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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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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외광고 이권에도 실세가 개입했나

기금 조성 위해 공항·도로에 광고 설치하는 사업,
안전 문제로 반대에 부딪히자 정책조정회의 열어 업체에 특혜 준 의혹
등록 2010-07-23 20:52 수정 2020-05-03 04:26
박영준 국무총리실 국무차장은 옥외광고사업이 원활히 진행될 수 있도록 압력을 넣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서울 한남대교 남단에 설치된 옥외광고물. 한겨레21 김정효 기자

박영준 국무총리실 국무차장은 옥외광고사업이 원활히 진행될 수 있도록 압력을 넣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서울 한남대교 남단에 설치된 옥외광고물. 한겨레21 김정효 기자

박영준 국무총리실 국무차장이 정부·공기업 인사는 물론 이권 사업에도 개입했다는 의혹이 나온다. 대표적인 게 기금 조성용 옥외광고사업이다.

이 사업은 ‘2011 대구세계육상경기선수권대회’ ‘2012 여수세계박람회’ ‘2014 인천아시아경기대회’ 등 국제대회에 1차연도(2009~2012)와 2차연도(2013~2015)에 걸쳐 각각 1천억원씩 지원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기금은 주요 고속도로와 휴게소, 공항 주변에 옥외광고탑과 홍보탑 등을 설치할 수 있는 사업권을 기업에 팔아 조성된다. 기업 선정을 위한 입찰 진행은 행전안전부 산하 한국지방재정공제회가 별도로 수립한 한국옥외광고센터가 맡고 있다.

 

공항공사 사장 등 회의 참석

1차연도 사업은 총 6개 권역으로 나뉘어 2009년 1월부터 입찰 경쟁이 시작됐다. 1차 입찰에서 1권역(신공항고속국도·경부고속국도 등)에 ㅈ업체가 173억2천만원을, 6권역(인천공항·고속도로휴게소 등)에 ㅆ업체가 85억원을 제시해 사업권을 따냈다. 나머지 권역은 유찰됐다. 뒤이은 2차 입찰에서 2권역(서울 올림픽대로·호남고속국도 등)에 ㅁ업체가 193억1천만원에 낙찰됐다. 이후 나머지 권역은 다시 쪼개져 입찰에 부쳐졌고 대부분 낙찰자를 찾아 사업이 시작됐다.

그런데 낙찰 업체들이 막상 사업을 시작하려고 하자 문제가 발생했다. 1984년부터 2006년까지는 기금 조성을 위한 옥외광고사업이 국제대회지원법이라는 특별법의 지원을 받아 고속도로나 공항 등의 안전 수칙에도 불구하고 일사천리로 진행될 수 있었지만, 특별법 시한이 2006년에 종료되면서 다시 각종 규제를 받게 된 것이다. 사업자는 공항이나 도로 가까이 눈에 띄는 곳에 광고탑을 많이 설치하고 싶어하지만, 공항이나 고속도로의 안전을 책임지는 한국공항공사나 한국도로공사 등은 안전 문제 등을 들어 이를 반대했다.

특히 연매출이 500억원에 이르는 ㅈ업체와 달리 ㅆ업체나 ㅁ업체 등은 연매출이 각각 35억원, 25억원 수준에 불과한 중소기업이어서 큰 어려움을 겪었다. 과거에는 사업권만 따내면 옥외광고탑 한 개당 1억~2억원의 건립비용을 들인 뒤 이후 수년간 월 수천만원씩 광고료를 받아 ‘황금알을 낳는 거위’라는 평가를 받았는데, 이번에는 옥외광고탑을 짓는 단계부터 난관에 부딪힌 것이다. 이렇게 광고 수주를 못하는 상황에서 3개월마다 낙찰 분담금까지 내야 해서 업체들의 어려움은 더했다.

이런 상황에서 박영준 국무차장이 인천공항공사 등 관계 기관과 회의를 열어 조정에 나섰다. 지난 2월 김성순 민주당 의원이 공개한 정부문서를 보면, 박 차장은 지난해 10월16일 국무총리실 국무차장 집무실에서 ‘옥외광고사업 정책조정회의’를 열었다. 안건은 ‘옥외광고사업 제6권역 사업 중 공항 홍보탑 설치 관련 관계기관 이견 조정’이었다. 회의에는 인천공항공사와 한국공항공사 사장을 비롯해 행정안전부 차관보, 국토해양부 항공정책실장, 국무총리실 국정운영실장 등이 참석했다. 또 ‘옥외광고사업 정책조정회의 결과’ 문서에는 ‘기금조성 옥외광고사업은 법률에 근거해 국가가 시행하는 사업으로 공공기관은 이 사업에 적극 협조할 필요가 있음’ ‘설치 지점과 수량에 대해서는 합리적으로 조정하되 행정안전부(옥외광고센터)와 공사가 직접 협의하여 조정’ 등의 결론이 나와 있다.

