바빴다. 노무현 전 대통령 2주기 관련 행사와 6월 초께 발간 예정인 집필, ‘개인적인 일’ 때문에 서울, 부산, 경남 김해와 양산 등 전국을 누비는 통에 인터뷰할 틈을 내기가 쉽지 않았다. 직접 정치를 하지 않겠다는데도 최근 정치권 안팎에서 거세지는 ‘문재인 대망론’과 관련해 아무 말도 하고 싶지 않은 심경도 언뜻 내비쳤다.
하지만 ‘노무현의 동지’이자 ‘친노의 중심’인 문 이사장의 입을 빌리지 않고 ‘노무현 서거 2주기’를 말하기는 어렵다. 5월11일 국회 헌정기념관에서 열린 학술 심포지엄 ‘노무현의 꿈, 그리고 그 현재적 의미’에 참석한 뒤 김포공항으로 가는 길에 어렵게 그를 만나 인터뷰했다. 이튿날 두 차례 더 전화 인터뷰도 진행했다. 그는 “노 전 대통령의 서거를 통해 (국민이) 그의 진정성과 가치를 새롭게 재확인하고 재평가하게 됐다. 이명박 정부 아래서 일어난 여러 가지 퇴행 현상들과 대비해보면 그 가치는 더 절실하게 느껴진다. (노 전 대통령 추모 분위기는) 절반 정도는 이명박 정부가 더 키워주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고 말했다.
“친노의 분화는 자연스러운 일”-어느새 노 전 대통령 서거 2주기를 맞는다. 소회가 어떤가.
=지난해엔 우리의 심경 자체가 애도였다. 이제는 2년 됐으니까 애도를 넘어서서 조금 새롭게 다짐하는 쪽으로, 조금 밝게 가려 한다.
-‘새롭게 다짐하는 쪽’이라는 게 무슨 뜻인가.
=노무현재단은 고인을 단순히 추모하고 기념하는 걸 넘어 노무현의 정신과 가치를 확산시키려는 정치적 시민운동이다. 다음 총선·대선에서 우리나라가 더 민주적인 나라로, 더 민족끼리 화합하는 나라로, 더 복지적인 사회로 나아가게 하는 건 노무현재단이 벌이는 정치적 시민운동의 목표이기도 하다. 그런 면에서 우리(노무현재단)도 구체적인 어떤 액션을 하겠다는 게 아니라, 그런 것에 대비하는 쪽으로 자세를 전환할 때가 됐다.
-지난 2월 인터뷰에서 ‘노무현 정신’을 “사람 사는 세상, 누구나 존엄한 세상”이라고 했다.(849호 표지이야기 ‘나는 유빠이자 한빠다’ 참조) 변함없는 생각인가.
=그렇게 이해하면 된다.
-그런데 ‘노무현 정신’을 말하는 친노 진영이 분열해 우려가 크다.
=친노 진영이라는 표현으로 그루핑(무리짓기)을 하는 게 꼭 맞지는 않다. 노 전 대통령과 정치를 같이 했고, 정치적 이상을 같이하지만 지금은 자신들의 정치를 하는 것이다. 경우에 따라서는 분화해나갈 수밖에 없다. 계속 같이 가야 한다는 전제 아래 친노 진영이라는 말로 하나로 그루핑해놓고 (분화를) 분열로 보는 건 옳지 않다. (분화는) 자연스러운 일이고 받아들여야 하는 일이다. 다만 대의 앞에서는 힘을 모아야 한다.
- 여론조사에서 문 이사장이 ‘노무현 정신’ 구현 인물 2위로 꼽혔다. 1위가 유시민 국민참여당 대표고, 한명숙 전 국무총리는 문 이사장과 공동 2위였다.
=있는 그대로 보면 되지 않나. 어떤 해석이 필요한가. 나는 정치를 하지 않지만 노무현재단도 하고 있고 노 전 대통령 기념사업도 맡고 있으니 (국민이) 자연히 ‘노무현 정신’을 계승하는 걸로 생각할 것이다. 앞의 두 분은 정치 영역에서 정치인으로 활동하며 노 전 대통령의 정치적 이상과 꿈을 이어가려고 많이 애쓰는 분들이다.
“검찰에 만연한 정치성 해소해야”-노 전 대통령은 왜 그렇게 ‘깨어 있는 시민’을 강조했나.
