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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당 강화로는 희망이 없다”

‘한나라당 2중대’ 비판받는 노회찬 진보신당 대표 “강력한 진보 정당이 출현해야”
등록 2010-06-11 23:07 수정 2020-05-03 04:26

6월4일 서울 여의도 진보신당 당사엔 “노회찬은 왜 후보 사퇴 안 해서 오세훈을 당선시켰냐”는 항의 전화가 연방 걸려왔다. 당직자들은 이들을 설득하느라 진땀을 뺐다. 하지만 청바지에 노란 티셔츠, 노란 스니커즈 차림의 노회찬 진보신당 대표는 담담해 보였다. 6월2일 서울시장 선거에서 완주하고, 14만3459표(3.3%)를 얻은 ‘죄’로 ‘한나라당 2중대’라는 여론의 뭇매를 맞고 있는데도 그는 “진보 정치를 하면서 허벅지에 대못이 박힌 것처럼 힘들고 어려울 때도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손톱 밑의 가시’ 정도”라며 웃었다. 야권의 서울시장 후보 단일화 실패 책임을 놓고는 “오세훈 시장 재선을 막지 못한 책임이 있지만, 한명숙 후보 재판 결과와 노풍에만 기댄 안이한 민주당의 책임이 더 크다”고 단호하게 선을 그었다. 또한 진보 정치 세력의 재편 방향은 “진보적 가치의 재구성”을 전제로 한 ‘진보대연합’임을 다시 한번 강조했다. 인터뷰는 6월4일 서울 여의도 진보신당 당사에서 이뤄졌다.

노회찬 진보신당 대표. 한겨레21 류우종 기자

노회찬 진보신당 대표. 한겨레21 류우종 기자

-선거 이후 노 대표 비판 여론이 높다.

=어제는 마음이 편치 않았다. 그런데 내 트위터에 올라온 수천 통의 글을 보고 굉장히 놀랐다. 내 선택을 비판하는 글은 1% 정도고, 나머지는 나를 찍었든 안 찍었든 “후회하지 않는다”며 “계속 더 잘하라”는 격려였다. 나 개인만 생각하면 (한명숙 후보를) 지지선언 해주면 엄청나게 박수받고, 어딜 가나 칭찬받았을 거다. 하지만 나는 진보신당 대표이기 때문에, 개인으로서 눈앞에 뻔히 보이는 과실이라도 쥘 수 없다. 그 때문에 내가 영원히 (정치적으로) 망가질 수도 있지만, 당을 책임지는 한 당을 망가뜨리는 일을 해선 안 된다.

-하지만 대중은 ‘선거 연합을 통해 민주당은 집권할 방법을 실험하고, 진보정당은 성장의 기회를 만들어보라’고 요구했다고 볼 수 있다. 서울시장 선거의 경우 진보신당은 ‘독자 노선’을 고집하다 이를 달성하는 데 실패한 셈 아닌가.

=진보신당이 선거 연합을 거부하고 독자 노선을 갔다는 건 사실이 아니다. 우리는 진보정당의 미래를 위해 민주노동당과의 선거 연대를 제일 중요시했고, 실제로 후보 단일화를 이룬 곳도 적지 않다. 당론도 ‘민주당과의 단일화 금물’이 아니다. 다만, 서울은 우리로서도 가장 중요한 지역인데다 당 대표가 나가는 곳이기 때문에 단일화하려면 일정한 조건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민주당은 애초부터 ‘물러서라’고만 했다. 정치적 협상으로 결정하자는 걸 민주당이 거부해 일차적으로 (‘5+4 회의’에서) 단일화가 무산된 것 아닌가.

-민주당과 일부 누리꾼들은 “심상정이 아니라 노회찬이 사퇴했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오랫동안 진보 정당의 발목을 잡은 ‘한나라당 2중대론’도 들끓는다.

=반이명박 전선에 함께 섰지만 오세훈 시장의 재선을 막는 데 실패했다는 점에서 우리에게도 당연히 정치적 책임이 있다. 하지만 내가 후보 사퇴를 안 했기 때문에 오 시장이 이겼다는 주장은 사실이 아니다. 서울 25개 구청장 가운데 21개를 민주당이 이겼다. 서울시의원도 3분의 2가 민주당이다. 이런 상황에서 서울시장 선거에서 진 건 민주당의 책임이 더 크다. 안이했다. 선거 전략이 한명숙 후보의 (뇌물 수수 혐의 재판) 승소와 노풍에 의존하는 것뿐이었다.

나한테 단일화하자는 압박도 없었다. 이제 와서 선거에 석패했다고 ‘네가 죽어줬어야 했다’고 하는 건 정말 잔인한 얘기다. “진보신당의 가치를 지키는 것보다 오 시장의 재선을 막는 게 더 중요한데, 왜 시대적 의미에 복무하지 않느냐”고 나를 비판하는데, 이런 비판은 민주당에도 동일하게 적용해야 한다.

-심상정 전 공동대표가 후보 사퇴를 발표하기 전에 만나 무슨 이야기를 나눴나. 당 안에선 심 전 대표의 징계 요구도 거세다.

