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안함의 ‘침몰’은 이명박 정부 안보의 ‘침몰’이었다. 민·군 합동조사단의 발표대로라면 그건 세계 해군사에 남을 북한 잠수정의 신출귀몰한 작전을 보여주기도 하지만, 경계·정보·작전·위기대응·지휘체계 등 거의 모든 영역에 걸쳐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취약하고 무능한 한국군의 현실을 거리낌 없이 보여준 것이다.
안보리 제재 결의 ‘언감생심’
‘천안함 외교’는 어떤가? 이명박 정부의 천안함 외교는 비유컨대, 여론조사에선 이기고 선거 결과에선 패한 6·2 지방선거의 궤적을 밟고 있다.
5월20일 조사결과가 나오자 국제사회의 여론은 압도적으로 북한의 도발을 규탄했다. 홍콩의 는 미국이 한국 정부를 전폭적으로 지지하는 가운데 중국이 천안함 사건으로 한반도 문제에 붙잡힌 상황이라며 최대의 외교적 딜레마에 처해 있다고 말했다. 도 중국의 영향력에 손상을 줄 것이라고 지적했다.
5월24일 이명박 대통령이 전쟁기념관에서 발표한 대국민 담화는 이런 분위기에서 나온 것이다. 이 대통령은 이 시기 천안함 외교에 매달렸다. 다른 외부 일정은 일절 갖지 않았다. 6월2일 선거를 염두에 두고 파죽지세로 밀어붙였다. 5월24~25일 미-중 전략대화를 위해 베이징을 방문하는 힐러리 클린턴 국무장관을 26일 서울로 불러들였고, 29일 제주 한-중-일 정상회담을 계기로 하토야마 유키오 일본 총리의 지원을 받으며 원자바오 중국 총리를 설득해 북한을 압박하는 공동전선을 구축할 수 있으리라 계산했다. 이를 배경으로 6월4일 싱가포르 샹그릴라호텔에서 열린 연례 아시아 안보대화에서 한-미 국방장관 회담을 열어 서해상에서의 한-미 연합훈련을 발표해 북한에 대한 단호한 응징 의지를 과시하고, 이 대통령이 싱가포르로 가서 유엔안보리 회부를 발표함으로써 천안함 외교의 대미를 장식하려 했다. 담화 발표를 전후해 미국, 러시아, 일본, 오스트레일리아 등 아시아·태평양 지역 주요 정상들과 잇따른 전화 통화로 결속을 다진 만큼 지방선거와 마찬가지로 압승이 예상됐다.
그러나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이 적절히 표현했듯이, 6월4일 오전 11시(한국시각 5일 0시) 천안함 사건을 유엔안보리에 회부하는 서한을 제출함과 동시에 “천안함 잔치는 끝났다”. 안보리의 제재 결의는 언감생심이 됐다. 정부는 구속력 없는 의장성명에라도 ‘북한의 도발’을 명시하면 된다고 후퇴했다. 그러나 그마저도 쉽지 않은 상황이라 노심초사하는 모습이다.
애초부터 앞서나갈 생각은 없었지만 그나마 뒤에서 밀어주던 미국이 주저앉기 시작했다. 이 대통령이 안보리 회부를 발표한 6월4일 로버트 게이츠 미 국방장관은 싱가포르에서 “유엔 대북 제재가 과연 어디까지 가능할지 모르겠다. 효과가 있는지도 모르겠다”고 말했다. 그는 김태영 국방장관과 싱가포르에서 만난 뒤 “유엔에서 얻을 수 있는 것들을 우선 지켜보고, 그 이후에 다음 조치를 생각하고 싶다”고 말했다. 그러고는 준비 부족을 내세워 6월8~11일 서해에서 하려던 한-미 합동 군사훈련을 연기했다. 국방부는 이 군사훈련에 미국의 핵추진 항공모함 조지워싱턴호(9만7천t)가 참가할 것이라고 흘렸다. 그러나 미 국방부는 이를 부인했을 뿐 아니라 예고했던 한-미 국방장관의 공동 기자회견도 취소했다.