관련 기관 감사 ‘오비이락’?

이후 올 초까지 옥외광고사업은 풀리지 않았다. 특히 인천공항공사는 야간 항공기 운항상 안전 문제를 들어 밝은 조명이 켜지는 옥외광고사업에 소극적이었다. 이같은 입장이 바뀐 것은 지난 4월이었다. 한국옥외광고센터 관계자는 “4월에 인천공항공사를 비롯해 한국공항공사, 코레일과 총 12기의 홍보탑을 세우는 데 합의했다”며 “현재는 고속도로 휴게소에 14개 홍보탑을 설치하는 문제로 도로공사와 ㅆ업체가 논의하고 있다”고 말했다.

오비이락일까. 마침 지난 4월에는 감사원이 인천공항공사에 대해 특별감사를 실시했다. 2월 말부터 3월 중순까지 정기감사를 한 지 한 달 만이었다. 인천공항공사 관계자는 “인천공항공사뿐만 아니라 한국공항공사, 코레일(인천공항철도 운영) 등의 시설에 설치된 광고와 관련해 감사를 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옥외광고사업 관련 기관 가운데 도로공사를 제외한 기관들이 감사를 받은 것이다. 이후 ㅆ업체는 애초 목표인 26개에는 못 미치지만 12개의 홍보탑을 세울 수 있었다.

193억원을 써내 2권역 사업권을 따낸 ㅁ업체 역시 낙찰 이후 어려움이 있었다. 입찰 당시 관련 법률로는 고속도로 30m 안에는 옥외광고탑을 세울 수 없고 높이는 25m를 초과할 수 없었기 때문에 서울 올림픽대로 옆에 옥외광고탑을 세울 곳을 찾기 힘들었다. 하지만 낙찰받은 지 6개월 뒤 옥외광고물관리법 시행령상의 ‘설치 특례’가 적용되면서 문제가 풀렸다. 설치 특례는 ‘올림픽대로, 경부고속도로 등에 대해 안전성과 주변 경관과의 조화가 충분히 확보되는 범위에서 도로와 광고물 간의 거리·높이 제한을 완화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를 근거로 지난해 8월 행정안전부 관계자와 전문가로 구성된 옥외광고정책위원회는 도로와 1~2m 떨어진 곳에도 높이 30m의 옥외광고탑을 설치할 수 있도록 했다. 이에 대해 한 옥외광고업체 관계자는 “이름도 생소한 업체가 193억원의 사업권을 따낸 데 놀랐고, 뒤이어 관련 규정이 얼마 지나지 않아 완화돼 또 한 번 크게 놀랐다”고 말했다.

ㅁ업체 김아무개 대표는 1999년 국회에서 한나라당 보좌관으로 일했다. 또 박영준 차장을 비롯해 현 정부 관계자들과 오랜 기간 친분을 쌓아온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2006년 오세훈 서울시장 선거캠프에 참여한 한 관계자는 “당시 김 대표의 사무실이 오 시장 선거캠프 바로 옆 건물에 있어 캠프 상황실장이던 박 차장을 비롯해 캠프 참여자들과 교류가 있었다”며 “이후에도 현 정부 관계자들과 긴밀한 관계를 유지해온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시행령 취지 위반한 특혜” 지적

민주당은 규정 완화가 특혜라고 주장했다. 민주당 관계자는 “충분한 안전성이나 주변 경관과의 조화가 확보되지 않은 상태에서 옥외광고정책위원회가 제한을 푼 것은 옥외광고물관리법 시행령의 취지를 위반한 것이며, 업체에 특혜를 준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김 대표는 이를 부인했다. 그는 “그동안 건물 위 전광판 사업을 하면서 고속도로 옥외광고사업에도 관심이 있었다”며 “일부 의혹이 나오는 것은 과거 이 사업을 하던 업체들이 모함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또 박 차장과의 관계에 대해서도 “이명박 서울시장 시절 박 차장이 시에서 일할 때 다른 시 공무원들과 함께 (ㅁ업체의) 자회사인 여행사를 통해 해외여행을 가는 과정에서 한두 번 본 것밖에 없다”고 말했다.

ㅁ업체는 국내에서 광고료가 월 7700만원으로 가장 비싼 서울 한남대교 옥외광고를 비롯해 남해안고속도로, 서해안고속도로 등에서 옥외광고탑을 운영하고 있다.

이정훈 기자 ljh9242@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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