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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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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당이 손학규의 봄을 부를까?

장고 끝에 성남 분당을 재보선 출마 결심한 손학규 민주당 대표…
한나라당 텃밭 넘어 야권 대선주자로 “백척간두 진일보”할까
등록 2011-04-07 16:34 수정 2020-05-03 04:26

“백척간두에서 진일보한다(위기에 처하면 한 발짝 더 나아간다)는 것이 무슨 뜻인가. 천길 낭떠러지에 떨어지는데 풀포기 하나 잡으려고 안달하면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 결정이 어려우면 더 어려운 길을 택하라고 했다.”
2007년 3월14일, 한나라당에서 대선후보 경선을 준비하던 손학규 민주당 대표는 서울 봉은사 법회에 참석해 이렇게 말했다. 준비된 원고가 아닌, 즉석에서 갑자기 던진 얘기에 측근들도 당황했다. 이튿날 그는 모든 일정을 취소하고 산사 칩거에 들어갔다. 닷새 뒤인 3월19일 기자회견을 연 그는 마침내 한나라당을 탈당한다고 밝혔다. “한국 정치의 낡은 틀을 깨뜨리고, 새로운 길을 열기 위해 그동안 내가 지니고 있던 모든 가능성과 기득권을 버리기로 결심했다”고 했다.

손학규 민주당 대표가 지난 3월30일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4·27 경기 성남 분당을 국회의원 보궐선거에 출마하겠다고 밝히고 있다. 한겨레21 윤운식 기자

손학규 민주당 대표가 지난 3월30일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4·27 경기 성남 분당을 국회의원 보궐선거에 출마하겠다고 밝히고 있다. 한겨레21 윤운식 기자

한나라당의 ‘천당 아래 분당’

4년 전 그의 ‘백척간두 진일보’, 곧 한나라당 탈당은 17대 대선 정국에서 지각변동을 알리는 신호탄이었다. ‘이명박-박근혜-손학규’ 삼각체제로 경선을 준비하던 한나라당은, 탈당 회견 때 손 대표가 한 비판처럼 “군정 잔당들과 개발독재 시대의 잔재들이 대한민국의 역사와 미래를 거꾸로 돌리려 안간힘을 쓰고 있”는 세력으로 비쳤다. 당시 중도개혁통합신당, 민주당 등으로 복잡하게 갈라져 있던 범여권은 한나라당 소속인데도 각종 여론조사에서 범여권의 잠재적 대선후보 1위인 손 대표의 합류로 통합해야 한다는 압박을 더욱 강하게 느껴야 했다.

이번 대선 가도에서도 분기점은 손 대표의 ‘백척간두 진일보’인 것 같다. 그는 경기 성남시 분당을에서 치러지는 국회의원 보궐선거 출마를 지난 3월30일 선언했다. 한나라당에서 ‘천당 아래 분당’이라는 말이 나올 만큼 한나라당 지지세가 강한 탓에 민주당에선 마땅한 후보를 찾지 못하는 터였다. 당 안팎에서 손 대표 출마론이 거세지자, 민주당 대표 특보단 간사인 신학용 의원은 ‘나가봐야 떨어지기 때문에 손 대표 출마는 안 된다’는 기자회견을 열기도 했다. 그런데 손 대표가 나섰다. 그의 출마는 ‘손학규’라는 정치인이 잔여 임기 1년짜리 국회의원이 되느냐 마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4·27 재보선에서 민주당을 비롯한 야당이 내건 ‘이명박 정부 심판’이라는 명분을 인정받느냐 마느냐의 문제가 됐다. 나아가 여론의 가늠자인 수도권에서 ‘대선주자 손학규’의 가능성을 시험해보는 선거가 됐다.

실제로 손 대표의 출마선언문은 대선 출마 선언이나 다름없었다. “강남민국과 강북민국을 인정하지 않는다. 보수의 대한민국과 진보의 대한민국이 따로 있다고 생각지 않는다. 저는 대표적 중산층 지역인 분당을에 출마한다. 중산층이 변하지 않고, 동의하지 않는 한 대한민국의 운명은 바뀌지 않는다. 대한민국 변화의 대장정을 떠나도 될지 분당구민들의 동의를 얻고자 한다. 제가 가야 할 길을 분당구민들이 선택해주시기 바란다.”

지난 총선에도 한나라당 분당을 71.1% 득표

분당동, 정자1·2·3동, 수내3동, 금곡동, 구미동, 구미1동이 해당되는 분당을은 그의 ‘프러포즈’를 받아들일까? 객관적인 조건은 비관적이다. 분당을은 이 지역구가 생긴 16대 총선부터 지난 18대 총선까지 모두 한나라당으로 출마한 임태희 청와대 대통령실장이 당선된 곳이다. 임 실장은 16대 총선에서 50.9%를 득표해 44.2%를 얻은 이상철 새천년민주당 후보를 눌렀고, 탄핵 역풍이 거세게 분 17대 총선에서도 54%의 득표율로 김재일 열린우리당 후보(41.1%)를 가뿐히 이겼다. 수도권의 ‘이명박 바람’을 탄 지난 총선에선 김종우 통합민주당 후보 득표율(26.7%)의 세 배에 가까운 71.1%를 얻었다. 갈수록 임 실장의 득표율이 높아져 범민주당 후보와의 격차가 커진 것이다. 옆 지역구인 분당갑에서도 고흥길 한나라당 의원이 3번 연속으로 당선됐다.

