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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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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치기로 국민을 치다

4대강 사업 임기 내 완수 위해 강행한 날치기…

야당들이 ‘독재 선언’ 하고 여론 반발 심해도 꿈쩍 않는 MB 정부
등록 2010-12-23 10:30 수정 2020-05-03 04:26

“이번 12·8 날치기의 본색은 예산안을 빨리 처리하는 것이 아니라, 대국민 공갈 협박으로 국민들한테 ‘내가 이제부터 독재하겠소’ 공갈치고 쿠데타를 벌인 것이다.”
손학규 민주당 대표는 12월14일 이명박 정부를 ‘독재 정부’로 규정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을 비롯해 수많은 인사가 이미 이 정권을 독재라 비판했지만, 손 대표의 발언은 한나라당이 폭력적으로 예산안을 날치기한 직후에 나온 것이라 더 ‘현실적’이었다. 민주당은 이날 인천 주안역 남부광장에서 한나라당의 예산안 날치기 무효화를 요구하는 전국 순회 장외투쟁 ‘이명박 독재 심판 결의대회’를 시작했다. 민주당은 15~19일 대전·충남, 영남, 광주·전남에서 장외투쟁을 벌인 데 이어 오는 12월28일까지 전국 16개 시도를 돌며 여론전을 펼칠 계획이다.

“김영삼 정부 몰락의 전철을 밟는다”

이명박 대통령(맨 앞)이 지난 1월19일 경기도 과천시 ‘4대강 살리기 추진본부’를 방문해 상황실을 둘러보고 있다.청와대사진기자단

이명박 대통령(맨 앞)이 지난 1월19일 경기도 과천시 ‘4대강 살리기 추진본부’를 방문해 상황실을 둘러보고 있다.청와대사진기자단

다른 야당이 들끓고 있다. 한나라당의 예산안 날치기를 ‘독재의 증거’로 보는 탓이다.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의 움직임도 군부독재에 저항하던 때를 연상시킨다. 민주노동당은 12월15일부터 ‘예산안 날치기 처리 무효·이명박 정권 퇴진을 위한 국민보고대회’를 열어 연말까지 16개 시도에서 장외투쟁을 벌인다. 권영길 민주노동당 원내대표는 김영삼 정부가 1996년 12월25일 노동관계법을 날치기한 뒤 몰락의 길을 걸었던 일을 거론하며 아예 “예산안 날치기는 국민·야당과 더는 소통하지 않겠다는 독재 선언이자 명명백백한 대국민 선전포고”라며 “이명박 정권 몰락의 신호탄”이라고 못박았다. 진보신당은 “정치권력의 유지 수단으로 국민의 세금이 오용되는 일 자체가 권력의 사유화“라며 복지 관련 예산 증액을 핵심으로 한 예산안 수정요구안을 12월17일 내놨다.

여론도 심상찮다. 12월12일 가 한국사회여론연구소에 맡겨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예산안 날치기가 “잘못한 일이었다”는 응답은 59.7%로, “불가피했다”는 응답(29.2%)의 두 배에 가까웠다. 또한 예산안은 “정기국회 회기 내에 처리되지 않더라도 여야 합의로 처리하는 게 더 중요하다”고 답한 사람이 60.9%로, “여야 합의가 되지 않더라도 정기국회 회기 내 처리가 중요하다”는 답변(31.1%)의 두 배였다.

한나라당의 예산안 날치기는 이 대통령이 취임한 2008년부터 3년째 반복된 일이다. 지난해 12월31일엔 이 대통령이 본회의장 국회의장석에 앉아 있던 김형오 당시 국회의장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 예산안과 쟁점 법안인 노동관계법 개정안 처리를 독려하기까지 했다. 결국 김 당시 의장이 예산안 등을 직권상정해 한나라당의 날치기를 도왔다. 또한 이 대통령은 지난해 말 준예산 카드까지 꺼내들어 국회를 무시한다는 논란을 빚기도 했다. 준예산은 회계연도 개시 전까지 국회가 예산안을 의결하지 못할 경우 정부가 전년도 예산에 준해 예산집행권을 행사할 수 있는 제도지만, 1960년 이 제도가 도입된 뒤 실행된 적은 한 번도 없다.

올해는 12월7일 오전 김무성 한나라당 원내대표가 “야당이 예산안 처리 지연 전술을 쓰고 있는데 응해줄 수 없다. 오늘부터 초읽기에 들어간다”고 ‘선전포고’를 했다. 이날은 이 대통령이 국무회의에서 “이번 정기국회에서 예산과 함께 중점 법안이 반드시 통과돼야 한다”며 회기 내(12월9일) 예산 처리를 압박한 날이다. 사실 법정 처리 시한을 넘긴다면 ‘회기 내 예산 처리’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 헌법이 못박은 예산안 처리 기일은 12월2일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한나라당에서도 예산 강행 처리와 관련해 ‘청와대 지시설’에 고개를 끄덕이는 의원들이 적잖다.