=‘깨어 있는 시민’ ‘시민주권’, 이런 부분들은 대통령께서 이미 당신 대선 때 겪어본 거다. 노사모의 형태는 노무현이라는 후보를 대통령으로 만들자는 노무현 후보 개인 지지운동이었지만, 정치적 목적을 위해 시민들이 모이고 실천하고 자신의 뜻을 현실에 반영해나가는 정치적 시민운동이기도 했다. 노사모는 사명을 다했다 하더라도, 그런 식으로 시민들이 주권·시민 의식을 갖고 조직화되고, 현실 정치에 참여해 그걸 반영시키는 게 늘 필요하다고 본 것이다. 대통령이 ‘노사모는 이제 고유명사가 아니라 보통명사가 돼야 한다’고 한 것도 그런 뜻이다. 그런 생각을 갖고 있던 차에 지난번 대선 때 우리 쪽이 실패를 했다. 그 실패가 어떤 결과를 초래할지, 우리 사회를 어떻게 변화시킬지 거의 내다보였다. 그런 걸 예견하며 (문제를) 극복할 수 있는 건 결국 깨어 있는 시민, 주권의식을 가진 시민들밖에 없다고 생각한 것이다.
중요한 하나가 더 있다. 그 무렵부터 대통령이 한국 사회의 진보적 미래를 위해 진보주의와 관련된 생각을 많이 했다. 복지는 좋지만, 그를 위한 증세는 전혀 용납하지 않으려는 인식을 극복하지 못하면 과감하게 복지 쪽으로 갈 수 없다. 시민들이 그 부분을 받아들이고, 복지를 위해선 정부의 적극적인 구실이 필요하고, 더 많은 세금 부담도 감수할 수 있어야 한다는 인식의 전환이 필요하다는 점을 염두에 둔 얘기다.
-그렇다면 노 전 대통령 서거 뒤 한국 사회의 변화, 또는 그가 남긴 과제는 무엇인가.
=민주주의, 언론 자유, 복지, 민생, 남북관계 등 한국 사회가 총체적으로 퇴행했다. 그런 걸 희생하는 대신 성장이나 경제적 성과가 있었던 것도 전혀 아니다. (이명박 정부가) 형편없이 무능한 건데, 그것도 당연하다. 이제는 박정희 시대의 개발독재식 성장이 가능하지 않다. 그런 낡은 가치로 경제성장을 주장해 지난 대선 때 일시적으로 국민한테 헛된 기대를 갖게 했지만, 뚜껑을 열어보니 역시 아니라는 게 드러난 것이다. 어느 하나 긍정적으로 평가할 만한 데가 없다. 우리와 같고 다르고를 떠나 기본적으로 철학이 없다. 4대강 같은 사업은 있을지 몰라도 철학이 전혀 없다.
-노 전 대통령에 대한 ‘사자 명예훼손’ 혐의로 고발한 조현오 경찰총장 수사를 촉구하는 1인시위를 두 차례 벌였다. 실제로 검찰이 수사를 제대로 할 거라고 생각하고 시위를 한 건 아니잖나.
=당연히 해야 하는 수사를 검찰이 안 하는 건 구조가 잘못된 거다. 마구 남용되는 검찰권을 민주적으로 통제할 필요가 있다는 실상을 국민에게 보여주는 의미도 있다. 수사 검사를 고소한 것도 마찬가지다. 고소해봤자 검찰이 또 뭉개버리기 십상이지만 그러면 검찰 잘못을 검찰에 고소할 수밖에 없는 우리 제도를 어떻게 할 거냐, 이런 문제를 사회에 제기하는 거다. 과거엔 일부 정치검찰에 국한된 듯 보였는데 지금은 검찰 조직 전체에 만연한 것 같은 검찰의 정치성을 어떻게 해소할 건가. 이런 부분을 제대로 해결하지 못하면 우리 사회가 정상적인 사회가 안 되겠다는 걸 다 느끼고 있는 것 아니냐. 그런 부분들이 우리 사회의 중대한 과제라는 걸 제시하고 싶은 거다.
“이명박 정부가 추모 분위기 키워”-아직도 봉하마을에 많은 사람들이 찾아간다. 노무현재단 홈페이지에 올라와 있는 유서는 조회 수가 61만 회를 넘는다. 사람들이 그를 기억하고 추모하는 이유가 뭐라고 보나.
=노 전 대통령의 서거를 통해 (국민이) 그의 진정성과 가치를 새롭게 재확인하고 재평가하게 됐다. 그 가치는 없던 게 갑자기 생긴 게 아니라, 원래부터 있었는데 새롭게 인식하게 된 거다. 이명박 정부 아래서 일어난 여러 가지 퇴행 현상들과 대비해보면 그 가치는 더 절실하게 느껴진다. (노 전 대통령 추모 분위기는) 절반 정도는 이명박 정부가 더 키워주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문 이사장에게 ‘노무현’이라는 사람은 어떤 사람이었나.
=(한동안 침묵) 공적인 부분이야 다들 아는 바가 있고…. 뭐라고 한마디로 정리할 수 있을까. (잠시 침묵) 다들 ‘원칙의 정치인’이라고 하지 않나.
조혜정 기자 zest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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