분당구의 한나라당 지지율도 성남시의 다른 구보다 훨씬 높았다. 지난 총선만 봐도 중원구에서 한나라당 지지율은 36%, 통합민주당 지지율은 31%였고, 수정구는 각각 36%와 32%로 큰 차이가 없었다. 하지만 분당구는 한나라당 47%, 민주당 21%로 두 배 가까이 차이가 났다. 노동운동가 손낙구씨는 그 이유를 분당 지역 주민의 주택 소유 비율이 다른 곳보다 높기 때문이라고 그의 저서 에서 분석했다. 중원구과 수정구의 주택 소유자는 각각 43%, 34%인 데 비해 분당구는 64%로 훨씬 높다. 즉, 소득·생활 수준이 높아 한나라당을 지지한다는 것이다.

그 전에도 상황은 비슷했다. 이찬구 평민당 의원이 당선된 13대 총선을 제외하면, 경기도에 성남시라는 지역구가 생긴 1978년 10대 총선부터 몇 차례 지역구가 나뉜 15대 총선까지 분당은 신민당·민정당·민자당·신한국당 등 한나라당의 전신에 몸담은 오세응 전 국회부의장을 선택했다. 영남이나 강남 못지않은 한나라당 ‘텃밭’이 바로 분당인 셈이다.

하지만 최근의 여론조사 결과는 지금까지의 추세와는 조금 다르다. 손 대표가 출마 선언을 한 3월30일 가 분당을 유권자 500명을 상대로 전화 여론조사를 한 결과를 보면, 손 대표는 한나라당 후보로 거론되는 이들과 오차범위(±4.4%포인트) 안에서 접전을 벌이는 것으로 나타났다. 강재섭 전 한나라당 대표(44.3%)와 맞붙으면 손 대표가 42.7%로 1.6% 포인트 뒤지고, 정운찬 전 총리(45.1%)와 맞붙으면 41.7%를 얻어 3.4% 뒤졌다. 한나라당이 마냥 안심할 수도 없고, 민주당이 자포자기하지 않아도 되는 상황인 셈이다.

앞서 지난 3월11~12일 가 이 지역 유권자 1005명을 상대로 한 임의전화걸기(RDD) 여론조사 결과는 더더욱 그랬다. RDD 방식은 KT 전화번호부에 등재되지 않은 전화번호까지 조사할 수 있어 젊은 층의 여론 동향을 좀더 포착할 수 있어 정확도가 상대적으로 높은 것으로 평가받는다. 이 조사에서 손 대표는 정 전 총리(46%)와 맞붙을 경우 43.5%의 지지율로 오차범위(±3.1%) 안에서 지고, 강 전 대표와 맞붙으면 48.6%를 얻어 8%포인트 차이로 이기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손 대표는 두 조사에서 모두 30~40대에서 한나라당 후보를 크게 앞지른 것으로 나타났다. 결국 이들을 투표장으로 얼마나 끌어낼 수 있느냐가 분당을 보궐선거 결과, 나아가 손 대표의 미래를 좌우할 수 있다는 얘기다. 손 대표가 30~40대를 포함한 ‘수도권 중산층’에서 가능성을 보여준다면 그는 야권의 차기 대선주자로서 날개를 달게 된다. 반면에 선거에 진다면 당 안팎에서 그를 흔들려는 시도가 나올 수밖에 없다.

치명상 입거나 날개를 달거나

노동운동을 하다 1980년 ‘서울의 봄’에 돌연 영국 유학을 떠날 때, 귀국 뒤 서강대 교수로 재직하다 갑자기 1992년 민자당 국회의원이 됐을 때, 그리고 국회의원·장관·경기지사라는 영광을 안겨준 한나라당을 떠날 때 손 대표는 엄청난 비판을 받았다. 그때마다 그는 “나의 살아온 길을 보라. 내가 무엇이 되느냐를 보지 말고, 어떻게 하느냐를 보라”고 반박했다. 앞선 두 번의 선택과 달리 세 번째 선택은 결과적으로 ‘백척간두 진일보’가 됐다. 하지만 그의 좌우명인 ‘수처작주’(어디에 가든 주인이 돼라)를 실천하는 덴 실패했다. 4년이 지난 지금, 또다시 벼랑 끝에 선 그가 내디딘 한 걸음은 어떤 길을 열까?

조혜정 기자 zest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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