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 안보 상황이 심상치 않다. 북한이 농축 우라늄 시설을 공개했다. 핵 문제가 새로운 단계로 진입했다. 그리고 한국전쟁 이후 처음으로 북한이 대한민국 영토를 공격했다. 젊은 청춘들의 죽음이 슬프다. 이 난국을 어떻게 극복해야 하는가?
안타까운 것은 마땅한 대응 수단이 별로 없다는 점이다. 우리 정부도 인정하듯이 유엔안보리 회부는 성과를 보장하기 어렵다. 중국은 이번 사태를 쌍방 교전으로 정의하고, 남북 모두의 ‘냉정과 자제’를 요구하고 있다. 강력한 대북 결의안을 이끌어 내려면 중국의 협조가 중요한데, 이런 입장이라면 기대하기 어렵다.
선택할 카드가 없는 한국 정부
더 강력한 제재를 생각해볼 수 있다. 그러나 북한 입장에서 중국으로 향하는 문이 열려 있는 이상, 국제사회의 제재는 효과가 없다. 연평도 사태에도 불구하고, 북-중 경협 현장은 큰 영향을 받지 않고 있다. 한국의 독자적 제재도 마찬가지다. 이미 천안함 사태를 겪으며 교역과 위탁가공 모두를 중단했다. 인도적 지원도 거의 중단된 상태다. 겨우 남아 있는 것이 개성공단이지만, 문을 닫으면 북한에 주는 제재 효과에 견줘 우리 기업이 입는 피해가 너무 크다는 것이 증명되었다. 제재를 하고 싶어도, 더 이상 제재할 것이 남지 않은 상황, 그것이 문제의 핵심이다.
그러면 군사적 대응이 대책이 될 수 있을까? 선택의 대상이 아니다. 무책임한 정치인들이 일전불사를 외치지만, 대한민국 국민 누가 전쟁을 지지하겠는가? 무력시위를 비롯한 군사적 압박이 효과가 있을까? 북한에 주는 심리적 효과는 적으면서, 오히려 부정적 영향이 있을 수 있다. 경제에 미치는 영향 때문이다. 다행스럽게 이번 사태로 금융시장이 순간적으로 출렁거렸지만 하루 만에 안정을 찾았다. 그러나 시장 참여자들은 사태의 추이를 주시하고 있다. 추가적 충돌 가능성이 가시화되면, 또다시 불안정해질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정부의 ‘공세적 발언’들이 국내 보수층을 안심시키는 효과는 있을지 모르나, 국내외 시장 참여자들의 불안감을 증폭시킬 수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
대화는 옵션에서 제외했다. 정부가 당분간 대화할 상황도 아니고, 그럴 의사도 없어 보인다. 국내 여론으로 보아 북한에 대한 비판적 정서가 상당 시간 지속될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이번 사태는 이명박 정부의 임기 내에 의미 있는 남북대화를 할 수 있는 시간을 앗아가버렸다. 내년이 임기 4년차다. 정상회담을 비롯한 의미 있는 대화를 한다면, 내년 상반기가 적기였다. 그러나 이제는 그럴 가능성이 사라졌다. 외교도 제재도 군사 대응도 그리고 대화조차도 선택할 수 없는 상황이 참으로 안타깝다. 국내 정치만 남아버린 암울한 상황이 아닐 수 없다.
중국과 대화할 수밖에 없는 미국
국제적으로는 어떨까? 우선 미국의 상황은 복잡하다. 천안함 국면 때와는 다를 것이다. 당시 미국은 동맹국인 한국의 국면 주도에 편승했다. 그리고 천안함 국면을 활용해, 후텐마 기지 조정 문제에서 일본을 굴복시켰다. 한-미 관계에서도 얻을 것이 많았다. 그러나 지금, 미국 내부에서는 이른바 ‘전략적 인내’에 대한 비판적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제재의 효과를 비웃으며, 북한은 농축 우라늄 시설을 가동하기 시작했다. 북한의 우라늄 농축 기술이 오래전부터 시작되었다는 주장이 있지만, 중요한 것은 발전 수준이고 완성도다. 북한은 영변의 5MW 원자로가 노후화돼 더 이상 사용할 수 없게 되자, 재빨리 우라늄 농축으로 방향을 틀었다. 11월 중순에 미국의 지그프리드 헤커 스탠퍼드대 국제안보협력센터 소장팀이 본 것은 소형 경수로 시설과 이에 필요한 저농축 시설이다. 북한은 현재 원자력의 평화적 이용 권리를 주장하고 있지만, 저농축 공장 시설은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무기급 고농축 시설로 전환할 수 있다.