“북 압박해 얻는 게 무엇인지 모르겠다”
게이츠 장관의 6월6일 〈BBC〉 회견은 말 그대로 솔직했다. “솔직히 말하면, 북한이 자기 체제에 대한 외부 세계의 생각에 신경 쓰지 않는 한, 또 북한이 자국 국민의 안녕에 신경 쓰지 않는 한, 어느 시점에 군사력을 쓸 의향이 없다면, 할 수 있는 것이 많지 않다.” 한마디로 ‘한국이 안보리에 회부해 얻을 게 뭔지, 북한을 압박해 얻을 수 있는 게 뭔지 모르겠다’였다. 〈AP통신〉이 천안함 침몰 사건 20여 분 전까지 불과 75해상마일(139km) 떨어진 곳에서 한국과 미국이 한국 잠수함을 가상적으로 설정해 추적하는 대잠훈련을 했다는 보도를 한 건 그 뒤였다. 그동안 미국은 천안함과 관련해서는 한국 정부의 방침을 지지하는 발언 외에 어떤 구체적 언급도 하지 않았다. 그러나 6월6일 〈AP통신〉은 미군 관계자들을 통해 대잠훈련의 장소, 참가 함정, 내용 등을 공개했다. 주한미군 대변인인 제인 크라이턴 대령은 직접 이 훈련이 3월25일 22시에 시작해 26일 21시에 종료됐다고 시간까지 확인해줬다.
이명박 정부의 천안함 외교는 갑자기 미국에 의해, 그것도 북한에 대해 가장 강경한 미 국방부에 의해 구멍난 풍선처럼 바람이 빠지기 시작했다. 미국의 시사주간지 는 6월4일 게이츠 국방장관이 중국을 방문하려다 ‘퇴짜’를 맞은 것은 미-중 관계의 긴장을 드러낸다면서, 천안함 사건이 긴장을 더욱 고조시키고 있다고 지적했다. 게이츠 장관의 발언 뒤엔 중국이 있었다. 중국 당 기관지 국제판인 영문 와 영자지 는 6월8일 1면 톱으로 미 항모(조지워싱턴호)가 서해 훈련에 참가할 경우 남북 간은 물론 중국을 포함한 한반도 주변의 긴장을 고조시킬 것이라고 경고했다. 또 홍콩의 는 6월6일 한국이 천안함 사태에 대응하는 방안의 하나로 3세대 패트리엇 미사일(PAC3)을 도입해 미국 주도의 미사일방어(MD) 체제에 참여하는 것을 검토하고 있다면서 이는 중국의 반발을 살 우려가 있다고 말했다.
중국은 이처럼 미국을 통해 고삐가 풀린 듯한 한국의 강경 대응에 제동을 거는 한편 러시아와 공동전선을 펼쳤다. 이 대통령이 안보리 회부를 공식 발표한 6월4일 양제츠 중국 외교부장의 초청을 받은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무장관은 베이징에서 회담한 뒤 이렇게 밝혔다. “러시아와 중국은 한반도가 실질적으로 군사적·정치적 위기 직전의 상태에 와 있는 것을 매우 우려한다. 천안함 침몰과 관련된 증거들은 세계가 필요하고 적절하다고 생각할 정도까지 설명할 수 있는 것이어야 한다.”
이 대통령 강경책은 나 홀로 계속라브로프 장관은 북핵 6자회담과 관련해 “아직 그걸(6자회담을) 얘기하는 건 너무 이르다”면서도 “6자회담의 협상 프로세스가 시작될 것을 확신한다”고 말했다. 중국은 천안함 사태 이래 일관되게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을 수호하는 것이 모든 관련국의 이익에 부합하며 6자회담을 조속히 여는 것이 필요하다”는 태도를 견지해왔다. 미국의 속내도 중국과 다르지 않다. 5월26일 서울에 들른 클린턴 미 국무장관은 기자회견에서 “북한의 호전성과 도발 행위에 눈을 감아서는 안 된다”며 안보리 회부 지지와 북한의 책임을 묻는 추가 대응을 검토하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는 5월24~25일 미-중 전략대화에서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은) 미국과 중국의 공동 책임”이라는 것에 합의했다. 클린턴 장관의 서울 기자회견도 강조점을 어디에 두느냐에 따라 그 메시지는 다르다. 그는 마지막 대목에 이렇게 덧붙였다. “천안함 침몰이라는 즉각적인 위기는 아주 강하지만 계산된 대응책이 필요하다. 좀더 장기적으로 북한의 방향을 전환하는 전략도 필요하다.”
그럼에도 이 대통령은 천안함의 문제 해결 없인 한 발자국도 나갈 수 없다는 자세를 보였다. 그는 6월4일 싱가포르 와의 회견에서 “천안함 사태 해결 없이는 6자회담도 성과를 거둘 수 없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은 5월24일 대국민 담화에서 “국제사회의 책임 있는 어떤 나라도 천안함 사태가 북한에 의해 자행됐음을 부인할 수 없게 됐다”고 말했다. 그 말은 지금 부인되고 있다. 그건 현실 정세에 대한 무지와 오만이 자초한 것이다. 침몰한 것은 천안함만이 아니다.
강태호 기자 한겨레 국제부문 kankan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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