=심 전 대표가 사퇴 결심을 말하면서 “양해해달라”고 하기에 “그 심정은 충분히 이해하지만, 올바른 선택은 아닌 것 같다. 사퇴 안 했으면 좋겠다”고 재고를 요청했다. 그렇게 하더라도 유시민 후보가 당선될 가능성이 적다고 봤기 때문이다.

이 논란의 배경엔 ‘완주가 목표’라거나 ‘신자유주의 세력과 손잡으면 안 된다’는 일부 당원들의 문제의식이 있다. 하지만 후보 사퇴는 절대 일어나서는 안 되는 일이 아니다. 선거는 현실적이고 세속적이기 때문에 사퇴가 필요하다면 할 수 있다. 후보 단일화도 선거 완주도 하나의 목표를 실행하기 위한 수단이다. 급박한 상황에서 (당 내부에서) 충분히 논의해 내린 결론이 아니라는 절차적인 문제는 있지만, 이건 정치적 사안이다. 정치인이 정치적으로 내린 판단이므로, 옳든 그르든 그 사람이 책임지고 풀 문제지 당헌·당규를 적용할 일이 아니다.

-이번 선거를 계기로 정치권 안팎에선 정치 세력 재편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힘을 얻고 있다.

=민주당을 더 강화하는 것으로는 희망이 없다. 2012년 대선도 성공하기 어렵다. 민주당이야 계속 존재하겠지만, 강력한 진보 정당이 출현해야 야권 전체를 강화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민주노동당이나 진보신당이 이 상태로 계속 가면 안 된다. 하지만 과거로 복원하듯 통합하는 건 국민에게 감동을 줄 수 없다. 이 기회에 진보가 추구해야 할 가치를 재구성하고, 진보대연합을 중심으로 새로운 진보 정당이 나와야 한다. 복지 대혁명이나 보편적 복지라면 과거를 불문하고 다 모일 수 있지 않겠나. 그래야 민주당이 미워도 대안이 없어 찍는 호남 민심도 붙들 수 있고, 당선 가능성 때문에 저쪽(민주당)에 가 있는 사람도 넘어올 수 있지 않겠나. 그 점에선 심 전 대표도 생각이 같다.

-노 대표는 지난해 12월 과 한 인터뷰에서 “진보적 가치가 중심이 된다면 국민참여당과도 진보대연합을 할 수 있다”고 했다.

=국민참여당이 진보적 가치에 동의하면 같이 하는 거고, 안 하면 못하는 거다. 민주당은 당 차원에선 (진보적 가치에 동의하는 게) 안 될 거라고 예상하는 거다. 다만 진보대연합이 당끼리만 모이는 것으로는 보지 않는다. 어디에 속해 있든 (진보적 가치 재구성에 동의하는) 개인이라면 함께할 수 있다.

-선거 직후 손학규 전 민주당 대표와 정동영 민주당 의원 등이 정계 개편 논의에 시동을 걸고 있다.

=전혀 새로운 얘기가 아니다. 스스로 혁신해서 국민의 지지를 못 얻고 쇠약해질 때마다 외부 수혈로 현상 유지를 해온 민주당의 전통 같은 거다. 어떤 미사여구로 설명을 하든, 그렇게라도 외부에서 끌어와 보강하지 않으면 버티기 힘들다는 방증 아닌가. 나는 민주당 단독으로 집권 못한다고 본다. 집권할 만큼 스스로 개혁할 의지도 없다. 그래서 진보 세력을 키우고 힘을 합해야 한다.

-좌파부터 자유주의자까지 함께하는 미국 민주당처럼, 우리도 연합정당을 만들고 그 안에서 진보개혁 세력이 경쟁하고 서로 힘을 키워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미국의 의료보장·교육·복지 체계가 우리보다 수준이 떨어지는 이유는 진보 정당이 없기 때문이다. 이회창 자유선진당 총재와 비슷한 철학을 가진 사르코지가 프랑스 대통령이지만, 고용정책은 우리나라 민주당보다 훨씬 좌파적이다. 그건 프랑스 좌파의 힘이 그만큼 세기 때문이다. 한국도 마찬가지다. 정당이 다양한 계급과 계층의 요구를 녹여 중심을 잡으려면 ‘보수 정당 대 진보 정당’의 구도로 가야 한다. 연합정당 얘기는 전혀 올바른 길이 아니다. 한나라당의 주장에 합의해 (풀뿌리 지방자치의 기본 단위인) 기초의회를 다음 지방선거부터 없애기로 한 게 민주당이다. 이들과 진보신당은 기본 철학이 다르다.

-민주당과 ‘선거 연합’은 할 수 있다면서 ‘연합정당’은 안 된다는 게 모순처럼 들린다.

=정치는 순결주의·순혈주의로만 갈 수 없다. 다만 정체성이 크게 훼손되지 않고, 내부 구성원의 합의에 기반하며, 명분과 실리가 보장될 때 함께할 수 있는 거다. 이명박 정권에서 치르는 다음 총선과 대선에선 (진보개혁 진영의) 연대·연합을 더욱 진지하게 고민하고 응해야 한다. 하지만 진보신당과 민주당은 중심적인 노선 자체가 다르기 때문에 따로 존재할 수밖에 없다.

글 조혜정 기자 zesty@hani.co.kr·사진 류우종 기자 wjryu@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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