의미심장한 친수구역법 강행

‘독재’라는 오명을 무릅쓰면서까지 여권이 예산안을 날치기한 것은 ‘임기 내 4대강 사업 완료’라는 이 대통령의 의지와 깊이 관련된다는 분석이 나온다. 4대강 개발은 이 대통령의 개인적인 오랜 꿈이었다. 그는 국회의원 때인 1996년 ‘경부운하’ 건설을 주장했다. 경부운하는 10년 만에 몸집을 불려 ‘한반도 대운하’가 됐다. 서울시장 퇴임 뒤인 2006년 10월 유럽 3개국 운하를 순방하면서 이 대통령은 한반도 대운하 사업 계획을 자신의 제1 대선 공약으로 공개했다. 당시 그는 “사업 시작 후 4년 이내에 완공이 가능하다”고 밝혔다. 운하는 ‘만능 공약’이었다. 수질·대기질 개선, 일자리 창출, 물류비 절감, 경제 활성화, 관광자원 개발 등의 문제가 모두 운하로 풀린다고 했다. 하지만 환경 파괴와 국토 막개발 논란을 피하지 못했다. 대선 막바지 후순위 공약으로 밀린 운하는 2008년 촛불 국면을 거쳐 ‘공식적으로’ 폐기됐다. 하지만 그다음에 나온 4대강 사업이 ‘운하의 변신’이라는 의심은 여전하다.

“대통령은 4대강 사업을 자신의 임기 안에 반드시 실현해야 할 사업이라고 생각한다. 국민에게 보여줄 수 있는 가장 큰 가시적인 성과가 된다고 여긴다. 그런데 국회에서 4대강 예산을 통과시켜주지 않으면 사업을 진행할 수 없다. 야당이 가장 문제 삼는 게 그 부분이니, 날치기라도 해서 사업을 임기 안에 끝내고 싶은 거다. 사실, 막으려면 작년에 막아야 했다. 공사가 절반가량 진행되고 있는데, 이제 와서 4대강 예산안을 깎으라는 건 고속도로를 절반만 짓고 그만두라는 거나 다름없다.” 한나라당의 한 당직자는 이렇게 말했다. 이 대통령이 4대강 사업에 집착하는 이유, 즉 개인적인 오랜 꿈을 이루기 위해 예산안 날치기를 독려하는 이유를 엿보게 해주는 얘기다.

“대통령은 4대강 사업을 자신의 임기 안에 반드시 실현해야 할 사업이라고 생각한다. 국민에게 보여줄 수 있는 가장 큰 가시적인 성과가 된다고 여긴다. 그런데 국회에서 4대강 예산을 통과시켜주지 않으면 사업을 진행할 수 없다.” -한나라당 당직자

예산안과 함께 직권상정돼 날치기 처리된 ‘친수구역 활용에 관한 특별법안’(친수구역법)도 이런 해석을 뒷받침해준다. 친수구역법은 4대강 주변 2km 이내 지역을 친수구역으로 지정해 주택·관광·상업 목적의 개발을 허용하는 것이 핵심으로, 한국수자원공사가 떠안은 4대강 공사비 8조원을 보전해주기 위해 정부가 특혜를 준 것이라고 비판받는다. 이 법은 12월7일 밤 해당 상임위인 국토해양위원회에서도 한나라당이 회의장 문을 걸어잠근 채 단독으로 상정해 토론 없이 통과시킨 바 있다. 법안 상정은 김무성 원내대표가 요청한 것으로 알려져, 청와대 배후설을 더욱 키운다.

날치기된 예산안엔 또 다른 권력 사유화의 흔적이 남아 있다. ‘형님 예산’ ‘마님 예산’이다. 이 대통령 친형인 이상득 의원의 포항 지역구에 배정된 내년도 예산은 2320억원이다. 날치기로 정신없는 틈에도 정부가 제출한 예산안보다 1400억원이 증액된 결과다. 이를 포함해 이 정부 들어 이 의원 지역구에 배정된 예산은 모두 1조1159원이 넘는 것으로 추산된다. 민주당은 사업이 끝날 때까지 들어갈 총사업비 기준으로 보면, ‘형님 예산’이 10조원에 이른다고 주장한다.

임기제 대통령이라 다행인가

‘마님 예산’이라는 비아냥을 받는 건 이 대통령 부인 김윤옥씨가 명예회장인 ‘한식세계화추진단’ 관련 예산이다. 미국 뉴욕에 지을 한식당 건설 비용 50억원을 포함해 내년도 예산으로 312억원이 책정됐다. 2009년 100억원, 2010년 241억원에 이어 또다시 증액된 것이다. 특히 한식당 건설 비용 50억원은 12월6일 예산결산특별위원회에서 ‘이미 뉴욕에 유명 한식당이 여러 곳 있는데 정부가 돈을 들여야 하느냐’고 논란이 돼 한나라당 소속 이주영 예결위원장이 보류를 결정한 내용이었는데, 날치기 과정에서 되살아났다.

대통령이란 직책이 대의제 민주주의에서 권력을 위임받은 것이 아니라 개인적인 ‘소원’을 성취하는 수단으로 여기지 않는다면 어떻게 이런 일이 벌어질까. 이와 관련해 한나라당 의원 22명은 12월16일 성명을 내어 “앞으로 의원직을 걸고 물리력에 의한 의사 진행에 동참하지 않겠다. 이를 지키지 못할 땐 19대 총선에 출마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청와대의 거수기 노릇을 했다고 여당 의원들 스스로 인정한 셈이다.

루이 14세의 오만은 프랑스혁명의 발단이 됐다. 그때처럼 민중봉기라도 해야 하는 건가, 아니면 그나마 임기제 대통령이라는 사실에 감사해야 하는 건가. ‘성공한 대통령’은 자신이 심부름꾼임을 온몸으로 깨달은 자가 아닐까.

조혜정 기자 zest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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