미국 입장에서 북한의 핵능력은 이제 무시할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섰다. 제재를 유지한 채 시간이 흘러가면 결국 아쉬운 것은 북한일 것이라는 ‘전략적 판단’이 오류였음이 드러났다. ‘전략적 인내’는 결국 ‘전략적 무관심’이었을 뿐이다. 이제 오바마 행정부는 관심을 보여야 한다. 진작 그랬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문제는 오바마 행정부 역시 마땅한 대응책이 없다는 점이다. 이미 강력한 제재를 취하고 있는 상황에서 추가 제재의 효과는 기대하기 어렵다. 그렇다고 군사적 압력을 행사해 한반도의 불안정성을 높이는 것도 바라지 않는다. 11월23일 로버트 게이츠 미 국방장관은 김태영 국방부 장관에게 전화해 한국 정부가 자제를 보여준 것에 사의를 표했다고 한다. 자제했으면 좋겠다는 것이 미국의 바람이다.
<font color="#C21A8D"> 연평도 사태는 결코 보복의 악순환으로 해결하기 어렵다. 군사적으로 충돌하면, 북한이야 잃을 것이 별로 없지만, 우리는 그렇지 않다. 해법은 있다. 긴장의 바다 서해를 어떻게 평화의 바다로 전환할 수 있을지에 대한 근본적 접근이 나와야 할 것이다. </font>그래서 미국 내부에서 중국과 대화하라는 주장이 쏟아지고 있다. 중국이 북한에 대한 영향력을 놓치고 싶지 않아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중국이 북한에 대한 영향력을 유지하고 있으면 결국 미국은 중국의 협력을 요청할 수밖에 없다. 문제는 중국이다. 중국이 북한의 우라늄 농축에 대해 6자회담 재개 필요성을 언급하고 연평도 사태에 ‘남과 북 모두의 냉정과 자제’를 강조하고 있지만, 속으로 고민이 많을 것이다.
일부에서 중국이 북한의 핵보유를 묵인할 것이라는 예측도 있지만, 그렇지 않다. 북-중 관계는 중국이 일방적으로 패권을 행사할 수 있는 관계가 아니다. 북한의 핵보유는 결국 동북아 핵 도미노 현상의 근거가 되고 동북아 지역의 항구적 불안정성의 원인이 되기에, 중국의 입장에서 받아들이기 어렵다. 한반도에서 군사적 긴장이 높아지는 것 또한 중국은 원하지 않는다.
시간은 평화의 편이 아니다결국 미-중 대화가 이루어질 것이며, 양국은 개입(Engagement)할 수밖에 없음에 동의할 것이고, 그 구체적인 형태는 6자회담 재개일 것이다. 문제는 협상이 교착된 지난 3년 동안 북한이 판돈을 키웠다는 점이다. 무의미하게 흘러간 시간만큼이나 협상은 어려워졌다. 북한은 자체적인 경수로 개발과 저농축 우라늄 시설을 ‘원자력의 평화적 이용 권리’라고 주장할 것이다. 방관 정책의 예고된 실패가 아닐 수 없다. 그래서 협상이 이루어지더라도 성과는 장담하기 어렵다. 북한은 강화된 핵능력만큼이나 추가적 보상을 요구할 것이고, 미국은 ‘보상해서 협상하는 방식’에 부정적이다.
소극적인 협상 자세로는 진전을 이루기 어렵다. 협상 쟁점을 다시 정리하는 데도 시간이 걸릴 것이다. 그러나 잊지 말아야 한다. 시간은 우리 편이 아니었음을. 지금 북한 핵은 동결 상태가 아니라는 점을. 그래서 협상이 늦어질수록 그만큼 북한의 핵능력은 강화될 것임을. 그래서 더욱 협상이 어려워질 수 있음을.
연평도 사태는 결코 보복의 악순환으로 해결하기 어렵다. 군사적으로 충돌하면, 북한이야 잃을 것이 별로 없지만, 우리는 그렇지 않다. 해법은 있다. 긴장의 바다 서해를 어떻게 평화의 바다로 전환할 수 있을지에 대한 근본적 접근이 나와야 한다. 물론 그 해법이란 노무현 정부가 10·4 정상회담을 통해 마련해놓았다. ??? 어떻게 서해 평화 정착을 이룰 것인가? 그것이 해법이다. 국민이 전쟁의 공포에서 벗어나게 하는 것, 그것이 대한민국 정부의 기본 책무이기도 하다. 안보가 경제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 즉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사라지게 해야 한다. 그럴 생각이 없으면, 미래는 암울하다. 100년 전처럼 다시 한반도의 운명을 주변 강대국들에 맡겨야 하는 현실이 참으로 슬프다.
김연철 인제대 교수·통일학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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